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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개의 '성난 촛불'이 시청 앞 광장에 켜졌다.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극대화되고 있다. 연일 전국을 밝히는 꺼지지 않는 촛불은 반성하지 않는 오만한 권력에 대한 국민의 '선전포고'다.

 

그런데 1일, 정부는 민심을 거역하는 또다른 신호탄 하나를 쏘아올렸다. 한반도대운하 사업을 공식화한 것이다. 청와대 쪽에서는 '운하 사업 보류설'도 흘러나오고 있지만, 그간 갈지자 행보를 보이면서도 포기하지 못했던 행태로 볼 때 운하 백지화로 이어질지는 회의적이다.

 

국토부 대운하사업준비단의 정내삼 단장은 1일 <한국방송> 일요진단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운하 실체 공개는 민간사업 제안서가 제출되는 6월 말 이후가 될 것"이라며 "대운하는 물관리와 물류, 관광 등이 가능한 다목적용으로 국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정종환 국토부 장관이 간부회의에서 "운하 관련은 있는 그대로 적극 알리고, 정공법으로 대처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나온 것이다. 국토부 김재정 대변인은 "이번 주부터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운하 추진 상황을 설명할 방침"이라고 했다. 이제는 밀실에서 나와 운하에 대해 공격적으로 홍보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대운하 실체, 6월 말 이후 공개", 본색 드러냈지만...

 

이제야 본색을 드러낸 셈이지만 한편으로는 환영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최근 과학자로서 그 영혼을 빼앗기기를 거부했던 김이태 박사가 양심선언을 통해 "국가 군사작전도 아닌 한반도 물길 잇기가 왜 특급 비밀이 되어야 합니까"라고 항변했듯이 그간 한반도대운하는 밀실에서 추진됐다.

 

그래서 정부가 운하를 추진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모를 정도로 모호했다. 이 때문에 운하에 대해 문제제기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난 몇 달간 지속돼 왔다. 이젠 정부가 공개적으로 나서겠다니 운하 찬성측과 반대측이 공개된 장소에서 정면 대결을 펼칠 수 있는 장이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짚어야 대목이 있다. 우선 정부는 이번에 작심한 듯 '정공법'이란 표현을 썼지만, 그 모양새가 극히 옹색하다. 가령 김이태 박사가 '하천정비 사업은 사실상 한반도대운하 사업'이라고 양심선언했을 때도 정부는 발뺌했다. '물길 잇기 기본계획 및 5대강 유역 물관리 종합대책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 관련 정부의 공식 문건이 폭로된 뒤에야 정부는 4대강 하천정비 사업이 한반도대운하 사업이라는 것을 실토했다. 지금에서야 정공법 운운하는 것은 도둑질을 하다가 들키니까 적반하장격으로 '그게 뭐 어때서'라고 머리를 들이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태다.

 

이것만이 아니다. 한반도대운하 공약은 이명박 대통령의 제 1공약이었다. 운하를 통해 물류혁명을 이루고 4만불 시대로 진입하겠다는 사람들은 지금 나서고 있지 않다. 이 대통령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운하 이론가'로 알려진 유우익 대통령 실장, '100원 투입하면 230원의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경제성 분석을 한 곽승준 국정기획 수석, 책까지 내면서 '대운하 전도사'로 나섰던 추부길 홍보기획비서관 등도 화려한 수사를 동원해 한반도대운하를 찬미하면서 청와대에 입성했지만 그들은 침묵하고 있다. 이제 새롭게 임명된 국토부장관과 일개 부처 간부가 나서서 총대를 메겠다고 나선 형국이다.   

 

"국민 여론 수렴" 그 거짓말을 어떻게 할 것인가

 

또 그 과정에서 생략된 게 너무나 많다. 지금까지 드러난 거짓말에 대한 해명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국민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전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이같이 말해 왔다.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 그리고 집권여당의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여론을 수렴했다는 얘기를 들은 바 없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얘기도 들은 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운하 추진을 선포했다. 결국 그동안 국민을 기망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국민 세금 한 푼도 들이지 않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하지만 정내삼 단장은 "30억 원을 들여 물길 잇기 및 5대강 유역 물관리 종합대책 연구용역을 건설기술연구원, 국토연구원, 교통연구원, 해양수산개발원, 해양연구원 등 5개 국책연구기관에 맡겨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수위에서는 운하 TF팀이 운영됐다. 또 일부 자치단체도 운하 추진과 관련한 조직을 가동 시키고 있다. 그럼 대체 이 돈은 누구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가.

 

이 대통령은 또 "순수한 민간사업이기 때문에 (정부) 스케줄이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정부가 앞장서서 운하를 추진하는 형국이다. 지난 총선 직전에 폭로된 정부 문건에는 운하와 관련한 구체적인 스케줄까지 나와 있고, 민간업체들에 대한 지원방안까지 포함돼 있다. 또 최근 공개된 '친환경적 친문화적 물길 잇기 기본계획'에도 수계별 운하 물동량 추정 및 경제성 분석, 운하 선박 및 선박 운항조건 분석 등이 적시돼 있다. 이것도 앞뒤가 안맞는 말이다.

 

어디 이뿐인가. 한반도대운하의 목적은 물류혁명→ 관광운하→ 이수·치수 등 변천을 거듭해왔다. 수심, 운행 컨테이너선 크기, 재시공할 교량 숫자, 노선조차도 수시로 바뀌었다. 이젠 사업 명칭조차 한반도 대운하에서 '5대강 유역 물관리 종합대책'으로 바뀌었다. 한 찬성론자는 "반대론자들의 지적을 적극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해 달라"고 필자에게 말하기도 했지만,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사업이 이렇게 허술해서야 되겠는가. 문제는 껍데기는 변신을 거듭하면서 바꿨지만, 그 알맹이는 사실상 그대로라는 것이다.

 

촛불은 정권의 오만함에 대한 심판이다

 

최근 이 대통령은 광우병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격해지자 대국민 담화를 통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 뒤에도 광화문을 달구는 '비폭력 촛불'은 연일 타오르고 있다. 입으로는 사과를 말하면서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정권의 이율배반적 태도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다. 

 

한반도대운하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이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사실상 3차례에 걸쳐 고개를 숙인 바 있다. 이 대통령은 한반도대운하에 대한 국민 여론이 악화되자 당선 직전 마지막 TV 연설에서 "당선이 되더라도 국민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선 직후 태도를 바꿔 "운하를 건설할 준비는 100%돼 있다"며 인수위가 설치고 난 뒤 여론의 역풍을 맞자, 이 대통령은 또 이와 비슷한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지난 총선에서 집권여당은 운하 사업을 공약에서 빼기까지 했다. 선거를 앞두고 압도적인 반대여론을 의식한 것이다. 

 

이렇듯 지난 1년 반 동안 3라운드에서 참패한 한반도대운하. 이를 '촛불 정국'에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정권의 오만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촛불로부터 배운 게 없다는 뜻이다. 왜 촛불이 경찰의 모든 물리력에 맞서, 물대포와 소화기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까닭을 모르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입으로는 "소통이 부족했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소통할 줄 모르는 '불통 대통령'이라는 방증이다.

 

한반도 대운하 추진, 그건 파국이다

 

이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관련 업무보고에서 "초를 산 자가 누구인지, 그 배후가 누구인지를 밝히라"고 호통을 쳤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이 촛불의 배후는 '소통'이다. 촛불의 원동력은 소통의 힘이다. 광우병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우려가 인터넷이라는 공감의 장을 통해 공유되고 확산되면서 촛불은 꺼질 줄 모르고 계속 타오르는 것이다.

 

지금 국민 70~80%가 한반도대운하 반대하고 있다. 국민들은 한반도대운하가 우리를 4만 불 시대로 이끄는 게 아니라 식수재앙, 환경재앙 등 파국으로 이끌 수 있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비겁하게 말을 바꿔가면서 운하를 강행하려는 정권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국민들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불통을 작심한 정권. 실로 겁 없는 정권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운하를 백지화하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권은 또다른 '거대한 촛불'로 겹겹이 포위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건 곧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이다.  


태그:#경부운하, #한반도대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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