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집회 다이어트' 홍보(?)에 나서다

 

집으로 돌아와 언론 기사를 보니, 시위는 새벽 2시경에 해산됐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새벽 5시가 넘어서 끝났다. 100여 명의 참가자들은 청계광장으로 이동해 해가 뜨면서 우렁찬 박수와 함께 해산했기 때문이다.

 

청계광장으로 이동한 시간은 새벽 3시경이었다. 그전에는 시청 앞 광장에서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대체로 나는 사람들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을 때에 '자유발언'을 나서는 편인데, 그럴 때의 나는 가급적 웃음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내가 그 당시에 이야기했던 것은 바로 '집회 다이어트(?)'다. 나, 요즘 5kg 정도 감량됐다. 그것도 2주 사이에 말이다. 뭔가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닌 데다가, 운동량은 그야말로 막대하다. 게다가 잠을 자기도 어렵다. 체중 감량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혹시 주변에 다이어트에 민감하신 분이 있다면, 집회로 데리고 나옵시다! 몸무게가 시원하게 죽죽 빠질 것입니다"라고 외친 것 같다. 참가자 분들은 그것이 '참여'를 권장하는 의미가 담긴 농담임을 잘 알고 박수를 쳐주셨다.

 

 

 

어느 때보다 격렬했던 대치, '안경' 박살나다

 

퇴근 후, 곧바로 시청 앞 광장에 도착하니 시위대와 전의경은 엄청난 대치를 벌이고 있었다. 이제, 시위 현장에 도착하면 내가 가만히 있어도 정보를 주시는 분들이 많다.

 

상황을 들어보니,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닭장차' 한 대가 시위대의 후미인 시청 광장 옆으로 빠지려던 상황에서, '닭장차'가 전진을 시도하다가 몸싸움 도중에 밀린 시민 1명이 차  밑에 깔렸다는 것이다.

 

증언은 분분했지만, 여러 의견들을 분석해본 결과 '고의성'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역시 경찰의 태도가 문제였다. 시위대는 사고를 낸 전의경이 직접 나와서 사과를 할 것은 요구했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건 무리한 요구다. 평상시라면 맞는 요구지만, 그 전의경의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현장의 책임자가 나서서 '사과'를 해야 한다.

 

"책임자로서 휘하 전의경의 부주의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해 불상사가 일어났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최소한 이런 이야기가 나와야 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중요하다"느니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전의경들을 강제로 동원해 시민들을 밀어내려 했다. 다시 한번 격한 몸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결국 그 격한 몸싸움 과정에서 상황을 촬영하던 나도 '피해'를 봤다. 거칠게 진입하던 전의경의 팔에 얼굴을 강타당하면서 안경이 박살난 것이다.

 

다행히도 다치지 않았다. 순간 화가 났지만, 상황이 상황인만큼 거기서 꾹 참으려 애썼다. 그것보다 화가 난 것은, 역시나 사과 한마디 없이 전의경을 강제로 빼냈다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은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협상 끝에 '닭장차'로 들어가 신원을 확인한 것, 역시 공권력과의 대치 상황에서는 '변호사'만큼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직업도 없는 것 같다.

 

 

또 다시 잡힌 '프락치'

 

'닭장차'를 놓고 시위대와 전의경이 대치를 벌이는 사이,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시위대가 누군가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프락치'가 잡힌 것이었다.

 

'프락치'는 횡설수설했다. 신분증이 없다느니, 내가 경찰이 아니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시위대의 감정에 불을 지폈다. 이런 상황에서도 '민변' 변호사들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사람들은 큰 목소리로 "변호사님!"을 외치기 시작했고, 변호사가 와서야 '프락치'는 사실을 토설했다. 서울 모 경찰서 정보과 소속 형사라고 했다.

 

일단 이 형사는 '사실 고백'을 했던 만큼, 약속대로 돌려보내주었다. 경찰, 왜 자꾸 이런 식으로 대응하나? 하긴, 대통령이란 사람은 귀국 후 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촛불은 누구의 돈으로 샀느냐"고 캐물었다고 한다. 그저 그 눈에 '돈'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미안하다. 촛불은 나도 3천원 가량의 기부금을 냈으니, 내 돈으로 산 격도 된다. 촛불 사는데에 돈 보탠 것이 죄라면, 나도 잡아가라. 하나도 안 무섭다.

 

'노래'까지 시킨 야속한(?) 시위대

 

시위대는 시청 앞 광장과 청계광장을 거쳐가며 자유발언을 진행했다. 그 중간에는 난감한(?) 요구도 있었다. 자유발언에 나서는 사람이 없던 상황이었다. 나 더러 "노래 한 곡 뽑으라"고 하더라.

 

돌아보니 안할 수가 없던 상황이었다. "내 목이 쉬어 제 목소리가 나오기 어려우니 양해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를 잠시 불렀다. 목소리가 쉰 것이 가장 안타까워진 순간이었다. 더 난감했던 것은, 그 순간에도 꽤 많은 여성 시위 동지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부끄러웠다.

 

어쨌든, 그렇게 이어간 자유발언에는 다양한 내용들이 나왔다. 가장 단적으로 많이 나왔던 이야기는 '예비군'에 관한 것이었다.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마음은 고맙고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예비군'이 앞장서서 시위대를 지나치게 보호하려 나설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오히려 싸워야 할 의지를 반감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예비군의 존재 그 자체에서 위압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면서 빠질 경우에 오히려 위축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발언자는 65학번으로서 386세대의 한 사람이고, 쇠고기를 취급하고 있다는 분이었다. 본인도 미국산 쇠고기를 취급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은 그런 입장에서도 너무 참담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여러분들이야말로 영웅"이라면서 "쇠고기 취급하는 사람도 이번 개방에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대변하고자 나왔다고 했다.

 

그 다음은 시위에 처음 나왔고 소심해서 누군가의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지만 용기를 내서 나왔다는 어느 20대 여성이었다. "중고생을 울게 하고 우리 부모님들을 눈물짓게 하며 내 목소리를 잠기게 한 이명박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해 큰 환호를 받았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의무"

 

이날 발언자들의 발언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발언을 꼽자면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는 것이 민주시민의 의무"라는 발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잘못된 일에 대한 '분노'가 하나하나 모여 승화되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폭력을 행사해선 안 되지만, '분노'할 줄은 알아야 한다. 그 분노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이제, 31일 토요일 저녁 7시가 되면 다시 그 '분노'들이 모일 것이다. 이 세상에는, "촛불 산 돈"이나 운운하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줄 당신들의 분노가 필요하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는 것,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마음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촛불문화제, #촛불집회, #촛불시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