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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쇠고기협상 장관 고시가 발표된 29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제22차 촛불문화제에서 수만명의 시민, 학생들이 촛불을 높이들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미 쇠고기협상 장관 고시가 발표된 29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제22차 촛불문화제에서 수만명의 시민, 학생들이 촛불을 높이들고 재협상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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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결혼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새댁이자 헌법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입니다. 요즘 낮엔 공부나 살림을 하고 밤이면 거리로 나서는 '주경야투' 생활을 하고 있는데요, 며칠 지내보니 386 선배들이 '우리는 데모 하느라 공부 않(못)했다' 말씀하시는 게 절로 이해가 갑니다.

거리의 열기가 어찌나 뜨거운지, 새벽 0시는 기본이고 3~4시까지도 사람들은 거리를 행진하고 자유발언을 이어가고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아름답고 자유로운, 그 생생한 거리를 잃고 싶지 않다는 노파심에 이렇게 부족한 글을 몇 자 적어봅니다.

최근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및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나온 어린이들, 청소년들, 20, 30대부터 할아버지나 중장년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시위대의 다양성은 비단 연령대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시위대에는 푸른 눈을 한 키 큰 백인여성도 있었고, 우리보다 검은 피부를 가진 분도 있었습니다.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함께했고요. 피어싱을 하고 머리를 닭벼슬처럼 세운 청년과 미니스커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여성이 함께 행진하고, 교복을 입은 학생과 탈학교 청소년이 함께 구호를 외칩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행동하다보니, 외부를 향한 민주주의 못지않게 내부를 향한 민주주의도 필요합니다. 청소년의 집회 참여에 대해 "불씨를 지핀 청소년들, 이제는 위험해졌으니 쉬세요, 어른들이 잘 하겠습니다"라는 시선은 그들을 당당한 민주시민에서 보호의 대상으로 격하시키는 것입니다. 조금만 분위기가 험악해져도 "여성분들 뒤로 빠지세요, 위험합니다", "남자들 앞에 나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집회 공간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시민들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2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한미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2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한미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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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25일)을 기점으로 촛불시민들은 "비폭력"을 하나의 주요 구호로 외치고 있습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전경들에 대한 시선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습니다. 시민들은 전경들에게 물을 나눠주기도 하고, 특히 폭력 진압에 대해 "위에서 명령하는 경찰이 나쁘지 얘들은 무슨 죄가 있냐"고 말할 정도입니다.

"지도부 없고 배후 없는" 새로운 촛불시위에서, 여성들은 오히려 가장 강력한 행위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차도를 행진할 때도, 전경들과 시비가 붙을 때에도 당당하게 의사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가끔 성난 시민이 전경에게 폭력을 휘두르면 여지없이 주변 여성들의 비난이 쏟아집니다. 뿐만 아니라 전경들을 향해서도 겁 없이 "너희도 국민 아니냐, 우리 모두 잘 살자고 이러는 거다, 함께 하자"고 설득하기도 하고, "때리지 말라"고 거칠게 항의하기도 합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가지고 벌써 20일이 넘게 집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집회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것은, 시민들이 이 공간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저 남편따라 투표하는 사람 정도로 치부되던 주부들, 어머니들은 이제 무대에 올라가 당당하게 자유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진솔한 여성들의 발언은 많은 호응을 얻고 있고, 거리행진에서도 틀에 박힌 8자 구호가 아닌 재미있고 참신한 구호들을 외치고 있습니다. 386 분들이나 학생 운동권, 노동운동권 등으로만 시위대가 구성되었다면 절대 들을 수 없을 것 같은 참신한 구호들 말입니다.

"조선일보 찌라시", "대로변에 불법주차", "민주경찰 퇴근해라", "이명박은 회개하라" 그 중 한 여학생이 자유발언 끝에 외쳤던 구호가 가슴에 남습니다.

"이명박이 불법이고, 우리가 평화다."

여성들도 내 권리를 찾기 위해 거리로 나선 것입니다

27일 새벽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던 예비군들이 촛불집회를 마친 뒤 종로거리로 나와 '이명박 탄핵' '고시 반대' '협상 무효'을 외치고 있다.
 27일 새벽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던 예비군들이 촛불집회를 마친 뒤 종로거리로 나와 '이명박 탄핵' '고시 반대' '협상 무효'을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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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다음 아고라를 주축으로 예비군분들이 군복을 입고 집회에 나오고 있습니다. 민중의 지팡이여야 할 경찰·전의경들이 노약자에게까지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도저히 볼 수 없어서, 전경들 앞을 막아서고 대신 맞으며 시민들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오늘(30일) 신문을 보니 많은 언론들이 예비군들의 행동에 박수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하기에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시민들은, 여성들은, 청소년들은 비폭력으로 무저항 하겠다는 게 아니라, 폭력을 쓰지 않되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권력과 맞서길 원합니다. 그들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폭력을 휘둘러야 하는 전경에게 꽃을 전달해주고 싶어하고, 함께 행진했듯이 함께 목소리를 내길 원합니다.

경찰의 폭력을 막는 것에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예컨대 29일 엄마들의 '유모차 행진'이 바로 그것입니다. 엄마로서, 자녀들의 안전이 얼마나 걱정되겠습니까. 그런데도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행진 선두에 선 그 여성들을 향해 "위험하니 여자분들 뒤로 빠지세요"라고 말해야 할까요?

한미 쇠고기협상 장관 고시가 발표된 29일 오후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제22차 촛불문화제를 앞둔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엄마들이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우거나 안고 참석하고 있다.
 한미 쇠고기협상 장관 고시가 발표된 29일 오후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제22차 촛불문화제를 앞둔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엄마들이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우거나 안고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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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들은 전경들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막고 있습니다. 함께 싸우는 '동지'에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되는 순간, 함께 설 자리는 없어지고 맙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3개월 만에 우리가 안 것은 아무도 내 권리를 대신해 줄 수 없다는 점입니다. 국회의원들도 대통령도 국민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으니, 직접 거리로 나선 것이지요. 그런데 그 간절한 마음을 안고 거리에 나선 누군가를 향해, 이제 우리가 지켜줄 테니 뒤로 빠지라고 합니다. 이것만큼 섭섭하고도 화나는 것은 없습니다.

예비군들의 사진이 언론을 타면서, 다음 아고라에서는 '헌병 출신들도 모이자, ROTC도 모여라, 우리도 전경처럼 군복을 갖추자'는 얘기가 오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마음이 그르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경찰의 폭력에는 분명하게 항의해야 하고, 아무도 집회 시위에서 다치는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군대, 특히 한국처럼 징병제를 실시하는 군대는 분명히 국가의 것입니다. 예비군복을 입고 '일사분란'하게 뛰는 모습은 너무도 국가를, 경찰을, 전경을 연상케합니다.

'쥐를 잡자 쥐를 잡자 찍찍찍'을 외치며 조롱과 해학이 넘쳤던 거리에 '저희가 막을 테니 시민 여러분, 제발 도망가십시오'을 외치는 예비군 오라버니들은 너무 무겁고 비장합니다. 때리면 맞고, 연행하면 '닭장차 투어'를 하겠다고 나온 시민들입니다. 여성들 또한 바로 그 시민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충청>에도 송고했습니다.



태그:#촛불시위, #예비군, #여성,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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