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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30일 오후 쓰촨성 지진피해 현장을 둘러본 뒤, 3박 4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다. 반면 국내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 강행으로 인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성난 민심'이 이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엿새째 거리로 쏟아져나오고 있는 수만 명의 시민들은 이날 오후에도 쇠고기 수입 고시 철회를 요구하며 대규모 촛불집회를 예고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 방문에 맞춰 쇠고기 수입 협상을 타결짓더니, 이번에는 중국 방문 기간에 고시를 확정 발표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취임 100일도 안 돼 지지율 20% 대로 추락하는 등 국민적 저항에 직면한 가운데 미국에 이어 중국 방문에서조차 외교 결례 논란에 휩싸이는 등 내우외환에 처했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라더니... '소문난 잔치' 이어 '깡통 외교' 논란

 

미국을 방문 중이던 지난달 17일 저녁(현지시각) 미국 기업인들과의 만찬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FTA에 걸림돌이 되었던 쇠고기 수입 문제가 합의됐다고 들었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타결 소식을 전했고, 참석자들은 일제히 손뼉을 치며 환영했다.

 

당시 이 대통령에게 쇠고기 수입 협상 타결 소식은 캠프 데이비드에서 골프 카트를 탈 수 있는 '탑승권'이자, 한미 FTA 비준 실현을 위한 '통행권'이었다. 그러나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정상회담은 공동성명 하나 채택하지 못한 '소문난 잔치'에 불과했다. 미 현지 언론의 '외면'은 차라리 '부끄러운' 방미 결과를 덮어줬다는 점에서 오히려 감사할 노릇이었다.

 

게다가 야심 차게 밀어붙였던 한미 FTA 비준안 처리 역시 29일로 17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물거품'이 됐다. 때문에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검역주권을 포기했다'는 비판까지 들어가며 체결한 쇠고기 수입 협상으로 우리가 얻은 게 무엇이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특히 이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에서 부시 대통령과 나란히 앉아 미국산 쇠고기 스테이크를 먹은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이달 초부터 시작된 촛불문화제는 최근 엿새간 거리 시위로 확산됐고, '독재타도'나 '이명박 탄핵' 구호까지 터져 나오면서 '6월 항쟁'을 방불케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수 만개의 촛불을 뒤로 한 채 지난 27일 무거운 마음으로 중국 방문 길에 올랐다. 지난번 방미의 최우선 과제가 한미 FTA 였다면 이번 방중의 최대 목표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한중 관계를 한 단계 격상시키는 데 있다. 하지만 이번 방중 기간에 한중 관계가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다.

 

무엇보다 양국의 최대 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핵 문제에 관련, 이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은 단 한 발짝의 진전된 합의도 내지 못했다. 후진타오 주석과의 정상회담 합의문에서 이 대통령의 대표적 대북정책인 '비핵·개방·3000' 구상에 대한 언급이 제외된 것.

 

중국이 6자회담 의장국이고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역할을 볼 때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한 명시적인 지지 언급이 없었다는 점은 이번 방중 성과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중국의 의도성 짙은 외교적 결례가 반복되면서 양국 간 '관계 격상'이라는 의미를 퇴색시켰다. 쓰촨성 지진피해가 심각하다고는 하지만, 중국은 과거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중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속에서 이 대통령을 맞았다.

 

이 대통령의 중국 방문 첫날인 지난 27일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외신 브리핑에서 "한미 군사동맹은 지나간 역사의 유물"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 간 정상회담을 직전에 두고 '한미 동맹'을 직접 비판했다는 점에서 파문이 적지 않았다.

 

중국은 또 한국의 신정승 주중대사에 대한 후진타오 주석의 신임장 제정을 여러 이유로 계속 미루다가, 정상회담 바로 직전에야 처리했다. 이 역시 의도성 짙은 외교적 결례라는 지적이다. 중국 외교부는 홈페이지에서 한국 대통령을 '노무현'으로 잘못 표기하는 실수도 저질렀다.

 

게다가 중국 언론들은 역대 한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보다 이 대통령의 방문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1998년 10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첫 중국 순방 때나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첫 중국 방문 때는 중국의 국영 CCTV와 <인민일보>가 특집 프로그램까지 제작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29일 이 대통령의 베이징대 연설도 구설에 올랐다. 지진이 나기 전 중국을 찾은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의 베이징대 연설은 중국 텔레비전을 통해 생중계된 반면, 이 대통령의 연설은 학교행사로 국한돼 치러졌다.

 

중국 언론이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한국 정부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곱지 않은 시각을 반영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중국 정부와 중국 공산당은 철저히 외교관계에 따라 '의도된' 언행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결국 이 대통령은 이번 중국 방문을 통해 자신의 대표 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실용외교'의 엄혹한 현실을 직면하고 돌아온 셈이다.

 

청와대, '촛불 정국'에 등산대회?... '민심 불감증' 심각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는 동안 성난 '촛불'은 밤마다 청와대를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빈자리 메워 이를 수습해야 할 청와대 비서실은 오히려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총선 개입' 의혹으로 직위 해제 상태였던 행정관이 버젓이 출근하는가 하면, 이번 주말 전 직원 대상 등산 단합대회를 계획했다가 논란이 일자 서둘러 취소하는 등 '민심 불감증'을 여실히 드러냈다.

 

청와대는 애초 주말인 31일 오후 2시 전 직원들이 청와대 경내에 모여 1시간 30분 정도 인근 북악산을 등반한 뒤 뒤풀이 행사를 가질 예정이었다. 뒤풀이를 위해 각 국실별로 1인당 2만원의 경비도 지원할 계획이었다. 이 등반 계획은 류우익 대통령실장의 제안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청와대 비서관 이하 행정관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고, 급기야 행사 계획 3일 만에 전격 취소됐다. 상당수 직원들은 행사를 계획하고 주도한 청와대 상층부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쇠고기 촛불시위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왜 하필 지금 이런 행사를 추진했느냐"는 것이다.

 

청와대는 또 지난 4·9 총선 때 선거개입 논란으로 직위 해제된 최아무개 행정관의 출근을 사실상 '묵인'해 온 것으로 드러나 구설에 올랐다.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 보좌관 출신인 최아무개(4급) 행정관은 총선을 앞둔 지난달 3일 서울 강남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서상목 전 의원의 홈페이지에 서 의원의 공약을 비방하는 글을 게시했다가 문제가 되면서 직위 해제됐다.

 

그러나 최 행정관은 지난 26일부터 청와대에 출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을 통해 선거개입 논란에 대한 법적 소명이 이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직위 해제가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청와대를 비운 사이 은근슬쩍 재출근한 것이다.

 

이래저래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속담을 연상케하는 일들이 안팎으로 연출되고 있다. 국민으로서 믿고 의지할 대상을 찾지 못한 성난 '민심'은 이 대통령이 귀국하는 30일 밤 더욱 거세게 분노의 촛불을 치켜들 태세다.


태그:#이명박 대통령, #광우병 쇠고기, #중국 방문, #청와대 산행, #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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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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