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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29일 오후 과천 정부종합청사 합동브리핑센터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새 수입조건을 담은 고시를 발표하고 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29일 오후 과천 정부종합청사 합동브리핑센터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새 수입조건을 담은 고시를 발표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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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설마 하던 일이 기어이 벌어지고 말았다. 29일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끝내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를 의뢰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그 협상이 왜 굴욕적이고, 얼마나 파괴적인지 다시 말할 필요는 없다. 대다수 국민들은 이미 그 협상의 성격이 어떤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5월 29일을 신종 국치일이라고 여기고 있다.

지나간 세기 동안 우리 민족에게는 여러 차례 치욕적이고 파괴적인 역사가 있었다. 을사늑약에 이은 경술국치, 동족상잔의 한국전쟁, 5·16과 12·12 쿠데타 그리고 5·18에 이루어진 광주시민들의 참변 등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는 을사늑약의 5적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비단 을사늑약뿐이랴? 민족이 치욕과 파괴를 감수해야 했을 때에는 언제나 그것을 주동한 을사오적과 같은 무리의 만행이 번번이 있지 않았는가?

1987년 6·10 항쟁 이후 우리 국민은 이전의 시대보다는 현저히 나아진 삶의 조건을 향유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강대국들에 의해 강요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가 양극화와 정체성 상실이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그래도 어쨌든 우리의 민주주의는 자리를 잡아 갔고 국민들의 건강과 행복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는 가운데 삶의 질이 향상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우리 국민들은 모국에 대한 자부심도 어느 정도 가지게 되었다.

2008년 5월29일은 신종국치일...이를 가능케 한 '도적들'

하지만 이번에 졸속으로 체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은 6·10 항쟁 이후 우리가 어렵사리 얻은 가치와 희망들을 일거에 파탄 내는 성격을 띠고 있다. 이 협상으로 인해 우리의 건강과 행복 추구권은 무색해졌으며, 우리의 민족적 또는 국가적 자존심은 여지없이 구겨져 버렸다.

이 협상은 IMF보다도 더 불량한 후유증과 혹독한 시련을 우리에게 안기리라고 본다. 따라서 우리는 이 협상을 '늑약'(勒約)이라고 부르는 한편, 협상을 주도한 사람들을 일컬어 '도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많은 국민들은 지난 4월 18일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소식을 미국 상공회의소에 가서 박수를 하는 대통령에게 처음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 협상은 검역주권의 포기각서나 진배없다는 점에서 지독히 굴욕적이었고, 모든 국민을 괴질의 공포에 휘말리게 한다는 면에서 엄청나게 파괴적이었다. 협상을 무효화하고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우리 국민들이 세계에서 가장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먹게 되었다"고 생색내듯이 말했다. 국민들은 그 대통령이 이상해 보였다. 그리고 약간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통령은 "마음에 안 들면 적게  먹으면 될 게 아니냐"는 식으로 또 말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국민들은 자기들의 의사를 대통령에게 좀 더 분명히 표시해야 한다고 마음먹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일단 평화적인 방법으로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청계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고 정부가 어렵더라도 미국과 재협상해 줄 것을 하소연했다. 국민들은 아주 평화적으로 최소 15번 이상이나 모여 정부에 대책을 촉구했다.

그러나 사태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악화 일로를 치달았다. 일부 언론에서는 자발적으로 모인 촛불 시위자들이 불순 세력의 선동에 놀아나는 수준으로 매도되었다.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촛불 집회 현상을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정부는 정부대로 매번 말을 바꾸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정부는 영문 번역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론은 갈수록 악화되어 갔다. 평화적 집회만으로는 진정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국민들은 길거리로 나서야 했다. 그 때마다 수십 명씩의 시위 국민이 영장 없이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어떤 경찰은 시민을 방패로 찍기도 했다. 가두시위는 다소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매번 참가 인원도 늘어났다. 시위에 참가하지 않는 시민들도 버스 안에서 또는 건물 창을 통해 열렬한 지지와 격려를 보내 주었다.

협상에 대한 정부의 해명과 사과의 진정성을 믿는 국민은 아주 적었다. 절대 다수라 할 수 있는 80% 이상의 국민이 재협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차마 장관 고시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 보았다. 마침 대통령은 중국에 가 있기도 했다.

장관 고시가 바로 취소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연기 정도는 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마침 서울 시가지의 촛불문화제도 연일 격렬해지고 있었으며, 지방에서도 진즉부터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순진했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들을 무시(?)했던 것일까? 말을 바로 하자면 기실 그들이 우리를 싹 무시한 것이었다.

일찍이 김지하는 독재치하에서 부정을 저지르며 온갖 특혜를 누리던 사람들을 일컬어 '오적'(五賊)이라고 했고, 김용옥은 책에도 없는 관습헌법을 들먹이며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한 헌법재판관들을 가리켜 또 '오적'이라고 지칭한 바가 있다. 이번 쇠고기 협상을 주도한 사람들이 그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제1적-이명박 대통령] '소'탐하다가 '대'통령직 잃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최근 쇠고기 파문에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최근 쇠고기 파문에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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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타가 공인하는 제1적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번 협상의 최종 재가권자임이 틀림없다. 뿐만 아니라 그는 졸속 타협을 채근했을 거라는 혐의도 받고 있다.

그는 미국 방문 중 캠프 데이비드에 가기 전날 깊은 밤에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김중수 경제수석을 숙소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미국 상공회의소에 가서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었다고 가장 먼저 발표했다. 그는 반대여론이 거세게 일자 FTA와 쇠고기 협상은 별개의 사안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것은 불과 며칠 전 자기가 펼친 주장을 뒤집은 것이었다.

대통령은 '소탐대실'을 아는지? 즉, '소'를 탐하다가 '대'통령직을 잃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제2적-정운천 농수산식품부장관] 상명하복 신봉하는 돌쇠형?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29일 오후 과천 정부종합청사 합동브리핑센터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새 수입조건에 대한 고시를 발표하고 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29일 오후 과천 정부종합청사 합동브리핑센터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새 수입조건에 대한 고시를 발표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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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제2적은 정운천 장관이다. 농수산식품부는 쇠고기 수입의 주무부처다.

김성이 보건복지부 장관은 농수산식품부가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거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정 장관은 일찍이 "광우병은 구제역과 달리 전염병이 아니다"라고 일갈한 적이 있다. 그는 상명하복을 신봉하는 돌쇠형인 것 같다. 그에게서 소신이라는 것을 찾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게다가 그가 지니고 있는 쇠고기와 광우병에 대한 지식은 보통 국민의 수준과 비슷한 정도였다. 그는 영어 번역에서도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주무장관으로서 협상안 고시의 권한을 전적으로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가 고시를 거부했다면 대통령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어렵긴 하지만 그가 협상안 고시를 거부하고 장관직을 사퇴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는 소신을 행사해서 그 동안의 실수와 불찰을 단번에 만회할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를 스스로 박차 버렸다.

[제3적-민동석 통상정책관] 협상테이블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한미 쇠고기협상 수석대표였던 민동석 농업통상정책관 등 농림수산식품부 간부들이 29일 오후 정운천 장관의 고시 발표 후  과천 정부종합청사를 나서고 있다.
 한미 쇠고기협상 수석대표였던 민동석 농업통상정책관 등 농림수산식품부 간부들이 29일 오후 정운천 장관의 고시 발표 후 과천 정부종합청사를 나서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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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적은 민동석 통상정책관이다. 그는 협상의 실질적인 수석대표로서 협상 테이블에 직접 앉은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합의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질문에 그것을 일부 시인하는 답변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데에 가서는 그 답변을 부인하기도 했다. 오히려 그는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을 홍보했다.

그는 "미국 쇠고기는 독을 제거한 복 요리와 같다"라는 해괴한 논리를 펼치기도 했다.

이와 같이 한-미 쇠고기협상은 이명박, 정운천, 민동석 3인에 의해 기획되고 성사되었다. 그런데 협상 체결 이후에도 협상 무효나 재협상을 추진해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 세력이 있었다. 그들 역시 쇠고기 오적에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그 제4적은 '조중동'이다.

[제4적-조중동] 미 쇠고기 수입 반대하면 '반미·친북주의자'들?

조중동은 미국 쇠고기의 위험성을 지적했던 참여정부 때와는 180도 달라진 기사를 천연덕스럽게 내보냈다. 심지어 그들은 미국 쇠고기가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반미나 친북주의자로 몰아세웠다.

그들은 수만 명씩 서울 도심에 몰려들었던 촛불집회를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시위자들이 가두 진출을 하자 일제히 탈법 시위라고 보도하기 시작했다.

[제5적-조용기 목사] 대통령이 장로라 편드시는 건가요?

조용기 목사가 CTS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 <뉴스후> 보도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혔다. 조용기 목사가 CTS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 <뉴스후> 보도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혔다.
 조용기 목사
ⓒ 뉴스앤조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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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의 반열에 목사님이 올라야 한다는 것은 비극이다. 하지만 제5적쯤에 목사님 한 분은 들어가야 하는 것이 이 시대의 현실이다.

순복음교회는 80만이 넘는 신도를 거느리고 있는 거대 종교 집단이다. 조용기 목사는 순복음교회의 현실적이고도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런 영향력을 지닌 분이라면 말을 진중히 해야 한다. 그의 말은 수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 목사는 지난 5월 18일 한기총이 주최한 서울광장 구국기도회에서 "광우병 괴담은 공포를 일으켜 우리를 패배시키려는 마귀의 꼼수이며 미국과 우리나라를 이간질하려는 것"이라고 설교했다. 그에 의하면 미국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국민들은 모두 마귀가 된다.

그는 "박정희처럼 예수를 안 믿는 대통령도 국민을 위했는데 장로 대통령이 얼마나 국민을 위하겠느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요즘 "초중고생이 청계광장에 나오는데 초등생이 뭘 아느냐?"고 초중고생을 초등생으로 바꾸어 되묻기도 했다.

모르긴 해도 기독교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은 조용기 목사 같은 분을 어느 정도 존경하리라고 본다. 조용기 목사는 일부 정치 목사들처럼 틈나는 대로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곤 한다. 이런 목사가 있으니까, 그리고 이런 목사가 자기를 지지하는 발언을 쉼 없이 해 주니까 이 대통령이 국민여론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역사는 이들을 '광우병오적'으로 기록할 것

어쨌든 국민들이 그렇게 반대하는데도 이 정권은 협상 고시를 강행했다. 정운천 장관은 재협상과 비슷한 추가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끝까지 국민을 우롱하기로 작정한 듯하다. 확인해 보니 실질적인 추가조치란 거의 없었다. 광우병 발생 시 수입금지 조처와 관련해 국제법상 인정된 주권적 권리를 문서에 적어 교환한 것뿐이었다.

그들은 100년 전 을사오적들이 폈던 논리와 거의 비슷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을사오적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유별난 논리를 펼친 것이 아니었다. 당시 그들은 강대국 일본의 보호를 받으면 우리나라가 더 잘 살게 된다는 논리를 펼친 것이었다. 그들에게 안중근 같은 이들은 불온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쇠고기 협상을 주도한 사람들은 강대국 미국을 믿고 미국을 잘 따르면 우리나라가 더 잘 살게 된다고 말한다. 그들은 촛불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불온하다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다. 을사오적에게 그랬던 것처럼, 멀지 않아 역사는 그들에게 '쇠고기 오적' '광우병 오적'이라는 칭호를 부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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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갑수 기자는 작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소설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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