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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골목길, 하얀 찔레꽃이 만발했다. 새벽 산책길에도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 같은 하얀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하얀 찔레꽃 피면 괜히 가슴이 찡해 온다. 가시가 있어서 더욱 애틋한 정서를 유발하는, 찔레꽃은 순수한 우리꽃, 누이를 닮은 꽃이다. 그래서일까. 하얀 찔레꽃이 피면 시집 간 누나가 그리워진다.

 

자형도 돌아가시고, 혼자 된 셋째 누나. 셋째 누나는 전처 소생의 아들이 있는 재혼 자리로 시집을 갔다. 그 전처의 아들을 친자식처럼 키웠다. 지금 누나의 아들 내외는 타지에 분가해 살고 누님은 고향에서 하숙업과 농사일로 바쁘게 살고 있다.

 

 

누나가 시집 가던 날. 고향의 고샅길에 하얀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기억이 난다. 유독 몸이 약했던 누나는 열일곱 살에 복막염을 앓았는데, 시골의사의 잘못된 수술로 나팔관을 잃어 아기를 생산할 수 없는 몸이 됐다. 자형은 집안의 장손이라서, 누나는 힘든 농사일뿐만 아니라 시부모님과 시조부님을 모시고 대소가의 그 많은 제사를 감당해야 하는 힘든 시집살이를 했다. 요즘 여성들에게는 어쩜 전설처럼 들리는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일곱 남매의 막내인 나는 셋째 누나의 등에 업혀 자랐다. 위의 두 누나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시집을 갔다. 나는 시집 간 누나가 보고 싶어  꽤나 먼 거리의 누나 집을 혼자서 찾아가곤 했다. 셋째 누나가 살던 그 마을 동산에도 찔레꽃이 유난히 많았다. 하얀 찔레꽃이 피면, 누나의 해맑은 미소가 기억 저편에서 떠오른다.

 

 

하얀 찔레꽃에 대한 그리움은 이런 누나에 대한 사랑에서 연유된 듯도 하다. 찔레꽃에는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 그 옛날 고려에서는 중국의 몽고에다 매년 우리의 젊은 처녀들을 바쳐야 했다. '찔레'라는 처녀도 몽고족에게 끌려갔다. 먼 타국에 노예 생활을 하게 된 찔레는 날마다 고향의 형제부모가 그리웠다. 

 

갈수록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더해가고 10년이란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찔레를 가엾게 여긴 몽고의 주인은 찔레를 고향에 돌려보냈다. 고향에 돌아온 찔레는 그러나 부모님도 동생도 만나지 못했다. 울면서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헤매다가 고향집 근처에서 죽고 말았다. 찔레가 울면서 헤매고 다니던 산골짜기에 하얀 찔레꽃으로 피어났다고 한다.

 

 

 

슬픈 전설이 깃든 찔레꽃이 피면 누나 생각에 이연실의 <찔레꽃> 노래도 일부러 녹음 테이프 꺼내 듣게 된다. 또 돌아가신 아버지가 좋아하던 흘러간 유행가 <찔레꽃>도 흥얼거리게 된다.

 

꽃이 가시가 있어 아름다운 것처럼, 가시 많은 하얀 찔레꽃은 까닭없이 슬픔이 거름이 되는 사랑의 꽃인 것 같다. 삶도 고통 없이, 가시 같은 아픔 없이, 그 어떤 꿈과 사랑도 아름답게 꽃을 피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 일 가는길에 하얀찔레꽃

찔레꽃 하얀잎은 맛도좋지

배 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엄마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밤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밤마다 보는꿈은 하얀 엄마꿈

산등성이 넘어로 흔들리는 꿈

- 이연실의 '찔레꽃' 중


태그:#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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