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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26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오마르  구엘레 지부티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 이 대통령 '지금은 생각중' 최근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26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오마르 구엘레 지부티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다.
ⓒ 연합뉴스 배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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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짧은 영어 한 토막. 취임 초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는 한 마디로 'ABC'였다. ABC, 즉 'Anything But Clinton(클린턴이 했던 것만 아니라면 뭐든지)'이었다.

클린턴이 했던 것과 반대로만 하는 이 ABC 원칙은 특히 외교·안보 정책분야에 철저히 적용됐다. 대중동 정책이 그랬고 대북한 정책이 그랬다. 그 때문에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노심초사해야만 했다.

그에 빗대어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는 'ABR'(Anything But Roh)로 통한다. 'R'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어 이니셜(Roh)에서 따온 것이다. 이 정부는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에 임명된 사람을 전부 갈아치울 태세다.

낯이 부끄럽게도 헌법기관인 감사원까지 나서서 공공기관장의 자진 사퇴를 압박하더니, 이제는 사단법인인 대학교육협의회의 사무총장 자리까지 자기 사람으로 채울 태세다. 여기저기서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

MB 정부의 정책운용 기조는 'Anything But Kim-Roh'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 정부의 정책운용 기조는 'ABR'이 아니고 'ABKR'이다. Anything But Kim-Roh(김대중-노무현)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이 정부 사람들은 비슷한 얘기를 공공연하게 해왔다. '잃어버린 10년'이 대표적인 상징조작이다.

이 정부 사람들은 지난 10년간의 민생경제와 남북관계를 '잃어버린 10년'과 '퍼주기 10년'으로 규정한다. 이 상징 조작 속에는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 판에 북한에 퍼주기 때문에 사회양극화가 심해졌다'는 '반북 코드'가 숨겨져 있다.

노태우 정부 시절에 남과 북이 체결한 남북 기본합의서는 존중하면서도 그 연장선상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수표(서명)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폄하하는 행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잃어버린 10년'을 뛰어넘어 '격세유전' 하겠다는 심보다.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있어서 남북 정상이 새로 합의한 것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비해 10년 전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남북문제 해결의 길은 이미 열려 있다"며 "남북기본합의서의 실천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남북기본합의서와 6·15공동선언을 기초하는 데 모두 관여한 유일한 정부 인사이자 통일·외교·안보 전문가인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이 실천을 강조한 반면, 이 대통령은 실천문제를 담은 남북 정상의 합의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에서는 '정신'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바로 '실천'에 있는 것이다.

집권 이후 ABC를 표방한 부시 대통령은 6개월 동안의 대북정책 검토와 '롤백' 끝에 6년을 허송 세월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지금 부시의 전철을 밟으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임동원 전 장관은 28일 '흥사단 통일포럼'에서 이렇게 충고했다.

"새 정부는 집권한 지 3개월이 지났으나 아직도 '창조적 실용'이라던가 '비핵 개방 3000'이라는 대선용 구호만 되풀이하면서 종합적인 국가전략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실용적인 대북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북핵문제와 미북관계가 진척되고 있는데 이를 호기로 활용하지 못하고, 이미 미국도 포기한 네오콘의 '비핵 개방'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비현실적인 접근방법을 답습하며 역행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위한 조정기간이라고는 하나 한반도의 현실은 긴 시간의 방황을 허용하지 않는다. 조정기간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머슴론'과 '설거지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26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26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연행자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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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이 정부는 해괴하게도 '창조적 실용'을 내세우며 아직도 방황하고 있다. 실용의 원조격인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은 고양이가 검든(좌파건) 희든(우파건)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실용을 표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좌편향적인 문화권력 교체론'을 들이대며 이념투쟁을 정당화한다. 실용과는 거리가 먼 행태다.

멀리 돌아갈 이유가 없다. 이 정부가 '경제 살리기'와 '국민 통합'이라는 시대적 정신에 따라 선진 일류국가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국민에게 내건 5대 국정지표는 활기찬 시장경제, 인재대국, 글로벌코리아, 능동적 복지, 섬기는 정부다.

앞의 세 가지가 대한민국이라는 전륜구동 자동차의 성장동력이라면 뒤의 두 가지는 분배의 뒷바퀴다. 그 가운데 '능동적 복지'는 이른바 예방·맞춤·통합형 복지를 지향하고, '섬기는 정부'는 말 그대로 국민을 섬기는 '머슴론'으로 대표된다.

그러나 하는 짓은 정반대로, 말과 행동이 따로 논다.

'능동적 복지'라는 국정지표로 본 쇠고기 문제의 본질은 이런 것이다. 즉 광우병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최소한 30개월 미만으로 '맞춰'달라는 것이고, 그것이 앞으로 비싼 한우만을 찾을 중상층과 상대적으로 값싼 미국산 쇠고기만 먹게 될 서민의 '통합'을 위한 필요충분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광우병을 정치논리로 접근하면 안 돼"라고 국민을 훈시하고, 한나라당은 "언론이 세상을 어지럽힌다(5월 2일)"고 막말을 했다. 국민들이 저항의 촛불을 든 것은 이 때부터다. 결국 그후 3주 동안 이어진 촛불집회에 불을 붙인 것은 이 대통령 자신과 한나라당인 셈이다.

'인터넷·휴대폰 문자메시지' 애용하는 '디지털 게릴라'

그뿐이 아니다. 국민적 저항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데도 청와대는 한미 쇠고기 협상과 관련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에서 끝내지 못한 일을 설거지 한 것일 뿐"이라고 한가하게 어설픈 '설거지론'을 펴기도 했다.

촛불집회를 매개로 지속되는 국민적 저항은 10대와 네티즌의 자발적 행동에서 촉발된 것이다. 촛불집회를 처음 제안하고 주도한 것은 정치권이 아니고 인터넷상의 수많은 카페와 동호인 모임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도 독자적으로 국민 저항행동을 조직화하고 실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 정부의 공권력 책임자는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주최자들을 사법처리하겠다"(5월 14일, 어청수 경찰청장)고 위협하고, 집권여당 정치인들은 "촛불집회의 배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에 대해서는 경찰 조사가 있어야 될 것 같다"(5월 27일, 주성영 의원)고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배후조종설을 제기하고 있다.

국면 전환용 정치적 발언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현장의 상황과는 너무 동떨어진 '오판'이다. 이른바 '디지털 게릴라'의 출현으로 상징되는 2008년판 '촛불문화제'는 디지털 마인드가 부족한 2MB 정부의 공권력과 정치인들이 머릿속에 그리는 80년대식 시위문화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들은 386 운동권이 대중을 동원하는 데 사용한 '사발통문'과 '삐삐' 대신 '인터넷'과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애용한다. 2MB 탄핵 서명운동도 온라인 공간에서 이뤄지고, '이명박 대통령 퇴임시계'로 희화된 심정적 탄핵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2MB 정부 사람들은 여전히 실체 없는 배후를 찾느라 허둥대고 있다.

촛불집회의 배후는 386 부모들, 전교조,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2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를 마친뒤 행진을 하며 연행자를 석방하라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2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를 마친뒤 행진을 하며 연행자를 석방하라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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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톺아보면 배후가 있기는 하다.

우선, 쉴 새 없이 휴대폰과 디카로 동영상을 찍어서 동맹카페에 무선인터넷으로 퍼나르는 '무서운 10대'와 '디지털 게릴라'의 부모는 386 세대다. 자식을 잘못 가르친 게(?) 죄라면 이들이 배후다.

386 운동권은 노무현 정부를 탄생시킨 주역이다. 이들은 80년대 군부독재의 광주민주화운동과 전교조 탄압을 지켜보면서 불의에 대한 저항의식을 체화했다. 이른바 '전교조 의식화 교육' 세대인 이들은 김대중 정부로부터 전교조 합법화와 함께 인터넷에 기반한 IT벤처 세례를 받았다.

결국 촛불집회의 배후는 386 세대이자, 전교조 교사들이자,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인 셈이다. 이들에게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 아니고, 수평적 정권교체와 국가인권위원회(김대중), 탈권위주의와 분권형 국정운영(노무현)으로 대표되는 민주주의의 제도화-공고화 10년이다.

그런 점에서 2MB 정부는 지금 10년 동안 민주주의의 제도화와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쌍방형 커뮤니케이션-탈 권위의 세례를 받은 '국민 일반'과 싸우는 중이다. 그 '국민 일반'에는 지도자도 배후도 없다. 그러니 80년대식으로 이들을 '불온 세력'으로 몰아 해산할 수도 없다. 2MB는 지금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실체 없는 유령'과 싸우는 형국이다.

지난 2000년 <오마이뉴스>가 선언한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명제는 지금 '모든 시민은 디지털 게릴라다'라는 명제로 진화하고 있다. 그런데도 2MB는 여전히 독점적 리더십과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에 갇힌 채, 탈권위와 디지털로 무장한 국민 일반과 대치중이다.

현재의 쇠고기 정국은 권력자가 국민 일반의 의식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정보격차)가 빚은 일종의 '문화지체' 현상인 셈이다.


태그:#ABC, #디지털 게릴라, #촛불집회, #잃어버린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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