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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 광덕산(699m). 도시 근교에 있는 산치고는 비교적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충남 천안 광덕산(699m). 도시 근교에 있는 산치고는 비교적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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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산은 충남 천안시 광덕면에 있다. 충남 천안시 광덕면에서 아산시 송악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해발 699m밖에 되지 않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그러나 생물 종이 다양하고 풍부한 산으로 알려져 있다. 식생이 풍부한데다 귀화식물도 적어서 자연 생태가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고 있는 편이라 한다.

2003년, 국립수목원 식물조사연구실이  발표한 '광덕산의 식물상 조사결과'에 따르면 광덕산은 총 805종의 식물군 가운데 할미꽃·엉겅퀴·흰털괭이눈 등 우리나라 특산식물이 39종이나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생태적으로 건강하다는 얘기다. 거기에는 법정투쟁까지 벌여 끝내 광덕산 중턱 건축물 신축을 저지해낸 광덕사·안양암·불교환경연대 등의 노력이 한 몫 단단히 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24일 오전 10시, 천 년 고찰 광덕사를 둘러보고 나서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광덕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다. 그러나 내가 오늘 오르려는 길은 조선시대 시를 잘 짓는 기생인 김부용의 묘소에 잠시 들른 다음 장군바위를 거쳐 가마봉으로 가는 길이다.

조선시대 3대 시기(詩妓)로 꼽히는 김부용의 묘

황진이·매창과 더불어 시를 잘 썼던 조선시대 3대 시기(詩妓)로 꼽히는 김부용의 묘소.
 황진이·매창과 더불어 시를 잘 썼던 조선시대 3대 시기(詩妓)로 꼽히는 김부용의 묘소.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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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사를 나선지 20여 분이나 지났을까. 길가에 김부용 묘소를 알리는 안내판이 보인다. 등산로에서 벗어나 오른쪽 산기슭으로 조금 올라가자 김부용의 묘소가 있다. 봉분도 군데군데 허물어지고 달랑 묘비 하나 세워져 있을 뿐이다.

평안도 성천에서 태어나 기생이 되었던  운초(雲楚) 김부용(金芙蓉). 가무와 시문(詩文)에 뛰어났던 그녀는 나이 19세 때 77세나 되는 김이양(金履陽)(1755∼1845)을 만나서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김이양은 자신의 직분을 이용하여 부용을 기적에서 빼내 양인으로 만들고나서 부실로 삼았다. 그러나 호조판서를 제수받은 김이양은 기약 없이 한양으로 떠나버리고 만다.

원망과 투정 속에서 재회를 기다리던 중 김이양의 기별을 받고 한양으로 올라간 김부용은 마침내 남산 중턱에다 '녹천당'이라는 집을 꾸미고 살림을 차린다. 그리하여 김이양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15년 세월을 함께 보냈다. 김이양이 죽은 후에도 김부용은 홀로 녹천정을 지켰다. 그러다가 몇 해 후 김이양이 잠든 천안 태화산(광덕산)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신분이 부실이었기로 한데 묻히지는 못하고 조금 떨어진 언덕에 묻혔다. 그녀가 남긴 문집 <부용집>에 수록된 시 300여 수는 우리나라 규수문학의 정수로 꼽힌다.

日永山深碧草薰(일영산심벽초훈) 낮은 길고 산이 깊어 푸른 풀 향기로운데
一春歸路杳難分(일춘귀로묘난분) 봄날이 가는 길이 아득하여 분별하기 어렵네요
借問此身何所似(차문차신하소사) 물어봅니다, 이 몸은 무엇과 흡사해 보이는지
夕陽天末見孤雲(석양천말견고운) 해거름녘 하늘 끝에 보이는 외로운 구름이지요
-김부용 시 '모춘출동문(暮春出東門:저문 봄날 동문을 나서며)'
 
묘비 뒤를 살펴보니 "1977년 5월 8일 정비석이 짓고 인영선 씀. 한국 문인협회 천안 지부 후원"이라고 적혀 있다. 해마다 4월이면 향토문인들이 찾아와 김부용의 무덤을 찾아와 그녀의 시를 읽으며 분향제를 드린다고 한다. 삶을 불사르다 끝내 사르지 못한 것은 저렇게 구름이 되는 것인가. 무덤 위 하늘엔 몇 조각구름이 외로이 흘러가고 있다. 문득 "2홉들이 소주라도 한 병 사들고 올걸"하는 때늦은 후회가 머릿속을 스친다. 왜 난 늘 뒷북을 치며 살아야 하는가.

풍부한 생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다

한창 꽃을 피우는 중인 나무들. 좌로부터 소리딸나무·노린재나무·찔레나무·국수나무의 순이다.
 한창 꽃을 피우는 중인 나무들. 좌로부터 소리딸나무·노린재나무·찔레나무·국수나무의 순이다.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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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이 길기 때문일까. 어쩌다 마주칠 만큼 산길엔 사람의 그림자가 뜸하다. 아까 '광덕사→암산→장군바위→서남능선→정상'으로 가는 코스 초입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걸 보았는데 말이다.

산길을 걷다 보니 산뽕나무에 달린 작은 오디들이 검붉은 빛을 띠며 익어가고 있는 게 눈에 띈다. 세상은 광우병이니 뭐니 시끌벅적한데 산속 나무들은 노동을 멈추지 않은 채 잠자코 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옆을 바라보니,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활엽 관목인 국수나무가 부지런히 하얀 꽃을 피우고 있다.

싱거운 얘기 같지만, 국수나무엔 국수가 없다. 잘라보면 속이 탄력이 코르크처럼 생긴 것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약간 굵은 철사 같은 것으로 밀면 반대편으로 국수와 같은 가락이 빠져나온다. 이 때문에 국수나무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조금 산길을 올라가자 신갈나무와 떡갈나무가 주종을 이룬 숲이 전개된다. 신갈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건 옛날 나무꾼들이 짚신 바닥이 헤지면 이 나무의 잎을 깔아서 썼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신을 간다'하여 신갈나무라 한 것이다. 떡갈나무라는 이름이 붙은 건 나무의 너른 잎으로 떡을 쌌던 데서  비롯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세상 어떤 것도 그냥 제멋대로 이름 지어진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대로 그 존재에 걸맞은 이름이 주어진 것이다.

토산(土山)에선 이만한 크기의 바위라도 '장군감'

이름이 무색할 만큼 작은 '장군바위'
 이름이 무색할 만큼 작은 '장군바위'
ⓒ 안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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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능선에 올라서자 노린재나무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불에 태우면 노란색의 재가 남게 된다고 하여 노린재나무라 했다는 나무다. 하얀 솜을 뭉쳐놓은 듯한 꽃이 한창이다.

절 속같이 조용하던 산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산행의 중간 지점이랄 수 있는 장군바위에 도착한 것이다. 장군바위라 하기엔 너무나 왜소한 바위인데 왜 장군바위라 했던 것일까. 바위 옆에 쓰인 전설을 읽어 내려간다.

옛날 허약한 젊은이가 깊은 산 속을 헤매다 기아와 갈증으로 사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느 곳에선지 물소리가 들려와 소리나는 곳을 향해 가보았더니 큰 바위 밑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얼른 두 손으로 물을 받아 허겁지겁 마셨더니 얼마 되지 않아 몸이 마치 장군처럼 우람하게 변해 버렸는데 그때부터 이 바위를 장군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굳이 전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굉덕산은 바위가 드문 토산이다. 그러니 이만한 돌도 '장군바위'라 할만하지 않겠는가.

장군바위 근처 여기저기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이 눈에 띈다. 경제가 어려운 탓일까. 요즘 들어서 산에서 막걸리 파는 장사들이 부쩍 많아진 듯하다. 산은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얕잡아봐선 절대 안 된다. 항상 안전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정표를 보니, 정상까지는 아직 1.3km 남았다. 걸음을 서두른다.

정상으로 가는 산길.
 정상으로 가는 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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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바위에서 정상까 사이에서 만난 꽃들. 좌로부터 은대난초·천남성·애기 똥풀·은방울꽃 순이다.
 장군바위에서 정상까 사이에서 만난 꽃들. 좌로부터 은대난초·천남성·애기 똥풀·은방울꽃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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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바위에서 정상을 향해 가는 길엔 은대난초·천남성·애기똥풀·은방울꽃 등 여러 가지 꽃들이 제각기 군락을 이루고 있다. 김부용 묘소에서 장군바위에 이르는 길엔 산야초들이 그리 많지 않았었다. 아마도 자잘한 잡목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길가엔 잎이 대나무 이파리처럼 생긴 은대난초와 만지면 애기똥 냄새가 난다는 애기똥풀, 귀 기울이면 정말 종소리가 들릴 것 샅은 작은 종처럼 생긴 은방울꽃 등이 길손을 반긴다.

또 이따금 유독성 식물이긴 하지만 붉은 열매가 아름다워 화분에 재배하기도 하는 천남성도 눈에 띈다. 장군바위에서 정상에 이르는 길을 걸어보니 비로소 광덕산 식생이 건강하다는 걸 알것 같다.

품안에 그토록  많은 식물을 기르고 있으니...

광덕산 정상.
 광덕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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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서쪽으로 바라본 풍경. 시계가 흐려 잘 보이지 않는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바라본 풍경. 시계가 흐려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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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해발 699m 광덕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엔 꽤나 너른 공터가 있고 표지석과 시 등을 새긴 돌 등도 있다. 애써 산을 오르는 것은 조망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렇게 시계가 흐려 멀리까지 바라볼 수 없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정상 부근의 나무들을 살펴보니, 상수리나무·당단풍· 비목·쪽동백나무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층층나무나 노린재나무·누리장나무 등 키 작은 관목들도 눈에 띈다. 공터 한 구석에 앉아 준비해 간 점심을 먹고난 뒤 천천히 하산을 시작한다.

산을 다 내려오자 키가 큰  호두나무·감나무·향나무·사철나무·배롱나무 등과 줄사철·회양목·두충나무·환삼덩굴·명아주 등이 눈에 들어온다. 이 식생들은 사람이 심었거나 식재되었거나 유입된 것일 것이다. 이로써 5시간에 걸친 광덕산 산행을 마쳤다. 꼼꼼히 식물을 살피면서 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조금 시간이 더 걸린 것이다.

광덕산이 왜 '덕스러운 산'인지 알겠다. 오르기에도 편안해서 사람을 고생시키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품 안에 그렇게 많은 식물을 품어 기르고 있으니 어찌 덕이 없다 하겠는가. 이러한 생태적 가치가 인정되어 지난 2007년 1월, 건설교통부는 광덕산을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한 바 있다. 앞으로도 광덕산의 생태가 잘 보존되어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갰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광덕산을 떠나간다. 잘 있거라, 나를 하룻동안 네 품안에 품어주었던 고마운 광덕산이여.


태그:#천안 , #광덕산 , #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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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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