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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으로 복무하던 시절 병사들이 전역을 할 때마다 중대의 행정보급관이 우스갯소리로 하던 말이 있다. 2년간의 길고긴 시간이 지나 드디어 나의 차례가 왔고, 예비군 마크, 일명 '개구리 마크'를 달고 보무도 당당히 전역신고를 할 때에도 행정보급관은 나와 전역동기들에게 그 말을 빼놓지 않았다.
 
"니들에게 영원히 전역은 없다. 현역 복무가 끝나면 다만 362일간의 휴가가 주어지는 거야. 이제부터 362일간의 휴가를 줄 테니까 362일 후에 예비군복을 입고 곱게 복귀해라 알았지?"
 
지금 생각해보면 이 말만큼 끔찍한 말이 없었다고 생각되지만 당시만 해도 전역의 기쁨에 들떠서 웃음 섞인 행보관의 저주(?)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역신고를 했었다. 현역 시절 그토록 느리게 흘러가던 국방부시계도 전역 후 사회와 학교로 돌아오자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정신없이 지내던 복학생에게 1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고 예비군 훈련 날짜는 생각보다 빠르게 그리고 갑자기 찾아왔다.
 
소집시간과 장소는 5월 22일 7시 30분 학교 정문. 그 시간까지 집에서 학교로 나올 자신이 없었기에 예비군복을 챙겨 나와 학교 앞 후배 자취방에서 하룻밤 묵고 아침에 나오기로 했다. 당일 아침 간신히 일어나 주섬주섬 예비군복을 챙겨 입는데 제일먼저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아 이거 A급 군복인데, 훈련 나가면 다 망가지겠는데?"
 
나의 이런 고민을 학교동기이지만 예비군 선배인 친구들에게 말하자 돌아오는 건 조소와 갈굼이었다. 현역시절의 이런저런 무용담들이 이어지면서 학교에 왔고 학교 앞 편의점은 예비군복을 입은 학생들에게 점령당해 현역시절 PX를 방불케 했다. 예비군 특유의 웅성거림과 소란함을 뒤로 하고 출발한 버스는 어느새 5750부대의 북한산 마포구 예비군 훈련장에 도착했다.
 
1년 만에 찾은 군부대는 겉으로 다를 바가 없어보였다. 내가 복무했던 곳과 장소도 다르고 시간도 많이 흘렀지만 뒷짐 진 여유로운 병장들의 태도와 상대적으로 정신없어 보이는 이등병들 그리고 먼지 가득한 연병장은 지난 현역시절의 추억들을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런저런 지난 생각들을 하던 중에 "선배님들 이쪽으로 오시겠습니다"라는 이제는 어색한 어법의 군대식 한 마디에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 받는 예비군 훈련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으나 생각보다 힘들었다. 교장과 교장사이를 이동하는일이 왜 이리 귀찮고 피곤하던지. 땀은 왜 이리 많이 나고 햇살은 어찌나 따갑던지. 하지만 대위에게 "대충합시다"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던지는 주위의 예비군선배들을 보고 아직 깜짝깜짝 놀라는 건 아직 덜 껄렁해진 예비군 1년차이기 때문일까. 그리고 같이 전역했지만 대학을 다니고 있지 않는 군대 동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루짜리 학생예비군 훈련도 이렇게 짜증나고 힘이 드는데 2박3일간의 동원훈련은 얼마나 더 힘이 들고 억울한 마음이 들까.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은 4일 제 40주년 향토예비군의 날을 맞아 "예비군이 보다 효율적이고 정예화된 전력으로 탈바꿈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예비군 제도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다. 진보신당은 당의 정책으로 예비군 폐지를 걸고 있는 상태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예비군 훈련을 더 강화해야한다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현재 존재하는 예비군 제도를 한순간에 없애버릴 수는 만큼 먼저 현재의 방만한 구조를 개혁해 간소화 하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 학생예비군과 일반예비군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변하고 대학생이란 개념도 예전보다 많이 변화한 지금 기존의 학생예비군에게만 혜택을 주기보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고 공평하게 훈련일수를 조정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난 김에 이번 주 주말에는 오랜만에 군대 동기들과 소주나 한잔 하면서 지난 군대시절 이야기나 나누어야겠다. 동기들이 하루 밖에 안 다녀왔으면서 엄살 떤다며 나를 타박할테지만 난 이렇게 말할 거다.
 
"야 그래도 현역때 나는 군번 꼬여서 고생 많이 했잖냐!"

태그:#예비군,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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