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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몰려든 농민들 "쇠고기 협상 전면 무효!" 

 

이 땅 구석구석에서 땅을 일구고 있는 사람들이 22일 서울 여의도 공원으로 몰려들었다. 점심 시간을 지나자 공원 주변은 전세버스로 가득찼다. 이들이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 농민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각자의 집을 나선 시간은 대체로 아침 7시. 이들의 직업은 농민이다.

 

밭에서 일을 해야 할 이들이 전세버스를 타고 서울로 온 까닭은 쇠고기 협상 무효와 한미 FTA 반대 목소리를 이명박 정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부지깽이도 쉴 틈이 없다는 요즘의 농촌. 봄 가뭄에 애가 타들어가는 심정도 그들의 서울행을 막지 못했다.

 

전남 해남에서 온 농민도 있고, 경북 의령에서 축산업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강원도 정선에서 전남 나주에서 새벽잠을 설치며 서울로 온 젊은 농민들도 있었다. 그들은 뜨겁게 끓고 있는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손을 높이 들었다.

 

한미 쇠고기 협상을 전면 무효하고 재협상을 실시하라!

한미 FTA 국회 비준을 즉각 중단하라! 

 

농민들의 외침은 도심의 하늘을 흔들었고, 치솟은 건물들에선 넥타이를 멘 사람들이 농민들의 함성을 구경하려고 창가로 모여들었다.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은 농민들의 얼굴을 더욱 검게 만들었다. 검은 얼굴을 한 농민들의 손은 봄을 보내면서 두꺼비 손이 되어 있었다. 그들의 손톱 밑은 흙으로 차 있고, 옷에서는 땀 냄새와 비료냄새가 함게 묻어났다.

 

 

화려하기만 한 도시의 삶에 어울리지 않는 농민들의 삶. 한때 그들은 농자천하지대본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그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화려하게 살아가는 도시민들의 배를 채워주는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뿐이라며 그 중요성을 일축해버렸다. 그 뿐인가. 먹거리 또한 외국에서 수입해서 먹으면 그만이라며 농민들의 삶터까지 위협하고 있다.

 

위기에 몰린 대한민국, 농민이 설 자리가 없다

 

끝을 모른 채 오르고 있는 기름값과 사료값, 비료값 등으로 인해 농민들은 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어떤 기대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이 땅의 350만 농민들. 전국에서 모인 농민들이 광장을 가득 채우고 정부를 성토해도 어쩐 일인지 이 나라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점심으로 챙겨온 김밥과 도시락. 효도관광에 나서야 할 할아버지도 김밥을 우적우적 삼키며 쇠고기 협상 무효를 외치고 있었다. 3시간 넘게 진행된 농민대회. 정면으로 날아드는 끈적한 도심의 태양은 밭 일을 할 때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게 했다.

 

"김 매는 거 보담 몇 배는 되네(힘들다)."

 

행사에 참여한 여성 농민은 그런 말을 했다. 흙바람을 맞고 있을지언정 땅을 깔고 앉으며 사는 것이 행복한 농민들에게 도시의 아스팔트는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화가 난 농민들은 곳곳에서 이명박 정부를 갈아 엎어 버리겠다고 소리쳤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3개월만에 농민들이 다 죽게 생겼다며 주먹으로 아스팔트를 내리치기도 했다. 농민은 붉은 피가 배어 나오는 손등을 망연히 내려다보며 길게 한숨을 토해냈다. 

 

"뭔 놈의 시상이 이렇티야. 참말로 지랄 같아 말이 안 나오네." 

 

행사를 진행하는 중에도 농민들의 마음은 밭에 가 있었다. 집을 지키고 있는 노모에게 '비닐하우스 문은 열어 두었냐'며 전화를 거는 농민도 있고, 일할 사람을 구해 달라며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는 농민도 있었다. 일손 부족하기는 어느 집이고 매한가지. 요즘의 농촌에서는 사람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식량 전쟁의 시기에 농민들에게 비수를 들이대는 정부

 

식량이 핵무기보다 무섭다는 시절. 이미 몇몇 나라는 자국의 식량수출을 금지했다. 농민들은 FTA로 식량이 종속되면 곧 식량을 배급받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식량 전쟁의 시기에 농민을 투사로 만드는 나라는 분명코 정상적인 나라가 아님이 확실해 보였다.

 

"우리를 대접해달라고 나온 게 아니잖아요? 그저 농사만 짓게 해달라는데 정부는 우리의 목을 조이다 못해 아예 죽이려고 있어요."

 

비록 내 땅은 아니지만 1천여평의 농사를 짓고 있는 객쩍은 농사꾼이 듣기에도 그 말은 맞는 듯 싶었다. 농촌에 살면서 느는 게 한숨 뿐이라는 농민의 말도 맞았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농사 짓기 힘들어 죽겠다'는 아우성뿐이었다.

 

흙에서 태어나 흙에서 일생을 보낸 사람들에게 땅을 포기하라는 것은 죽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이 나라 정부는 그 짓을 서슴지 않고 진행하고 있다. 대책없는 정부를 정신 차리게 만드는 것은 농민들이 잠에서 깨어나는 일 밖에 없다. 그리하여 이 땅의 식량주권을 지켜낼 때 비로소 농민이 살고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 가슴 아파 해야 하는 대상은 청계천에 떨어지는 촛농이 아니라 국민이다

 

국민과 농민을 섬기기보다 미국을 더 섬기는 이명박 대통령. 그는 어제(22일) 아침 자신이 만든 청계천에서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기가 찰 발언이다.

 

"자신이 만든 청계천에서 촛불 든 학생들을 보며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는 게 맞는 말입니까? 진정으로 국민을, 농민을 섬긴다면 국민들에게 대 못 박은 그 죄가 부끄럽고 미안하여 가슴 아파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게 대통령 아닙니까? 근데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만든 청계천에 촛농 떨어질까 가슴 아파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런 사람을 대통령이라 불러야 합니까?" 

 

어제는 그런 말이 지나치지 않는 날이었다. 국민에게 백배 사죄해도 모자랄 일을 두고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청계천 운운하며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이럴 땐 아프다고 한 그의 가슴을 열어 보고 싶다. 그 가슴을 청계천으로 흐르고 있는 물에 퍽퍽 씻어 정신 차리게 하고 싶다.

 

피곤한 귀로 시간. 밤은 깊었고, 버스에서는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농사 짓기보다 힘들다는 농민 집회. 그럼에도 생존권을 위해 반대를 외쳐야 하는 이 땅의 농민들. 그들의 외침은 대체 언제나 끝날 것인가. 답답하기만 하다.

 


태그:#농민대회, #미친소, #한미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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