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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5.17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

 

우리 양초들도 이제 입을 열어야 할 때가 온 듯합니다.

 

우리의 몸을 태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는 촛불문화제가 열린 지 어느덧 20일 가까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서울에서만 연인원 10만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우리의 몸에 불을 붙여 "미친소 너나 먹어!" "협상무효! 재협상 실시!" 등을 외쳤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움켜쥔 사람들의 체온을 느끼며 뜨거운 불에 타고 또 타들어 갔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이야기도 들어주십시오.

 

물론 불에 타들어 가는 건 우리의 존재 이유고 숙명이니 오히려 즐거운 일입니다.

 

지난 2002년 미선·효순양 사건 이후 우리는 평화 집회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야간 대규모 정전 사태가 벌어지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애타게 우리를 찾아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게다가 우리를 생산하는 공장 사장님도 예상 밖의 호황에 요즘 표정관리에 들어갔습니다.

 

그동안 타고 또 탔던 우리들도 한마디 하겠습니다

 

어둠에 몰입하면서도 집회 때는 평화의 도구로 사용되고, 게다가 경제 발전에도 보탬이 되는 '비지니스 프렌들리'한 우리 초들이야말로 대한민국 이명박 정부가 이야기하는 '실용'의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일 청계천 광장에서 시작된 촛불문화제에 참 많은 사람들이 놀란 듯 합니다. 물론 그럴만합니다. 교복입은 여중고생들이 불붙은 우리의 몸을 흔들며 청와대를 향해 "미친소 너나 먹어!" "우리의 배후 조종세력은 청와대다"라고 외치는 모습에 우리들도 화들짝 놀랐습니다.

 

처음엔 우리도 이들 중고생들의 집회 참여에 반신반의했습니다. '얘네들이 뭘 알고나 이러는 거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적당히 흉내만 내다가 우리 몸에 붙은 불 꺼버릴 거면 시작도 하지 말라"는 말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중고생들은 참 똑똑하고 자유롭고, 또 발랄했습니다. 사람들은 듣지 못했겠지만 우리 초들은 중고생들이 주축이 된 집회에서 정말 "푸하하!" 여러 번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감동의 눈물이 아닌 감동의 촛농을 뚝뚝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14일 저녁 서울 시청앞 잔디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중고생들이 가장 많이 나왔던 지난 3일 촛불문화제 때가 생각납니다. 경찰이 저녁 8시께 "중고생 여러분들은 밤이 늦었으니 어서 안전하게 귀가하라"는 방송을 하자, 한 학생은 마이크를 잡고 "경찰 아저씨, 우리 만날 밤 10시 11시까지 자율학습하고 집에 가요, 0교시 부활하고 야간자율학습 허용한 게 누군데 이제 와서 밤이 늦었다고 말해요!"라고 받아쳤습니다. 요즘말로 대단한 '포스'였습니다.

 

그리고 중고생들이 손에 들고 나온 팻말 "대통령도 리콜이 되나요?" "엄마 미안해요, 나 쥐 잡으로 왔어요" "광우병 걸려 의료보험 민영화 때문에 치료 못 받아 죽으면 대운하에 뿌려 달라" 등도 정말 즐겁고 획기적인 구호였습니다.

 

또 프리온이니 SRM(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이니 등 우리 초들이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 들으며 과학 공부도 제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축산업자들은 초식동물인 소에게 고기를 먹인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우리 초들은 천지개벽할 그 소리를 듣고 정말 식겁했습니다. 어디서 인간의 욕설을 배워온 어떤 초는 "정말 숭악한 놈들!"이라고 내뱉더군요.

 

어른들 끌어낸 10대에 우리들이 감동의 촛농 흘렸습니다

 

어쨌든 우리 초들은 그동안 수없이 타들어 가면서 기존과 다른 여러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무장한 10대들이 운동권과 어른들을 광장으로 불러낸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를 들고 흔드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다양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초들로서 신기한 장면도 많이 목격했습니다. 특히 지난 17일 촛불문화제는 우리에게 연구 대상입니다.

 

엄마와 딸이 함께 촛불을 들고 "미친소를 청와대로!"라고 외치고, 갓난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함께 나온 아버지가 <헌법 제1조>를 부르고, 온 가족이 도시락 싸들고 나와 촛불을 든 모습은 정말 생소했습니다. 아, 물론 우리를 살포시 들고 기념촬영 하는 사람들이 무척 늘어난 것은 정말 기쁜 일입니다.

 

우리들이 평화의 상징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도 명백히 '투쟁의 도구' 아닙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즐겁게들 투쟁하니 조금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래도 초들은 대체적으로 그런 새로운 가족들의 모습이, 그 날 무대에 올랐던 가수 윤도현과 김장훈, 그리고 이승환보다 더 보기 좋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지켜보니 사람들의 고민도 커져가는 것 같습니다. 10대의 선방과 부모세대들의 든든한 뒷받침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장관 고시를 연기하는 성과는 냈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이명박 정부가 여전히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 뭐, 우리가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들이 쇠고기 먹을 일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 동안 촛불문화제에서 들어보니 한국 사람들 상황이 참 짠하더라구요. 검역 주권도 갖지 못하고, 광우병 위험이 높은 30개월 소도 받아들여야 하고, 정부는 계속 미국을 믿으라 하고···. 어쩔 땐 차리라 우리들이 더 속편한 존재라고 생각됩니다.

 

대한민국 10대는 승리의 기억을 가질까요?

 

 광우병 위험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1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재협상을 촉구하며 촛불을 밝히고 있다.

우리들을 마구 태웠고, 앞으로도 계속 태울 것으로 보이는 '광우병 범국민대책회의'도 고민이 많은 듯합니다. 언론에 유독 관심이 많은 한 초가 전해주더군요. 범국민대책위 쪽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관해 한미가 전면 재협상할 때까지 싸우겠다"고요.

 

그리고 또 인터넷에 기웃거리는 또 다른 초는 초기 촛불문화제를 이끌었던 백성균 '미친소닷넷' 운영자의 말을 듣고 왔답니다. 그 초에 따르면 백 운영자는 "촛불문화제를 뛰어넘어 더욱 정부를 압박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하더군요. 이 초는 "10대들에게 꼭 승리의 기억을 안겨주고 싶다"는 어른들의 여론도 듣고 왔습니다.

 

우리로서는 다소 섭섭한 측면이 있지만 촛불문화제 이후와 다른 방식의 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도 늘었다고 들었습니다.

 

저 멀리 과천시에서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광우병 반대 현수막을 걸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미국산 쇠고기 반대를 의미하는 리본을 달자는 운동도 전개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 광우병 반대 현수막과 리본은 모두 우리와 가까운 존재들입니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사촌이고 친구이고, 뭐 그렇습니다. 그 친구들이 널리 활동한다면 사람들이 우리를 더 이상 들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간 세계에는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지만, 우리 세계에는 '현수막이 널리 퍼지면 초가 흐뭇하다'는 덕담이 있습니다.

 

오늘 21일 발빠른 한 초는 오는 주말께 한국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장관 고시를 한다는 소식을 물어왔습니다. 그리고 22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담화문을 발표한다는 소식도 알려왔습니다.

 

그동안 인간들과 너무 친해진 탓일까요? 우리가 쇠고기 먹을 일도 없는데, 많은 초들이 "가슴이 아프다"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하다"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몸이 너무 뜨거운 초들은 "우리가 더 활활 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조직 구성하기 좋아하는 일부 초들은 "우리라도 '전국양초연합'를 만들고 '양초 선봉대'를 꾸려 투쟁의 전선에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감수성 예민한 초들은 "이제 우리 청계천 구경 못하는 것 아니냐"고 울먹이고 있습니다.

 

작은 불씨가 광야를 불태웁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어둠을 밝히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불을 붙여줘야만 우리는, 우리를 태워 어둠을 밝힙니다. 선택은 우리를 움켜쥐는 사람들의 몫입니다. 우리들이 해줄 일은 없습니다. 다만, 만국의 초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 하나만 전해주겠습니다.

 

"작은 불씨 하나가 광야를 불태웁니다."

 

공부 잘하는 똑똑한 초가 말하길, 중국에 살았다는 마오쩌뚱이 했답니다. 항상 어둠을 밝혔던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건 대단하고 강한 것들의 파도가 아니라 작고 여린 것들의 우직함이란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 했다고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들에게 "좌파 세력에게 물들었다"느니 "배후 조정 세력이 있다"느니 공격할까봐 걱정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초 노릇하기도 힘듭니다.

 

어쨌든 잊지 마십시오. 작은 불씨가 광야를 불태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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