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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일본정부의 인권상황을 검토하는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 유엔인권이사회 실무그룹 회의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일본정부의 인권상황을 검토하는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 윤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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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가 뉴욕 현지 시각으로 오늘(5월 21일) 열리고 있다. 2006년 유엔 총회의 결의에 따르면 이사국으로 선출된 국가들은 인권의 보호와 증진에 있어 최고의 기준을 지향하고 인권이사회와 협력을 다해야 하며, 임기 중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를 받을 의무 등이 있다.

47개로 이루어진 이사국들은 각 지역별로 의석이 할당되어 있으며 아시아 지역은 13석을 가질 수 있다. 이 중 이번에 임기가 만료된 아시아 지역 6개 의석을 새로 선출해야 하며 일본과 한국 등이 재신임을 묻기 위해 후보로 나섰다. 이밖에도 바레인, 파키스탄, 스리랑카, 동티모르 등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후보국들의 인권 상황이 모두 만족할 만한 수준이 못된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인권이사국' 자격을, 특히 일본 정부가 가졌는지 심각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지난 5월 5일부터 19일까지 유엔 인권이사회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검토에서 일본의 인권상황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진 바 있다.

이 자리에서 프랑스, 네덜란드, 남·북한 등이 일본 정부를 향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했고 필리핀, 중국 등도 인신매매와 역사 문제에 대한 언급을 통해 이를 지적했다. 특히 최초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식적 의견을 표명한 프랑스는 일본군 위안부가 강제 매춘임을 분명히 했고 일본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한 '항구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다.

그리고 이러한 국가들의 권고와 질의를 담은 유엔인권이사회 실무그룹 보고서가 채택됐다. 이번에 채택된 보고서는 오는 6월 2일부터 13일까지 열리는 전체회의에서 논의된 후 최종 결의로 확정될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이 전체회의에서 실무그룹의 권고를 받아들일지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

이번 정기 검토를 위한 국가 보고서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일본 정부는 검토 과정에서도 아시아 국민기금과 샌프란시스코 협정 등을 들먹이며 이 문제에 대한 법적 해결이 끝났다고 주장하는 기존의 태도를 되풀이했을 뿐 불치병(?)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사국 선거를 위한 자발적 공약((Voluntary pledges and commitments)에서도 스스로 인권선진국을 자처하는 수사를 동원했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는 일절 기술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이번 선거에서 일본은 무난하게 이사국으로 선출될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게 된다면 일본의 책임은 더욱 명확해진다. 최근 독도 문제 도발로 또다시 한국을 시끄럽게 하고 전쟁범죄 회피와 역사 교과서 왜곡 등 아시아 국가들에 불안을 조장하고 있는 일본 정부는 이러한 행태가 여전히 전쟁의 상흔으로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에는 심각한 인권침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위안부라는 멍에를 안고 한평생을 숨죽여 살았던 피해자들이 이제 삶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매주 수요일마다 명예회복을 외치고 있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것은 피해자들에 대한 계속되는 인권 침해나 다름 없다. 또한 위안부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라는 국제사회의 숱한 권고조차 무시하고 있는 있는 상황에서 과연 유엔 인권이사국으로서 국제사회에 바로 설 수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본 정부는 인권이사국의 면모에 걸맞게 이후 유엔 인권이사회 전체 회기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성실한 의지를 보이고 국제사회에 확실한 약속을 전해야만 할 것이다.

한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100명의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과 20여개 시민사회 단체들과 함께 일본 정부가 유엔 인권이사국으로서의 자격을 가졌는지를 묻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유엔 각국 대표부에 이를 전달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일본정부가
인권이사국으로서의 자격을 가졌는지 묻는다
5월 21일 유엔 인권이사회의 이사국 선출을 앞두고 우리는 아시아 지역 후보로 나선 일본 정부가 과연 인권이사국으로서의 자격을 가졌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5월 5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된 국가별 인권상황 정기 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에서 일본의 인권 상황에 대한 정기 검토가 이루어졌다. 이 자리에서 각국 정부는 2차 대전 중 일본 정부에 의해 자행된 일본군 성노예 범죄를 해결하라는 권고와 질의를 쏟아냈다. 프랑스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세계 2차 대전 중 일어난 강제 매춘임을 분명히 하였고 그간 수차례 이루어진 국제사회의 권고대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항구적인 해결책(lasting solution)을 찾을 것을 촉구하였다. 네덜란드 정부도 유엔인권조약기구 등 국제사회의 관련 권고를 지키기 위해 일본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질의하였다. 북한 역시 ‘위안부’ 문제는 물론 과거 일본 정부가 피해를 입힌 국가들에 대해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였고, 한국 정부 역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와 고문방지위원회(CAT) 그리고 특별보고관의 권고를 성실히 이행할 것을 강도 높게 요구했다. 또한 필리핀과 중국 역시 ‘인신매매’와 ‘역사적인 문제’에 대한 언급을 통해 우회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각국정부의 권고와 질의에 대하여 일본정부는 ‘위안부’문제에 대한 진상과 법적 책임을 부정하는 기존의 태도를 되풀이하면서, 이에 대하여 1993년에 사과한 바 있으며,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한일청구권협정 등에 의하여 이미 법적으로 해결되었고, 작년에 활동을 종료한 국민기금(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통하여 상당한 보상을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본 정부의 답변은 ‘위안부’문제에 대한 진상과 법적 책임을 부정하는 기존의 태도를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간 유엔 인권조약기구들과 특별보고관은 수차례 조사와 권고를 통해 일본정부의 의무 이행을 요구하였고 최근에는 미국, 네덜란드, 캐나다, 유럽연합 의회에서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이 원하는 배상과 책임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을 주목하며 일본군‘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일본 정부가 인권옹호국임을 자처하며 인권이사국으로서의 재신임을 국제사회에 묻는다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와 유엔 인권기구의 권고들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번 검토를 앞두고도 국가 보고서에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을 뿐더러 인권이사국 선출을 위한 자발적 공약에도 이 문제에 대한 이행 약속을 담지 않았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문제의 해결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야만 하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의 이 같은 법적 책임 회피와 범죄 부인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명백하게 인권을 침해받고 있다. 16년이 넘게 매주 수요일마다 거리로 나와 명예회복과 정의실현을 외치는 피해자들의 호소 앞에 일본 정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고령의 피해자들이 모두 눈을 감기 전에 일본 정부는 하루 속히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야만 한다.

일본정부가 유엔인권이사국이 되기 위해 스스로 국제사회에서 인권선진국임을 과대 선전하고 있지만, 자국의 전쟁범죄로 인해 인권침해를 받았던 피해자들, 67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인권회복을 받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전쟁 피해자들을 외면한 채로 일본정부는 유엔 인권이사국이 될 수 없다.

일본정부가 진정으로 인권선진국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면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향한 성실한 의지를 국제사회에 보여줄 것을 촉구한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결은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전시 하 여성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한 의미있는 걸음이 될 것이며, 일본 내의 근본적인 인권침해 요소 제거와 인권 상황 개선에 초석이 될 것이다.

2008년 5월 20일

길원옥, 이용수 외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 100명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KNCC양성평등위원회, 평화를만드는여성회, 기독교대한감리회여선교회전국연합회, 기독여민회, 새세상을여는천주교여성공동체, 이화민주동우회, 전국여대생대표자협의회, 기독교대한감리회전국여교역자회, 대한예수교장로회전국여교역자연합회, 여성교회,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 함께 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한국기독교장로회여신도회전국연합회, 한국기독교장로회여교역자협의회,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국정신대연구소,  한국여성의전화연합, 한국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덧붙이는 글 | 안선미 기자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간사입니다.



태그:#위안부, #유엔, #인권, #수요시위, #정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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