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미 쇠고기 협상 체결 이후 대한민국이 뜨겁다. 정부의 협상태도나 협상내용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다. 그리고 시중엔 과학과 괴담이 구분 없이 유령처럼 떠돌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이 자꾸 내게 물었다. 어떤 게 진짜냐고. 작년까지만 해도 도축장에서 소, 돼지를 판정하던 내 경력 탓이다.

그렇다. 광우병을 둘러싼 괴담과 과학 사이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있다. 우리나라 사람이나 미국 사람이나 쇠고기 소비자라면 모두가 가져야 하는 문제의식이다. 이 글은 광우병과 관련해 우리나라 현실도 돌아봐야 한다는 차원에서 기획되었다. 그러나 현재 한미 쇠고기 협상에 대한 정부의 문제점을 희석시키는 쪽으로 이용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기자 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5.17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5.17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촛불을 들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광우병 사태를 보며 새삼 느꼈다. 역시 우리 국민들은 똑똑하다. 상당수의 괴담이 과학적 근거로 뒷받침됐고, 당당히 주장하던 과학이 괴담으로 판명나기도 했다. 인터넷 정보로 무장한 우리 국민들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최신의 광우병 전문 정보를 제공했고 공정한 검증기회를 맞고 있다. 이보다 더 민주적이고 성숙한 나라가 어디 있을까.

이제 전환점을 맞이할 시기이다. 겉도는 논쟁이 늘고 있는 반면 감정은 격해지고 있다. 그동안 국민들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어선 눈물겨운 노력이 일부 색깔론 위정자들이나 불순 세력에 이용당할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최근세사만 보더라도 우리 국민들의 뜨거운 민주화 열기가 지역감정으로, 색깔논쟁으로 이용당해 변질되곤 하지 않았던가. 광우병논쟁이 또다시 반미냐 친미냐, 쇄국이냐 개방이냐, 보수나 진보냐 하는 진부한 색깔 갈등으로 변질될 기로에 서있다.

지금까지의 과학과 괴담사이의 열띤 논쟁에서 놓친 게 있다. 국가만 있고 인간이 소외되었다. 이론은 난무하는 데 현장은 고요하다. 과학은 풍성하지만 성숙된 각성은 빈곤하다. 인간, 현장, 각성이 필요한 때다. 심화 확대된 몇 가지 틀을 제안해 본다.

비틀거리고 걷지 못하는 소, 우리나라에도 있다

비틀비틀 쓰러져 걷지 못하는 일명 다우너 소. 일으켜 세우기 위해 전기봉으로 지지고, 지게차로 밀어붙이는 인간. 최근 TV에서 미국 도축장의 실태를 목격한 우리 국민들은 이 장면에 경악했다. 광우병 발생국가에서 광우병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소를 검사도 않고 도축해 유통한다는 사실에 고개를 저었다. 미국 방역체계에 강한 의구심을 보냈다. 광우병이 걸린 것도 아니고 단지 광우병 전염 검사를 받지 않은 상황임에도 말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나라 도축장에서도 그런 장면이 방영된다면 어떻게 될까?

입에 거품을 물고 비틀거리며 지게차로 옮겨지는 소가 우리나라 도축장에도 엄연히 들어온다. 아예 운신도 못하고 트럭에 실려 오기도 한다. 과거 그리고 지금도 우리나라 도축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상이다. 이런 소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통계는 미미해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농협중앙회에서는 1997년부터 가축공제 사업을 실시하고 있는데, 폐사축 발생 시 신고 후 폐사진단서를 첨부하여 보험금을 수령하게 하고 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폐사진단서를 첨부하여 수령한 폐사두수는 모두 2만727두였다. 그런데 이렇게 폐사한 소들 중에서 광우병 검사를 받은 소는 거의 없었다.

지금 우리나라 기준으론 소가 비틀거린다고 광우병 검사를 하거나 보고할 의무가 없다. 숨이 붙어있고 약물검사에 양성반응이 나오지만 않는다면 대부분 식용으로 통과된다. 왜?

검사할 필요가 없도록 규정되어있으니까. 광우병 청정국가라서 광우병 검사가 필요 없다는 것. 그래서 변변한 광우병 연구소하나 없다.

올해 국내에서 광우병 유사환자가 사망했으나 정부는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가 언론에서 보도한 뒤에야 확인했다. 부검도하지 못했다. 인간 광우병이 의심되는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29일 MBC <PD수첩>에서 방영한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의 한 장면.
 지난달 29일 MBC <PD수첩>에서 방영한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의 한 장면.
ⓒ MBC

관련사진보기


인간 광우병 의심 사례, 우리나라에도 있다

2000년 이후 국내에서 인간광우병(vCJD)으로 의심되는 환자가 여러 명 있었으나, 많은 경우 유족들의 반대로 부검을 하지 못해 진단을 하지 못했다. 2001년 3월 서울대병원 신경과의 김상윤 교수팀은 36세 환자를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 환자로 판명했다. 그러나 얼마 후 이 환자가 사망했을 때, 부검을 하지 못해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vCJD, 인간광우병) 판단을 유보했다. 이에 따라 국립보건원은 국제보건기구의 인간광우병(vCJD) 진단기준에 못 미치기 때문에 인간광우병으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김교수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인간광우병이) 아니라는 게 아니라 모르는 것"이라며, "인간광우병(vCJD)이라고 확진하려면 반드시 부검을 해야 하는데 가족의 반대로 끝내 하지 못했다"고 했다.

다음은 2007년 9월 <신동아>에 실린 칼럼 <인간광우병, 국산 쇠고기도 안전지대 아니다!
>의 일부다. 우리나라도 동물성 사료를 사용했다고 의심받을 만한 증거들을 내놓고 있다.

"국내의 동물성 사료 생산량은 2003년을 기준으로 4만5610t. 한국단미사료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동물성 사료 제조업체는 68개소이며, 1일 생산능력은 519t이다. 그중에서 육분 및 육골분 제조업체는 33개소로 연간 3만9000t을 생산해 전체 동물성 사료 생산량의 85%를 점유하고 있다. 소의 사료로 배급이 금지된 육골분 사료가 동물사료의 대부분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광우병의 교차오염 우려를 더하게 하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2002년 12월부터 2003년 1월까지 농림부가 전국 배합사료공장의 제조공정 실태를 조사한 결과 91개 배합사료공장 중 76개 공장에서 소를 포함한 되새김동물용 사료를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는데, 이 가운데 14개 공장만이 소 사료와 기타 가축사료 생산라인을 분리 운영하고 있었다. 생산라인이 1개인 업소가 59개소(65%), 2개 이상인 업소가 32개소(35%)였다. 배합사료 공장의 생산라인이 분리되지 않았다면 돼지, 닭 등 기타 가축에게 공급될 배합사료(동물성 단백질 사료)와 되새김동물의 사료가 서로 섞여 교차오염이 일어날 가능성은 그만큼 크다.

국내 수입 사료도 걱정거리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까지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캐나다 등 광우병이 발생한 22개국으로부터 육골분 사료를 수입한 적이 있기 때문에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이 유입되어 널리 퍼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럽연합 통계청은 2000년대 초반 유럽연합 내 광우병 발생국에서 한국으로 쇠고기 154t, 육골분 2008t, 뼈와 혼코어 등 8766t이 수출됐다고 밝혔다.

2007년 9월 <신동아>에 실린 칼럼 <인간광우병, 국산 쇠고기도 안전지대 아니다!> 화면 캡처. 우리나라도 동물성 사료를 사용했다고 의심받을 만한 증거들을 내 놓고 있다.
 2007년 9월 <신동아>에 실린 칼럼 <인간광우병, 국산 쇠고기도 안전지대 아니다!> 화면 캡처. 우리나라도 동물성 사료를 사용했다고 의심받을 만한 증거들을 내 놓고 있다.
ⓒ 신동아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수출을 한 나라에서는 이렇게 통보했지만, 정작 우리 정부는 관세청 통계자료와 사료용 원료 수입 때 해당 업체가 받는 한국단미사료협회의 양허관세 추천 사실이 없기 때문에 영국 등 광우병 발생국가에서 육골분 사료를 수입한 사실이 없다는 이해하기 힘든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수입된 육골분도 사료가 아니라 화장품이나 의약품 또는 도자기 재료 등에 사용됐다고 해명한다.

반면 유럽연합으로부터 우리와 똑같은 통보를 받은 일본은 광우병에 대한 전수검사를 실시하는 한편, 동물성 사료 사용 전면 금지(동물성 사료 3단계 배급 금지조치) 등의 실질적인 광우병 예방조치를 취했다. 일본은 교차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현미경검사법, 효소결합면역분석법(ELISA), 중합효소연쇄반응(PCR) 의 3가지 방법을 종합적으로 사용해 소 사료의 동물성 사료 혼입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일본은 모든 소를 검사하여 광우병 소 발병을 인정했고, 우리는 변변한 검사 없이 광우병 청정국가를 선언했다. 양국은 처음부터 전혀 다른 조치를 취했다.

동물성 사료의 실태를 쉬쉬하고, 수입육의 소비량이 국내산 보다 많고, 국제교역으로 화장품, 의약품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우리가 과연 광우병 청정국가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있을까. 미국 소는 모두 미친 소이고, 국내 소는 모두 청정한 소일까.

어떤 이유에서 우리나라 국민이나 소에게 인간광우병과 광우병이 발병되었다고 하더라도 광우병연구소하나 없는 상태에서는 찾아낼 방법이 없다. 찾아내지 못하니 발병율이 '0'이고 한우는 안전하다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을까.

일본 20개월령 전체-유럽 30개월령 전체-미국 1%-한국 0%

최근 광우병 토론회와 청문회에서 "미국의 광우병통제국의 지위를 뒤엎을 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었다는 점에서 저희들이 협상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한 정부 관료의 말은 무책임하지만 사실이다.

문제는 그런 애로사항을 알면서도 그동안 아무런 과학적 근거마련 조치 없이 통상에 임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 나라를 흔드는 광우병 논란 속에서도 주요 대책의 하나로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 게다가 국민들은 이런 정책에 책임도 묻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더더욱 놀라울 뿐이다.

미국 소비자연맹(Consumer Union)에서는 2008년 2월 1일 미 농무부 감사관(USDA OIG) 보고에서 "소 도축장의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 제거 관리가 부적절하며, 광우병 검사방법이 육안으로만 이루어졌고, 그 육안 검사도 5~10%만 이루어졌으며, 또한 감사대상 도축장 1/6에서 광우병이 의심되는 소가 식육으로 처리되었다"고 비난했다. 미 농무부 감사관(USDA OIG) 보고서에서도 미국 소고기의 안전성 문제를 여러 차례 보고하고 공개했다.

현재 일본은 20개월령 이상의 전체 도축소와 광우병 의심 소에 대해 검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유럽은 30개월령 이상 전체 도축소와 광우병 의심소를 검사하고 있는 반면 미 정부가 광우병발생 국가임에도 전체 소의 1%미만만 검사하고 그나마 많은 도축장 위생 위반 사례가 빈번히 발생해자 미국 소비자연맹에서는 검사를 늘리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소비자연맹의 노력의 일환이었는지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최근 기록적인 대규모 리콜이 시행되었다.

반면 우리 정부는 변변한 광우병 연구소 하나 없이 '과학적'이라고 우기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강력히 저항하고 있다. 그러나 제 3자가 보기엔 미국과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우리 국민들도 도토리 키 재기다. 우리 소고기에 대해 우리 소비자 단체가 리콜을 한 적이 있던가. 수입산은 저질이며 국내산은 안전하다는 맹목적인 믿음의 근거가 무엇인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5.17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17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5.17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광우병에 대처하는 일본과 한국의 '상이한' 자세

일본을 배워야한다. 일본은 광우병연구소의 전수조사를 통해 소 사육두수가 22배 많은 미국보다 더 많은 광우병소를 보고함으로써 광우병 발생국가라는 불명예를 감수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존보다 더 진전된 과학적 사실을 제시하였다. 30개월 이하에서도 프리온이 발견되고, 살코기에도 프리온이 발견되니 20개월로 하자는 것.

미국과도 떳떳하게 통상교섭을 했다. 미국이 바이블로 삼고 있는 OIE규정을 무색케 하는 협상결과를 달성했다. 게다가 미국 소비자들도 모르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미 국민들에게 미국 소고기의 안전성에 경각심을 촉발시켰다.

일본정부는 당장의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일본 국민의 편에 선 것이다. 나아가 전 세계 시민들의 식품 안전에 기여했다. 우리 정부는 어떤가.

광우병에 대해 처음부터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인 한국과 일본은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미국 소를 수입하는 결과에 이르렀다. 일본은 이력추적이 가능한 20개월 미만의 고기, 한국은 월령에 관계없이 고기뿐 아니라 뼈와 내장 모두 수입.

미국 소고기를 반대하는 우리 국민들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 것이다. 광우병은 전 지구적인 문제로서 한국이나 미국 소비자나 모두 동시에 계몽되어야한다. 인류 보편적인 가치관이 아니라 국가, 민족이라는 색깔 안경부터 쓴다면 색깔론의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 무엇을 요구해야 할지 곰곰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2편이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소개 : 르포작가. 한국불교신문 기획팀장. 건국대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축산물등급판정소에 입사하여 13년간 식육의 품질 등급판정 현장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태그:#광우병, #쇠고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