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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루에서 바라 본 응천강과 밀양 시내
 영남루에서 바라 본 응천강과 밀양 시내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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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자랑] 인물과 특산물

경남 밀양은 최근에 영화 <밀양>으로 우리에게 좀 더 많이 알려졌다. 그러나 밀양은 영남의 대표적인 고을로 예로부터 그 명성이 높았다. 조선시대부터 부사가 다스려온 온 고을로 대구를 지나 동래로 가던 관리들이 늘 지나가던 고장이었다. 이곳 밀양의 대표적인 누각인 영남루에 오르면 이곳을 지난 관리와 시인 묵객들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밀양은 과거, 이처럼 교통의 요지였음에도 1970년 경부 고속도로가 경주 쪽으로 나는 바람에 한동안 소외된 지역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최근 부산-대구 간 고속국도가 개통되면서 다시 교통의 중심축으로서의 역할을 되찾아가고 있다. 전 같으면 대구에서 25번 국도를 따라 경산, 청도를 지나 가야 하지만 이제는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따라 30분이면 밀양에 닿을 수 있다.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있는 사명대사 영정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있는 사명대사 영정
ⓒ 범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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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나들목을 나오니 문성남 해설사가 우리를 기다린다. 우리는 먼저 단장면 구천리에 있는 표충사로 향한다. 24번 국도를 따라 산외면 소재지를 지난 다음, 단장천을 따라 나있는 1077번 지방도를 탄다.

단장천이 시전천으로 갈라지는 곳에서 시전천 옆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가면 홍제교가 나오고, 이 지역부터 표충사의 영역이 된다. 홍제(弘濟)라는 이름은 사명대사의 시호에서 유래한다. 사명대사는 이곳 밀양 출신이다.

절을 향하면서 문성남 해설사의 밀양 자랑이 이어진다. 먼저 양반하면 안동보다 밀양을 더 쳐준다고 말한다. 그것은 아마 조선 성리학의 종장인 점필재 김종직이 이곳 출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약산 김원봉과 연극인 손숙 등 현대사의 인물도 이곳 출신이란다. 사실 약산 김원봉 같은 사람은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여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측면이 있다.

 밀양의 깻잎
 밀양의 깻잎
ⓒ 밀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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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특산물 자랑이다. 길가의 밭에 비닐하우스가 수도 없이 많은데 이것이 다 들깨를 재배하는 단지란다. 밀양 깻잎의 특징은 뒷면이 붉을 뿐만 아니라 페닐케톤이라는 성분을 지니고 있어 독특한 향이 있다는 것이다. 전국 깻잎 생산량의 60% 정도가 이곳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고 표충사가 있는 단장면 지역은 대추가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길가가 온통 대추나무 밭이다. 초록으로 피어오르는 대추나무 풍경도 정말 볼만하다.

표충사가 절이면서 사당인 이유

 표충사 전각 너머로 보이는 천황산 재약산의 한 봉우리
 표충사 전각 너머로 보이는 천황산 재약산의 한 봉우리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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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교에서 표충사로 이어지는 길은 신록의 그늘이 싱그럽다. 이들 나무그늘을 지나면 표충사라는 현판이 붙은 2층의 누각이 나타난다. 누각의 한쪽 옆으로 천황제일루(天皇第一樓)라는 글씨가 보인다. 이곳 표충사를 감싸고 있는 산이 천황산(1189m)과 재약산(1108m)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누각을 들어가면 표충사 경내에 들어간 셈이 되지만 저 앞에 보이는 사천왕문까지는 아직 세속의 영역이다. 왜냐하면 이곳에 표충사(表忠祠)와 표충서원(表忠書院)이 있기 때문이다.
  
표충사는 사명대사 유정 스님을 모시던 사당이었다. 원래 표충비(각)과 함께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에 있었으나 1839년(헌종 5년) 사명대사의 법손인 월파선사가 재약산(載藥山) 영정사(靈井寺)로 표충사(表忠祠)를 옮기면서 절의 이름이 표충사(表忠寺)로 바뀌었다.

그 후부터 표충사는 두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아랫부분은 사명대사의 세속적인 업적을 기리는 표충사(表忠祠)가 되었고, 윗부분은 부처님을 모시는 불교적인 영역이 되었다.

 사명대사를 기리는 사당인 표충사: 뒤로 천황산이 보인다.
 사명대사를 기리는 사당인 표충사: 뒤로 천황산이 보인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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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문 아래 세속적인 영역에는 표충사(表忠祠)와 표충서원이 중심을 이루고, 그 외에 유물관과 설법전이 있다. 표충사에는 사명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어 스님의 민족의식과 애국정신을 생각나게 한다. 표충서원은 임진왜란 시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킨 세 명의 큰 스님 서산, 사명, 기허대사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매년 봄가을로 제를 올린다.

 국보 75호인 청동함은향완
 국보 75호인 청동함은향완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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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관에는 국보 75호인 청동함은향완(靑銅含銀香垸)을 비롯해서 사명대사와 관련된 유물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청동함은향완은 한 마디로 향로이다. 그런데 청동을 주재료로 썼으며 거기에 글씨나 그림 장식을 하면서 은을 집어넣는(銀入絲) 방식을 취했다. 향로의 윗부분에는 산스크리트어가 은입사되어 있고, 아랫부분에는 승천하는 용과 구름이 은입사되어 있다. 고려 초기 작품으로 추정되며, 고려 공예미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절을 찾는 마음, 기도하는 마음

속계를 떠나 불문에 들기 위해 우리는 사천왕문 계단을 오른다. 초파일이 며칠 남지 않아서인지 곳곳에 연등이 걸려있다. 사천왕문을 지나니 좁은 길 너머로 삼층석탑이 보인다. 삼층석탑 주위로는 여러 당우들이 둘러싸고 있다. 이 당우들은 부처님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불문에 든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종무소가 있고, 강원이 있고, 선방이 있다. 주로 스님들이 공부도 하고 참선도 하는 영역이다. 영각과 칠성각도 여기 있어 세속적인 영혼과 자연신이 함께 공존하고 있기도 하다.

 3층석탑
 3층석탑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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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 한가운데 삼층석탑과 석등이 있어 불문에 든 스님들과 절을 찾는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준다. 삼층석탑(보물 제467호)은 단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가 있는 통일신라 때 양식을 보여준다. 조선 숙종 3년(1677년)에 나온<영정사(靈井寺) 고적기>에 의하면 이 절이 신라 흥덕왕 4년(829년)에 세워진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탑의 조성 연대도 그쯤으로 추정해 볼 수 있겠다.

더욱이 이 탑은 찰주가 온전하게 남아 있어 날렵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찰주에는 노반, 복발, 앙화, 보륜, 보개, 수연 등이 비교적 완형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들 중 일부에서 보수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삼층석탑 옆에는 석등이 있다. 방형의 지대석과 원형의 하대석 위에 8각형의 간주석이 세워져 있고, 그 위에 8각형의 중대석이 있다. 하대석에는 복련을, 중대석에는 앙련을 새겨 넣어 단순한 석등에 변화를 주고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중대석에는 4면으로 불이 비쳐 나갈 수 있도록 창을 냈다. 옥개석과 보주 역시 장식이 별로 없어 전체적으로 단순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표충사의 중심 법당 대광전
 표충사의 중심 법당 대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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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석탑과 석등을 지나 다시 계단을 오르면 정말로 부처님의 영역에 이른다. 응진전과 팔상전, 대광전이 나란히 서 있는데 주전은 역시 대광전이다. 대광전에 들어가 보면 석가모니불이 주존불로 모셔져 있다. 대광전은 대적광전의 다른 표현으로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어야 하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 게 의아하다. 우리 절집들이 오랜 역사를 가지다 보니 그러한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데 이 절집도 역시 그런 케이스로 여겨진다.

대광전은 1929년에 중창한 건물이어서 문화재적인 가치는 적지만 건축학적인 측면에서 화려하고 장식적인 요소가 많은 편이다. 문성남 해설사도 건축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자신이 아는 지식을 총동원하여 최대한 우리에게 대광전의 건축학적인 요소를 설명하려 애쓴다. 그 덕분에 우리 일행은 사찰건축에 대한 이해의 폭을 조금은 넓힐 수 있었다. 대광전 옆의 팔상전에는 부처님이 태어나서 열반할 때까지의 행적을 여덟 폭 그림으로 그린 팔상도가 모셔져 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법당 관음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법당 관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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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네 번째 계단을 오르면 관음전과 명부전이 좌우로 우리를 반긴다. 관음전의 주존불인 관세음보살은 중생을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보살이고, 명부전의 주존불인 지장보살은 지옥중생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는 보살이다. 관음전에는 천수천안의 관세음보살이 자리하고 그 좌우에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이 관음보살을 호위하고 있다. 관음보살 뒤로도 천수천안의 관세음보살 탱화가 그려져 있어 이 전각 안에는 대자대비의 기운이 넘쳐나고 있다.

관음전 안에는 또한 흰색 꽃봉오리에 초록색 꽃잎을 단 아름다운 연등이 걸려있다. 흰색과 초록의 대비가 정말 순수해 보인다. 표충사 경내는 이러한 연등을 설치하는 사람들의 손길이 바쁘기 이를 데 없다. 이들 연등에 아직 명패가 붙어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등을 먼저 걸고 나중에 이름을 붙이는 모양이다.

 관음전 안의 연등
 관음전 안의 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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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당 밖의 연등
 법당 밖의 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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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전 옆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도명존자를 오른쪽에는 무독귀왕을 안치하였고, 그 좌우에 심판관인 시왕을 봉안하였다. 관음전과 명부전을 떠나면서 가까이 대나무 숲을 그리고 멀리 재약산 쪽을 바라본다. 표충사의 원래 이름이 죽림사였다고 하는데 절 뒤의 대나무 숲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좌에서 우로 이어지는 재약산의 능선에서는 신선한 봄의 기운이 느껴진다. 평탄하게 이어지는 능선 위로는 초록의 잎들이 한창 피어나고 또 정상 부위에는 멋진 바위들이 자리 잡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5월 6일 경남 밀양 지역을 여행했다. 표충사를 시작으로 위양못과 예림서원, 영남루와 무봉사 등을 답사했다. 이때 보고 느낀 바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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