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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동네를 말한다. 삼청동, 원서동, 계동, 가회동, 재동, 안국동, 화동, 사간동, 소격동이 모여 북촌을 이룬다. 사진은 한옥 밀집지구인 가회동.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동네를 말한다. 삼청동, 원서동, 계동, 가회동, 재동, 안국동, 화동, 사간동, 소격동이 모여 북촌을 이룬다. 사진은 한옥 밀집지구인 가회동.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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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서울에 한옥이 잔뜩 모여 있는 동네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에이 설마"라고 그랬다. 진짜란다. 인터넷을 뒤졌다. 진짜다. 민속촌인 줄 알았다. 저렇게 많은 한옥이 서울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아마 당시엔 빨리 주말이 오길 바랐으리라.

그 때가 언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아마 인사동을 숱하게 누비다가 슬슬 새로운 곳에 눈길을 돌릴 때였을 것이다. 정확히 북촌이 어디서 어디까지인지도 모른 채 인사동 북쪽 언저리를 정신없이 다녔던 것 같다.

경복궁 옆 삼청동도 가고, 덕수궁 옆 재동도 갔으며, 정독도서관과 지금은 칼국수집이 된 여운형 옛 집터도 갔다. 라면 먹으러 가고,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 서울 구경시켜 준다고 갔으며, 찻집 차릴 곳 알아봐 달라는 선배 요청 때문에도 갔다.

북촌문화센터 문화행사, 시인 김지하 카페에서 열린 세미나, 북촌에 새로 이사간 사람이 연 하우스 오픈 등 행사 때문에 북촌에 갈 일이 제법 많았다. 대학로에서 약속이 있을 때 일부러 북촌을 누비며 가기도 했고, 돌아올 때 북촌 골목을 돌아서 집에 가기도 했다.

때론 혼자서 가고, 어떤 날은 우산을 쓰고 갔고, 또 어떤 날은 여럿이서 자전거를 타고 갔다.

성삼문, 김옥균, 윤보선... 동네 전체가 문화재

 북촌문화센터에 가면 북촌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곳에선 각종 문화행사도 열린다. 2003년 10월 북촌문화센터에서.
 북촌문화센터에 가면 북촌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곳에선 각종 문화행사도 열린다. 2003년 10월 북촌문화센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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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여행은 서울 토박이 한 사람, 돌아다니는 게 일인 사람과 함께했다. 북촌에 간다고 했을 때, 그중 한 사람의 반응은 "북촌은 너무 사람이 많고 복잡해서 싫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오늘 하루 종일 사람 거의 없는 길만 보여줄테니 잘 따라오시라"고 했다. 아마 동행인이 본 북촌은 삼청동일 것이다.

삼청동은 북촌 가운데 일부분이다. 원서동, 계동, 가회동, 재동, 안국동, 화동, 사간동, 소격동까지 더해져야 북촌이다.

왕이 부르면 즉시 출근해야 했던 대감과 공무원들이 살았던 동네가 북촌이다. 교통 편리하고 전망 좋았던 그 동네를 지금 어느 동네와 비교할 수 있을까.

양반동네였지만 그 1930년대까진 그 동네에도 초가집이 있었다. 그 동네 살다 지금은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간 한규진씨는 재동초등학교 근처에 초가집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초가집은 1938년 한옥으로 개축했고, 그 집엔 숙명여대 음대 학장을 지낸 테너 한규동이 살았다고 한다.

조선 500년 역사가 지문처럼 새겨진 동네는 전체가 문화재다. 강력한 왕권을 세우려던 세조에 맞섰던 성삼문을 비롯, 한국 최초 일본·미국 유학생이었던 유길준, 3일천하로 불리는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과 홍영식,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천도교 지도자였던 손병희, 독립군 사령관 지청천, 대통령 출신으로 박정희에 맞선 야당 투사 윤보선,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과 같은 시를 남긴 박인환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이들의 집이 모두 북촌에 있었다.

 감고당길 입구에 있는 풍문여고. 장희빈에 의해 폐서인된 인현왕후가 6년간 갇혀 산 곳이 바로 감고당이다. 당시 감고당 자리에 덕성여고가 들어섰다.
 감고당길 입구에 있는 풍문여고. 장희빈에 의해 폐서인된 인현왕후가 6년간 갇혀 산 곳이 바로 감고당이다. 당시 감고당 자리에 덕성여고가 들어섰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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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인사동까지 간 뒤 감고당길을 탔다. 조선 숙종 계비인 인현왕후가 살던 친정집이 감고당이다. 장희빈에 의해 폐서인된 인현황후가 6년간 그 곳에 갇혀 살았다. 지금 감고당 자리엔 풍문여자고등학교가 들어섰고, 감고당은 도봉구 쌍문동 덕성여자대학교로 옮겨졌다.

감고당길은 보행로와 자동차길 너비가 비슷하다. 자동차길은 1차선이다. 보행로가 넓고 자동차가 천천히 다니지 않기 때문에 걷기에 괜찮다. 물론 자동차가 계속 들어서기 때문에 어느 정도 불편함은 있다.

 골목에선 느리게 걷고 사소한 눈으로 보는 게 좋다. 사소한 곳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국기꽂이대에 걸린 우산.
 골목에선 느리게 걷고 사소한 눈으로 보는 게 좋다. 사소한 곳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국기꽂이대에 걸린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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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고당길 음식점들은 꽤 평가가 좋은 편이다. 길게 줄을 서는 집이 몇 곳 된다. 몇 집에 들어가서 맛을 봤는데, 줄을 설 만한 곳들이다.

감고당길 주변 골목길을 누비면 사소한 즐거움들을 느끼게 된다. 사소한 데 정성을 들인 사람들의 솜씨가 정겹다. 자동차 주차장 출입문에 그린 말 그림, 국기꽂이대에 꽂은 양산, 담에 그린 출입문과 주방 등 볼거리가 계속이다.

정독도서관 입구에서 동행인들과 만났다. 정독도서관은 1976년 강남구 삼성동으로 떠난 경기고등학교가 있었던 자리다. 사료관동은 1927년, 도서관과 휴게실동은 1938년이다.

오래된 건물이 풍기는 분위기가 꽤 아늑하다. 건축 당시엔 스팀난방시설을 갖춘 최신식건물이었다고 하는데, 최신 건물도 세월이 흐르니 역사가 된다. 지금 등록문화재 제2호다.

정독도서관 담 옆으로 두 갈래 길이 있다. 한 길은 삼청동 번화가로 바로 가는 길이고, 또 한 길은 삼청동 번화가를 아래로 굽어보며 올라가는 길이다. 굽어보며 올라가는 길을 골랐다. 역시 아무도 없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몇 차례 꺾다 보니 오르막길이 나온다. 저 멀리 코리아다이어트센타가 보인다. 이름도 독특하지만 건물 외관도 독특하다. 오르막길에서 아래를 보면 삼청동 번화가가 한 눈에 보인다. 기와지붕이 줄지어선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리도 있다.

 윗길에서 본 삼청동길. 멀리 보이는 산이 북악산이다.
 윗길에서 본 삼청동길. 멀리 보이는 산이 북악산이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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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번화가에선 잘 꾸며진 입구와 담 그리고 길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눈 높이로 보는 풍경과 위에서 보는 풍경이 얼마나 다른지 삼청동 오르막길에 오르면 알 수 있다. 여기선 과거 한양을 둘러싼 내사산(內四山) 중 북악산(북), 인왕산(서), 남산(남)을 볼 수 있다.

삼청동길 중간은 청와대로 들어가는 길이다.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전도연과 김주혁이 실랑이를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청와대길을 따라 삼청동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 그 길 역시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다. 삼청동에 가려면 경복궁 동십자각 방향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어떤 공식이 있는 것 같다.

삼청동 오르막길 동쪽이 한옥 많은 가회동이다. 골목을 누비기 시작하다 맹사성 집터를 봤다. 요즘 방영중인 드라마 <대왕세종>에 맹사성이 나온다. 드라마 속 인물이 떠올라 괜히 친근하게 느껴졌다.

맹사성 집터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잡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가회동 대표 풍경을 볼 수 있다. 양쪽으로 기와집이 문무백관처럼 도열한 풍경에 은근히 기분이 흐뭇해질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길엔 'Photo Spot'이란 동판이 붙어 있다. '사진발' 받는 위치란 뜻이다.

이 길에서 서쪽 언덕길로 올라가면 한옥이 바다를 이룬 곳을 보게 된다. 동행인들에게 "한옥 바다"라고 표현했더니 군 말 없이 동의했다. 길 옆 담이 은근히 포물선을 그린다. 그 모습이 무척 매혹적이다.

골목을 빠져나와 차도로 나오니 걷기모임 회원들이 북촌을 누비고 있다.

 디아갤러리. 북촌엔 개성있는 전시관들이 많다.
 디아갤러리. 북촌엔 개성있는 전시관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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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박물관이 한 곳 문을 열었다. 장난감 박물관이다. 인사동 못지 않게 북촌엔 볼 만한 박물관과 전시관이 많다. 골목을 누비다 보면 개성있는 전시관을 보게 된다.

오래된향기북촌생활사박물관에선 북촌의 지난 모습을 볼 수 있다. 디아갤러리는 휴대폰이 한옥벽에 덕지덕지 붙은 모양이 이색적이다. 벽 뿐만 아니라 대문 입구 계단에도 휴대폰이 붙어 있다.

수많은 선각자들의 흔적이 새겨진 곳

 가회동.
 가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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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여행은 집 여행, 길 여행이기도 하지만 사람 여행을 빼놓을 수 없다. 북촌엔 수많은 선각자들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정독도서관 근처 골목길엔 아주 운치 있는 교회가 있다. 1909년 문을 연 안동교회다. 무려 역사가 100여년이다. 헤이그 특사로 유명한 이준 열사의 헤이그 평화회의 참석을 주선한 박승봉, 일본유학생혁명혈약사건으로 수감생활을 한 유성준, 청년계몽 교육운동가였던 김창제가 안동교회를 만든 이들이다.

해외 선교사들이 아니라 조선인 양반이 앞장서 만들었다는 점에서 안동교회는 다른 교회와 차이가 크다. 삼일독립운동에 참여한 박승봉 장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순국한 이윤재 장로 등 안동교회 출신들은 사회 참여 의지가 강했다.

 익살맞은 나무의자. 구본주의 2003년 작품 '비스킷 나눠먹기'다.
 익살맞은 나무의자. 구본주의 2003년 작품 '비스킷 나눠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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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에서 차도를 타고 북쪽으로 가다보면 길가에 손병희선생 집터가 있다. 손병희선생 집터 옆에 있는 의자가 익살맞다. 입을 벌린 두 사람 사이에 끼어있는 나무판대기가 의자다. 구본주의 2003년 작품 '비스킷 나눠먹기'다. 공공시설물이 작품이 될 수 있음을 이 의자는 잘 보여준다.

중앙고등학교 근처엔 3.1독립운동기념터인 유심사 자리가 있다. 한용운 선생이 3.1독립정신을 중앙학교 학생들에게 심어준 곳이 바로 유심출판사다. 창덕궁 담을 따라 '쭉' 올라가면 원서동 백홍범가다. 대략 1910년대 만들었다고 추정하고 있으니 100년 전 집이라고 보면 된다.

'용상이는 예진이를 좋아해'... 마을신문 역할을 하는 골목 담

 아이들은 낙서를 통해 자신들의 속마음을 전달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낙서를 통해 자신들의 속마음을 전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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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골목은 길이 그다지 길지 않다. 제대로 된 골목을 돌아본 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옥과 조선시대 유적지를 찬찬히 살피면서 돌아다닌다면 이 조용한 동네를 충분히 구경할 만하다.

어느 집 우편함엔 누가 꽃을 넣어놓았다. 꽃이 배달물일까? 아니면 집주인이 길손에게 베푸는 선물일까? 우편함과 꽃이 만든 조화가 괜히 재미있다.

골목을 누비면서 낙서를 보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누가 뭐래도 용상이는 예진이를 좋아한다'고 써놓았다. 드러내놓고 좋아하는 사람 이름을 적는 것은 어린이들만이 할 수 있는 문화다.(가끔씩 어른들이 큰 돈을 들여서 이벤트 형식으로 흉내내곤 한다.) 한 사람에게 마음을 고백해놓고, 'or 보람'이라고 해놓은 게 재밌다.

골목 담은 이렇게 마을신문 역할을 한다.

 어르신들. 중앙고등학교 앞에서 찍었다.
 어르신들. 중앙고등학교 앞에서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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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이곳저곳을 누비다 중앙고등학교 앞에 도착했다. 중앙고등학교 앞길을 따라가면 창덕궁까지 이어진다. 이 길은 내리막과 오르막이 반복되는 길이다. 다소 힘들 수도 있지만 오히려 리듬감이 느껴지는 길이다.

근처를 두리번거리니 한 중년 남성이 난데없이 묻는다. "어딜 찾으려고 하십니까?" "아뇨. 그냥 봤어요." "이쪽으로 가면 한옥 많은 곳 나옵니다." 친절한 목소리다. 묻지도 않았는데. 아마 이렇게 물어본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이런 친절 참 오랜만이다. 물어야 간신히 알아주는 게 요즘 사람들 아닌가. 그러다보니 그 중년남성의 친절함이 한편으론 과하게 느껴진다.

학교 앞 문방구엔 배용준, 이병헌 사진이 잔뜩이다. 이 조용한 곳에 웬 연예인 사진일까 싶은데, 꾸준히 일본인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고 간다. 이 곳은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다. <겨울연가>를 열심히 본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필수 방문지다.

<겨울연가>를 한 편도 제대로 보지 않은 나로선 그런 그들이 낯설었다. 오히려 눈길을 끈 것은 문방구 바로 옆 한옥에서 볕을 쬐고 있는 어르신들이었다. 처마 밑에서 쉬고 있는 어르신들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부탁했더니 어르신 몇 명이 황급히 일어난다. 부끄러운 모양이다.

"왜 사진을 찍으려고 하냐"고 한 분이 묻는다. '보기 좋아서'라고 대답하니 믿지 못하는 눈치다. 그 와중에도 계속 자릴 뜬다. 가장 나이가 들어보이는 어르신에게 말을 붙였다. 올해 나이가 여든 셋. 무리 중에서 제일 어르신이다. 마침 그 분이 도와주신다.

"사진 찍어. 뭐 잘났다고 사진도 안 찍고 그래. 일부러 사진 찍어준다는데."

몇 분이 주섬주섬 자리에 앉는다. 세 분이 자릴 뜨고 네 분이 자리에 앉았다. 한 분은 손을 곱게 모았고, 두 분은 호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었다. 흡사 증명사진 찍는 분위기다. 사진을 찍으니 여든셋 어르신이 인사를 하신다. "사진 찍어줘서 고마워요."

인사를 드려야 할 분에게 인사를 받으니 오히려 민망하다. 어르신은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어르신 배려에 감사하며 자리를 떴다.

중앙고등학교에서 안국역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가게들은 세월 냄새가 풀풀 난다. 길가에 장작을 잔뜩 쌓아놓은 목욕탕 '중앙탕', 이름부터 친근한 '이모네 분식', 앞머리가 '툭' 튀어나온 아이가 물을 나를 것 같은 '왕짱구식당', 붓으로 쓴 간판이 정겨운 '문화당 서점', 우거지해장국을 수십만번은 말았을 것 같은 식당 '북촌'이 연이어 나온다.

신식 한옥 동네... 손때 타면 제대로 맛이 날 것

 북촌 한옥동네는 사람 손때가 많이 묻어야 한다. 그 때가 되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동네가 될 것이다.
 북촌 한옥동네는 사람 손때가 많이 묻어야 한다. 그 때가 되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동네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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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동은 한옥 동네지만 수십, 수백년 동안 이어진 한옥집으로 만들어진 동네는 아니다. 오히려 최근 만들어진 한옥이 더 많다. 그래서 이 곳 한옥에선 손때가 덜 보인다. 세월의 흔적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대부분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인데다 골목길이 짧다. 아무래도 아기자기한 길 맛이 덜하다.

골목동네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분도 적은 편이다. 단 삼청동 쪽 가회동에선 화분을 거의 볼 수 없지만, 창덕궁 쪽 가회동에선 제법 꽃을 볼 수 있다. 길 사이사이 계단이 있고 화분이 집마다 나와 있어 제법 골목분위기가 난다.

재산권 보호와 전통문화 보호라는 줄타기를 하면서 북촌은 이제 겨우 발걸음을 떼었다. 집은 한옥이지만 예부터 이어진 한옥은 아니다. 한옥은 손때가 묻어야 제 맛이라고 했다. 북촌에 필요한 것이 바로 손때다.

지금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이 곳에 정을 붙이면서 대를 잇기 시작하면 사람 냄새가 제대로 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북촌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여행1번지로 제대로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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