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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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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옆지기는 수채그림 배우기를 하러 화평동에 자리한 '평안수채화의 집'으로 갑니다. 지난주에 '평안수채화의 집' 박정희 할머님(86)을 찾아뵙고 그림 배우러 오겠다고 했더니, 할머님 둘레에 앉아서 수채그림을 그리던 아주머님들이 "나는 처음 오던 날부터 마음 단단히 먹고 다 싸들고(그림 그릴 연장) 왔는데"하면서, 옆지기보고 애써 왔으니 오늘부터 그림 한 장 그리고 가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순 넘어서 그림그리기에 온마음을 쏟는 박정희 할머님인데, 그에 앞서도 틈을 조금씩 마련하여 당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곧잘 그려 오셨습니다. 동네에서 그림을 배우겠다며 찾아오는 아주머님들은 하나같이 아이가 둘씩 셋씩 딸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 주에 한 차례, 월요일마다 하루 짬을 내어 그림그리기를 배웁니다. 아니, 말은 '배움'이지만, 옆에서 슬며시 그림종이를 들여다보면, 당신님들 걷고 싶은 길을 붓끝에 고이 담아서 꾸욱꾹 스윽슥 빚어냅니다.

 

그런데, 옆지기가 그림공부 하러 나서면서 지갑을 놓고 갔습니다. 처음 나가는 날, 그림삯으로 5만원을 드리기로 했는데, 이를 깜빡 놓고 갔군요. 다시 와서 가져간다고 하기에, 아니다, 내가 자전거 타고 휭하고 가져다주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다만, 머리 감고 가겠다고 덧붙입니다.

 

 

며칠 만에 머리를 감습니다. 머리를 감을 때 나오는 물로 빨래를 합니다. 저한테 머리감기란 빨래하기입니다. 씻는 물 따로 빨래 물 따로 하지 않습니다. 빨랫감이 고무통에 어느 만큼 쌓였을 때 비로소 몸을 씻습니다. 몸을 씻으면서 빨래를 합니다. 그림책 <우리 할머니>(오니시 히로미 글ㆍ그림,필북 펴냄,2002)를 보면, '우리 할머니'는 당신 몸을 씻을 때마다 빨래를 합니다. 할머니 사는 집에 함께 있는 며늘아기는 세탁기 돌리며 빨래를 다 했다고 하지만, 할머니는 세탁기 아닌 손으로 빨래를 하고, 몸씻기와 빨래를 하는 김에 씻는방 청소도 말끔히 합니다.

 

머리를 감고 빨래를 하고 나서 머리가 아직 덜 말랐기에 책 조금 넘기다가, 부랴부랴 짐을 챙겨 밖으로 나옵니다. 할머님한테 이야기책 몇 가지 선물해 주고 싶어서 예닐곱 권에 이르는 책을 주섬주섬 가방에 넣습니다. 중앙시장 길을 슬슬 자전거로 달립니다. 고운 햇볕이 온몸으로 내리쬡니다. 동구청 또는 시청에서 지지난달 무렵 새로 세운 '화평동 냉면골목' 큼직한 간판이 보이는 건널목 앞에 섭니다. 푸른불로 바뀝니다. 건넙니다. 냉면집마다 일꾼이 앞에 나와서 손님잡기를 합니다. 오늘은 여느 날일 텐데, 무슨 손님잡기를 이렇게 할까 싶은 마음이 드는 한편, 구와 시에서 이곳 화평동을 '냉면골목 관광지'로 만들어 알리는 품새가 영 마뜩하지 않아서 이마에 주름살이 새겨집니다.

 

구와 시에서는, 인천이라는 곳에 마땅한 관광지나 특수지구가 없다는 생각에 이곳 화평동을 '냉면골목'처럼 꾸몄는데, 이곳 화평동은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1993년 안팎까지, 인천에서 내로라하던 '색시골목'이었습니다. 구와 시에서는 이 색시골목을 '도시 미관 정화'라는 이름으로 재개발을 하면서 '동인천-용산 복복선' 공사를 하고, 남은 빈터에는 주차장을 삼아서 냉면골목 특성화 공사를 합니다. 인천이라는 곳이 워낙 뜨내기가 많고 토박이가 적다고 하니, 이러한 발자국을 아는 사람도 드물지만, 이러한 발자국을 안다고 하여, 구와 시에서 엄청난 돈을 들여서 꾀하는 '관광지 만들기'에 '민원 한 마디' 넣을 구멍이 없습니다.

 

정작 인천 중구 율목동에는, '한글 점글을 처음으로 만들며 독립운동을 했던 박두성 선생' 옛집이 있었으나, 구에서는 '도심지 미화사업'이라는 이름을 내세워서 하루아침에 허물어 버렸습니다. 인천 동구 화평동에는 박두성 선생 따님이면서 예순 넘은 늦깎이에 화가로 세상에 나온 박정희 할머님이 꾸리는 '평안수채화의 집'이 있습니다. 이제는 '육아일기 할머님'으로도 알려진 이분 집터와 당신 몸품을 놓고, 시에서는 '문화재'라고 말을 하지만, 그림할머니 박정희 님 집터도 구와 시에서는 '도시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빨리 없애 버리려고만 할 뿐입니다. 더욱이, 이곳 박정희 할머님 수채화집에서 30m쯤 골목길을 걸어 들어가면, 극작가 함세덕 님이 살던 옛집이 예전 모습 거의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시에서도 이를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함세덕 선생 옛집 되살리기에는 한 푼 예산을 들이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함세덕 선생이든 박두성 선생이든, 이분들 집을 시 살림으로 사들여서 박물관으로 꾸미는 데에는 1억은커녕 5천만원도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화평동 냉면골목 조형물'을 만드는 데에는 억대가 넘는 돈이 들어갑니다. 모르는 일이지만, 인천뿐 아니라 나라를 밝힌 분들 옛집 사들여 박물관 꾸미는 데에 10억이나 100억이 들만한 일이었으면, 소매를 걷어붙이며 나서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 2 -

 

옆지기가 그림을 그리는 '평안수채화의 집'에 들러서 지갑을 건네고 책을 건넵니다. 잠깐 서서 그림그리기를 구경합니다. 늙은 몸으로도 '젊은' 아주머니들한테 온힘을 모두어 그림그리기를 가르치며 이야기를 합니다. 아주머니들은 어느 한 분도 지치거나 조는 모습 없이 말똥말똥한 눈매와 바지런한 손놀림으로 종이 한 장에 그림 하나를 담아냅니다. 조그마한 방에서 꽃그릇에 담긴 꽃 한 송이 그리는 수채그림이지만, 이 그림 하나에 담긴 우주를, 이 그림그리기에 우주와 같은 마음을 쏟는 이 아주머니들을, 하하, 당신들이 사랑하는 하느님 마음을 고이 펼쳐 보이고 있구나 싶습니다. 할머님이 몸 움직이기가 힘들어서 밖에 나가서 그림을 못 그릴 뿐, 이렇게 방에서 배우는 그림을 들에 나가고 골목에 나가면서 마음껏 펼치고 나눌 아주머님들일 테지요.

 

꾸벅 인사를 하고 고양이걸음으로 살금살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옵니다. 자물쇠를 풀고 자전거를 타고 동인천역 앞을 지나 인천부두 옆을 따라서 달립니다. 삼익아파트에서 곧바로 앞으로 달려 신광초등학교 앞에서 멈춥니다. 지난달까지 있던 건널목 하나가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건널목 자리는,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던 곳입니다. 이 앞에는 인천 항구와 경인고속도로 들머리를 뻔질나게 드나드는 큰 짐차가 '학교 오가는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호 어기기를 밥먹듯이 하면서 다니느라 무척 위험합니다. 이러면서도 아무 대책이 없던 판이었는데, 이참에 건널목이 아예 사라집니다. 그러면 이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요? 건널이 사라지면 아이들이 위험에서 안전해질까요? 아이들은 학교에 오려고 '가까운 길'을 내버려 두고 먼 길로 빙 돌아서 가야 하나요? 그 많은 전경과 의경을, 또 집에서 해바라기만 하고 있는 어르신 들을 이곳에 모시어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도록 할 수 없었는지요.

 

 

학교 울타리를 따라 아주 천천히 자전거를 달립니다. 스물 몇 해 사이에 아주 많이 달라져 버린 학교 모습을 봅니다. 학교 둘레는 스물 몇 해 앞서하고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기찻길은 그대로입니다. 수원과 인천으로 오가는 기찻길이라고 하던데, 이 기찻길에서 맨날 놀면서도 수인선 기차는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습니다.

 

기찻길가 판자집에서 살던 천○○는 아직도 이 동네에 살고 있을까 생각해 보며 철길을 걷습니다. 국민학생 그때, 철길에 올라가 100, 200을 세며 떨어지지 않고 걷기놀이를 하던 일, 철길가 집에서 기차 소리를 들으며 놀던 일, 기찻길가 연탄공장에서 끊임없이 날리던 탄가루를 먹어 온 동네가 새까말 뿐 아니라, 집안까지도 새까맣게 느껴지던 그 집에 놀러가면, 동무네 아주머니가 밥까지 차려 주며 저녁까지 먹고 집에 가라고 하던 그 말씀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기찻길가에 사는 할아버지들이 텃밭 일구는 모습은 스물 몇 해 앞서나 이제나 마찬가지입니다. 짓궂던 동무들은 텃밭에 돌을 던지기도 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좀 얌전해졌을까 모르겠습니다.

 

기찻길이 끝나고 나오는 제일제당 인천공장 옆으로 건널목이 있었다고 되뇌며 건널목을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언제 사라졌을까? 높직한 구름다리만 하나 멀뚱히 있습니다. 히유, 한숨을 쉽니다. 구름다리로 자전거를 들쳐메고 건넙니다. 건너편에 닿은 다음, 자전거를 끌면서 걷습니다. 이곳 기찻길가 숭의동에는 국민학교 적 동무 장○○가 아직도 살고 있습니다. 그때 나한테 300원, 500원 꾸면서 군것질을 하던 조○○이 아직도 살고 있을라나? 장○○네 집 앞에 섭니다. 문패를 보니 옛날 그대로이고, 집 안뜰에 자라는 나무도 그대로입니다. 집 뒤켠 빈터는 빌라가 들어섰습니다. 그 빈터에서 날이면 날마다 구슬치기를 했는데.

 

문득, 단추를 눌러서 집에 누가 있는가 여쭈어 볼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합니다. 다음에 다시 오자고 생각합니다. 동무들 가운데 퍽 잘사는 편이었던 장○○네에는 다른 동무네에는 없던 '킹콩 오락기계'가 있었고, 집도 2층이었습니다. 그래도 연탄불 때는 부엌이었는데, 집이 참 크다고 느끼던 지난날이었습니다.

 

장○○네에 놀러와서 저녁을 얻어먹을 때면, 집에서는 구경하지 못하는 반찬이 많아서, 자꾸자꾸 놀러오려고 했는데, 장○○가 저보다 학교성적이 좀 떨어져서 동무네 어머님도 자주 놀러와서 함께 공부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공부하는 척을 하다가, 집에 어른이 다 비고 나면 신나게 구슬치기며 다른 놀이며 했고, 그렇게 놀다가 흙바람 땀바람이 된 채로 짐짓 내내 공부한 척했으나, 동무네 어머님은 환히 알고 있었을 테지요.

 

가난한 집안을 꾸리며 5원짜리 꽃을 꿰매느라 하루 내내 집에서 애쓰셨던 조○○ 어머님 모습이 잊히지 않는 동무네 집을 두리번두리번 찾아봅니다. 문패에 '조씨' 이름이 붙은 곳이 보이지 않습니다. 떠났을까? 모르지, 또 그럴 수 있을 테지, 모든 사람이 이곳에 오래오래 남을 수는 없으니까. 떠났다면 어디로 떠났을까?

 

 

기찻길이 동네 한복판으로 지나가는 숭의동 438번지. 이제는 기차는 거의 안 지나가는 듯하고, 바깥에서 얼추 들여다보면 꾀죄죄해 보일는지 모르나, 동네 골목을 천천히 걸으면서 헤아리면, 참으로 깨끗하여 길에 쓰레기 하나 뒹굴지 않고, 비닐봉지 허투루 날아다니지 않습니다. 큰길가에서 수십 톤짜리 큰 짐차가 지나다니며 내는 우람한 소리 하나 들리지 않습니다. 기차가 멎은 기차길가에 마련한 텃밭에는 옹기종기 푸성귀가 자라고, 이 푸성귀 텃밭을 따라 집집마다 따순 햇볕을 쬐려고 내어놓은 빨래가 나부낍니다. 아이들 있는 집은 문간에 자그마한 자전거가 서 있고, 자전거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지 않습니다.

 

샛골목을 자꾸만자꾸만 파고들면서 어릴 때 이 동네에서 뛰놀던 일을 떠올릴 무렵, 처마 그늘에서 놀던 동네 꼬마 셋이 나를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안녕하십니까?"하며 까르르 웃습니다. 저도 고개를 꾸벅 숙이며 "네, 안녕하셔요"하고 인사를 받습니다. 아이들은 또 한 번 웃습니다. 왜 웃을까? 고 옆으로 5m쯤, 할머니 한 분이 앉아 있습니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판자로 얼기설기 얽은 집이 여러 채 보이고, 이 집에서 살아가는 할아버지가 보입니다. 길개로 보이는 적지 않은 개들이 '모처럼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서 반갑게 짖어댑니다. 사람이 그리운 목소리입니다.

 

퍽 많은 식구 빨래구나 느끼게 하는 양말과 속옷 빨래를 보다가, 그래, 인사 잘하는 아이들한테 선물이라도 주어야지 생각하면서, 동네 구멍가게를 찾아보기로 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이 골목 저 골목 신나게 쑤십니다. 그렇지만 구멍가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어라? 왜 없을까? 구멍가게 없는 골목동네가 있나? 어쩌는 수 없이 이웃 동네 구멍가게를 찾아서 사탕 두 봉지를 사서 아까 그 자리로 돌아옵니다.

 

처마 그늘에는 아이 하나만 있습니다. "혼자만 있네? 다들 집에 갔니? 이거는 인사 잘하는 어린이한테 주는 선물입니다"하면서 사탕 아홉 알을 아이 손바닥에 올려놓습니다. 아이는 빙그레 웃으며 "○○한테도 하나 줘야지, ○○야 사탕 먹자!"하고 부릅니다. 이런, 아홉 알은 셋씩 나눠 먹으라는 아홉 알인데, 저 혼자 여덟 알을 다 먹으려고?

 

 

 - 3 -

 

슬슬 배가 고파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옆지기가 좋아하는 해바라기씨를 사려고 중국사람 거리로 가기로 합니다. 사람 지나기를 기다려 주지 않는 건널목에서 겨우 푸른불 신호를 받아 건넌 다음, 차가 제법 막히는 길을 뚫으며 인천역에 닿습니다. 인천역 앞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가려는데 엄청난 차들이 길을 막고 있습니다. 뭘까? 뭔 사람이 이렇게? 빈터만 휑뎅그렁한 '인천시 지정문화재인 짜장면 원조 집 공화춘' 앞에서 잠깐 땀을 들이며 생각해 보니, 아하, 오늘은 어린이날이었구나! 그래서 이렇게 이 골목에 사람이 많았군!

 

차와 사람이 뒤섞이니, 두 다리로 걷는 적잖은 사람들이 차를 보며 삿대질도 하고 큰소리도 칩니다. 그럴 만합니다.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는 처음부터 아예 다른 데에 차를 대고 와야지, 그저 차머리를 들이밀면서 못 걷게 한다면 누가 좋아할까요. 그리고 이런 날은 구나 시에서 '알아서' 자동차 못 들어오게 막아야 할 텐데. 이곳 중국사람 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자동차 때문에 사람 물결이 막히는 일을 몹시 싫어하리라 봅니다.

 

해바라기씨 큰 봉지 하나에 3500원. 어느새 500원이 올랐습니다. 중국 맥주 두 병 3000원. 중국 맥주는 병을 다시 쓸 수 없는 듯해서 아쉽지만, 그런 대로 아주 가끔 맛보면 괜찮겠지 생각합니다.

 

 

사람 물결을 헤치고 집으로 달립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송현시장에 들러서 오이 한 꾸러미를 삽니다. 햇볕이 따사롭다 못해 뜨겁습니다. 자전거를 들고 3층 도서관에 올려다 놓습니다. 옷을 훌러덩 벗어서 찬물로 씻은 다음, 맥주에다가 밥을 먹습니다. 냠냠짭짭.

 

찍은 사진을 갈무리하면서, 숭의동 이곳 기찻길가 동네를 '기찻길가 생태마을'로 꾸며 본다면 어떠할까 하는, 이렇게 되면 시에서는 돈 안 들이고 새로운 관광터를 꾸밀 수 있고, 동네사람은 걱정없이 언제까지나 오순도순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생각하다가, 아차차, 인천시는 돈 안 들이면서 꾸밀 수 있는 생태문화 정책에는 조금도 눈길을 안 두고 있는데, 큰돈 들여서 무엇이든 다 파내어 없앤 뒤 다시 큰돈 들여서 뚝딱뚝딱 새로 건물을 지으며 건설경기 북돋우기에만 마음쓰고 있음을 잊었구나, 나는 참 바보네.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골목길+책+헌책방+우리 말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태그:#골목길, #인천, #배다리, #기차길,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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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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