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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세 가지 역할이 있습니다. 1998년에 엄마가 됐습니다. 2000년부터는 변호사였구요, 이제 이달 말이면 민주노동당 제18대 국회의원이 됩니다.

저에게는 11살, 9살 난 두 아들이 있는데요, 큰 아이가 작년에 광우병 걸린 소를 미국 도축장에서 처리하는 모습을 방송에서 보더니, "엄마, 이제 고기 안 먹을래" 합니다. 제 딴에도 광우병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입니다. 일주일이 지나니까 아이들이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더군요.  한창 자랄 나이라 저도 아이들에게 고기를 먹이고 싶습니다.

그런데 정말 큰일이지요.  광우병 위험이 있는 30개월 넘은 미국산 쇠고기가 곧 "값싸고 질좋은 고기"로 포장되어 시장과 마트 여기저기에 돌아다닐 판입니다. 집 밖에 나가 마음 놓고 음식을 사먹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두 녀석 군대가면 급식에 한우 줄 리 없고 값싼 미국산 쇠고기 줄텐데, 이걸 어쩌나 싶습니다.

어머니들이 만든 광우병 쇠고기 방어막, 친환경 우리농산물 학교급식조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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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어머니들과 시민들이 나서서 아이들 먹을거리에 얇은 방어막 쳐놓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우리농산물 학교급식조례입니다. 학교급식에 수입농산물이 아니라 우리농산물 쓰고, 수입쇠고기가 아니라 한우 먹이고, 더 드는 돈은 지방자치단체와 교육감이 학교에 지원하게 하는 거죠. 학교가 값싼 미국산 쇠고기 말고 비싼 한우를 선택할 가능성을 늘려주는 겁니다. 조금이나마 다행인가요?

그런데 이 학교급식조례제정이 WTO 세계무역기구의 GATT 협정 위반이어서 무효라고 대법원이 판결한 거 아세요? 전라북도 의회가 '전라북도 학교급식 조례안'을 의결해서 전북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그 가공품을 '우수농산물'이라고 하고 전라북도내 초·중·고의 우수농산물 구입비를 도지사와 전라북도 교육감이 지원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전라북도 교육감은 이 조례가 GATT 협정에 위반된다면서 의회로 돌려보냈습니다. 의회가 다시 조례를 재의결했더니, 교육감이 조례재의결무효확인소송을 낸 겁니다. 대법원은 2005. 9. 9. 교육감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국내생산품을 수입제품보다 유리하게 대우하니까 GATT협정 위반이어서 재의결 자체가 무효라는 논리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뒤로도 지방자치단체마다 우리농산물 학교급식 조례가 자꾸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아이들 건강하게 크기 바라는 어머니들 마음이야 어디나 다 같지요. 아이들에게 우리농산물 먹이는 게 옳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조례는 자꾸 만들어집니다. 교육감만 눈감고 있으면 일단 조례가 시행될 수는 있습니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수출국이 이의있다고 손들어 WTO 국제중재재판부에 대한민국을 제소하지 않으면, 조례가 살 틈새는 있습니다. 당장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되더라도, 이 조례가 만들어져 있는 시에서는, 어머니들이 학교급식에서 미국산 쇠고기 쓰는 것만큼은 막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한미FTA 체결되면 우리농산물 학교급식조례 다 없어진다

하지만, GATT협정의 틈새에서 시행되고 있는 이 조례들은, 한미FTA가 체결되면 아무 힘을 못 씁니다. 어머니들이 힘들여 만든 방어막이 완전히 무너집니다. WTO-GATT협정에서는 나라가 나라를 상대로만 국제중재에 회부할 수 있었는데, 한미FTA가 체결되면 미국은 가만히 있어도 미국인 투자가가 한국 정부를 국제중재로 끌고 갈 수 있습니다. 한미FTA의 핵심인 ‘내국민 대우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투자자-국가소송제에 따라서요.

국민 건강 따위는 국제중재에서는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멕시코가 스페인 회사 텍메드가 전염병 폐기물을 마구 매립하니까 매립장 허가 다시 내주는 것을 거부했다가 국제중재에서 550만 달러를 배상한 일도 있습니다. 한미FTA가 체결되고 나면, 아무리 학교급식조례 만들어놓아도 미국의 쇠고기 수출업체들이 대한민국을 국제중재로 끌고가겠다고, 말 안 들으면 미국이 무역보복 한다고 을러댈 수 있습니다. 결국 무너지는 것은 학교급식조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막입니다. 한미FTA는, 아이들 학교급식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쓰지 않겠다는 이 얄팍한 방어막 쯤은 스치기만 해도 찢어버리는 칼날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아이들 지키려면 어디에서도 미국산 광우병 위험 쇠고기 먹지 않도록 수입자체를 하지 말아야 가장 안전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광우병 쇠고기 협상 파기를 미국에 선언해야지요. 하지만 쇠고기 협상 파기만으로 우리 아이들이 안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국회가 한미FTA 비준동의 해버리고 나면, 학교급식조례라는 방어막이 먼저 사라져버릴 겁니다. 후에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가 조금이라도 들어올 때 아이들을 지킬 방어막이 아예 없는 셈입니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도 파기해야 하고, 한미FTA도 국회 동의 미루고 재협상해야합니다. 그래야 아이들 건강을 지킬 수 있습니다.

축산농가의 절망, 민주주의의 훼손

3일 오전, 축산농민 한 분이 평택에서 스스로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소사료값은 자꾸만 오르는데 미국산 쇠고기 수입된다니까 소값이 며칠 사이에 허리 동강난 듯이 내려갔지요. 소 키워 살림하고 자식들 키우는 분의 눈앞에 어떤 희망이 남아있었을까요. 하늘로 훨훨 날아가는 것 말고 무엇이 떠올랐을까요.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에 가서 쇠고기 협상 타결되었다고 박수를 치며 한미FTA 빨리 비준하자고 하셨답니다. 그 박수에 농민의 목숨이 스러질 것을 모르셨나요.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완화해서 수입개방하면 국제곡물가가 두 배 가까이 뛰는 요즘 한우값은 떨어지고 축산농가는 손해볼 거라고 보고하는 공무원이 아무도 없던가요? 정부의 정책, 협정 단 하나로 손해보는 축산농가들, 불안한 어머니들, 학생들 이야기를 들어야지요. 대책마련해서 달래려고 들 것이 아니라 협상 자체를 재검토해야지요. 그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오해다, 선동이다" 정부가 이렇게 대답하면 헌법 무시 태도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헌법 1조에 적어뒀는데,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말이 아예 검토대상도 아니라는 것이니까요.

이정희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당선자.
 이정희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당선자.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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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통상 안보 분야에서 민주주의, 정부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마음대로 협정 체결하고 와서는 국민에게 이해와 양보만 강요하지요. 국회 동의 받아가려고만 합니다. 이제는 좀 바꿉시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민주주의가 필요합니다. 이달 말 국회에 들어가서 제일 하고 싶은 일이 바로 이겁니다. 민주주의, 제대로 된 외교 통상 안보. 한미FTA 심의를 통해 18대 국회에서 과연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뭔지 국민들이 보여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요? 한 마디로, 그래야 어머니로서 제 아이들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덧붙이는 글 | 이정희 기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소속돼 있으며 민주노동당 18대 국회의원 당선자입니다.



태그:#미국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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