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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을 실천한 교육운동가, 열사의 아버지, 거대기업의 지리산 골프장 건설을 저지하는 지역 활동가였던 박운주 선생이 지난 4월 21일 지병인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참교육을 실천한 교육운동가, 열사의 아버지, 거대기업의 지리산 골프장 건설을 저지하는 지역 활동가였던 박운주 선생이 지난 4월 21일 지병인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 지리산생명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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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낮은 자리에서 아이의 순수함으로 이웃과 사회를 돌보아 온 '세상에 흔치 않은 큰 어른' 박운주 선생님이 지난달 21일 지병인 폐암으로 우리 곁을 떠났다.

87년 암담한 사회현실에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선영 열사의 아버지이자, 교단에서 참교육을 실천한 교육운동가였던, 그리고 한겨레 독자주주 운동을 펼친 언론운동가이자, 거대기업의 지리산 골프장 건설 움직임을 저지하는 지역 활동가였던 고 박운주 선생님.

지난달 25일 박운주 선생님의 민주유가족장이 열린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과 26일 수목장이 거행된 구례군 산동면 '소의재'(少義齋 : 작은 의리도 저버리지 않는 집. 박선영 열사 기념관이자 고인의 집)에는 평소 고인을 사랑하고 존경했던 많은 이들이 찾아들어 박운주 선생님의 하늘 가시는 마지막 길을 따듯이 배웅했다.

"이 싸움 같이 하면서 항상 의지하는 이들, 그들이 하늘님"

박운주 선생이 사포마을 주민들과 함께 지난 2004년 골프장 건설을 막아냈지만 개발 사업주는 최근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서 승인조건을 무시하고 구례군청으로부터 골프장 건설 허가서를 받아냈다.
 박운주 선생이 사포마을 주민들과 함께 지난 2004년 골프장 건설을 막아냈지만 개발 사업주는 최근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서 승인조건을 무시하고 구례군청으로부터 골프장 건설 허가서를 받아냈다.
ⓒ 아름다운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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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지리산 골프장 건설 이야기

사포마을 후미를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지리산 자락. 그 아름다운 능선을 두고 사포마을 주민들은 '큰 번데기'라고 부른다. 능선의 펼쳐짐이 마치 번데기 주름 같아서다.

지리산 골프장 건설 예정지는 바로 큰 번데기에 위치해 있다. 주민들은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고 있지만 올 들어 지리산 골프장 건설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개발 사업주는 "해당 지역 민원을 우선 해결하라"는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서 승인 조건을 무시하고 최근 허가권자인 구례군청으로부터 골프장 건설 허가서를 얻어냈다.

사포마을 주민들은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있다. 고 박운주 어른을 떠나보내며 500년 역사의 마을 뒷산인, 지리산 자락 아름다운 능선이 아무런 손도 못 써보고 허무하게 사라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열사의 아버님, 선생님, 위원장님… 박운주 선생님을 기억하는 이들의 뇌리에 남은 선생님의 모습은 쉽게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박운주 선생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이 말하는 그 분의 모습은 하나다. 그들은 박운주 선생님을 두고 "세상에 흔치 않은 큰 어른"이라고 부른다.

박운주 선생님은 2004년 5월 지리산골프장 건설계획 발표 이후 사포마을 33가구, 85명의 주민 대표인 지리산골프장건설반대사포마을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단 한 사람의 이탈자도 없이 마을공동체를 단단하게 다졌다.

또한 골프장 반대에만 그치지 않고 지난 2006년 11월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을로 불러들여 지리산권시민사회단체협의회와 공동으로 '지리산문화제'를 열기도 했다. 골프장 반대 투쟁을 지리산 인근 지역의 큰 어우러짐으로 승화시킨 보기 드문 한판 축제였다.

"내가 이 싸움하면서 얻은 게 있어. 항상 옆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시민단체 사람들도 참 고맙고 우리 사포마을 주민들도 최고제. 우리 사포마을 주민들은 하늘님이여. 내가 이 싸움 같이하면서 항상 의논하고 의지하는 소중한 사람들이니 그들은 하늘님 맞아."

지병으로 눈을 감기까지도 사포마을 주민들을 '하늘님'으로 모셨던 박운주 선생님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 뭇사람들을 섬겨야한다'는 신념을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실천한, 세상에 흔치 않은 활동가였음이 분명하다. 

민들레 홀씨처럼 널리널리 퍼질 박운주 선생님의 뜻

지난 4월 26일 박운주 선생의 수목장이 거행됐다.
 지난 4월 26일 박운주 선생의 수목장이 거행됐다.
ⓒ 아름다운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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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재단은 지난 2006년 공익시상 '아름다운 사람을 찾습니다'의 일반시민부분 '민들레 홀씨 상'을 드렸다.

끊임없이 마을 주민들을 괴롭히고 분열시키는 자본에 맞서 주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은 박운주 선생님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리더십은 공익과 나눔의 가치를 묵묵히 실천하는 숨은 의인을 찾아 세상에 알리는 아름다운재단에 의해 재발견됐다.

"늘그막에 내가 아름다운재단 덕에 호사했지. 골프장 반대 운동 잘했다고 마을 사람 모두 불러 상도 주고, 내 이름 달린 나무도 심게 해주고, 내가 잠깐 서울 가 있는 동안 춥다했더니 전기장판도 사들고 찾아오고…. 내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우."

큰 어른이 떠난 빈자리는 남은 이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아프게 남는다. 

수목장이 열린 25일. 자신의 몸을 뉘인 소나무 그늘 아래서 산수유 꽃처럼 환한 미소를 지니신 영정 사진 속 박운주 선생님은 사진 밖 우리를 찬찬히 굽어보며 이렇게 일러주는 것 같았다.

"나 지금 선영이(둘째딸 박선영 열사) 손잡고 웃고 있응께 너무 걱정들 말어. 멀리 안 가고 지리산 성삼재 어드메 머물면서 골프장이 어찌되는지 똑똑히 보고 있을 테니 다들 기운 내고, 끝까지 해보더라고. 지리산이 어떤 산인디…. 지켜야제. 암 지키고 말고."

박운주 선생님이 전해준 삶의 향기와 성취는 남은 이들에게 많은 숙제를 안겨 줬다. 박운주 선생님의 삶이 지향한 가치와 뜻은 많은 이들에 의해 민들레 홀씨처럼 널리널리 퍼질 것이다.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총괄상임이사는 지난 25일 서울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박운주 선생의 민주유가족장에서 "우리는 더 이상 슬퍼할 수 없다"며 "민들레 홀씨처럼 온 세상에 그의 삶이 지향한 뜻이 퍼지도록 하자"고 말했다.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총괄상임이사는 지난 25일 서울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박운주 선생의 민주유가족장에서 "우리는 더 이상 슬퍼할 수 없다"며 "민들레 홀씨처럼 온 세상에 그의 삶이 지향한 뜻이 퍼지도록 하자"고 말했다.
ⓒ 아름다운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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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주 선생을 기억하는 이들의 마지막 인사

"선영아빠, 선영이 잘 만났어요? 만났으면 만났다고 말 좀 해주면 얼마나 좋겠어. 우리도 곧 자식들 손잡고 선영아빠처럼 웃을 날이 오겠지. 선영아빠, 딸 손잡고 이 세상 그만 뒤로하시고 잘 가세요."
- 배은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이제야 우리는 참으로 아름답고 위대한 한 인간, 위대한 영혼이 잠깐 우리 곁에 있다가 떠난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슬퍼할 수 없습니다. 민들레 홀씨처럼 온 세상에 그의 삶이 지향한 뜻이 퍼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총괄상임이사)

"보고 싶습니다, 아버님. 남은 우리들이 민들레 홀씨가 되어 아버님의 뜻을 잊지 않고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버님이 못 다한 뜻 우리가 이루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아버님…."
- 최성호 (남태현·박선영 열사 추모사업회 회장)  

"지금도 소의재 안방에는 생전에 메모하고 정리하신 자료가 수천 페이지 쌓여있습니다. 나는 잘 모르니까 물어봐야 한다며 하나하나 주민들 의견을 들으셨습니다. 아버님은 사포마을의 참다운 민주주의 지도자이셨습니다."
- 김봉용 (민주노동당 구례군위원장)

"퇴임식 때 퇴임사 대신 1번부터 30번까지 자기반 아이들의 이름을 한명, 한명 부르며 따스한 안부와 격려를 나눠주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퇴임식조차 참교육으로 승화시킨 선생님은 진정 아름답고 훌륭한 선생이십니다."
- 고진영 (교사)

덧붙이는 글 | 고 박운주 선생 약력

1958년 완도 고금초등학교에서 교사 생활 시작
1987년 서울교대 재학 중인 둘째딸 박선영 암담한 조국의 현실에 분노 항의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
1989년 전교조 장성지부 초대 홍보부장
1990년 전국해직교사 원상복직추진위원회 전남중부지역 대표
1992년 한겨레신문 광주전남지역 모임 대표
1997년 전남 구례군 산동면에 박선영 기념관 ‘소의재’ 건립
1998년 영광 염산중학교에서 명예퇴임
2004년 지리산골프장건설반대 사포마을대책위원회 위원장
2008년 4월 21일 아침 8시 25분 편히 하늘로 가심



태그:#박운주, #지리산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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