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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덕을 캐고 있는 할머니들.
▲ 더덕과 할머니. 더덕을 캐고 있는 할머니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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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창밖에선 할머니들이 더덕을 캐느라 손을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창문을 열면 악수를 나눌 수 있는 거리에선 후배가 굴삭기로 더덕밭을 꾹꾹 찌르고 있습니다. 더덕밭을 파헤치자 진한 더덕향이 집안으로 스며듭니다.

가리왕산 자락에서 보약을 캐는 사람들

더덕을 캐기 시작한 것은 엊그제부터였습니다. 이른 아침 할머니들이 포대자루를 하나씩 들고 더덕밭으로 왔습니다. 할머니들은 모두 열 일곱. 더덕을 빨리 캐기 위해선 일손이 더 필요하지만 바쁜 농사철이라 사람 구하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더덕밭은 아랫집 것이지만 밭떼기로 팔았습니다. 더덕을 산 이 또한 어릴 때 한 동네에서 살았던 후배입니다. 사흘이나 캤지만 더덕은 절반도 캐지 못했습니다. 5천평이나 되는 땅이니 앞으로 일주일은 더 캐야 한답니다.

이번에 캐는 더덕은 5년산입니다. 작년에 캤어야 할 더덕을 한 해 더 묵인 것이지요. 그런 이유로 더덕향이 더 진합니다. 더덕밭이 가리왕산 자락에 있는지라 산더덕이라 해도 진배 없습니다.

정선의 가리왕산 자락으로 이사온 지 3년 째. 할머니들이 캐고 있는 더덕밭은 서재에서 바라보입니다. 그런 이유로 지난 3년간 향긋한 더덕향을 맡으며 살았습니다. 창문을 열면 언제고 더덕향이 가득 들어왔습니다.

오늘은 굴삭기로 더덕밭을 일구지만 첫날는 '호구'라고 하는 것으로 땅을 일구었습니다. 호구는 황기나 만삼, 도라지, 당귀 등의 뿌리 약재를 캘 때 사용되는 농기구입니다. 삼지창이라 뿌리를 다치지 않게 땅을 일굴 수 있어 약재를 재배하는 이들에겐 반드시 필요한 기구입니다.

더덕을 캘 때 쓰이는 농기구. 무겁다.
▲ 호구. 더덕을 캘 때 쓰이는 농기구. 무겁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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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삭기에 호구를 달아 더덕밭을 일군다.
▲ 굴삭기 호구. 굴삭기에 호구를 달아 더덕밭을 일군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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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는 쇠로 만들어진 데다 무거워서 여자들이 다루기엔 힘든 농기구입니다. 보통 호구질은 남자들이 하는데 하루 일당이 여성들 배는 됩니다. 정선지방의 경우 7만원을 받는데, 하루 종일 호구질을 해야 하기에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처음하는 사람은 한 시간만 해도 온 몸이 뻐근할 정도입니다.

더덕을 캐는 이들은 용돈벌이에 나선 할머니들

남자가 호구질을 하면 할머니들이 땅에서 더덕을 뽑아냅니다. 한 차례 땅을 일구어 놓은 터라 그리 힘들지는 않습니다. 작은 호미로 땅을 헤집으며 더덕을 캐는 일은 할머니들의 몫입니다. 할머니들의 하루 일당은 3만5천원. 아침부터 저녁까지 더덕밭에 앉아 더덕을 캐야 받을 수 있는 돈입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어느 금융기관 수장의 하루 일당이 백만원도 넘던데, 그런 사람의 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푼돈에 불과한 것이 농사일의 일당입니다. 누구에게는 푼돈에 불과하지만 할머니들에겐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돈입니다. 한 할머니에게 돈 벌어서 어디에다 쓰려고 하냐고 물었습니다.

"뭐하긴요, 돈 벌어서 먹고 싶은 거 사 먹고 손주들 오면 용돈도 주고 그러지요."

이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힘은 여성들에게 있는 것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세계적으로도 한국 여성만큼 모성애가 강한 나라도 없다고 합니다. 물론 할머니들에게나 적용될 옛날 이야기겠지만요.

"일하시는데 힘들지 않으세요?"
"힘은 좀 들어도 이렇게 나오면 돈도 벌고 좋아요. 집에만 있으면 뭐한데요. 아직 움직일 힘이 있으니 조금이라도 꿈쩍거려야지요."

할머니 아직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으니 용돈벌이를 하러 나섰다고 합니다. 내가 보기엔 할머니들은 돈 쓸 시간도 없어 보입니다. 먹고 싶은 것이라 해봤자 도시인들처럼 근사한 음식점에 가서 폼 잡으며 식사하는 것도 아닐 겁니다. 기껏 먹을 것을 산다고 해야 사탕 한봉지나 아우라지 막걸리 한 통이 가작인 할머니들입니다.

금방 캐낸 더덕. 향이 진하다.
▲ 더덕. 금방 캐낸 더덕. 향이 진하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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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더덕으로 더덕구이를 한다.
▲ 깐더덕. 깐더덕으로 더덕구이를 한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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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뿌린 더덕씨인데도 캘 때 보니 다들 크기가 다릅니다.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듯 더덕도 마찬가지입니다. 더덕만 그럴까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겠지요.

한날 뿌린 더덕씨지만 캘 때보니 크기는 제각각

5년이나 자란 탓에 더덕은 작은 놈이나 큰 놈이나 향이 같습니다. 작은 더덕 하나를 까는데 진이 허옇게 나옵니다. 진(유액)이 많은 수록 향이 짙고 맛도 좋습니다. 고추장도 없이 한 입 베어 무니 입 안에 더덕향이 진동합니다. 아삭아삭 씹히는 맛도 근사합니다.

할머니들이 캐낸 더덕은 밭에서 크고 작은 것들을 분류합니다. 이번 더덕은 그리 굵은 편이 아닙니다. 절반은 실패한 농사입니다. 팔뚝만한 놈들이 줄줄이 나와야 되는데 그런 놈은 가뭄에 콩나듯 보입니다.

작은 것과 큰 놈의 가격 차이는 꽤 큽니다. 작은 더덕은 약을 다리는데 보낸다고 합니다. 잔 더덕으로 달인 약은 천식이나 위장에 좋답니다. 40kg 한포대에 4만원이니 싸기만 합니다. 작은 놈 한 포대로 더덕 반찬을 만들면 1년은 족히 먹을 듯 싶습니다.

최상품 더덕은 가격이 무척 높습니다. 굵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30만원은 받는답니다. 더덕 농사를 해서 적자가 나지 않으려면 굵은 놈들이 많아야 하지만 땅심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걸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더덕 주인이 고생만 했네요."

굴삭기로 땅을 일구던 후배가 더덕밭을 보며 한마디 합니다. 이런 일을 한두 번 해보는 것이 아니니 씨알 나오는 것만 봐도 농사가 잘됐는지 못됐는지 정도는 아는 친구입니다.  

더덕을 크기 별로 분류하는 할머니
▲ 분류작업. 더덕을 크기 별로 분류하는 할머니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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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덕은 더덕구이, 더덕생체, 더덕무침, 더덕장아찌 등의 반찬으로 쓰이지만 한약재로도 쓰입니다. 한방에서는 사삼이라고 하여 고혈압, 천식, 편도선염, 비만, 심장병 등 각종 치료약으로 사용합니다.

더덕은 밥상 위의 보약, 정력제가 따로 없어

<본초강목>은 "더덕은 위를 보하고 폐기를 보한다. 산기를 다스리고 고름과 종기를 없애며, 오장의 풍기를 고르게 한다. 이러한 증상을 다스리는데에는 뿌리가 희고 실한 것이 좋다"고 적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더덕을 술로 담궈 약주로 마시기도 하고 다려서는 보약으로 먹기도 합니다. 더덕장아찌나 더덕구이는 그것 하나만으로 밥도둑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합니다. 빠진 기운을 북돋워 주기로는 더덕 만큼 좋은 것도 없답니다. 정력제인 셈이지요.

더덕 표면에 작은 혹 같은 것이 더덕더덕 붙어 있다고 하여 '더덕'이라는 이름이 붙은 더덕은 우리 밥상에서 보물같은 존재입니다. 밥상 보물인 셈이지요. 오늘 저녁엔 더덕구이에 소주 한 잔 해야 겠습니다. 그 생각을 하니 벌써 군침이 고이기 시작하는군요.

남자 셋이서 호구질을 하고 있고, 할머니들이 뒤따라 더덕을 캐고 있다.
▲ 첫날 모습. 남자 셋이서 호구질을 하고 있고, 할머니들이 뒤따라 더덕을 캐고 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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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가리왕산, #더덕, #정선아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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