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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삼성그룹은 임직원들의 차명계좌를 통해 관리해 온 이건희 회장의 주식과 예금 등을 조만간 이 회장 명의로 실명전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삼성특검이 재벌에게 가져다 준 선물이다.

 

특검은 이 회장이 무려 1,199개의 차명계좌에 주식과 예금 등 4조5천억 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발표하였다. 그런데도 불구속기소라는 결론을 내려 국민들을 어안이 벙벙하게 하고 있다. 4조 원 이상의 재산이 상속세나 증여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고스란히 세습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당사자나 과세 당국, 언론들의 시각인 듯 하다.

 

편법증여와 탈세의 과정

 

1987년 이병철 삼성 회장이 사망하였다. 문제의 차명계좌들은 망인이 사망하기 전에 삼성그룹의 임직원 등에게 명의신탁 되었다. 명의신탁 사실은 과세당국에 포착되지 않았고, ‘명의신탁증여의제’ 규정에 따른 증여세도 부과되지 않았다.

 

이후 명의신탁자인 이병철 회장의 사망에 대한 상속세 과세대상에서도 누락되었다. 어둠 속에 묻혀있던 재산들은 이제 삼성특검을 계기로 세상에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것도 한 푼의 세금도 없이 약삭 빠르게 암흑의 터널을 빠져나오려 하고 있다.

 

명의신탁된 재산은 명의신탁자의 2세에게, 또는 3세나 4세에게 이전될 수 있다. 물론 한 푼의 세금도 없이 말이다. 그러면 그만인가? 그러려니 하란 말인가? 적어도 납세자라면 그냥 묵과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일각에서는 기부금이니 사회환원이니 하지만, 탈세한 돈으로 기부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세금은 세금논리로 해결하라

 

그림에서 명의신탁재산의 흐름은 간단하다. 이러한 간단한 조세포탈행위에 대하여 과세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리하여 세금 대신 내심 기부금이라도 기대하고 있다는 말인가? 만일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 세금은 이미 죽은 것이다.

 

이와같은 탈세행위를 방지하기 위해서 대한민국 세법은 명의신탁행위에까지 증여로 의제하여 증여세를 과세하고 있다. 그러나 똑똑하고 힘 있는 탈세자들에게 이 규정은 무력하기 짝이 없다. 그 결과 명의신탁해지에 의한 재산의 이전행위는 개선장군처럼 당당하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입법과 과세행정은 대다수 선량한 납세자들의 사기를 꺾는 엄청난 과오를 저지르게 된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우울한 일은 발생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여 필자는 2가지 방향에서 조세법률주의의 헌법이념에 따라 대한민국 세법에 의하여 당당하게 과세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법상속에 대한 두 가지 과세방안

 

국세기본법 제26조의2에 의한 상속세 부과 처분

 

1999년 12월 법률 제6070호로 입법된 국세기본법 제26조의2(국세부과의 제척기간) 제3항에는 “제3자 명의로 되어있는 피상속인 또는 증여자의 재산을 … 실명전환한 경우” 등에 대하여는 국세부과제척기간에 대한 일반규정(일반 상속·증여일로부터 10년, 부정행위의 경우 10년)의 적용을 배제하고 “당해 재산의 상속 또는 증여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1년 이내”에는 상속세·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입법취지에서 삼성 총수 일가의 변칙적인 탈세행위를 응징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될 것이다. 다만, 고 이병철 회장의 사망 이후인 1999년에 입법된 규정이므로 소급과세금지의 법리가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바, 이는 “이 법 시행 후 상속세 또는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는 날이 개시하는 것부터 적용한다”는 법률 제6070호 부칙의 해석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할 것이다.

 

포괄주의에 의한 증여세 부과처분

 

과거 참여정부에서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상속·증여에 관한 포괄주의 과세제도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2조(증여세 과세대상) 제3항은 "이 법에서 '증여'라 함은 그 행위 또는 거래의 명칭·형식·목적 등에 불구하고 경제적 가치를 계산할 수 있는 유형·무형의 재산을 타인에게 직접 또는 간접적인 방법에 의하여 무상으로 이전(현저히 저렴한 대가로 이전하는 경우를 포함한다)하는 것 또는 기여에 의하여 타인의 재산가치를 증가시키는 것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동조 제3항은 "제3자를 통한 간접적인 방법이나 2 이상의 행위 또는 거래를 거치는 방법에 의하여 상속세 또는 증여세를 부당하게 감소시킨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경제적인 실질에 따라 당사자가 직접 거래한 것으로 보거나 연속된 하나의 행위 또는 거래로 보아 제3항의 규정을 적용한다"라고 규정하였다.

 

고 이병철 회장의 명의신탁행위와 특검결과에 따른 명의신탁해지행위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2조 제4항이 규정하는 연속적인 행위로서 하나의 행위이다. 또한 여기에서 증여행위가 진행되는 동안에 상속이 개시되었으므로 증여가 아니라는 논거는 위 “상속세 또는 증여세를 부당하게 감소시킨 경우”라는 명문규정에 의하여 더 이상 성립될 수 없다.

 

따라서 삼성총수일가의 행위는 세법상 명의신탁 및 명의신탁해지에 의한 증여행위이며, 명의신탁으로 시작되고 명의신탁해지로 완결되는 연속행위이다. 그러므로 명의신탁해지시점에서 (상속세가 아니라)증여세 납세 의무가 성립되는 것이다.

 

세금은 살아있다

 

필자는 졸저 <세금밥상>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포괄주의과세규정이 증여세의 실효적인 과세를 위하여 전혀 무기력한 허구적 입법임을 비판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삼성특검과 관련하여 포괄주의 규정이 적법한 과세근거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은 천만다행이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세법이 수많은 불명확성과 불공정성에 신음하고 있다고 하여도 아직 죽은 목숨은 아니다. 위태로울지언정 소생할 가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며, 위기의 세금을 구하는 일은 입법당국과 과세당국, 그리고 수많은 전문가 집단 공동의 숙제라 할 것이다.

 

재벌의 명명백백한 천문학적인 탈세행위를 응징하지 못한다면 국민들에게 더 이상 신성한 납세의무를 부과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태그:#삼성특검, #세금, #증여세, #종부세,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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