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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웅 특별검사가 17일 오후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 기자실에서 최종수사 결과발표를 하고 있다.
 조준웅 특별검사가 17일 오후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 기자실에서 최종수사 결과발표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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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면서 내 귀를 의심했다. 형편없는 낙제점이다. 특검은 결국 이건희 회장의 수조원대 차명주식을 양성화하고 떡값검찰 5인방에 면죄부를 주는 선에서 99일간 엉터리 수사의 막을 내렸다.

이 회장만 불구속기소된 이 회장 일가는 행복한 눈물을 흘려도 될 것 같다. 4조 5천억의 천문학적 차명재산이 확인됐지만 회삿돈 횡령이 아닌 세금포탈 혐의라 1128억의 추징세금만 내면 된다.

수사결과 발표로 공개재산의 2배에 달하는 차명은닉재산이 드러난 바람에 이 회장의 세계 대부호 순위가 껑충 올라 국위선양의 부수효과를 냈다. 국내 제2위 부호와 격차도 더 벌어졌다.

불법경영권세습과 관련해서는 불법세습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이회장의 지시나 묵인에 의해 비서실이 주도한 것으로 밝혀냈다. 이 부분은 특검의 유일한 성과다.

구체적으로는 에버랜드와 SDS 배임발행에 개입한 혐의로 이회장과 수족들이 기소됐다. 반면 고의 실권한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홍라희 삼성재단이사장 등 법인주주 대표들은 무혐의처리됐다.

떡값검사 등 정관계 로비의혹에 대해서는,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체계적으로 관리해 온 의혹은 있지만 당사자 양측이 부인하고 김변호사의 진술도 신빙성이 떨어져 내사종결한다고 밝혔다.

특검은 결국 비자금과 불법로비에 대해 확실한 면죄부를 부여한 셈이다. 증거 미진을 인정하면서도 서둘러 무혐의결론을 내림으로써 검찰에 의한 계속수사 가능성을 원천봉쇄한 것이 특징이다.

이 정도 부실수사라면 삼성특검을 특검해야 마땅하다. 특히 특검이 도대체 무엇을 어떤 방법으로 수사했으며, 이 과정에서 무엇을 어떤 이유로 수사하지 않았는지 철저히 규명하는 일이 시급하다.

특검은 수사에 적극 협력한 김용철 변호사에 대해 고맙다는 소리는커녕 공개적으로 인격살인을 감행했다. 수시로 말이 바뀌고 신빙성이 없다는 것인데 김 변호사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다.

조준웅 특별검사가 17일 오후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 기자실에서 최종수사 결과를 발표한뒤 특검보들과 함께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조준웅 특별검사가 17일 오후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 기자실에서 최종수사 결과를 발표한뒤 특검보들과 함께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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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피해자가 김용철이라면 최대 수혜자는 '떡값' 검찰 5인방

김 변호사가 이번 수사결과 발표의 최대피해자라면 최대수혜자는 공식적으로 소환조사 한번 받지 않고 '내사종결'로 인생의 최대위기를 무난히 넘긴 '떡값' 검찰 5인방이다.

떡값 검찰 5인방은 속으로 킬킬거리며 웃게 생겼다. 조준웅 특검팀과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축배를 들 것 같다. 결과적으로 이번 삼성특검 수사의 승자는 다시 삼성-검찰 커넥션이다.

김용철 변호사가 여러번 강조한 바 있지만, '떡값', 이거 작은 돈이 아니다. 1회 1천만 원 씩 연3회 받으면 3천만 원이다. 뇌물죄 공소시효기간인 7년만 계산해도 총 2억이 넘는 거금이 된다.

그런데 한 해 3천만 원은 삼성그룹 중앙에서 받는 공식떡값일 뿐이다. 이걸 당연한 걸로 알고 받는 분이 다른 데서 주는 걸 거절할 리 없다.

수 십 개 삼성계열사들도 연고 따라 알음알음으로 따로 챙겨주고 다른 재벌그룹들도 챙겨준다. 이런 걸 다 받으면 떡값만으로도 충분히 행세할만한 거금이 된다.

그런데도 이건 떡값과 우정의 표시를 받는 것일 뿐 영혼이나 직무를 파는 것과는 무관하단다. 정말 그럴까. 받은 게 있으면 봐주게 되고 받다보면 때 되면 기다려지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떡값에 길들여지면 휴가계획을 점점 호화판으로 잡게 되고 돈이 안 오면 누구처럼 수금하러 가는 일도 마다지 않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주는 쪽에서도 한번 시작하면 중단없이 계속 가야 한다.

이용철 변호사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삼성은 서슬 푸른 대선자금 수사기간 중에도 설날 떡값을 뿌릴 수밖에 없었다. 같은 이유로 떡값은 지난 설에도 뿌려졌을 가능성이 몹시 높다.

비자금 관련해서는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이 맞든가, 특검 수사발표가 맞든가, 둘 중에 하나다. 핵심쟁점은 차명주식 재원 중에 빼돌린 회사자금이 있는지 여부다.

김 변호사는 매년 구조본이 각 계열사가 만들어 바쳐야 할 총수용 비자금 할당액을 정해준다는 주장이고 삼성 측은 그런 일은 절대 없었다고 주장한다. 100% 상반된 주장인 것이다.

만약 김변호사의 주장대로 그룹총수가 매년 수천억대의 회사공금을 빼돌려 수 천 개의 차명계좌에 분산운용하며 계열사 주식이나 고가 예술품을 사들이는 데 써왔다면 보통 중범죄가 아니다.

이 경우 그룹총수, 전략기획실, 계열사 사장들 모두가 회사자금을 빼돌려 착복한 배임횡령죄만으로도 중한 처벌을 면할 수 없다. 배임횡령액이 50억을 넘으면 무기징역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검은 삼성증권 차명계좌상의 차명주식들이 모두 이건희 회장의 개인재산인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회사자금 유입증거를 찾지 못해 배임횡령죄를 적용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특검은 차명주식의 자금출처가 상속재산이라는 증거를 찾은 게 아닌데도 성급하게 면죄부를 줬다. 특검은 어떻게 조사해서 어떻게 이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스스로 공개해야 한다.

비자금 수사결과 특검이 밝혀낸 것이라곤 삼성생명 주식 차명보유사실과 삼성증권 차명계좌의 재산규모가 전부다. 차명비자금의 전체규모, 조성경위, 사용처에 대해서는 조금도 밝히지 못했다.

차명예금과 차명부동산의 존재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떤 조사도 하지 않았다. 김용철 변호사가 우리은행 차명계좌를 폭로했지만 삼성증권 차명계좌 명의인들의 우리은행 예금계좌도 뒤지지 않았다.

특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수사기법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1일 오후 한남동 삼성특검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재소환 되어 들어오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1일 오후 한남동 삼성특검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재소환 되어 들어오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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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어이없는 건 특검의 삼성변호 태도와 논조다. 특검은 삼성비리는 관련자들의 개인적 탐욕에 기초한 전형적인 배임횡령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애써 강조했다.

그뿐 아니다. 대형 불법비리임에 틀림없지만 재벌체제의 현실과 제도의 괴리 때문에 발생한 측면도 있으며 오랜 불법관행에 오늘의 잣대를 들이대 엄벌에 처하는 건 무리라는 견해도 피력했다.

심지어는 '보편성 특수성의 관점'이라는 신조어까지 사용하며 수천억대의 배임죄와 1천억대의 조세포탈죄를 저지른 중범죄자 이 회장을 불구속기소로 그친 이유를 구구하게 합리화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어떤 범죄혐의가 이런 합리화 논거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헐값발행, 차명분산, 불법로비는 예외없이 총수개인의 탐욕에 뿌리를 둔 것 아닌가.

총수자녀에 대한 지배지분 헐값발행은 재벌체제의 현실과 제도의 괴리에서 빚어진 게 아니다. 그에 대한 형사처벌도 어제의 일을 오늘의 잣대로 처단하는 데서 오는 불합리성과 상관이 없다.

선대의 상속재산을 차명계좌에 넣고 남몰래 재테크를 하는 것도 상속세와 양도소득세 등 정당한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개인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검찰간부 기타 정관계 인사들에게 철철이 떡값과 휴가비를 주며 체계적으로 '관리'해 온 것 역시 사법특권과 사업특혜에 눈먼 총수개인의 탐욕이 아니면 무엇으로 설명가능한가.

아무리 선의로 이해하려 해도 특검은 너무나 무책임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특히 특검이 삼성의 한국기업 선진화 기여공로를 강조하며 낯 뜨거운 삼성예찬론까지 편 건 너무 나간 것이다.

특검으로서는 신병구속에 따를 기업경영의 공백과 차질을 우려하는 것 못지않게 이 회장 등 핵심관련자들이 진심어린 반성을 하지 않고 수사에 비협조적이었던 점을 강도 높게 비판해야 옳았다.

무엇보다도 특검의 의지만 있으면 비자금 조성경위를 속 시원히 밝힐 수도 있었다. 사실 핵심인물 두 세 명만 구속 수사했어도 비자금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게 훨씬 용이했을 것이다.

특검은 전현직 삼성임원 수백 명을 불러 차명계좌 여부를 확인하는 것으로 비자금수사를 마쳤는데 몹시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수사기법을 사용한 게 틀림없다.

오죽 수사강도가 낮고 수사역량이 시원찮으면, 차명계좌 혐의를 확실하게 잡고 소환조사한 수십 명의 삼성임원 중 사실을 시인한 자가 세 명밖에 안됐겠는가.

이 정도면 삼성이 강심장만 임원으로 뽑았거나 특검이 물러 터졌거나 둘 중에 하나다. 물론 고학력에 글로벌한 삼성임원들이 모두 강심장의 파렴치범일 리는 없다는 게 더 상식에 부합한다.

양심고백한 김용철 변호사를 적대시하는 특검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이 18일 오전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 기자실에서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 등 고발인 단체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특검 최종수사 결과 발표에 삼성 봐주기 위한 수사라면 항고 또는 재고발하겠다고 입장을 밝힌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이 18일 오전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 기자실에서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 등 고발인 단체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특검 최종수사 결과 발표에 삼성 봐주기 위한 수사라면 항고 또는 재고발하겠다고 입장을 밝힌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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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만일 김 변호사가 특검의 주장대로 신빙성도 없는 얘기를 유포하여 중요한 국가기관장들의 명예를 공연히 훼손하고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면 당연히 무고죄로 수사해야 마땅하다.

특검의 김 변호사 비방으로 김 변호사와 함께 해온 사제단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도 김 변호사 못지않게 상처를 입었다. 유일한 원군인 이분들을 적대시한 특검은 태어나서는 안 될 특검이다.

김 변호사는 지난 10월 말 양심고백 이후 지금까지 학연, 지연, 직연 기타 어떤 인연의 부담도 뛰어넘는 용감한 처신과 행보를 해왔다. 연고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자살행위를 자처한 것이다.

김 변호사의 양심고백과 사제단의 공신력, 그리고 시민단체들의 공동행동이 없었던들 삼성특검도 없었다. 4조 5천억의 차명재산도, 검찰떡값 기타 정관계관리실태도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조준웅 특검은 이런 뿌리의식이 없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김 변호사에게 따뜻한 격려와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고 말꼬투리잡기로 일관하며 공개비방을 되풀이할 수 있나.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비자금 삼성과 떡값 검찰을 위한 변명만 구구절절 늘어놓을 뿐, 김 변호사와 사제단, 그리고 법학교수들과 시민단체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언급이 없단 말인가.

단언컨대, 자신의 친정인 검찰간부들을 보살펴 줄 목적으로 김 변호사의 공개 인격살인을 감행한 조준웅 특검의 잘못된 의식구조야말로 오늘의 참담한 수사결과를 낳은 원죄다.

덧붙이는 글 | 곽노현 기자는 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으로 현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태그:#삼성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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