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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이산>.
 드라마 <이산>.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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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산>의 화두 중 하나는 정조의 후사 문제다. 후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쪽에서는 후궁 간택을, 또 한쪽에서는 입양을 모색하고 있다. 오늘날의 일본 왕실처럼 후기의 조선왕조에도 후사 문제가 늘 고민거리였다.

영조 이후의 조선 왕통에서 드러나는 특징 중 하나는 사도세자 계통에서 국왕들이 배출되었다는 점이다. 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영조 이후의 조선 국왕들은 모두 다 사도세자 계통이었다. 참고로, 표 상단에 표시된 15대손이니 16대손이니 하는 세수(世數)는 태조 이성계를 기준으로 한 것임을 밝혀둔다.

 사도세자 이후의 왕통 계보.
 사도세자 이후의 왕통 계보.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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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사도세자를 잇는 5개 라인 중에서 정조 라인은 제22대 정조와 제23대 순조와 제24대 헌종을, 은언군 라인은 제25대 철종을, 은신군 라인은 제26대 고종과 제27대 순종을 배출했다. 최근 <이산>에서는 홍국영이 은언군의 장남인 이담(완풍군·상계군)을 원빈의 양자로 들이려고 하는 상황이 묘사되고 있다.

사도세자 자신은 뒤주 속에서 불행하게 죽었지만, 그는 저승에서만큼은 비교적 만족스러웠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자기 계보에서 조선왕조의 대통이 계속 이어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형식적·법적 측면에 불과하다. 실질적·자연적 측면을 따지면, 사도세자 라인은 제25대 철종으로 끝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17대손 중에서 남연군은 은신군의 친아들이 아니라 인조의 3남인 인평대군의 6대손으로서 은신군에게 입양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연군은 은신군이 17세의 나이로 사망한 뒤에 그의 아들로 입양된 사람이다. 은신군의 생전에는 남연군이란 아들이 없었다. 그러므로 은신군과 남연군 간의 부자관계는 순전히 형식적이고 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조 이산이 형식적으로는 큰아버지(효장세자)의 양자였음에도 사도세자 라인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과 논리적 일관성을 맞추려면, 실질적으로는 인평대군의 후예인 제26대 고종 및 제27대 순종을 사도세자 라인에서 배제하는 게 마땅할 것이다. 물론 양자도 똑같은 자식이지만, 여기서는 자연적인 순수 혈통에서 왕위가 계승되었는가 하는 점에 집중하고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제26대 고종이 실제로는 인평대군의 후손이었다는 점들을 고려할 때에, 야구경기로 표현하자면 9회 1사 이후에 조선왕조의 대통이 사도세자 라인에서 인평대군 라인으로 교체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총 27명인 조선 국왕들 중에서 제26대 고종 및 제27대 순종은 9회 2번째·3번째 타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세자 라인은 8회 1번째 타자에 해당하는 제22대 정조 때부터 '타석'을 장악했지만, 제25대 철종 때에 가서 배트를 빼앗기고 만 것이다. 따라서 사도세자 라인은 구한말의 위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벤치로 물러앉은 셈이다.

9회 1사 이후 타석에 등장한 남연군 라인에서는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남연군-흥선군-고종 라인이 다른 라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산(多産)이었다는 점이다. 이는 아들 출산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참고로, 남연군 라인 중에서 흥령군·흥완군·흥인군·이재면·이재선의 자녀들은 따로 조사하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남연군 라인인 운현궁 일가와 관련된 석물(신도비 등)을 모아놓은 서울역사박물관 앞마당.
 남연군 라인인 운현궁 일가와 관련된 석물(신도비 등)을 모아놓은 서울역사박물관 앞마당.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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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연군-흥선군-고종 라인은 순수한 사도세자 라인인 의소세자·정조·은언군·은전군 라인과 비교할 때에 분명히 아들이 많은 편이었다. 남연군에게는 4명의 아들, 흥선군에게는 3명의 아들, 고종에게는 6명의 아들이 있었다.

이와 비교할 때에 의소세자·정조·은언군·은전군 라인은 전계군(17대손)을 제외하면 유난히 아들 복이 없는 편이었다. 다들 일찍 죽거나 아니면 아들을 많이 낳지 못했다. 이는 사도세자의 순수 혈통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왕조의 활력을 가늠하는 요인 중에 후손의 번창 여부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순수한 사도세자 라인이 왕통을 장악하고 있을 때에는 왕실의 활력이 비교적 적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도세자의 순수 혈통인 정조·순조·헌종·철종 시대에는 왕실이 항상 후사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와 비교할 때에, 아들 복이 많은 남연군 라인은 상대적으로 활력적인 편이었다. 남연군 라인이 활력적이었다는 점은 흥선대원군·고종·명성황후의 활약상에서도 잘 드러난다.

흥선대원군은 서양열강인 미국·프랑스를 상대로 전쟁까지 불사할 정도의 용감한(혹은 약간 무모한) 인물이었고, 고종과 명성황후는 세계 최강인 영국·러시아를 '대책 없이' 끌어들일 정도의 대담한(혹은 머리가 좋은) 인물들이었다. 흥선대원군은 항전, 고종·명성황후는 외교에서 각각 특기를 보였다.

고종은 부인 치마폭에서 살지 않았으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지만, 이제 그것은 옛날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서울대 이태진 교수의 활발한 연구 등을 계기로 이제 고종 임금은 좀전의 무능한 군주에서 유능한 군주로 이미지를 탈바꿈했다.  

이와 같이 남연군 라인은 다른 라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력적이었지만, 9회 1사 이후에 그들이 대적한 상대편 투수가 너무 강적이라서 결국 패전의 멍에를 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조선왕조가 직면한 미증유의 위기상황은 결코 그들의 활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조선왕조 8회인 제22대부터는 사도세자의 후손들이 대통을 계승했지만, '뒤주 속 왕자'의 유전자는 근근히 명맥을 잇다가 결국에는 끊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9회 1사 이후인 제26대부터는 인평대군의 후예들이 대통을 이어 구한말의 위기를 관리하는 상황이 출현했다.

영조 이후에 등장한 사도세자 라인은 정조 이산이라는 특출한 군주를 배출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라인은 유난히 아들 복이 없고 활력이 미미한 라인이었다. 드라마 <이산>에서처럼 사도세자 라인은 항상 후사문제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국 이 라인은 9회 1사 이후에 벤치로 물러앉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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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