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창덕궁 인정전의 자태, 백성에게 어진 정치를 하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일까?
▲ 인정전 창덕궁 인정전의 자태, 백성에게 어진 정치를 하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일까?
ⓒ 김영조

관련사진보기



얼마 전 문화재청에서 창덕궁 자유관람을 시작한다는 보도자료가 왔다. 마침 아내가 쉬는 날이라 한번 찾아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확인해보니 자유관람은 목요일에 한정한다나? 더구나 후원 특별관람은 인터넷으로 사전 예약하여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우린 일반관람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매시간 15분, 45분에 들어가 1시간 20분 동안 관람이다.

늦은 4시 45분 돈화문 출입구가 열린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다. 한 100여 명쯤 될까? 들어가자 바로 문화해설사의 사전설명이 있었다. 그리곤 오른쪽으로 가면서 금천교를 지난다. 금천교는 궁궐 건조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태종 11년(1411년)에 지어졌는데 다른 목조건물들은 임진왜란 등에 불탔지만 금천교만은 돌로 되었기 때문에 온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난간 기둥과 다리 앞뒤로 서수가 보인다. 어떤 이는 이 서수들을 해태, 돌거북, 현무 따위로 얘기하지만 그런 상상의 동물들과는 다른 모습이어서 어떤 동물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난간의 동물은 다리를 건너는 사람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놀아달라고 아양을 떠는 듯이 보여 귀엽기만 하다.

조선 궁궐 건축물 가운게 가장 오래된 금천교. 다리 난간과 앞뒤에는 무슨동물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서수들이 보인다.
▲ 금천교 조선 궁궐 건축물 가운게 가장 오래된 금천교. 다리 난간과 앞뒤에는 무슨동물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서수들이 보인다.
ⓒ 김영조

관련사진보기


물을 담아 불귀신을 막았다는 드므(왼쪽), 액운을 막아주고 동지엔 팥죽을 쑤어 먹기도 한 부간주
▲ 드므와 부간주 물을 담아 불귀신을 막았다는 드므(왼쪽), 액운을 막아주고 동지엔 팥죽을 쑤어 먹기도 한 부간주
ⓒ 김영조

관련사진보기


인정문을 지나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정(仁政展)을 만난다. 인정전이란 이름은 백성에게 어진 정치를 하라는 뜻으로 지었을까? 인정전을 오르는 월대 양쪽 모서리 쪽엔 무슨 큰 그릇들이 놓여있다. 해설사도 설명을 하지 않고 사람들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지만 이건 드므와 부간주로 알아두면 좋을 일이다.

드므는 인정전이 불이 나는 것을 막으려고 상징적으로 물을 담아 놓는데 불귀신(火魔)이 왔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 도망간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숭례문에도 드므를 설치했으면 온전했을까? 또 하나 부간주는 액운을 막아준다는 생각으로 놓아둔 것인데 동지에는 팥죽을 끓여 먹었다.

임금이 앉아 정사를 보던 인정전 안의 용상, 그 뒤엔 일월오악병이 보인다.
▲ 인정전 안의 용상 임금이 앉아 정사를 보던 인정전 안의 용상, 그 뒤엔 일월오악병이 보인다.
ⓒ 김영조

관련사진보기


인정전 안을 들여다보려는 많은 사람 사이로 용상을 바라본다. 용상 뒤에는 늘 있는 것이지만 일월오악병(日月五岳屛)을 둘렀다. 일월오악병에는 해와 달, 다섯 봉우리, 붉은 소나무, 두 줄기 폭포, 푸른 물결이 있는 그림인데 오봉산일월도라고도 부르며, 임금이 앉는 자리라면 어디에나 설치되었던 것으로 왕권의 무궁한 발전과 번성을 비손하는 뜻이 담겨 있다.

매화밭으로 자리를 옮기니 이미 매화는 많이 시들었고, 대신 진달래, 개나리, 벚꽃, 산수유들이 흐드러졌다. 이제 이 꽃들은 우리에게 꽃보라를 선물할 테고 그 꽃보라 속을 거니는 우리는 꽃멀미를 하게 되겠지. 그렇게 우리의 봄날은 가고 또 간다.

아직 지지 않고 남아있는 아름다운 홍매화
▲ 홍매화 아직 지지 않고 남아있는 아름다운 홍매화
ⓒ 김영조

관련사진보기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엔 말없이 보내드리려 뿌린다는 진달래, 불이 붙었다.
▲ 진달래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엔 말없이 보내드리려 뿌린다는 진달래, 불이 붙었다.
ⓒ 김영조

관련사진보기


승화루 앞 계단에 묵묵히 서있는 아름다운 자태의 조선소나무들
▲ 조선소나무 승화루 앞 계단에 묵묵히 서있는 아름다운 자태의 조선소나무들
ⓒ 김영조

관련사진보기


매화밭 앞 승화루(承華樓) 쪽을 바라보니 계단이 있고, 운치 있는 조선소나무 다섯 그루가 묵묵히 서 있다. 이 조선소나무는 조선을 상징하는 나무로 궁궐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조선의 궁궐들은 언제나 이 소나무로 지었을 테고 일제강점기의 민족지도자 이상재 선생은 소나무 아래를 응접실이라고 하여 선생을 찾은 일본인을 기겁하게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이후 우리는 하늘과 땅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라는 부용지(芙蓉池)를 만난다. 연못은 네모나고 못 가운데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선 동그란 섬이 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는 당시 사람들의 우주관을 담고 있는데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말라는 준엄한 목소리이다. 부용지에는 평면 구성이 열십자 모양이며 두 기둥을 물에 담가 마치 발을 담근 듯이 보이는 아름다운 정자 부용정(芙蓉亭)이 있다.

정조임금이 이상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만든 주합루(위층)와 규장각(아래층), 그리고 그 앞에 드나드는 문인 어수문, 그 왼쪽에는 서향각이 보인다.
▲ 주합루와 규장각 정조임금이 이상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만든 주합루(위층)와 규장각(아래층), 그리고 그 앞에 드나드는 문인 어수문, 그 왼쪽에는 서향각이 보인다.
ⓒ 김영조

관련사진보기


부용정 건너편엔 위층은 주합루(宙合樓), 아래층은 규장각(奎章閣) 인 2층 집이 있다. 이 건물은 정조임금이 자신의 큰 뜻을 실현하려 만든 집으로 규장각은 젊은 인재들의 학문 연구실과 왕실 도서관을 겸한 곳이었다. 주합루 앞에는 어수문(魚水門)이란 문이 보이는데 물고기와 물 곧 신하와 임금과의 관계를 말하는 문으로 가운데 문은 임금이, 양쪽 두 개의 문은 신하들이 드나드는 문이다.

곳곳에 살짝 비켜 올라간 처마와 처마 아래에 살짝 드러나는 단청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조선의 집들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그런 감칠맛이리라. 조선의 궁궐을 보러 간다면 처마와 단청은 꼭 감상해야 할 종요로운 목적물이다.

기와지붕 그리고 담장 사이로 수줍은듯 살짝 얼굴을 내미는 아름다운 단청
▲ 기와와 단층 기와지붕 그리고 담장 사이로 수줍은듯 살짝 얼굴을 내미는 아름다운 단청
ⓒ 김영조

관련사진보기


희정당 남행각의 살짝 들어올린 처마 아래는 아름다운 단청이 있다. 이런 단청은 창덕궁 곳곳에서 보인다.
▲ 단청 희정당 남행각의 살짝 들어올린 처마 아래는 아름다운 단청이 있다. 이런 단청은 창덕궁 곳곳에서 보인다.
ⓒ 김영조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우리는 창덕궁을 둘러보는 도중 몇 가지 눈살을 찌푸려야 할 모습을 보았다. 먼저 후원 쪽으로 가다가 봄을 바라본다는 뜻의 망춘문(望春門)을 만났다. 망춘문 뒤에는 망춘전이 있는데 이곳에서 듣는 꾀꼬리 소리가 후원 10경 중 하나라나? 그런데 망춘문 앞에는 '화재예방'이라는 펼침막이 가로막고 있다. 물론 문화재에 대한 화재 예방이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아름다운 문을 그렇게 가로막고 있어서야 할 일이던가?

또 창경궁으로 통하는 영춘문(永春門) 앞에는 무슨 공사를 위함인지 포대와 돌들을 쌓아 놓았다. 이도 역시 공사를 하려면 다른 곳에 옮겨 가려놓고 하던지 영춘문이 안쓰러워 보인다. 수많은 관람객 그리고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이곳을 이렇게 생각 없이 관리한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봄을 바라본다는 망춘문 앞에는 "화재예방"이라는 펼침막이 놓여 있고, 창경궁으로 통하는 영춘문 앞에는 포대와 돌들이 쌓여 있다.
▲ 망춘문과 영춘문 봄을 바라본다는 망춘문 앞에는 "화재예방"이라는 펼침막이 놓여 있고, 창경궁으로 통하는 영춘문 앞에는 포대와 돌들이 쌓여 있다.
ⓒ 김영조

관련사진보기


그 뿐만 아니라 부용지 등 연못은 3~4년 주기로 청소를 하는데 지금이 청소기간이라서 물을 빼놓아 흉물스럽다. 요즘은 관람객이 한창 들어올 때인데 하필 그런 때를 골라 청소를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답답해 한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문화해설사는 관람시간 1시간 20분에 맞추려는 것인지 입에 침을 튀겨 가면서 빠른 속도로 정신없이 설명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일부만 도착했는데도 해설을 시작하고 심지어는 가는 도중에도 설명은 이어진다. 그러니 확성기가 가는 방향을 향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사람들이 알아듣기는 불가능하다.

더구나 걷는 속도는 무척 빠르다. 젊은 사람들이나 겨우 제대로 따라잡을 정도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은 그저 따라다니다 지칠 수밖에 없다. 물론 들어오는 사람들을 다 받아야 하고 그러자니 감당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점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체력이 따라주는 사람들만을 위한 관람으로 만드는 자세는 관람객들의 불만이 생기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왜 모를까? '눈 가리고 아웅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시간이었다.

문화해설사의 빠르고 잘 들리지 않는 설명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위), 빠른 발걸음으로 앞서서 이동하는 해설사를 따라잡느라 고생하는 사람들
▲ 창덕궁 일반관람을 하는 사람들 문화해설사의 빠르고 잘 들리지 않는 설명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들(위), 빠른 발걸음으로 앞서서 이동하는 해설사를 따라잡느라 고생하는 사람들
ⓒ 김영조

관련사진보기


창덕궁은 조선 5대 궁궐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궁궐로 창경궁과 함께 동궐로도 불린다. 창덕궁은 2.8km에 이르는 '옥류천 특별관람'을 시작했다. 옥류천 특별관람은 부용지·애련지를 거쳐 남아있는 유일한 초가지붕 정자인 청의정을 비롯한 정자들이 있는 아름다운 옥류천까지 둘러보는 추억을 남길 만한 여정이다.

또 하나의 특별관람은 '낙선재권역'이다. 이방자 여사의 아픈 추억이 담긴 낙선재와 그 부근으로 낙선재 외에 석복헌, 수강재, 취운정, 항정당, 상량정, 승화루를 도는 여정이다. 이 여정은 조선의 마지막 왕실의 애환을 소상히 들을 기회라고 한다. 특별관람은 창덕궁 누리집(www.cdg.go.kr)에 신청하면 된다.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우리의 아름다운 자랑거리 창덕궁은 우리 곁에 있다. 하지만, 알기만 하고 즐기지를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 즐기려면 최소한 궁궐 관련 책 한 권은 읽고 다가서야 하며, 그럴 때만이 창덕궁은 자신의 가슴을 활짝 열고 아름다운 그곳을 보여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창덕궁, #일반관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