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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독교서회
▲ 책표지 대한기독교서회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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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어거스틴의 옛 생활, 그리고 옛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갈등하는 인간적 고민과 방황, 그리고 그의 회심을 중심으로 읽었다. 한 인간의 젊은 날의 술, 친구, 도둑질, 정욕으로 얼룩진 방황과 방탕, 그리고 회심, 온전하게 진리를 위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드릴 수 있기까지 그의 부끄러운 과거의 치부를 드러내놓고 고백하고 있다.

첫째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지난날의 죄를 고백하고 그의 위대하심과 은총을 찬양하고 있다. 더불어 청중들과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향해 고백하고 있다.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흔히 참회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어거스틴의 고백록은 참회한다는 것 이상의 내용을 담고 있다.

성 어거스틴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어거스틴이 누구인지 잠시 언급하고 지나가자. 어거스틴은 기원후 354년 11월 13일 북아프리카 해안에서 약 80킬로미터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조그만 도시 타가스테에서 아버지 파트리키우스와 어머니 모니카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본래 이교도였으나 세상을 떠날 무렵 세례를 받았으며, 그의 어머니는 열렬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때 당시 이곳은 로마의 영토로서 기독교가 대단히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곳이었다.

그는 자기 고향 타가스테와 인근 도시인 마다우라에서 초등교육과 문법교육을 받았고, 17세에 북아프리카에서 정치, 문화, 교육의 중심지요, 가장 큰 도시였던 카르타고에 가서 수사학을 공부했다. 어거스틴은 카르타고에서 공부를 잘하여 수석을 차지했지만 정열에 사로잡힌 그는 한 여자를 만나 동거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는 동거생활에서 한 아들을 갖게 되었는데 그에게 아데오다투스(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거기에서 공부하는 동안 어거스틴은 키케로의 <홀텐시우스>라는 책을 일게 되었고, 이 책을 통해 그는 진리를 사랑하고 추구하는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진리를 추구하는 심정으로 성서를 읽어보았다. 하지만 그 당시의 그는 성서의 뜻을 이해할 수 없어 더 이상 흥미를 갖지 않았고, 그 대신 진리를 설파한다는 마니교에 빠져들게 된다. 마니교도가 된 어거스틴은 4년 후(21살) 공부를 마치고 그의 동거인과 아들을 데리고 고향(타가스테)으로 돌아와 수사학의 기초인 문법을 가르치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마니교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슬픔에 잠겨 어거스틴과 한 집에 같이 있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날, 한 꿈을 통해 아들이 확실히 돌아오리란 희망을 갖게 되고, 다시 아들을 집으로 오게 해 함께 생활한다.

그것도 잠시, 1년 후 다시 그는 고향을 떠나 성공을 위해 카르타고에 가서 교수생활을 하면서 마니교를 열심히 신봉한다. 다시 그는 로마로 간 그는 1년 동안 있는 동안 마니교에 회의를 느낀다. 비판적 시각으로 보게 된다. 그는 로마를 떠나 밀라노에서 수사학 교수로 부임, 그곳에서 암브로시우스 감독을 만나게 된다. 암브로시우스 감독은 어거스틴에게 "알기 위해서는 먼저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어거스틴은 밀라노에 온 후 신플라톤주의자들을 접하게 되고 그들을 통해 플라톤파의 철학서적을 읽게 된다. 그는 이제 성서를 읽기 시작한다. 특히 바울의 서신을 탐독하고 이때까지 그가 알 수 없었던 많은 문제가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아직도 돈과 명예와 정욕에 빠져 있는 자신의 영적 문제가 해결하는 것은 달랐다. 그것은 지적인 것보다는 그의 의지와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기독교의 신앙, 즉 진리에 몸과 마음을 바치고 싶어 한다.

회심의 과정들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은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을 읽을 수 있다. 해야 할 공부보다 놀기 좋아하는 어린 아이의 심리나, 소위 말하는 성공이나 명예를 향한 갈망과 공부, 친구들을 좋아해서 선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함께 저지르는 군중심리나 배 도둑질, 혹은 젊음, 그 정욕을 따라 행하는 일들,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는 방황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가 위대한 것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신앙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의 사상은 중세기에는 안셀므스, 보나벤투라, 토마스가 그의 저서에 영향을 받았고 종교개혁 시대에는 루터와 칼빈이 그의 사상을 재발견하여 종교개혁의 신학적인 근거를 수립했다. 또한 17세기의 개신교 정통주의자들도 그의 권위를 받아들였으며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자들도 그의 신학적인 공헌을 인정했음은 물론, 근대에 와서 인간의 내면성을 파헤친 어거스틴의 사상은 신정통주의 신학자들, 실존주의 신학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회심한 한 사람, 성 어거스틴, 그 한 사람의 회심과 변화, 그리고 그의 사상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쳐왔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이 책을 통해 죄악으로 점철된 그의 삶의 흔적들과 회심 후 변화된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제1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부터 9권까지는 어거스틴의 어린시절부터 과거생활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제10권부터 13권까지는 그의 회심과는 전혀 상관없는 듯 보이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마치 부록으로 책 속에 끼워진 듯한 느낌이다. 한 마디로 회심 후 자신의 내면의 상태를 그려보고 있는 듯 보인다. 학자들 간에도 이 문제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회개할 필요가 없는 아흔아홉의 의인보다 회개하는 한 사람으로 인하여 더욱 기뻐하시는 하나님, 어거스틴은 자신의 방황과 쾌락을 좇아 행했던 지난날들의 삶을 아버지 집을 떠난 둘째 아들에 자주 비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변화된 한 사람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열여섯 살 되던 해에 집안 형편 때문에 공부를 중지하고 일년간 부모님 집에서 쉬면서부터 태만과 정욕으로 보냈던 자신의 청년기, 카르타고 유학시절의 쾌락을 추구하던 생활, 그리고 키케로의 책 <호르텐시우스>를 읽기시작하면서 진리를 찾다가 이교도인 마니교에 빠져 신앙에서 떠나있었던 여러 해의 시간들, 어머니의 끈질긴 눈물의 기도, 마니교에 대한 비판에 눈뜨고 성경을 보게 되면서 진리를 깨닫게 되었지만 아직도 끊어내지 못한 육신의 정욕으로 인해  의지적 결단이 따르지 못해 고뇌로 몸부림치는 그의 모습들을 만나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를 육체적 쾌락의 깊은 심연에 더 깊숙이 빠져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지한 것은 그의 고백대로 죽음과 장차 올 당신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은 계속 그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원하는 것은 행치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 자신을 괴로워하며 몸부림칠 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하지 않았던가.

"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

어거스틴은 고뇌 속에서 다음과 같이 부르짖는다.

"오, 주여, 어느 때까지입니까? 오, 주여, 어느 때까지입니까? 당신께서 영원히 노하시려 하십니까? 나의 이전의 죄악을 기억하지 마소서."

그리고 그의 회심의 극적인 장면은 이렇게 이어진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내가 지은 죄에 대하여 마음으로부터 통회하면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말소리가 있었습니다. 그 말소리가 소년의 것인지 소녀의 것인지 나는 확실히 알 수 없었으나 계속 노래로 반복되었던 말은 "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toll lege, toll lege)"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곧 눈물을 그치고 안색을 고치어 어린아이들이 어떤 놀이를 할 때 저런 노래를 부르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전에 그런 노랫소리를 들어 본 기억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나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그치고 일어섰습니다.

나는 그 소리를 성서를 펴서 첫눈에 들어 온 곳을 읽어라 하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명령으로밖에 생가갈 수 없었습니다.... (중략) ... 나는 바로 알리피우스가 있는 곳으로 급히 돌아갔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 곳을 일어나 떠났을 때 거기에다 사도의 책을 놔두고 온 까닭입니다. 나는 그 책을 집어 들자마자 펴서 내 첫눈에 들어 온 구절을 읽었습니다. 그 구절의 내용은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3-14)." 나는 더 이상 읽고 싶지도 않고 또한 더 읽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 구절을 읽은 후 즉시 확실성의 빛이 내 마음에 들어와 의심의 모든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어거스틴의 방탕한 날들과 긴 방황, 그리고 회심... 그 모든 것들을 통해 자신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부표처럼 떠도는 자신의 영혼을 발견하게 해 주거나, 결단하는 의지가 없어 전적으로 진리를 따라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해 또한 몸부림치는, 혹은 지금도 바람처럼 정열을 믿고 떠돌고 있는 당신 자신을 만날는지 모른다. 지금 당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좋은 거울이 되지 않을까.


성어거스틴의 고백록 - 개정완역판

성 어거스틴 지음, 선한용 옮김, 대한기독교서회(2003)


태그:#성어거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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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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