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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미치 교수
 윌리엄 미치 교수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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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짓이다. 이걸 유지하려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그리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습지보전 연구의 세계적 석학인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윌리엄 미치(William Mitch) 교수의 말이다. 그는 박진섭 생태지평 부소장의 10여분에 걸친 '경부운하' 브리핑을 듣고 한심하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국은 1990년대 180개 댐을 제거했는데... 한국은 왜?"

그는 특히 "1990년대에 180개 댐이 미국에서 제거됐고 2001년 한 해에 30개 댐이 없어졌다"면서 "한강과 낙동강에 수많은 댐을 쌓겠다는 구상은 세계적 추세에도 역행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마이뉴스>는 미치 교수를 지난 2월 5일 오하이오 주립대 인근에 위치한 습지연구동(The Heffner Wetland Research Building)에서 만났다. 그의 사무실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습지 생태 공원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의 연구를 위한 학교측의 배려다.

그는 우선 경부운하가 건설될 경우 예견될 수 있는 한강과 낙동강의 생태계 변화를 우려했다.

"수심이 9m 정도 되면 용존 산소가 부족해질 것이다. 부영양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럼 어류가 살기 어렵다. 그런데 또 댐으로 호수처럼 가두면 생태계 자체가 변한다. 수심을 유지하기 위해 강바닥을 계속 파면 하변구역이 없어진다. 자연 습지가 파괴되는 것이다. 이런 큰 사업을 하면 습지는 다 잃게 될 것이다."

한반도대운하는 '친환경운하'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말이다. 자연재앙이 불보듯하다는 것이다. 수질 문제가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물었다.

미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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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희석된다고? 강물의 아래쪽은 죽은 물"

- 한국의 운하 찬성론자들은 운하에 물을 채워두면 수량이 많아지기 때문에 희석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맞는 말인가?
"강은 수심에 따라 온도가 다르다. 만약 9m를 파면 강물의 온도는 상층부와 하층부로 나뉜다. 원래 온도는 단계적으로 내려가야 순환이 잘된다. 수심이 깊으면 강의 위쪽은 그나마 순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래쪽에는 물고기와 수생식물의 사체가 계속 쌓이고, 물의 순환도 이뤄지지 않는다. 결국 아래쪽은 죽은 물이다. 아래쪽은 더 심하게 썩어가는데 희석효과가 있겠는가."

- 이명박 대통령과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는 '갇힌 물은 썩는다'는 반대론자들의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바이칼호'를 예로 든 적이 있다. 양자를 단순비교하는 게 가능한 것인가.
"(황당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바이칼호라고요? 바닥이 완전한 암반이고, 주변의 오염물질이 유입되지 않는다면 가능할 지는 몰라도 바이칼호를 예로 든 것은 적절히 않다. 운하의 물은 기본적으로 흐르지 않는 갇힌 물이다." 

박 교수와 미치 교수는 같은 학자지만 이렇게 달랐다.

한강과 낙동강은 국민 2/3인 3200만명의 식수원이다. 운하가 건설된다면 이 물을 취수해 먹을 수 있을까? 미치 교수는 "물이 오염돼도 식수로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순간 박석순 교수가 몇차례의 토론회에서 태연한 표정으로 강조했던 말이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요즘은 말이죠, 기술이 발달해 화장실 물도 정수해 씁니다."(박석순 교수)

하지만 미치 교수는 박 교수와는 달리 한마디 덧붙였다.

"그 대신 수질 정화 비용이 엄청나게 들 것입니다."(미치 교수)

운하건설해 습지 파괴한 뒤, 간접취수하자고 습지 복원?

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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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에 물을 공급하는 장면.
 습지에 물을 공급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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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과 박 교수 등을 비롯해 경부운하 찬성론자들은 수질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강변여과수' 즉, 간접취수 방식을 제시한다. 막대한 양의 수돗물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서 무조건 "선진국에선 간접취수 방식을 사용하고, 수질도 좋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치 교수는 "간접취수하겠다는 생각 자체는 좋은데 3200만명이 먹는 물이라면 스케일이 너무 크다"면서 "그걸 이용하려면 습지를 조성해야 하고, 여과층의 필터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양의 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운하를 건설해 습지를 파괴한 뒤, 식수를 구하려고 습지를 조성한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운하를 건설해서 취할 수 있는 경제적 이득이 어느 정도일까? 그는 "그쪽의 전문가는 아니다"라면서도 "확실한 것은 운하 건설 비용과 유지비용, 환경을 파괴하고 보수하는 비용 등을 따져보면 엄청난 손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치 교수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건설하다가 중단된 '관통바지 운하'를 예로 들었다. 반도형태의 플로리다의 중앙을 관통해 대서양과 멕시코만을 잇는 이 운하는 1935년에 착공됐지만 71년에 중단됐다. 28%의 공정을 마친 상태였다.

미치 교수는 "이 운하는 한반도와 비슷한 형태의 반도를 횡으로 가로지르는 운하였는 데도 경제성이 없어서 폐기했다"면서 "한국의 경우 대각선으로 운하가 관통하고, 게다가 터널까지 뚫어야 하는 등 난공사인데 경제성이 있을 리 있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200년전에 만들어진 오아이오-이리 운하의 경우도 계속 확장하려고 했으나, 다른 수송 수단이 있기 때문에 만들지 않았다"면서 "이 곳의 지형은 평평하고, 한국은 산지인데 운하를 만들 필요가 있냐"고 되묻기도 했다.

"인공운하보다 자연형 하천이 더 관광효과 있다"

미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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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운하의 관광효과도 물어봤다. 물론 그 방면 역시 비전문가다. 하지만 그는 "지난 10여년간 미국은 수백개의 댐을 제거했는데, 댐을 없앤 뒤 사람들의 반응은 '아 참 예쁘구나' '어류가 많으니 고기도 잡을 수 있어 좋구나'였다"면서 "인공적인 운하보다 자연적인 하천이 더 관광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치 교수는 마지막으로 플로리다의 예를 다시 들었다.

"플로리다의 '관통바지운하'는 만들다가 포기해버렸지만, 오키초비 호수로 유입되는 166㎞의 구불구불한 키시미강(Kissimmee River)도 인공운하로 만든 적이 있다. 강의 길이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지금은 그 강을 다시 원래 형태로 복원하고 있다. 물론 완전한 복원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복원 비용만도 운하를 만든 비용의 100배에 달한다. 한국은 왜 거꾸로 가는가."

박진섭 부소장과 기자는 1시간 여 동안의 인터뷰를 마친 뒤 미치 교수의 연구공간이기도 한 습지 공원을 둘러보았다. 목재로 만들어진 친환경 전망대도 보이고, 습지 곳곳에 박혀 있는 파이프에서는 쿨럭대면서 물이 쏟아져 내렸다. 또 습지 바로 위쪽에는 자연을 관찰할 수 있는 조그마한 다리가 지그재그로 나 있었다.

갈대가 우거진 눈 쌓인 오솔길. 미국의 한쪽에서는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가면서 죽어가는 습지 연구에 골몰하는데, 경부운하를 찬성하는 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미친 짓"을 벌이려는 것일까? 부끄러웠다.


태그:#경부운하, #미국운하, #한반도대운하, #윌리엄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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