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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지 두 달여만에 숨진 채 발견된 이혜진양의 유가족들이 지난 3월 17일 오전 안양 명학초등학교에서 혜진양이 공부했던 교실을 찾아 빈 자리에 영정사진을 내려놓고 있다.
 실종된지 두 달여만에 숨진 채 발견된 이혜진양의 유가족들이 지난 3월 17일 오전 안양 명학초등학교에서 혜진양이 공부했던 교실을 찾아 빈 자리에 영정사진을 내려놓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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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혜진·예슬법'을 추진하는 등 아동성폭력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여러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처벌위주의 대책이 성폭력 범죄를 줄이거나 재범을 방지할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안양어린이유괴살인사건과 고양어린이납치미수사건을 계기로 법정형을 최고 사형까지 강화하는 등 사법적 접근을 하고 있지만, 형량만 늘린다고 '아동 성폭력 범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무차별적인 인권침해 시비를 낳고 있는 CCTV 확대 실시나 아동성폭력전담센터 전국 확대 실시 등 지방자치단체나 부처가 '경쟁적으로' 내놓는 아동 성범죄 방지대책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좀체 긍정적이지 않았다.

[실태] 성폭력 재범률 50% 상회... 2007년 아동 성범죄 전년 대비 49% 증가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아동 성폭력 발생은 지난 5년간 해마다 꾸준히 증가해왔다. 경찰에 신고돼 형사입건된 사건을 분류해 보면 전국적으로 2004년 721건, 2005년 738건, 2006년 980건, 2007년 1081건이 발생했다. 2004년과 2007년의 발생건수를 비교하면 360건 늘어나 49.72%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사실상 과반 가까운 수준으로 아동 성폭력 범죄율이 증가했지만, 정부당국은 적절한 방지책을 세우지 못했다. 이번에야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게 되면서 경찰청과 교육당국은 여러 대책을 급조하는 양상도 보이고 있다.

성폭력 범죄자들의 재범률도 대다수 50%를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 2004년 성범죄 통계에 따르면, 전체 성폭력 1만4089건 가운데 재범을 저지르는 범죄율은 8365건으로 모두  55.7%의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동종재범(994건(6.6%))보다는 이종재범률(7371(49.1%))이 높고, 전과가 없는 경우도 6653건으로 44.3%를 보이고 있다.

2007년에는 성폭력 범죄 총 1만5325건 가운데 재범건수는 8296건으로 50.3%의 재범률을 나타내고 있다. 사실상 전체 성폭력 범죄 가운데 절반은 재범인 것이다. 이 통계는 아동 성범죄를 비롯한 성폭력 범죄 전반이 처음 발각된 사건일지라도 과거에 지속적으로 동일한 형태의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반증한다.

아동성폭력 사건 발생현황(2004-2007)
 아동성폭력 사건 발생현황(2004-2007)
ⓒ 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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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범죄자 재범현황
 성폭력 범죄자 재범현황
ⓒ 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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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부도 지난 1일 국무회의 보고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행 이후에도 성폭력 범죄는 지속되고 있다며 특히 자기보호 능력과 성적 자기결정 능력이 없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성부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성폭력범죄 신고는 24.4% 증가했고,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은 80.2%(2002년 600명→2007년 1081명)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현장] 성폭력상담소 "처벌에 무게두는 정책, 범죄자만 양산"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피해자 보호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정정희씨는 '범죄발생률과 처벌강화방안'의 상관관계에 대해 "엄벌이 아동 성폭력의 핵심적 방지대책이 될 수 없다"며 "총선 앞두고 정부가 최고 사형까지 처벌 가능한 법제도 개선에 나선 것은 포퓰리즘적 '한건주의' 아니냐"고 질타했다.

이어 정씨는 "대통령 한 마디에 만들어지는 법안이 오죽하겠냐"며 "일선에서 벌어지는 아동 성폭력 범죄의 유형이나 양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이유 등에 대한 꾸준한 탐구 없이 허둥지둥 법 바꾸고, 동네마다 CCTV 확대하고, 안전 둥지를 만드는 것은 성폭력 방지에 큰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아동 성폭력의 경우에는 모르는 사람보다는 수년간 알고 지낸 사람이나 친족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더 심각한데 이에 대해서는 '무대책'인 점도 문제라고 성토했다. 무조건 범죄자 처벌에만 무게를 두는 정책은 결과적으로 '범죄자만 양산하는' 제도에 그친다는 비판인 것이다.

특히 '피해가정'에 찾아가 '용감한 시민상' 전달 등 행사를 열겠다고 언론에 보도자료를 뿌리는 경찰당국의 태도에서 보듯이, 정부당국은 피해가정과 아동의 치료와 회복, 보호에 대해서는 관심 없는 것도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실종된지 두 달여만에 숨진 채 발견된 이혜진양의 친구들이 지난 3월 17일 오전 안양 명학초등학교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흐느끼고 있다.
 실종된지 두 달여만에 숨진 채 발견된 이혜진양의 친구들이 지난 3월 17일 오전 안양 명학초등학교에서 열린 영결식에서 흐느끼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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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에서 아동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치료서비스를 담당하는 곳은 전국에 딱 3곳이다.

서울과 대구·광주에 있는 '해바라기아동센터'. 여성부는 이번 '혜진·예슬양 사건'을 계기로 이 센터를 전국에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현재까지는 세부계획이 없다. 따라서 '여성부의 의지대로' 전국적 확대가 가능할지 미지수다.

여성부의 한 관계자는 "전국 16개 광역 시도별로 1곳씩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며 "언제까지 세울 것인지에 대해서는 예산이 걸린 문제라 현재 기획재정부와 협의 중에 있다"고 전했다.

2004년부터 정부지원을 받아 문을 연 '해바라기아동센터'는 서울에서만 매년 300명의 성폭력 피해아동을 치료하고 있다. 전화나 온라인으로 상담 받는 건수는 650~700건 정도 되지만, 직접 서비스를 받는 아동비율은 절반 수준.

해바라기아동센터 측은 성폭력 피해아동들이 쉽게 이곳을 찾지 못하는 이유로 ▲접근성 부족 ▲부모로부터 방임 ▲부모의 정신질환 ▲부모의 아동 성학대 등을 들고 있다.

[외국은] 아동보호기관 종사자, 사법권 갖고 '격리' 등 초동대처

영국 등 서구 유럽의 경우에는 아동 성범죄가 발생하면 곧장 응급체계가 발동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대해 정부가 시스템으로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피해아동이 부모와 함께 직접 찾아가지 않으면 치유프로그램을 받을 수 없다. 접근성도 용이하지 않아 '알고도 오지 못하는 피해아동'이 많다.

미국은 주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미시간주나 플로리다주, 일리노이주의 경우에는 '크고 작은' 아동 성범죄가 발생하면 일단 사법경찰 성격을 갖고 있는 '아동보호기관 종사자'가 직접 개입해 범인은 경찰로 보내거나 격리하고, 피해아동에 대해서는 즉각 보호와 치료절차를 밟는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아동복지 전공) 교수는 "사법체계로 아동 성범죄를 예방하겠다는 발상 대신 아이들이 위기에 내몰리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사회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더 열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한국도 미국과 같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있지만 민간위탁형이라도 아동 성범죄 신고를 받고 출동해도 '당신이 무슨 권한으로 우리 집에 왔냐'는 식으로 나오면 개입하기 어렵다"며 "극심한 경우에만 개입하고 있어 한계가 많다"고 전했다.

국내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역할은 대개 임의규정에 불과해 사회복지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아동 성범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굉장히 어려운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이 교수는 "정부가 처벌위주로 아동 성범죄를 뿌리 뽑겠다고 나선 것은 단기적 임기응변 대책에 불과하다"며 "실제 아동보호 측면의 의미는 미비하다"고 비판했다.

지난 3월 17일 오전 안양 명학초등학교 이혜진양의 자리에 선생님과 친구들이 이양의 넋을 기리기 위해 가져다 놓은 흰 국화와 편지가 쓸쓸히 놓여있다.
 지난 3월 17일 오전 안양 명학초등학교 이혜진양의 자리에 선생님과 친구들이 이양의 넋을 기리기 위해 가져다 놓은 흰 국화와 편지가 쓸쓸히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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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없어 들켰다 생각하는 가해청소년도 치유대상"
[인터뷰] 최경숙 '해바라기아동센터' 소장


"우리는 부모가 직접 아이를 데리고 찾아와야만 아동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응급상황에 놓인 아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직접 현장에 출동하는 활동도 못하고 있다."

최경숙 '해바라기아동센터' 소장은 '혜진·예슬양' 사건을 계기로 아동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것은 한편으로 다행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처벌' 위주로만 정책방향이 쏠려 아쉬움이 남는다고 안타까워했다. 피해아동의 치유프로그램을 전국 어디서나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확대하는 대책도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3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외상과 심리적 후유증에 대한 평가를 통해 최단 3개월에서 최장 2년까지 치료기간이 필요하다"며 "성폭력에 의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대한 치료 없이 성장기를 지나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에 걸릴 위험이 크다"고 밝혔다.

특히 최 소장은 "가해청소년에 대한 치유프로그램도 반드시 필요하다"며 "부모로부터 정서적 방임상태에 있거나 음란물에 노출됐는데 적절한 성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충동조절이 안 돼 범죄에 나선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놀랄 정도로 자기행동에 대한 죄의식이 없다"고 걱정했다.

자기욕구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남이나 여동생, 또래 여자아이들을 성폭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대개 청소년들은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으면 괜찮은데 재수 없게 들켜서 문제가 됐다고 사고한다"고 우려했다.

최 소장은 "정부가 법정형을 늘려 아동 성범죄 발생을 막겠다고 나섰지만 '겁주기' 이상 어떤 의미가 있겠냐"며 "우리에만 가두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발상은 정말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또 범죄자에 대해서는 최대한 교정을 하다가 정 안 되면 '전자팔찌'를 채워 집중 감시해야 하지만, 전자팔찌를 채우기 전까지는 최대한 사회복지 관점에서 교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그:#납치미수, #유괴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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