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고향 산천을 떠나있지만 어린 시절 소꿉장난 친구들이 가끔 떠오르기도 한다. 오줌보 친구들과 함께 수박이나 참외 서리를 하던 그때, 남몰래 보리를 꺾어 숯불에 구워 먹던 그때도 그립다. 그만그만하던 키와 몸집이지만 서로 지지 않으려고 동네 앞 너른 산소에서 코피가 터지도록 싸움을 하던 때도 엊그제만 같다.

 

그때는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지닌 성적순이나 힘꽤나 쓰던 친구들이 인생을 주름잡을 줄로만 알았다. 눈비를 맞으며 오갔던 초등학교 길목에서는 늘 그런 애들이 튀었기 때문이다. 교복자율화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힘꽤나 자랑하던 녀석들이 줄곧 그 세계를 주름잡곤 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나이가 들수록 인생에 대한 순위 결정이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어린 시절 함께 논밭에서 뒹굴던 또래 녀석들이 지닌 순진무구함만 더욱 기억될 뿐이다. 그 녀석들만 떠올리면 살벌한 이 시대 속 경쟁도 잠시 잊을 수 있고, 사람 사이에 주고받아야 하는 진정한 인정과 그리움을 다시금 정립할 수 있다.

 

40년 교사이자 시인으로 살아온 김용택이 사랑한 사람들과 그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사람>이란 책에서 그 진면목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에는 어린 시절 함께 자랐던 동네 또래 아이들 모습이 담겼고, 커지면서 서로 엇갈린 운명 속에서도 꿋꿋하게 사랑하고 격려해 준 깊은 인정도 담아내고 있고, 고향 동네이자 학교강단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무엇을 심고 가르쳐야 하는지 진지하게 드러내고 있다.

 

"벌을 키우면 꿀을 외상으로 가져갔고, 염소를 키우면 염소를 외상으로 잡아갔다. 매운탕을 하면 매운탕을 외상으로 먹어대고, 뱀을 잡으면 뱀탕을 이상으로 먹어치웠다. 그리고 그만이었다.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사채의 사업을 망쳐놓고 썰물처럼 쑥 빠져나가버렸다. 그는 사람을 믿었고, 지나치게 호인이었다. 그는 도대체 계산을 못하는 인간이었다." (56쪽)

 

이는 김용택의 소꿉친구 '양사채'를 두고 하는 이야기다. 그 친구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약삭빠르지도 않고, 매몰차지도 않고, 그저 모든 사람들에게 호인으로 살았다고 한다.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인생을 그저 흐르는 물처럼 사는 친구였단다. 그 까닭에 염소를 키우고, 벌꿀 장사를 해도, 다른 몇 가지 장사를 해도 이익을 남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그런 그를 두고 친구 김용택은 "그의 몸과 마음은 우리 농촌 현실이다"면서 "그에게 들씌워진 농촌정책은 그의 농사처럼 하나도 성공한 것이 없다"고 한다. 가히 농촌 사람들이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과 아픔을 우회하여 토해낸 것이다.

 

"지금 우리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무엇을 가르치는가.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어떻게 살아가라고 우리들은 가르치는가. 무엇이 되라고 우리들은 지금 날마다 우리 아이들을 학교로 학원으로 외국으로 몰아대는가. 우리가 언제 한 번이라도 제대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진정으로 걱정해주고 그리로 가는 길을 인도해 준적이 있었던가. 늘 1등 하라고 몰아붙이고, 닦달하고, 새파란 아이들의 생각을 눌러 죽이는 짓만 되풀이해오지 않았던가." (177쪽)

 

대도시 아이들이야 학문으로 인생을 배우려 하겠지만, 농어촌 시골 아이들은 다르다.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은 인생살이를 몸으로 배우고 체득하기 때문이다. 땅과 밭, 들판에서 움직이고 부딪히고, 또래 아이들끼리 싸우고 터지고 넘어지고 그리고 풀어야 하는 것도 스스럼 없이 풀고 나간다. 그를 통해 인생을 배워나가는 것이다. 교실과 학원 속 건물에 갇혀 지내기보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아이들 몸짓이 세상과 주고받는 통로인 셈이다.

 

그보다 더 귀한 인생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인정을 어디서 그토록 살갑게 배울 수 있겠는가. 김용택 선생은 그래서 "몸으로 하는 교육은 아름답고 성스럽기까지 하다"고 했던 것이리라. 그 교육은 오늘도 존중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도 현실에 몰아쳐 오는 교육바람은 엉뚱한 데로 흘러가고 있으니 어찌 안타깝지 않겠는가.

 

어찌됐든 이 세상은 시골 오지가 아닌 바에야 결코 나 홀로 살아갈 수가 없다. 누군가와 손을 맞잡고 살아야 되고, 누군가의 도움 주고받고, 또 인정과 그리움도 쌓으며 살아가야 한다. 이 책 속에 담겨 있는 여러 사람들을 통해 그들이 나누고자 했던 진정한 인정과 그리움을 우리의 현실 속에 다시금 정립하며 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으면 한다.


사람

김용택 지음, 푸르메(2008)


태그:#사람, #인생, #인정과 그리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