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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의 미학 이상규 국립국어원장이 쓰고 (주)살림출판사가 펴낸 ≪방언의 미학≫ 책 표지
▲ 방언의 미학 이상규 국립국어원장이 쓰고 (주)살림출판사가 펴낸 ≪방언의 미학≫ 책 표지
ⓒ (주)살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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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시절 우리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폭력배나 사기꾼을 보았다. 그 때문에 전라도 사람들은 다른 도시에 살면서 사투리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사투리를 쓰면 다른 이들이 자신을 폭력배나 사기꾼으로 오해할 것을 두려워한 까닭이었다. 그래서 점차 우리의 사투리는 그 자취마저도 사라져 갔다.

하지만, 사투리가 그렇게 미워할 그리고 없애야 할 대상이었을까? 한반도를 표준어 세상으로 만들려는 이 시도는 어쩌면 꽃밭에서 작고 아름다우며 다양한 색깔의 꽃들을 버리고 해바라기만 그득한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 같은 것은 아닌지 모른다.

만일 판소리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없애고 표준어로 소리한다고 가정해보자. 그건 이미 판소리의 미학을 짓밟는 결과로 다가올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또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 김유정 소설 <동백꽃>과 제주 사투리의 향연이 펼쳐지는 현기영의 소설들에서 사투리를 표준어로 바꾼다면 그 소설의 아름다움과 가치는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런데도 이미 우리에게서 사투리는 사라져갔고, 더더구나 사전에서조차 사투리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표준어는 교양있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라고 규정하여 마치 사투리를 쓰는 사람은 마치 교양이 없는 사람처럼 낙인찍는다. 이런 상황을 개탄하고 왜 사투리를 적극적으로 보존해야 하는지를 낱낱이 밝히는 책이 나와 화제다. 그 책은 국립국어원 이상규 원장이 쓰고 (주)살림출판사가 펴낸 <방언의 미학>이다.

책은 먼저 “내팽개쳤던 금쪽같은 방언”이란 소제목으로 시작한다. 지은이는 책에서 “이제는 자동 기계 탈곡은 물론 들판에서 타작과 도정 과정을 트랙터로 한꺼번에 하는 시대에 와 있지만 우리 시골이 더 황량하고 쓸쓸하게만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서울 부근의 농촌이나 저 멀리 진도의 농촌 풍경이나 다른 것이 없는 똑같은 풍경일 뿐이다. 시간의 소멸과 함께 지난 시절 농촌의 공간 풍경도 소멸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딩각 1 거의 사라져버린 "꽹말타기"에 쓰였던 악기 "딩각" 연주 모습
▲ 딩각 1 거의 사라져버린 "꽹말타기"에 쓰였던 악기 "딩각" 연주 모습
ⓒ 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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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각 2 경남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딩각"
▲ 딩각 2 경남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딩각"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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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지금의 사투리 문제는 표준국어대사전 문제와 결합하여 있다고 주장한다. ‘홍탁’은 많은 사람이 즐기는 음식이지만 사전엔 아예 없다. 또 ‘과메기’는 원래 청어를 얼리면서 말린 것인데 일제강점기 때부터 잘 잡히지 않는 청어 대신 꽁치로 대신했다. 하지만, 사전의 뜻풀이는 “꽁치를 말린 것”이라고만 되어 있어 잘못된 뜻풀이임을 지적한다.

책에서는 민속학자 주강현이 펴낸 <문화적 종다양성>이란 책에서 제시한 논 이름들을 보여준다. 이를 보면 논은 물에 따라 천수답(건답, 하늘바래기, 하늘받이, 봉천지기), 수답(고래실논, 샘논), 수렁논(둠벙배미, 구렁배미, 깊은논), 엇답이 있다. 그리고 모양새에 따라 멍에논, 삿갓논, 두멍논, 둥근뎅이, 장대논, 갓모배미, 장대배미, 실거리, 메물논, 장구배미, 반달배미, 보십배미, 뱀꼬랑지논, 갈치논 따위가 보인다.

지금은 모두 농지 정리를 했으니 하늘에서 비 오기만 기다려 농사짓는 논이 거의 없고, 뱀꼬랑지나 갈치처럼 기다란 논도 없을 테니 어쩌면 이런 말들은 자연 없어질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들은 우리 겨레가 가지고 있었던 문화요 역사일 것이다. 사투리고 이제 잘 쓰이지 않는다 하여 사전에서도 없애버린다면 이런 말들이 쓰인 예전 문헌이나 문학작품은 버릴 수밖에 없는 죽은 문화유산이 될 뿐이다.

"짚가리" 지도 "짚가리" 언어 형태의 지리적 분포
▲ "짚가리" 지도 "짚가리" 언어 형태의 지리적 분포
ⓒ 이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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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국어대사전은 이렇게 토박이말은 사투리라고 버리면서 바켄, 가격인덱세이션, 덕핀스, 가베, 가라스 따위의 외래어가 버젓이 올림말로 올라 있음을 지적한다. 또 국어사전을 펴내기 전에 문학사전, 옛말사전, 한국학사전, 방언사전, 외래어사전, 동의어사전, 동음어사전, 반의어사전, 계열어사전, 하위어사전 따위가 충실하게 간행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점도 따졌다.

가까운 일본은 30여 권으로 국어사전을 펴내 국어자산을 관리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단 3권의 표준국어대사전이 있을 뿐임을 개탄한다.

지은이 이상규는 국립국어원장을 맡는 동안 제국주의적 시각이 아닌 더불어 살기의 모습으로 한국어를 세계에 펴는 “세종학당” 사업을 추진하여 상당한 성과를 얻었으며, 바쁜 가운데 <방언의 미학> 외에 <사회언어학적 조사와 연구방법>(공저, 이회문화사), <한국어방언학>(학연사)를 펴냈고, 지금도 한 권의 책을 준비하고 있어 부지런한 공직자로 통한다.

"부추" 방언분포 지도 동서 남부 분리형, 2006
▲ "부추" 방언분포 지도 동서 남부 분리형, 2006
ⓒ 이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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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책에도 옥에 티는 있다. 도표나 지도들이 너무 작아 보기가 어려웠다. 또 전체적으로 대중 서적이라고 할 만큼 쉽고 재미있게 서술했지만 “방언의 분화 요인” 따위는 이해하기가 까다로워 독자에게 부담을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이 책의 훌륭한 가치는 전혀 묻히지 않는다. 사투리가 어떤 까닭으로 우리에게 소중한 자산인지, 국어사전은 어떤 방향으로 고쳐가야 하는지, 나라의 국어정책을 어떻게 세워가야 하는지를 담담하게 그리고 많은 자료를 통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이 책은 칭찬하고 손뼉을 쳐주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국어정책은 나라의 기반이 되는 종요로운 일이다. 따라서 나라를 걱정하고 국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바람직한 국어정책은 무엇인지, 사투리는 어떻게 대우하고 사전은 어떻게 고칠 것인지를 이상규 원장과 같이 고민해보면 어떨까?

"발전을 위한 비판과 대안 제시는 꼭 필요한 일"
[인터뷰] <방언의 미학> 펴낸 이상규 국립국어원장

이상규 대담하는 ≪방언의 미학≫ 지은이 이상규 국립국어원장
▲ 이상규 대담하는 ≪방언의 미학≫ 지은이 이상규 국립국어원장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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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투리에 관심을 두고 연구한 계기는 무엇인가?

“대학을 졸업한 뒤 3년 동안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지역어 조사연구원을 지냈다. 그때 조사하다 보니 낱말 하나하나 속에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음을 알았다. 그러면서 재미를 얻고 사람냄새를 맡았다. 그뿐만 아니라 민중들의 살아가는 방법을 많이 배웠음은 물론 그들에게 고귀함이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그 뒤부터 사투리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 일본식 한자말이나 잘못 올려진 외국어를 빼는 대신 사투리 등 토박이말들을 올리면 사전에 담긴 한자말의 비중은 과연 얼마나 될까?
“사투리 가운데 단순 교체형이나 예측 가능한 음운론적 분화 형태는 제외하고 어원이 다른 방언형은 사전에 올려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하면서 일본식 한자말이나 외래어가 아닌 외국어들을 빼고 사전을 제대로 정리하면 적어도 한자말은 60% 정도로 줄어들 것이다.”

- 사투리의 문제를 사전의 문제로 짚었다. 그런데 올바른 사전이 나오려면 먼저 전문용어사전이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해당 분야 전문가와 국어학자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전문용어 사전편찬위원회 구성을 해야 하지 않을까? 또 웹사전을 활용하여 서서히 고쳐나가는 방법도 고려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국어기본법 제12조에 이미 전문용어 표준화협의회가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제대로 추진되지는 않는다. 사회적으로 문제제기가 되어야 하며, 지금쯤 대안을 마련하여 전문용어를 별도로 관리하여 정비해야만 할 것이다. 또 지금까지 사전의 문제점들은 여러모로 검토했고, 12월쯤 학술회의를 연 뒤 포털 서비스와 협력하여 부분별 사전으로 해체하고 웹사전을 통해 고쳐나갈 계획이다.”

- 국어정책을 맡는 국립국어원의 수장으로 표준대사전 그리고 어문규정이나 외래어 표기법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모순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처음 국어원을 맡고 개혁을 하려 했을 때 일부 저항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인내로 꾸준히 설득한 결과 지금 전 직원이 나서서 혁명적인 변화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국립국어원은 규범 중심이 아니라 사전 중심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자기 부정이 아닌 새롭게 태어나려는 국어원의 진정한 몸부림으로 보아 달라.”

- 벌써 국립국어원장을 맡은 지 2년이 지났다. 일을 하면서 어려웠던 일이나 보람이 있었다면?
“물론 모자라는 사람이라 특히 본질적이지 않는 부분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가 지원한 것은 물론 전 직원이 협력하고 많은 분이 도와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세종학당’ 사업을 1년 만에 정부 국책사업으로 굳힌 건 큰 보람이다. 올해는 더 큰 성과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 남은 임기 동안 계획하고 있는 일 또는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앞으로 표준국어사전 개편을 적극적으로 해나갈 것이며, 국립국어원을 규범 관리기관이 아닌 국어문화를 포괄하는 기관으로 발전시키려 한다. 욕심이라면 용비어천가 1장에서 125장까지를 현대적으로 음악을 붙이며 대 서사적 구조를 콘텐츠화하고 영상물로도 만들고 싶다. 그러면 훌륭한 국가 상품이 되지 않을까?”

- 또 다른 제안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인터넷에는 쓰레기 정보가 엄청나게 떠돌지만 그것을 관리하거나 청소하는 기능은 없다. 또 욕설이나 인격 모독 등의 글이 난무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를 적절하게 걸러내는 기능을 같이 논의할 때이다. 한편에선 언론 침해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건 또 다른 인권 문제이다.”

이상규 원장은 만나자마자 웃옷을 벗고 편하게 이야기하자고 할 만큼 참으로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그 누구를 원망하거나 헐뜯는 모습이 없다. 공직자로서 참으로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 바람직한 국어정책을 펴는 모습이 계속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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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