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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포지교(管鮑之交). 이 고사 성어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의 우정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야말로 우정의 대명사라 하겠다. 서로에 대해서 어느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하고, 서로가 어려울 때 그 사정을 봐주며, 또한 서로의 발전에 보탬이 되게 하는, 그러한 아름다운 우정을 일컫는다.

하지만 이러한 관중과 포숙의 사이에서도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이야기가 하나 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나간다.

포숙, 사형 위기에 있던 친구 관중을 재상으로 추천하다

▲ 관중묘. 중국 산동성 치박시에 있다. 사진에는 관중의 동상과 관중기념관이 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관중은 춘추시대의 재상으로서 중국에서도 명재상으로 뽑히며, 관포지교의 실제 모델이다.
ⓒ http://www.9y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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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과 포숙은 춘추시대 사람으로 제나라 사람이다. 둘은 어릴 적부터 친구였으며, 늘 같이 행동하였다고 한다. 당시 제나라에서는 무지(無知)가 양공(襄公)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 무지에게 원한이 있었던 자가 이 무지를 살해하게 되었다.

무지의 사망 이후 차기 왕위 계승자로 떠오른 인물은 2명이었다. 바로 양공의 손아래 동생이자 어머니의 고향인 노나라로 망명하였던 규(糾), 그리고 그 다음 동생으로 거(莒)나라로 망명한 소백(小白)이 차기 왕위계승자였다. 여기에서 규를 보필하던 이가 바로 관중과 소홀(召忽)이었고, 소백을 보필하던 이가 포숙이었다.

규와 소백 사이로 파가 갈리게 되고, 이들은 서로 다투게 되었다. 그리고 무지가 살해당했다는 전갈을 받자, 두 파는 모두 제나라의 도읍을 향해 달려갔다. 이때, 관중은 꾀를 써서 소백 일행이 오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그들을 급습하여 소백에게 화살을 날렸다. 소백은 그 화살에 정통으로 맞게 되었고, 이에 관중은 소백이 죽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사실 소백은 그 상황에서 허리띠의 쇠 장식에 화살을 맞았고, 순간 기지를 발휘하여 죽은 척 한 것이었다.

소백이 죽었다고 생각한 규파는 천천히 제나라의 도읍을 향하였다. 그러나 소백파는 재빨리 제나라 도읍으로 향해 달려가서 수도를 점거하였다. 결국 규파는 6일 만에 수도에 도착하였고, 그곳에서 죽었다고 생각한 소백을 만나게 된다. 소백이 이후 제나라 왕으로 즉위하니, 그가 바로 춘추오패 중 첫 번째인 환공(桓公)이다.

환공은 즉위하자 규파를 공격하게 되었다. 결국 전세는 환공에게 유리하게 되고, 환공은 규를 지원하고 있던 노나라 측에 통첩을 보낸다.

"규는 내 형제이므로 내 손으로 죽일 수 없다. 노나라 쪽에서 처치해 주기 바란다. 소홀과 관중은 우리 제나라의 반역도로서, 그들을 죽여 소금에 절이지 않는다면 내 직성에 풀리지 으니 신병을 인도하기 바란다. 어쩌다 거부한다면 당장에 노나라를 포위할 것이다."

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강대국의 위치에 있었던 제나라, 그리고 그에 비해서는 약소국에 불과하였던 노나라는 환공의 통첩을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규를 살해하게 되고, 소홀은 자살을 하게 된다. 하지만 관중은 자기의 신병을 제나라로 인도해 주라고 요청한다.

그러한 관중을 환공은 앞서 말한 대로 죽이려고 한다. 하지만 이때 나서서 환공을 말린 사람이 바로 관중의 죽마고우였던 포숙이었다. 포숙은 소백, 즉 환공을 도와 왕위로 옹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환공 또한 포숙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으며, 관중의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결국 관중을 부하로 삼게 된다.

관중. 그에 대해서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는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재상 중 한사람으로 관중은 기억되고 있다. 환공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였던 원수인 관중을 용서하고 자기의 부하로 삼은 것이다. <삼국지>에서도 자신을 죽이려고 하였던 방덕을 조조가 부하로 삼지 않았던가? <사기>에서는 관중을 죽이려고 하는 환공에게 포숙이 이렇게 간청을 올린다.

"우리 군주께서 제나라 하나만을 거느리실 생각이시라면 고해와 저 숙아(叔牙) 두 사람의 보좌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천하를 모두 거느리시는 패자(覇者)가 되시고자 한다면 관이오(管夷吾 : 관중) 말고는 그 밖에 어디 적임자가 또 있겠나이까? 이오를 등용시키는 나라는 꼭 천하를 다스리게 될 것이옵니다. 제발 이오를 잃지 않아야 될 줄로 알고 있습니다."

포숙은 자신의 친구인 관중을 잘 알고 있었다. 천하를 호령할 자격이 있던 관중을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간청하였고, 결국 자기보다도 더 높은 벼슬인 재상에 관중을 올리게 된다. 관중이 재상에 오르고 나서, 제나라의 환공은 춘추오패 중 첫 번째 패자가 된다.

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바로 관포지교이다. 관중은 자신을 인정하고, 살려주었으며, 또한 높은 벼슬에 오르게 하여 그 뜻을 펼칠 수 있게 하였던 포숙에 대하여 이렇게 평하였다.

나를 낳아 주신 건 어버이이나,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이었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

관중, 자기를 알아준 포숙을 재상자리에 오르지 못하게 하다

우리가 아는 관포지교는 여기까지다. 이는 전적으로 <사기>의 내용을 근간으로 한 것으로서, 이 이야기에서 관중과 포숙의 아름다운 우정, 그리고 환공을 도와 패자의 자리로 오르게 하는 관중의 성의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한비자>에서는 다소 충격적인 글을 보게 된다. 이는 그러한 아름다운 우정을 가지고 있던 관중과 포숙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내용이기 때문이다.

<한비자>에 의하면 관중이 임종에 즈음하여, 환공이 그를 찾아오게 된다. 환공과 관중은 관중의 운명이 다 한 것을 알고 있었기에 관중의 후계자, 차기 재상자리에 대해 의견을 나누게 된다.

환공이 관중에게 제일 먼저 물어본 사람은 바로 포숙이었다. 환공 또한 오랫동안 자신을 보좌해오고 관중을 천거하였던 포숙을 재상으로 삼을 생각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환공의 질문에, 관중의 대답은 너무나도 뜻밖이었다.

"아니 되옵니다. 그는 강직하고 괴팍하고 사나운 사람입니다. 강직하면 백성을 난폭하게 다스리고, 괴팍하면 인심을 잃게 되며, 사나우면 백성들이 일할 용기를 잃게 됩니다. 두려운 것을 모르는 그는 패자의 보좌역으로 마땅치 않습니다."

관중. 이 기록대로라면 그는 포숙을 배반한 것이라 하겠다. 관포지교의 그 유명한 고사와는 달리, 관중은 포숙을 재상자리에 앉지 못하게 하였고, 실제로 포숙은 재상의 위치에 오르지 못하게 되었다. 그럼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관중이 과연 인물은 인물이었다. 아무리 자기에게 평생의 친구라고 해도, 그것도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라 해도, 그는 냉정하게 판단하였던 것이다. 관중은 객관적으로 포숙을 판단하여, 그를 재상으로 삼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이유를 들어 성격의 문제를 짚었다. 강직하고 괴팍하고 사납다, 즉 너무나도 올곧은 성격에 두려움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포숙을 재상자리에 못 오르게 한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 이 이유로 청문회에서 장관자리 하나 못주게 하려고 한다면 과연 이를 수긍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혹시 관중과 포숙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게 아닐까?

그럼 혹시 말년에 가서 관중과 포숙의 관계가 관포지교라는 고사와는 다르게 반목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사서에서는 그러한 흔적을 찾기는 힘들다. 다만 이렇게 관중이 환공에게 간언을 드린 것은 환공 41년이며, 그 전인 환공 30년에는 관중과 포숙이 함께 초나라 정벌을 갔다고 한다. 이 후 관중과 포숙이 서로 어떠하였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서로 반목하였다고 보기엔 힘들다. 어찌 보면 관중은 이미 환공의 마지막을 예언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환공은 관중이 죽은 후, 관중이 중용하지 말라고 하였던 3명의 인물, 즉 수조, 개방, 역아를 중용하였다. 이 세 명의 신하는 일찍이 환공에게 아부를 하며 권력을 잡았던 최측근으로서, 이들은 결국 권력다툼에 빠져 제나라를 어지럽히게 되었다.

강성한 국력을 자랑하며 패자의 자리에 섰던 제나라는 이렇게 어이없게도 세 명의 간신에 의하여 피폐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초대 패자로서 그 이름을 떨쳤던 환공은 죽은 후에 바로 매장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다. 결국 환공의 죽음 후 67일간 관에 매장되지 않아, 그 시체에서 구더기가 끓어 방 밖으로까지 마구 기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충신의 충언을 듣지 못한 환공은 자신의 최측근이었던 간신들에 의하여 비참한 말로를 보내게 된 것이다. 그럼 포숙은 이러한 환란 속에서 어떻게 되었을까?

구체적으로 포숙이 어찌 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하지만 포숙의 가문은 이후 제나라에서도 명문 대부로서 10여대에 걸쳐 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포숙은 살아생전에도, 그리고 죽어서까지 극진한 대접을 받게 되었으니, 이는 관중의 천거에 기인하였다고 하겠다. 비록 제나라는 여러 환란이 있었지만, 그래도 춘추전국시대를 대표하는 강국 중의 하나였다.

관중은 이러한 미래를 미리 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사후 직선적인 성격의 포숙이 재상의 자리에 오르면 뻔히 수조, 개방, 역아라는 간신들과 극도로 대립하게 되고, 이는 포숙의 명을 재촉하며 멸문지화를 앞당길 것이라 예측한 게 아닌가 싶다. 이게 맞다면 결국 관중이 포숙을 재상자리에 천거하지 않은 것도 포숙의 미래를 생각한 친구로서의 정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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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유적학과 06학번 학생으로 현재는 휴학중입니다. 다음과 네이버의 커뮤니티에서 운영자나 논객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8년 네이버 1차 파워지식in에 선정된 바 있습니다. 2009년에 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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