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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다, 힘들었다 그리고 아쉽다"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마친 김연아 아쉬움 토로
08.03.22 15:28 ㅣ최종 업데이트 08.03.22 15:28 신재명 (신재명)
금보다 빛난 동메달

 

20일 스웨덴 예테보리 스칸디나비움 빙상경기장 현지시각 저녁 10시 반경. 프리 스케이팅 연기가 끝난 직후 김연아 선수는 통증 때문에 허리에 두 손을 댄 채 이를 악물고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 20일 스칸디나비움 경기장의 김연아 #1 김연아
ⓒ 신재명
김연아

 

전광판에 크게 나타난 그녀의 찌푸린 얼굴을 언론석에서 지켜보던 필자와 관중들은 모두 가슴이 뭉클해졌다.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그녀는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부상의 고통을 참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 일구어낸 승리였다.

 

  
▲ 20일 스칸디나비움 경기장의 김연아 #2 김연아
ⓒ 신재명
김연아

 

 김연아는 자신의 부상, 유럽의 홈그라운드 어드벤티지, 일본 피겨의 네임벨류라는 3가지 악재와 싸워 프리스케이팅 1등으로 모두 이김으로써 우리에게 금메달보다 더 값진, 감동의 동메달을 선사하였다. 

 

 허리부상으로 3월에 열린 국내의 4대륙 선수권도 불참했을 만큼 김연아 선수의 통증은 심각한 것이었다. 이후 이번달 세계선수권대회 직전까지도 3주간이나 치료와 휴식기를 가졌기에 자신의 컨디션을 가장 잘아는 김연아 선수가 대회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작년만큼 자신은 없지만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되풀이 한 것이다.

 

  
▲ 20일 스칸디나비움 경기장의 김연아 #4 김연아
ⓒ 신재명
김연아

 

 첫 날 심판들의 판정은 혹독했다. 김연아 선수의 스텝스핀 3초에 대한 날이 선 판정은 둘째치고 유럽 1위 케롤리나 코스너에게 보인 '밀어주기'는 험난할 이번 대회의 앞날을 예견하고 있었다.

 

'유럽의 희망' 캐롤리나, '피겨 강국' 등에 업은 아사다

 

 케롤리나는 쇼트에 강하고 프리에서 언제나 등수가 떨어지는 선수라 쇼트에서 미리 후한 점수를 주어야 프리에서 웬만큼 점수차를 내도 아시아 선수들에게 뒤지지 않을 거라는 계산 깔린 듯 했다.

 

  
▲ 20일 메달을 목에건 케롤리나 코스너 선수 케롤리나 코스너
ⓒ 신재명
케롤리나 코스너

 

 유독 케롤리나 선수가 후한 점수를 받은 것은 현재 유럽 내에서 그녀의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평소부터 언론 인터뷰를 잘 응해주고 농담도 잘하여 인기가 좋았는데 남자 피겨의 세계적인 강자, 체코의 토마스 베르너 선수와 최근 열애를 하며 유럽내 그녀와 토마스 베르너의 인기는 연일 상종가를 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뚜렷한 강세가 두드러지는 아시아 여자 피겨 선수들에 대한 대응책으로 유럽에서는 유럽 여자선수 랭킹 1위의 캐롤리나가 '아시아 타도'를 외치는 '유럽의 희망'으로 우뚝 선 것이다.

 

 일본 선수들은 최근 20년간 쌓여온 '피겨 강국'의 내공 때문에 심판의 견제가 상당히 줄었다. 선수층이 두꺼운 일본 국가대표 선발전이 어지간한 규모의 국제대회보다 힘들다는 걸 잘아는 심판들은 일본 선수가 나오면 일단 '실력있는 선수'라는 긍정적인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다.

 

  
▲ 20일 CBC 캐나다 외신과 아사다 #2 아사다
ⓒ 신재명
아사다

 

오직 실력만으로 맞선 김연아, '포기할까도 생각했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자국과 다름없는 유럽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안은 케롤리나와 피겨 강국이라 견제가 풀린 일본선수들을 제외하고 특별한 견제, 방어 수단이 없는 김연아 선수만 '독박'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예상된 상황이었지만 이튿날 프리에서의 편파 판정은 상상을 초월했다. 연기 초반부터 불안했던 캐롤리나 선수는 제대로 착지한 점프 하나 없이 120.40점으로 시즌 베스트는 물론 프로그램을 완벽히 소화한 같은 유럽의 사라 마이어보다도 훨씬 높은 점수를 받았다. 믹스존 (기자들이 퇴장하는 선수들을 인터뷰하는 자리)의 기자들도 다들 연신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언가 시나리오가 있었다는 걸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그렇게 김연아 선수 차례가 되었다. 세계 랭킹 2위에 이제는 세계최고의 네임벨류를 지니는 '김연아'라는 이름 세자를 가지고 빙판 위로 미끄러져 나왔지만, 첫날의 편파판정으로 인한 5점이라는 점수차이와 통증, 피겨 약소국 이미지, 유럽의 아시아 견제 등 많은 부담을 지고, 홀로 만원을 이룬 12,000석 규모의 스칸디나비움 빙상장 위에 섰던 것이다.

 

 금메달은 역부족이었을까? 그녀가 보여준 신들린 연기는 그렇지 않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녀의 말대로 '포기'도 고려할 만한 경기였다. 미키 안도 선수는 종아리 통증과 '좋은 결과'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에 빙판에 선지 1분 만에 대회를 포기하였다. 하지만 김연아 선수는 이 모든 고난과도 맞바꿀 수 없는 전국민적인 성원에 보답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픔을 참고, 결과에 대한 마음을 비우고, 그녀는 최선을 다해 열연했다. 점프 때마다 아파오는 허리고통에도 연기에 몰입하여 '정말 아픈가' 생각할 정도로 표정조차 안 바꾸고 혼신의 힘을 다한 것이다. 점프를 한번 놓치기는 하였으나 캐롤리나나 아사다 선수의 실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얼굴이 상기되고 눈물이 눈에 고인 채로 혼신의 연기를 끝내고 관중들에 인사하는 그녀.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들리고 모두가 'Current rank: 1' (현재 순위: 1)을 기다리며 전광판을 응시했다. 하지만 숫자 2가 나오는 순간 유럽 관중들은 민망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고 관중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하였다.

 

 당사자인 김연아만 씩씩하고 태연했다

 

누가봐도 납득 안가는 판정이었다. 당사자인 김연아만이 태연해보였다. 그렇게 김연아 선수는 국내 취재진들에게 왔다. 2등이었지만 그녀의 표정이 밝았기에 취재진들도 금세 밝은 분위기로 '그래 유럽의 견제야 예상했지'하며 넘어갔다. 김연아 선수가 외신 및 국내 취재진의 인터뷰 존을 돌 때 아사다 마오의 차례가 되었다.

 

 아사다 선수는 프로그램 시작 직 후 점프 직전 빙판 위를 크게 미끄러지며 넘어졌다. 심판들 사이에서도 점수가 갈린 부분이었으나, 워낙 큰 실수였던 데다가 김연아 선수는 쇼트, 프리 모두를 큰 실수없이 소화한 것을 상기하면 첫날 5점의 점수차를 충분히 좁힐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연아 선수가 최근 몇 년간 여자 피겨에서 여제로 군림하는 사이 '아시아 견제'는 어느새 '김연아 견제'가 되어있었는지 모른다. '피겨 강국 선수'라는 국가 이미지 때문인지, 세계랭킹 1위라는 김연아 못지않은 네임벨류 때문인지, 아사다 선수는 121.48이라는 후한 점수를 받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모니터로 아사다 선수의 결과를 바라보는 김연아 선수는 놀랄만큼 태연했다. 필자와 타언론사 기자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석연치 않은 판정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동안 김연아 선수는 아시다와 캐롤리나가 조금 쳐지는 연기로도 자신을 앞지른 것을 알고도 밝았다.

 

'아까 넘어지던데...'

 

 필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 건 이후 기자들이 장비 정리하는 사이에 그녀가 어머니께 한 말이었다. '아까 넘어지던데...'

 

  
▲ 20일, 국내 언론사와 인터뷰하는 김연아 김연아
ⓒ 신재명
김연아

 연기 전체가 불안했던 케롤리나에 이어 아사다 마오 선수까지 후한 점수를 받고 김연아 선수만 무난한 연기를 하고도 5위에 머물렀던 첫 날 쇼트에 이어 둘째날 프리에서도 '짠 배점' 때문에 결국 3위로 눌러앉자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경기포기까지 고려했던 김연아 선수로서도 아무래도 속이 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터뷰하러 오자마자 목이 바짝 타올라 물을 찾을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한 그녀로서는 맥이 풀린 만한 상황이였다. 3주간의 휴식과 부상이 있었던 그녀이기에 스스로 위안삼을 수는 결과다. 케롤리나와 아사다가 점수에 합당한 연기를 펼쳤다면 말이다.

 

하지만 국민 여동생 꼬리표는 그냥 생겼겠는가? 그녀는 마오와 케롤리나 선수가 다가오자 자신만큼이나 이 날을 위해 열심히 준비한 동료들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함께 기뻐해주었다.

 

 기자회견장에서 김연아 선수가 경기가 모두 끝난 현재의 심정을 세 단어로 표현한 것이 기억난다.

 

'끝났다, 힘들었다, 그리고 아쉽다.'

 

 모두가 아쉬웠다. 김연아 선수만큼이나 국민 모두가 너무 아쉬웠던 세계선수권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금메달보다 더 자랑스러운 동메달이었다.

 

 2008년 4월 20일 스웨덴 예테보리에서의 김연아 선수는 동메달이 얼마나 당당할 수 있는지,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피겨라는 한편의 드라마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누가 이날의 진정한 승자였는지는 자명하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승을 향한 그녀의 아름다운 도전과 감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란 것이다.

 

김연아 선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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