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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운하'에 반대하며 지난 2월 12일 한강 하구인 경기도 김포시 애기봉 전망대에서 출발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이 40일째 도보순례를 계속하고 있다. 이 순례에 참여하고 있는 수경 스님(화계사 주지)이 3월 22일 물의 날을 기해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내와 전재한다. [편집자말]
한반도대운하 백지화를 위해 도보순례중인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한반도대운하 백지화를 위해 도보순례중인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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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강을 모시는' 길을 나선지 40일째가 되는 오늘은 '세계 물의 날'입니다. 사실 이런 날을 정했다는 자체가 평소에 우리가 얼마나 물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지를 반증합니다. 참으로 알량한 양심의 발로입니다.

지난 3월 1일 낙동강에 페놀 방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3월 11일에는 여수 앞바다에서 기름 유출 사고가 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고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낙동강 곳곳에서 악취가 진동하는 폐수가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오늘로서 17일째 낙동강을 따라 걸으면서, 죽음으로써 인간의 모진 삶을 증언하는 물고기를 수없이 만났습니다. 인간의 탐욕이 물고기를 익사시킨 것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대운하로 우리네 생명의 근원인 강을 수장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단지 내 손으로 그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개발의 폭력성과 반생명성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사람살이가 왜 이리 피폐해졌을까요. 너나없이 '우물에 침 뱉는' 놀부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깁니다.

이명박식 경제성장의 상징어가 돼 버린 대운하를 생각하면 가슴이 막힙니다. 이어서 오늘의 20대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인생에서 가장 민감한 시기인 청소년기에 IMF를 맞았습니다.

그중의 상당수는 부모의 실직으로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경제성장의 빛과 그늘을 동시에 통과한 세대인 것이지요. 그런데 이들이 경제 활동 연령이 된 지금 이들에게 붙여진 딱지는 '88만원 세대'입니다.

이제는 보편 용어가 되어 버린 듯한 88만원 세대의 상당수가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20대의 보수화라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참으로 낯두껍고 잔인한 해석입니다. 취직을 목전에 두고 있고, 등록금 대출 이자를 갚느라 한창 공부를 해야 할 나이에 아르바이트 현장을 전전하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런 선택을 했을 것입니다.

좌우를 막론하고 추구 해야 할 가치는...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100일 도보순례에 참여하고 있는 수경스님(오른쪽)이 지난 2월 14일 경기도 김포시 들판을 지나고 있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100일 도보순례에 참여하고 있는 수경스님(오른쪽)이 지난 2월 14일 경기도 김포시 들판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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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것을 두고 '보수화'라고 단정하는 것은 '좌·우'를 막론하고 추구 해야 할 가치인 '진보'를 철 지난 이념으로 색칠하려는 퇴행적 수구의 시각입니다. 진보는 이념과 관계없이 추구해야 할 인간다운 삶을 위한 건강한 지향입니다.

오늘의 20대들은 기성세대들이 가지지 못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를 표현하는 일에 당당합니다. 세계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실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의 상당수는 머리를 싸매고 공무원 시험에 매달립니다. '20대에 몇 억 벌기'류의 실용서를 베스트셀러로 만듭니다. 얼핏 보면 진취성은 다 내팽개치고 오직 '돈'만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대학은 상아탑의 자부심보다는 태연히 '취업률'로 자신을 포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세태를 만든 건 기성세대들입니다. 공동선보다는 극단의 이기심으로 무장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공공연히 외쳐왔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20대의 시야를 돈벌이와 취업으로만 좁혀 놓은 책임은 분명 기성세대들에게 있습니다.

그런데도 공자님 같은 말씀 좋아하는 어른들은 세상 문제를 '개인'의 차원으로 환원시키기를 좋아합니다. 물론 '개인이 변해야 세상이 바뀌고', '내 탓이오'라는 성찰 없이 세상의 근본적인 변화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위험한 실용

하지만 현대사회의 시스템은 대단히 복잡합니다. 인간이 만든 것이긴 하지만 인간의 통제가 100% 가능한 세상이 아닙니다. 전쟁이나 대량 실업 같은 문제가 대표적입니다. 개인으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문명적 천재지변'입니다. 세상과 개인의 변화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긴 합니다만, 사회적 시스템의 변화 없이는 개인 차원에서 아무리 공동선을 외쳐도 공허한 메아리가 되기 쉽습니다.

극단의 이기심으로 치닫는 지금의 한국 사회는 결국은 모든 개인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을 길을 가고 있습니다. 기성세대들이 진정으로 참회해야 할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도 현재의 큰 흐름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실용'입니다. 참으로 위험한 실용입니다.

염치없는 얘기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흐름을 돌려놓을 세대는 20대입니다. 특히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한국 사회의 미래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사회적 모순에 대한 정의로운 대응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이야말로 궁극적으로 '나'를 위하는 길이라는 인식을 새로이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군사 독재 시절 어깨를 겯고 민주화를 외치던 것과는 다른, 더 차원 높은 형태의 '연대'가 절실한 때입니다.

생명의 숨결을 느껴보십시오

강을 따라 걸으며 오늘의 20대를 생각하면 <침묵의 봄>이라는 책으로 환경 재앙을 경고한 레이첼 카슨(1907~1964) 여사의 다음과 같은 말이 떠오릅니다.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능력만큼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 어느 봄날 아침에 울려 퍼지는 새들의 노랫소리를 듣지 못한 채 아이가 자라나도록 내 버려두지 말자. 아이의 새벽 단잠을 깨워서라도 바깥으로 나가 보라. 새들의 노래를 듣기 위해 특별히 일찍 깨어나기로 약속한 날,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공기에 안기는 날, 그런 날의 경험을 아이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출가 수행자이기 전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20대들에게 죄를 지은 느낌입니다. 기성세대들이 오로지 돈에만 매달리는 동안 저들을 밀어 넣은 곳은 입시 지옥이었습니다. 새벽 숲으로 데려가기는커녕 명문대학만 가면 평생 행복이 보장될 것이라며 저들에게서 하늘의 별과 들의 꽃을 빼앗았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대운하 건설이라는 무모한 환상으로 현혹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설마 5년간 건설 현장의 일용직 노동자로 만족하라는 건 아니겠지만, 단기적 경기 부양 이후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발생할 장기불황을 선물할 수는 없습니다. 제발 이들에게 희망을 주지는 못할망정 미래의 성장 동력까지 잠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솔직히 경제에는 문외한인 사람입니다만 상식 수준에서도 미래 세대들뿐만 아니라 30대~50대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분명히 보입니다. 살인적인 사교육비를 줄이고, 부동산 값만 안정시켜도 이토록 돈에 매달리는 세상은 아닐 것입니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이 지난 2월 12일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애기봉전망대를 시작으로 한강-낙동강-영산강-금강 100일 도보순례를 시작했다. 참가자들이 애기봉전망대에서 한강, 임진강이 만나는 한강하구 지역을 보고 있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이 지난 2월 12일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애기봉전망대를 시작으로 한강-낙동강-영산강-금강 100일 도보순례를 시작했다. 참가자들이 애기봉전망대에서 한강, 임진강이 만나는 한강하구 지역을 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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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한 경제입니까

그런 돈이 내수를 활성화시키고 기업의 투자로 이어지는 것이 선순환 아닌가요. 중소기업과 농업을 살리고, 1인당 국민소득보다는 빈부 양극화 해소로 삶의 질을 향상시킬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가요?

그런데 지금 상황을 주시하면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전국의 부동산 값은 치솟고, 초등학생까지 성적 경쟁으로 내몰며 사교육 시장을 부풀리고 있습니다. 기업과 기득권층의 배타적 이익에만 봉사하기 위한 정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어쩌면 현 정부의 대운하 계획은 야구 용어로 '유인구'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뜻이 관철되면 좋고, 아니면 관심이 온통 대운하로 쏠려 있을 때 자신들의 다른 뜻을 이루고자 하는 기만의 정치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우리의 순례 행위가 단순히 대운하 반대가 아니라 우리 삶의 전반을 살피는 성찰과 수행의 걸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온전한 자연과 희망을 선물하기 위해서도 대운하 건설 노력은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이' 물처럼 흐르는 관계를 형성하는 시스템의 구축으로 돌려져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닙니다.


태그:#경부운하, #수경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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