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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에 찾은 경기도 성남시 판교 신도시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의 모습.
 20일 오후에 찾은 경기도 성남시 판교 신도시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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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쿵쿵… 탕탕탕….

20일 오후 1시 경기도 성남시 판교 신도시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이곳저곳에서 망치소리가 울려퍼졌다. 어디선가는 철재 자제들을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뜨리는 소리가 '쾅' 하고 났다. 머리 위에서는 높다란 크레인이 '크르릉' 소리를 내며 건설자재를 나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 건설현장은 건설 장비들의 소음으로 시끄러워야 할 여느 건설현장과는 달랐다. 2층까지 올라간 아파트 6개동 중 3개동에서만 건설자재를 나르고 있는 노동자들이 보였다. 나머지 3개동에서는 공사가 중단된 듯 조용했다.

평소 같으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레미콘 차량으로 정신이 없어야할 건설 현장 입구도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경비원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하릴없이 경비실을 지키고 있었다.

지난 19일부터 시작된 레미콘 업계의 파업은 건설현장의 생기를 잃게 했다. 한 현장사무소장이 "IMF 이후 최대 위기"라고 할 정도였다. 레미콘 공급이 중단된 데 앞서 불과 3개월 사이에 철근 등 각종 건설 자재의 가격이 오르고 공급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판교 신도시 건설현장을 찾아 현장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해 들었다. 다들 어렵다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많은 언론 보도처럼 건설 현장이 '올 스톱' 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언론사 카메라가 비껴간 이번 사태의 진짜 피해자들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레미콘 공급 중단 장기화되면 큰 문제... 언론보도처럼 올 스톱은 아니다"

20일 오후에 찾은 경기도 성남시 판교 신도시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한 아파트 구조물이 공사가 중단된 상태로 남아있다.
▲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 건설 현장 20일 오후에 찾은 경기도 성남시 판교 신도시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한 아파트 구조물이 공사가 중단된 상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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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신도시 건설 현장을 찾은 건 이날 오전 10시였다. 서판교 지역의 A사 아파트 공사 현장이었다. 20여 층 높이의 아파트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망치소리가 들리고 크레인도 움직였다. 언론 보도처럼 건설이 중단된 상태는 아닌 듯 했다.  

건설 현장 입구에서 건설 자재를 싣고 온 차량 탑승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현장 관계자에게 다가갔다.

"건설이 중단된 상태가 아니냐?"고 물으니 "그렇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어제부터 콘크리트 타설 작업은 중단됐지만, 아직 공사에 큰 지장은 없다"고 밝혔다.

그에게 '판교 신도시 건설현장 올 스톱'이라고 보도한 이날치 조간신문을 보였다. 그는 "거짓말"이라고 지적했다. "장기화되면 큰 문제지만, 900일 넘게 공사하는 현장에서 하루, 이틀 공사가 중단된다고 해서 입주가 늦어지는 등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A사 현장 뒤편의 B사 아파트 건설 현장을 가리키며 "공사하고 있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20여 분간의 흙더미를 지나서야 도착한 B사 현장 역시 건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곳의 현장사무소를 찾았다.

양우석 현장소장은 "펌프카 파업 등으로 5일 전부터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서도 "우리처럼 아파트 23개동을 건설하는 큰 현장에서는 다른 공사를 하며 일주일 정도는 견딜 수 있다"고 답했다.

"작은 규모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는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고 양 소장은 덧붙였다. 인근의 주택공사 아파트 공사 현장을 찾았다. 이 쪽 현장사무소 총무는 "6개동 중에서 2개동은 당장 해야 할 콘크리트 타설 공사를 못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 또한 '올 스톱'이라는 언론 보도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 관계자는 "파업을 대비해 미리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해놓아 며칠은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파업이 장기화되면 업체만 죽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생계 걱정하는 일용직 노동자들... "공사 중단될까봐 불안"

20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판교 신도시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 이모씨. 그는 "(레미콘 업계 파업으로) 공사가 중단될까 불안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파업이 장기화되면, 그만큼 돈을 못 버니 당연히 힘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20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판교 신도시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 이모씨. 그는 "(레미콘 업계 파업으로) 공사가 중단될까 불안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파업이 장기화되면, 그만큼 돈을 못 버니 당연히 힘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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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

오후 2시 또 다른 주택공사 건설 현장에서 만난 한 관계자의 말이다. 무슨 말일까?

그에 따르면 '고래 싸움'이란 레미콘 가격 인상을 요구하는 레미콘 업계와 그에 반대하는 건설업계 간의 줄다리기를 뜻했다. 많은 언론에서도 '고래싸움'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새우는 누굴까? 이 관계자는 건설현장으로 기자를 이끌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동자들의 생계가 걱정"이라고 밝혔다. 그제야 '위기의 건설현장'에서 누가 가장 고통을 받고 있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이 건설 현장의 총책임 관리자인 옥정호(49)씨는 "100여명의 노동자 중에서 60여명만 나와 일을 한다"고 말했다. 하루에 수백 대 씩 건설현장을 찾던 레미콘 차량들이 모습을 감추자, 생기를 잃은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얼굴엔 깊은 불안이 남겨졌다.

이들과 만나기 위해 건설 중인 구조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전모를 썼지만, 여기저기서 들리는 망치소리와 건설자재들이 땅바닥에 부딪치는 소리에 자연스레 발걸음이 움츠려졌다. 그곳에서 한 노동자가 철근에 나무 널빤지를 고정시키고 있었다.

목수로 보이는 이 노동자와 대화를 나누려 했지만, 한쪽에서 시끄럽게 철근을 자르는 작업을 하고 있어 대화는 쉽게 이어지지 못했다. 이어 소음이 그치고 그에게 "공사가 중단될까봐 불안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이수명(가명·47)씨는 "파업이 장기화되면, 그만큼 돈을 못 버니 당연히 힘들지 않겠느냐"고 쏘아대며 더 이상의 대화를 피했다.

구조물 바깥에서 쓰레기를 치우고 있던 김형수(가명·59)씨에게 다가갔다. 그는 "일 없으면 놀아야 하니 걱정이 크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이 곳 현장의 2/3가 외국인·교포로 다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전했다.

건설 현장을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한 노동자에게 다가갔다. 목수팀장이라는 김용철(43)씨였다. 그는 "엄청나게 불안하다"고 운을 뗐다. 김씨는 "7살, 4살 그리고 돌이 안 된 아이가 있다"며 "혼자 벌어야 하는데 일 못하면…"이라고 말을 흐렸다.

레미콘-건설업계 협상 결렬... 근심 가득한 노동자들

오후 4시에 찾은 판교 신도시 홍보관 인근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는 전체 노동자의 20%가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곳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건설현장마다 노동자의 한숨이 깊어갔다.

하지만 건설업체 관계자들은 "업체만 죽어난다"고 말한다. 레미콘 업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이날 오전부터 시작된 건설업계와 레미콘 업계의 레미콘 단가 협상은 많은 노동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결렬되고 말았다.

레미콘 업계가 10% 인상안을 들고 나왔지만 건설업계 쪽은 이를 거부했다. 대신 건설업계 쪽은 공급 중단을 풀 경우 25일 추가 협상을 진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결국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게 생겼다.

이날 협상 결렬 소식을 듣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일용직 노동자들의 얼굴에는 그 어느 때보다 근심이 가득했을 터였다.


태그:#레미콘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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