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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의 사랑>겉그림
 <곤충의 사랑>겉그림
ⓒ 일공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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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길이 25mm로 우리나라 호리병벌류 중 몸집이 가장 큰 '큰호리병벌'. 장마가 끝난 8월에 우리 주변(놀이터나 공터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 벌의 집짓기를 보면 야생에서 살아남는 곤충들의 강인하고 치밀한 지혜를 알 수 있다.

이들은 침으로 흙을 반죽해 집을 짓는데, 보통 5~7개 방을 만들어 방마다 알을 하나씩 낳는다. 물론, 집을 짓기 전에 집을 지어 붙일 장소(바위 등)를 먼저 정하고 그 장소에 맞는 색의 흙을 뭉쳐 짓거나 주변에 맞추는 등의 치밀한 계산도 잊지 않는다.

방을 모두 만든 후 알까지 위에 붙여 낳은 큰호리병벌은 머잖아 태어날 애벌레를 위한 먹이로 5~10마리 가량의 자벌레들을 사냥하여 방에 넣어둔다. 그런 다음 자연의 또 다른 포식자로부터 애벌레를 보호하고자 입구를 빈틈 없이 메워버린다.

이런 식으로 하루에 하나씩. 이 정도라면 일반 곤충들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필요한 방을 한꺼번에 만들지 않고 하루에 하나씩 만들거나, 알을 맨 위에 붙여 낳는다든지, 애벌레의 먹이로 잡아넣는 자벌레를 좀 더 관찰하면 훨씬 신기한 사실들과 만나게 된다.

"…큰호리병벌은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에게 먹일 식량인 자벌레가 보이면 손쌀같이 달려들어 자벌레의 목덜미를 물고는 옆구리에 사정없이 침을 한방 놓는답니다.…(중략)…마취 당한 자벌레를 가져다가 자기가 알을 낳아 놓은 방에 몇 마리씩 넣어둡니다. 그러면 알에서 깨어난 큰호리병벌 애벌레가 먹어 치울 때까지 마취된 자벌레는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살아있게 됩니다. 아마도 자식에게 싱싱한 먹이를 먹이려는 어미 벌의 배려이겠지요."

그렇다면 알을 방의 맨 위에 붙여 낳는 이유는? 만에 하나 애벌레보다 마취에서 먼저 깨어난 자벌레에게 알이 손상당할 수도 있는지라 그걸 막고자 계산한 행동은 아닐까?

어느 날 오전 11시 무렵부터 새벽 0시쯤까지 큰호리병벌이 방 하나를 만드는 장면을 꼬박 지켜보면서 사진으로 담은 <곤충의 사랑> 저자는 "벌에게는 썩 미안한 일이지만…"라며, 관찰을 목적으로 어쩔 수 없이 큰호리병벌의 집을 조심조심 잘라 관찰하기에 이른다.

"…속에 든 애벌레가 다치지 않도록 얇은 칼날에 물을 적셔가며 조심스레 벌집을 잘라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방마다 들어 있는 자벌레의 숫자가 달랐습니다. 어떤 방에는 네 마리, 어떤 방에는 여덟 마리, 열 마리까지 들어 있는 방도 있었습니다. 큰호리병벌이 숫자를 세지 못해 아무렇게나 넣어 놓은 것일까요? 그러고 보니 마릿수와는 상관없이 거의 일정한 부피의 자벌레를 잡아넣어 크기가 일정한 방의 80%의 공간을 자벌레로 채워두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큰 자벌레는 네다섯 마리, 작은 자벌레는 예닐곱 마리, 이런 식으로 숫자가 아닌 부피계산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 책속에서

ⓒ 성기수

저자의 이런 관찰과 사진기록으로 책속에는 어지간한 전문서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곤충 이야기와 한 곤충의 생태(알낳기, 집짓기, 우화하기)를 몇 초 단위로 찍은 슬라이드 사진이 가득하다. 마치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다큐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생생한 감동을 주었다.

이런 사진 중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장면"이라며 일본 학계에서 자신 있게 공개한 사진들보다 더 나은 것들도 있다. 일본이 실험실에서 곤충을 사육하여 유리 너머로 찍은 것과 달리 저자는 자연에서 관찰,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큰호리병벌의 비밀을 엿보자. 앞서 나온 어미 큰호리병벌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왕청벌은 집의 가장 취약한 곳을 찾아내 입으로 물어뜯은 다음 드릴 같은 산란관을 꽂아 넣고 알을 낳아 기생한다. 그리하여 이 애벌레들은 한 지붕 두 가족으로 각각 성장한다.

그렇다면 큰호리병벌은 왕청벌의 기생까지 미리 계산하여 시차를 두고 매일 하나씩 방을 만든 것은 아닐까? 그래야만 기생을 당할 경우에도 애벌레 일부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 말이다.

<곤충의 사랑>에는 큰호리병벌 등 우리 주변의 곤충 10종의 생태가 생생하게 소개돼 있다. 또한, 얼마 전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후박하늘소의 생태가 이 책에 처음으로 공개돼 있다. 생태관련 동호회 등 자연 생태계 생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한국의 파브르'로 불리는 저자 성기수(44)씨와 나눈 곤충과의 사랑, 그 이야기 일부를 전한다.

책을 한장씩 넘겨가며 관찰과 촬영 에피소드를 들려 주는 저자, 꼬마 주스병에 꽂힌 것은 유리산누에나방의 빈고치로 고치의 입구를 지그시 누르면 안경집 입구처럼 마름모꼴로 벌어진다.
 책을 한장씩 넘겨가며 관찰과 촬영 에피소드를 들려 주는 저자, 꼬마 주스병에 꽂힌 것은 유리산누에나방의 빈고치로 고치의 입구를 지그시 누르면 안경집 입구처럼 마름모꼴로 벌어진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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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충을 관찰하는 일, 힘들지 않은가?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이쪽은 최대한 들키지 않고 최대한 맘껏 훔쳐보아야 하기 때문에 마치 스토커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른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곤충에 따라서는 며칠 동안 관찰하고, 애벌레가 궁금해 산란한 장소를 몇 달 후에 다시 찾고…,이 정도면 스토커가 아닐까? 곤충 스토커! 물론 엄청난 끈기와 참을성이 있어야만 한다."

- 언제부터 곤충에 관심을 갖게 됐나?
"교사였던 아버지는 책을 참 많이 사주셨는데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곤충이나 자연에 유독 호기심이 많은 나를 틈날 때마다 데리고 나가 궁금한 것들을 맘껏 관찰하게 했다. 이런 배려덕분에 곤충과 함께 자라 어른이 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관찰을 하면서 스케치도 하고 학교에서 요구하는 형식적인 것과 전혀 다른 나만의 관찰일지를 초등학생 때부터 쓰기 시작했다. 관찰일지는 지금까지 쓰고 있다.

그때 쓴 것들을 보면서 '그 나이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내가 쓴 것이 정말 맞나?'라는 생각에 종종 놀라기도 한다. 그때는 그런 시기이다. 그런데 어른들의 곤충에 대한 편견이 아이들이 곤충과 가까워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난 다행히 곤충과 가까워지는 방법을 아버지 덕분에 일찍 알게 된 것 같다."

- 아이들에게 곤충(곤충관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곤충을 좋아한다. 이런 아이들이 곤충을 무서워하고 혐오스러워하는 것은 대부분 어른들의 편견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일부 나방만 조심하면 되는데 모든 나방이 그런 것이라 단정하고 무조건 멀리하라고 한다. 이는 나방은 물론 다른 곤충까지 나쁘고 혐오스럽게 생각하여 멀리하게 만드는 결과가 된다. 이렇게 관찰하고 가까워질 수 있는 통로를 영영 차단하고 마는 것이다. 자연관찰을 하면 관찰력과 탐구력, 창의력, 끈기가 생긴다. 정서적으로도 좋다. 자연을 모르는 아이들, 곤충을 무조건 나쁘게만 생각하는 아이들…,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 '한국의 파브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파브르의 곤충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집에 <파브르 곤충기>가 있었는데 호기심이 왕성한 꼬마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20대에 영문판 10권을 읽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어렸을 때 읽었던 것은 생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이 원작의 아주 일부만 요약한 것이었다. 게다가 어른의 주관에 의한 편견과 흥미위주로 번역된 책에 불과했다. 지금도 사정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다행히 얼마 전부터 현암사에서 원작 10권 완역을 목표로 생물학을 전공한 사람이 번역하여 현재 3권까지 나왔다. 어린 꼬마들이 읽기에는 다소 어렵지만 완간이 기대된다."

- 생태사진가라고도 하던데?
"곤충 이야기를 들려주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스케치한 것을 보여줘도 그랬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 보여주니 믿었다. 이렇게 4년 전에 시작한 것인데 곤충의 특성을 알고 있는 만큼 사진 찍는 것이 유리했다. 외국에 비해 국내에는 생태 사진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내 사진을 필요로 하는 곳에 제공하고 있다. 생태 관련 잡지인 <자연과 생태>(2006년 우수 환경도서로 선정)를 비롯하여 EBS 등 여러 매체에 사진을 제공하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지난해부터 관찰과 집필에만 전념하고 있다. 40년 가까이 관찰해 온 것들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려니 쓸 것이 너무 많다. 곤충의 세계는 끝도 모를 신비로 가득 차 있다. 곤충은 물론 곤충을 중심으로 그 주변과 요소들을 아우르는 그런 책을 쓸 계획이다. 가령 유리산누에나방이 위험에 처했을 때 내는 소리의 주파수를 측정해보거나 무게를 줄이고자 고치가 내뿜는 액체의 양을 측정하는 등, 보편적으로 관찰하는 범위를 벗어나 좀 더 다양하게 관찰해보면 훨씬 신비로운 생명의 세계를 만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파브르 곤충기>를 능가하는 책을 쓰고 싶다. <곤충의 사랑>은 그 첫걸음이다."

일본가시날도래의 집에 기생한 물벌을 촬영하는 저자(2008년 3월 15일 청평)
 일본가시날도래의 집에 기생한 물벌을 촬영하는 저자(2008년 3월 15일 청평)
ⓒ 한국곤충동호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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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찍은 일본가시날도래의 집에 기생한 물벌 애벌레의 아가미(길쭉하게 나온것들)로 언뜻 봐선 길쭉한 풀잎같다.(2008.3.15.청평)/작은 사진은 다 자란 물벌이 밖으로 나오는 모습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귀한 사진이다.
 저자가 찍은 일본가시날도래의 집에 기생한 물벌 애벌레의 아가미(길쭉하게 나온것들)로 언뜻 봐선 길쭉한 풀잎같다.(2008.3.15.청평)/작은 사진은 다 자란 물벌이 밖으로 나오는 모습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은 귀한 사진이다.
ⓒ 한국곤충동호인협회/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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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니 반디(저자의 닉네임)님과 함께 으스스한 초봄 남한산성을 헤매며 자나방의 짝짓기를 촬영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도 그랬지만 이 책에서도 생명체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과 대단한 열정을 바로 옆에서 느끼는 듯하다. 이 책은 자연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백과사전이 될 것이며, 내겐 반디님이 없을 때 함께 할 촬영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 - 이민수 PD(EBS 하나뿐인 지구)의 추천사 중에서

책의 저자는 생태관련 탐사를 하는 사람들이 동행하기를 가장 많이 희망하는 사람이다. 어디에 가면 어떤 곤충이 있는지, 어떤 계절, 어떤 날씨에는 어떤 곤충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곤충은 어디에 가면 만날 수 있는지를 그가 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생물에 대한 궁금함을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그를 한국의 곤충 애호가들은 '한국의 파브르'라고 부른다.

1년 365일 중 360일을 곤충 관찰에 나설 만큼의 열정을 지닌 그는 곤충만이 아닌 식물에도 해박하다. 저자의 40년 가까이 지속된 곤충(자연, 생태)에 대한 열정을, 500컷의 생생한 사진과 곁들여 <곤충의 사랑>에 우선 담았다. "파브르 곤충기를 능가하는 책을 꼭 쓰고 말겠다!"는 목표, 그 첫걸음으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곤충의 사랑>/반디(성기수)글과 사진/일공육사/2007년 12월/12000



곤충의 사랑

반디 지음, 일공육사(2007)


태그:#곤충의 사랑, #한국의 파브르, #반디, #자연과 생태, #파브르 곤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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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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