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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2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확대 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확대 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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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들어간 저도 (2월) 25일 저녁에 청와대 내에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았다."

지난 15일 행정안전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말이다. 문제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 대통령은 "컴퓨터를 다시 작동하는 데 열흘이 걸렸다"며 "열흘이 지나도 정상적으로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전 정권의 업무인계 소홀로 새 청와대 전산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업무마비 상황에 처할 뻔했다는 것이다.

앞서 이명박 정부 인사들은 노무현 정부가 인사파일과 문서·자료를 모두 기록보관소에 이관하는 바람에 장관 검증 등에 차질을 빚었다는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이에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이명박 정부 인수위에서 자료 협조를 거부했다"고 반박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번엔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내 전산시스템의 문제를 직접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10년 만에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부득이한 사정이 있다고 하지만 나로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다"며 전 정권의 '비협조'를 타박했다.

대통령이 비밀번호 몰라 컴퓨터 쓰지 못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만 놓고 보면, 청와대 업무처리 시스템인 '이지원(e知園)'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얘기로 들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발해 특허 등록까지 받은 이지원은 문서의 기안에서부터 중간단계의 책임자와 대통령 등 모든 관계자의 견해가 온라인상에 남고 기록화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청와대 업무 대부분은 전자결재로 처리되는데, 이지원 접속이 안 되면 청와대 직원들은 물론 국가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조차 업무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게 된다. 해석에 따라선, 전임 정권이 후임 정권을 '골탕먹이기' 위해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나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7일 이런 해석을 뒤집는 기사가 떴다. 이 대통령이 열흘 넘게 청와대 컴퓨터를 쓰지 못한 진짜 이유가 집무실에 있는 컴퓨터의 비밀번호를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컷뉴스>는 이날 오후 "MB가 청와대 컴퓨터 못쓴 이유는? '비번을 몰라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열흘간 정상적으로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것은 '이지원' 문제가 아닌, 일반적인 '로그인' 문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 언론은 또 청와대 한 핵심 관계자의 말을 인용, "대통령 집무실의 컴퓨터에 '락(Lock)'이 걸려있는데, 그동안 비밀번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는 '이지원'과는 별개의 외부 시스템 문제"라며 "나중에 대통령에게 '패스워드'가 전달된 것으로 안다"고 부연했다.

청와대 내 모든 컴퓨터는 보안상 '부팅'과 함께 화면보호기가 작동되는데, 'CTRL+ALT+DEL' 키를 동시에 누른 뒤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정상 화면에 '진입'할 수 있다고 한다. 청와대 일반 직원들도 출범 초기에 '이지원 교육'을 따로 받아, 대부분 이를 숙지하고 있는데, 정작 '최종 결재권자'인 대통령에게 이같은 사용법과 비밀번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컷뉴스>는 다시 청와대 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 "15일 대통령의 지적이 있은 뒤 부속실에서 사용법과 패스워드를 전달했다"고 전했다.

보도 사실이면 전 정권 억울하게 모함한 셈

"e지원은 말입니다..." 강태영 청와대 업무혁신비서관이 23일 오전 춘추관 에서 '청와대 업무관리 시스템 e지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지원은 말입니다..." 강태영 청와대 업무혁신비서관이 23일 오전 춘추관 에서 '청와대 업무관리 시스템 e지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2005년 2월 23일 당시 강태영 청와대 업무혁신비서관이 춘추관 에서 '청와대 업무관리 시스템 e지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자료사진).
ⓒ 연합뉴스 김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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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명박 대통령의 이미지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전 정권을 억울하게 모함한 셈이어서 도덕적 책임까지 감수해야 한다.

마침 이날 오후 6시경 지식경제부 업무보고를 참석하고 돌아온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을 만나 관련 내용을 물었다. 그러나 이 대변인은 "그 (로그인) 문제를 포함해 전반적인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며 "중요한 문제도 아닌데, 뭘 그러느냐"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추가 질문을 했지만, 이 대변인은 "관련 부서로부터 들은 게 없어서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반면 배용수 부대변인은 "보도 내용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펄쩍 뛰었다. 배 부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취임 당일 비밀번호를 전달받지 못해 3~4시간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열흘 넘게 비밀번호를 몰라서 컴퓨터를 못 썼다는 게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주장했다.

배 부대변인의 설명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발언은 자신의 컴퓨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청와대 전반적인 전산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을 지적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 직원들을 노무현 청와대에 보내 교육을 받게 했지만, 실제 시스템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했다는 게 배 부대변인의 설명이다.

<노컷뉴스>의 첫 보도가 나간 지 3시간 뒤, 그 기사는 '종합'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이 대통령 "청 컴퓨터 시스템 오류 빨리 고쳐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기사 내용에도 "대통령에게 나중에 패스워드가 전달된 측면도 있지만…, '이지원' 내 파일을 지우는 과정에서 발생한 시스템의 문제로 새 정부 인사들이 청와대로 들어갔을 때 대통령 전용 컴퓨터 뿐 아니라 청와대 내 일부 컴퓨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청와대 관계자 말이 추가 인용됐다. 청와대 대변인실의 항의를 받고 기사를 일부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비밀번호를 몰라 지금까지 사용하지 못하다가, 15일에서야 비밀번호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기존 입장을 꺾지 않았다.

김백준 "컴퓨터 작동하지 않은 적 없었는데..."

평소 인터넷을 즐겨 찾아본다는 이 대통령이 정말 열흘 이상 비밀번호를 몰라 컴퓨터를 쓰지 못했던 것일까?

김희중 청와대 대통령실 1부속실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잘라 말했다.

김희중 실장은 "청와대에 처음 왔을 때 이지원을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고, 외부와는 이메일 교환도 안 되고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았다"며 "비서관들로부터 이런 내용을 전해들은 이 대통령이 전반적인 전산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김 실장은 "아무리 정권이 다르지만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냐"고 불만을 토로, 이 대통령의 발언이 전 정권의 업무 인계 소홀을 겨냥한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지난 11일 제11차 국무회의를 진행하는 이명박 대통령.
 지난 11일 제11차 국무회의를 진행하는 이명박 대통령.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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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김희중 실장만큼이나 이 대통령을 오래전부터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김백준 총무비서관의 얘기는 또 달랐다.

김백준 비서관은 "청와대에 들어온 이래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이 대통령이) 어떤 취지에서 그런 말씀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대통령이) 지방에 계셔서 정확한 내용이 확인이 안 된다"며 전화를 끊었다.

김백준 비서관의 말대로라면 컴퓨터는 제대로 작동했지만, 새 청와대 직원들이 전산시스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서 벌어진 일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이 컴퓨터를 언급하며 전 정권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인 이유는 뭘까?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지만, 17일 저녁까지 청와대 대변인이나 부속실에서는 어떤 공식 입장도 내놓고 있지 않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이동관 대변인)라는 식의 안이한 대처가 청와대 컴퓨터의 비밀에 대한 세간의 의혹을 더욱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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