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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나서도 소용없다. 법률이 바뀌었다. 옛날엔 위원들끼리 호선해서 위원장을 뽑게 돼 있었지만, 이젠 법이 바뀌었다."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은 단호했다. 그리고 청와대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을 향해 작심한듯 직격탄을 날렸다. 
 
김 위원장은 최근 정부 여당의 핵심인사들과 '조중동'이 합심해 융단폭탄을 쏟아붓고 있는 '좌파적출' 대상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유인촌 장관은 그를 포함해 문화예술계 공공기관 기관장들을 향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면서 자진사퇴 압력을 넣고 있다.
 
2007년 9월 부임해 2010년 9월에 임기가 끝나는 김정헌 위원장을 13일 오후 대학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만났다.
 
김 위원장은 우선 불편한 심기부터 털어놨다.
 
"노무현 코드를 지녔으니 이 코드와 다른 사람은 나가야 한다, 이 이야기인데, 자가당착적이고 모순된 발언이라 본다. 그 동안 이쪽 코드는 날을 세워서 안 된다고 해놓고, 그쪽 코드는 어떤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 전에 무슨 코드 인사란 비판을 하지 않았음 모르는데, 지난 정권 내내 '코드 인사' 비판해왔던 쪽에서, 되레 자기네들이 코드 인사를 이렇게 심하게 하겠단 의사를 내비춘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퇴할 생각도 없고 사퇴해서도 안된다"
 
김 위원장은 이어 "사퇴할 생각도 없고 사퇴해서도 안된다"면서 "무슨 이상한 코드 색깔 이런 거 얘기하면서, 스스로 물러나야 된다는 건데, 그런 얘기를 듣고는 더 물러날 수 없는 거 같다"며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김 위원장은 '조중동' 등 보수언론을 향해서도 날을 세웠다. 그는 특히 "기사들 보면, 밥자리에 매달리는 치사한 놈으로 만든다"면서 "대 신문사를 칭하는 사람이 팩트도 하나도 안맞는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유인촌 장관은 포럼 강연을 끝내고 나오면서 '기관장하고 만나 쉽게 풀어보겠다'고 말했는데, 난 (유 장관을) 만나서도 그 이야기 안하려 한다"면서 "법이 정한 걸,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어찌하면 그건 불법이다"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또 "(유 장관을) 한두 번 만난 바로는 점잖고 부드러운 인상을 받았다"면서도 "그런 유 장관이 정치적인 완장을 두른 채 그런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실용주의 노선은 좋은 점도 있는 데 정말 우리 삶을 한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문화예술밖에 없다"면서 "실용주의도 중요하겠지만 헝클어진 사회도 예술로 치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약이다.
 
"노무현 코드니 나가라? 자가당착적이고 모순된 발언"

 

- 장관들까지 나서서 "스스로 물러나라"며 자진사퇴 압력이 거센데?

"스스로 물러나라? 그 말은 기자들이 쓴 거 아닌가."

 

- 아니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이 "스스로 물러나라"고 말했단 보도가 있다. 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초청강연에서 “30여개의 산하기관장들 중 철학·이념·개성이 분명한 사람들은 본인들이 알아서 물러날 것”이라며 “새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계속 자리를 지킨다면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것”이라고 말했다. '계속 자리를 지키는 게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다'는 논리를 내세우는데?

"인생을 뒤집는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쪽에서 이야기하는 철학과 이념이 맞지 않는단 이야긴데 그렇다면 그쪽 철학과 이념이 뭐냐? 문화예술에 들이댈 수 있는 그게 뭐냐? 그걸 밝히고, 그 철학과 이념이 문화예술 쪽에도 적용할 수 있는 잣대인지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쪽 문화예술 적용할 철학, 이념을 밝히고 그게 맞지 않으면 스스로 물러나라 말해야지 않을까? 그분들 철학과 이념이 뭐냐? 실용주의냐?"

 

- 결국 '코드'가 다르다는 이야기 아닌가?

"코드가 다르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내가 '노무현 코드'라고 하는데 난 한 번도 '노무현 코드'라고 생각 안 해봤다. 초창기엔 노무현 쪽을 지지해야 한다 생각은 했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것도 아닌데, 밖에서 붙여진 이름이 '노무현을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이다. 그리 붙여져서 항상 거기 내 이름이 들어가 있고, '노무현 코드'로 분류됐다. 모자 씌우듯이 밖에서부터 노무현 코드로 분류당한 거지, 난 한 번도 그리 생각한 적 없다.

 

결국 '노무현 코드'를 지녔으니 이 코드와 다른 사람은 나가야 한다, 이 이야기인데, 자가당착적이고 모순된 발언이라 본다. 그동안 이쪽 코드는 날을 세워서 안 된다고 해놓고, 그쪽 코드는 어떤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 전에 무슨 코드 인사란 비판을 하지 않았으면 모르는데, 지난 정권 내내 '코드 인사' 비판해왔던 쪽에서, 되레 자기네들이 코드 인사를 이렇게 심하게 하겠단 의사를 내비춘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 자진 사퇴할 생각은 없나?

"사퇴할 필요도 없고, 사퇴해서도 안 된다. 지금 사퇴하란다고 해서 사퇴하면 정말 자존심 상하는 거다. 내 스스로, 내가 무슨 성격상 업무에 잘 맞지 않는다든지, 업무 처리 능력이 처진다든지, 균형 감각 상실한 채 업무를 한다는 것을 스스로 발견한다면 스스로 물러날 순 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이상한 코드 색깔 이런 거 얘기하면서, 스스로 물러나야 된다는 건데, 그런 얘기를 듣고는 더 물러날 수 없는 거 같다."

 

- 청와대나 장관이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꿋꿋이 지키겠단 건가?

"친구가 버텨야 된다더라. 그런데 뭘 버텨? 앉아서 직무를 열심히 하면 되지. 꿋꿋이 지키고 버틸 게 없다. 내 임무를 열심히 하는데, 정말 결격 사유가 생겨 스스로 물러나기 전엔 어떤 영향도 안 받을 거다."

 

 

"언론이 근거도 없이 사람 치사하게 만든다"

 

-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그냥 있음 된다. 작년 초에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공운법'을 제정해 공공기관 운영장 같은 경우 3년 임기를 정해, 전문성을 가지고 직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정했다. 일단 후보를 공모제 통해 추천 받아 장관이 공공기관 기관장을 임명한다는 법률을 한나라당도 같이 통과시켰을 거다. 그렇게 임기 보장해놓고, 이제 와서 정부 장관이 그렇게 이야기한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 같다. 청와대가 나서도 소용없다. 법률이 바뀌었다. 옛날엔 위원들끼리 호선해서 위원장 뽑게 돼 있었지만, 이젠 법이 바뀌었다."

 

- 왜 이토록 집요하게 자진사퇴를 요구한다고 생각하나?

"그쪽 정치 목적이 있겠지. 직무 전문성 떠나 그렇게 이야기하는 건 큰 실례다. 문화예술계를 모독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 지금 언론이 앞서서 '자진 사퇴'할 기관장 명단을 거론하고 있다. 정부보다 한 발 앞서서 언론이 살생부를 만든다는 지적도 있는데?

"기자들 상상력이 발동한 거다. 기사들 보면, 사람 치사하게 만든다. 밥자리에 매달리는 치사한 놈으로 만든다. 사설까지 실어서. 대 신문사 칭하는 사람이 '팩트'도 하나도 안 맞고. (한 일간지 사설을 가리키며) '김정헌 문화예술위원장과 신선희 국립극장장은 올해 초 유인촌 당시 인수위 자문위원을 만나 "임기를 마치게 도와 달라"고 했다고 한다.'(조선일보 3월 13일자 사설)
 

아니, 세상에 내가 정말 미쳤다고 인수위 자문위원한테 임기를 마치게 도와달라고 하나? 이게 어디서 나오나? 근거도 없게. 사람 치사하게 만든다.

 

또 날더러 '민예총 이사장 출신'이라고 하는데, 민예총은 초창기 잠깐 관여했고, 초창기 이사를 하긴 했는데 이사장 출신이라고 자기들 마음대로 썼다. 그러니까 색깔과 코드를 일부 언론매체가 증폭시키는 것 같다. 더 진한 색깔로 바르고 없는 코드도 찾아 갖다 꽂고."

 

"유인촌 장관의 정치적 발언 안타깝다"

 

- 이명박 정부의 사퇴 압력이 거센데 괜찮겠나?

"법률에 보장된 임기를, 본인이 특별한 하자가 없는데도 어떻게 한다는데, 어떻게 한다는지 모르겠다. 유인촌 장관도 포럼 강연 끝나고 나오는데 기자들이 물어보니까 '기관장하고 만나 쉽게 풀어보겠다' 하는데, 난 만나서도 그 이야기 안 하려고 한다. 그 이야기 하면 뭐하겠나? 유 장관이 '스스로 물러나셔야지 않겠어요?' 그러면, 난 '아닌데요' 그걸로 끝이지. 어떻게 하겠나? 어찌 할 수 없다. 법이 정한 걸,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어찌 하면 그건 불법이 된다."

 

- 문화예술계 활동하며 예전에 유인촌 장관을 만났다거나 알고 지내진 않았나?

"예전에 만나 알고 있다. 유 장관이 사재 털어 극장 운영하는데, 그런 일 하는 걸 봐서 훌륭하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한두 번 만난 바로는 점잖고 부드럽고 그런 개인적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유 장관이 정치적인 완장을 두른 채 그런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거에 정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현장 예술인 출신이고, 현장 예술계를 제일 잘 아는 분이 어떻게 정치하고 문화예술을 그리 섞어서 얘기할 수 있는지 안타깝다. 문화예술계 수장으로 좀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었다고 본다. 상당히 정치적인 발언인데, 문화예술을 첫 번째 주자로 이야길 하니까, 문화예술계가 받는 충격은 상당히 크다고 본다."

 

- 이명박 정부에 하고픈 말이 있다면?

"실용주의 노선은 좋은 점도 분명 있을 거다. 그런데 정말 우리 삶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문화예술 밖에 없다. 문화예술 가치에 조금 더 주목해서, 정말 조금 더 천천히 심사숙고해서 문화예술 관련 업무를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실용주의도 중요하겠지만 헝클어진 사회도 예술로 치유할 수 있다. 치유까지 할 수 있다. 예술이 삶을 바꾼다. 난 그리 본다. 어쨌든 지금 이 소모적인 논쟁이 빨리 수습되길 바란다."


태그:#자진 사퇴, #김정헌, #공공기관 기관장, #코드 인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유인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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