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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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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49). 인터뷰 말미에 물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할 기회가 주어지면, 무슨 말을 할 것인가"라고. 턱 밑에 손바닥을 괴고 잠시 생각하더니 돌아온 답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기분나쁜 말을 할 수밖에 없어요. 지나친 자신감으로 의욕이 앞서고, 조급하게 성과를 내려는 태도, 이것을 버렸으면 해요. 회사 운영하는 것하고 국가 (운영)하는 거와는 완전히 다르잖아요."

지난 6일 오후 그를 만났다. 10㎡ 남짓한 그의 KDI 국제정책대학원 연구실은 각종 자료와 서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침에 방송 잘 듣고 있다'고 인사하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유 교수는 매일 아침 MBC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난 원래 아침형 인간이 아니다"면서도 "방송국뿐 아니라 주변의 협박성(?) 권유로 맡게 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1년 6개월을 지내고 있다. 보수 일부에선 그를 '좌파'라고도 하지만, 결코 그렇지도 않다.

"참여정부 7% 성장 공약, 부끄럽지만 학문적 숫자 아니었다"

유 교수는 시장을 중시하는 경제학자다. 무엇보다 시장경제의 합리적이고 공정한 규칙을 제대로 세우자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게다가 그는 참여정부 출범 때 '7% 경제성장' 공약을 수립하는 등 깊이 관여했던 원죄(?)도 안고 있다.

지난해 말 김상조 교수·홍종학 교수·곽정수 <한겨레> 기자 등과 함께 써낸 <한국경제 새판짜기>라는 책에서, "경제개혁은 외면당하고, 성장지상주의와 시장만능주의가 판치는 것을 보고 심한 좌절감을 맛봤다"고 유 교수는 회고했다.

그를 만난 이유도 이렇다. '경제살리기' 구호로, '경제대통령'으로 정권을 잡은 이명박 정부 역시 '7% 성장'을 내걸었다. 물론 지금은 유 교수뿐 아니라 대다수 경제전문가는 올해 5% 성장도 어렵다고 보고 있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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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정부 때 7% 경제성장 공약을 만들었던 분이 왜 현 정부 7% 성장은 불가능하다고 보시는지.
"우선 6년 전의 7% 성장 공약은 현재로 따지면 6%나 6.5% 정도로 볼 수 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니까. 이보다 중요한 것은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7%는 정치적인 숫자예요. 학문적인 수치가 아니었지요."

그는 곤혹스러워했다. 하지만 결코 회피하지도 않았다. 되레 적극적이었다.

- 정치적인 숫자였다면.
"(잠시 숨을 고르며) 우리는 성장과 분배를 함께 갈수 있다고 봤어요. 실제 나름대로의 성장 모형을 가지고 있었고…, 선거를 앞두고 보수언론에선 '노무현은 분배에 사회주의 중심이어서 성장이 안 될 것'이라고 몰아세웠죠. 그래서 '우리도 경제성장 세게 한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었던 측면도 있었던 거죠."

- 이명박 정부에선 '당장은 어려워도 7% 성장은 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이번에 747공약(7% 성장·4만 달러·7대 선진국 진입) 내세운 것 보고, 조금 무리긴 하지만, 선거과정에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문제는 정말로 그것을 하려고 한다면, 또 현재 같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큰일나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세금 좀 깎아준다고 기업이 당장 투자 나설까"

결국, 그는 책에서 말한 것처럼 참여정부에 심한 좌절감을 맛봤다. 노사문제를 비롯해 재벌과 금융개혁 등이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하나하나 말하기 시작하면 밤을 새워야 할지 모른다"면서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유 교수는 "참여정부 출범 첫해인 2003년 하반기부터 2만불 소득 달성 들고 나오면서 성장지상주의로 선회했다"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선 꾸준한 개혁을 통해 투명성과 공정성을 세웠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 현 정부에선 각종 규제완화를 통한 투자 활성화 등으로 성장을 하겠다는 것인데.
"이명박 정부가 지금 하겠다고 하는 것은 노무현 정부 때 했던 것들이에요. 법인세 인하는 노 정부가 제일 먼저 한 것이고, 특소세 인하도 마찬가지지. 출자총액제한제도 없애겠다고 하는데, 노 정부 때 각종 예외규정 만들면서 사실상 죽은 규정이나 다름없어요."

- 별 차이가 없다는 이야긴가요.
"노 정부도 성장지상주의였는데 성장이 제대로 됐는가 말이에요. 현 정부도 (노 정부에서) 배워야 한다는 거죠. (웃으면서)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도 노 전 대통령만큼이나 말을 막 하더군요."

- 그래도 기업들이 과거보단 우호적으로 나오는데, 투자가 늘면 성장도 높아질 수 있지 않을까요.
"(곧바로) 기업이 투자를 정치적으로 합니까? 기업은 실제 투자하면 돈이 남느냐를 보고 해요. 지금처럼 경제여건이 안 좋은 상황에서, 세금 조금 깎아준다고 (투자에) 얼마나 나설지… 글쎄."

"물가 잡는다고 완장차고... 전형적인 박정희식 관치 부활"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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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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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1시간여 지났을 무렵이다. 이명박 정부의 물가대책부터 각종 기업 규제 완화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그의 목소리 톤은 어느새 올라가 있었다.

- 그래도 요즘 보면, 대통령이 직접 현장에 나가서 물가도 챙기고 하는데, 국민들 입장에선 '열심히 뛰는구나' 생각도 할 것 같은데요.
"요즘 물가 대책 내놓는 거 보면, 상당히 박정희식 관치 경제의 조짐이 엿보입니다. 가격이라는 것이 시장에서 형성되는 것이고, 물가 안정을 위해 여러 경제정책을 쓸 수 있는데… 물가대책으로 무슨 완장 차고 돌아다니면서 단속한다고 하고…. 70년대 3공화국시절 때 이야기 아닌가 싶어요."

다시 그의 말이다.

"공공요금 동결시키고, 유류세·고속도로 통행료 내린다고 하면 일시적으로 좋을 수 있죠. 근데, 유가 계속 오르고, 원가도 오르는데 이득이란 것 금방 사라져 버려요. 원가 오르는데 동결하면, 나중에 적자를 누가 메웁니까. 세금으로 하거나, 어차피 (국민이) 지불 해야 돼요."

유 교수는 사교육비 시장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정부 스스로 영어 공교육 강화라고 해놓고, 영어 사교육 시장 수요만 키워놨다고 비판했다. 한쪽에선 생활비를 가중시키는 각종 정책을 내놓으면서, 다른 쪽에선 완장 차고 다니는 모양이 영 아니다는 것이다.

- 얼마 전 숭례문 화재를 두고, 개방 리스크에 대한 글을 쓰셨던데요.
"개방에 따른 자율과 책임을 쓴 거예요. 선진국처럼 규제완화를 하는 것이 무슨 거대한 선(善)인 것처럼 나오는데, 제대로 봐야죠. 어떤 면에선 선진국들이 규제가 많습니다. 건축규제 심하죠. 간판을 맘대로 달기를 하나, 집을 제대로 짓기라도 하나 말이죠."

- 금융분야를 비롯해 글로벌 수준으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하는데.
"금융시장은 경제시스템의 안정성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보다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나 감시, 감독 능력이 뛰어난 미국을 보세요. 그런 나라에서도 서브프라임 사태 같은 엄청난 금융사고가 터지잖아요."

유 교수는 "우리는 금융감독 수준이나, 리스크 관리도 부실한 상황에서 무작정 런던이나 뉴욕 같은 금융시장 흉내 내면, 위험한 불장난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통령 시시콜콜 아는 척 하는 것 최악... 과장이 할 얘기를"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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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막바지에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이야기가 모아졌다. 그의 어투는 돌아가는 법이 없었다. 그는 "대통령이 세세하게 밀가루 값 원인 놓고 어쩌고저쩌고, 시시콜콜하게 아는 척하는 것은 최악"이라며 "노무현 대통령도 그렇게 하다가 망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유 교수의 말이다.

"국무회의 자리에 대통령이 폼 잡고 앉아서, '밀가루 값이 왜 올랐나'라고 이야기하면, 거기 장관들이 모르겠어요?. 만약 모르면 그 내각은 자폭해야 하지만…(웃음)

혼자 아는 척하고, 누가 이야기하면 면박 주고, 나중엔 토론이 되지 않아요. 노무현 대통령도 그랬어요. 과장들이 할 얘기를 대통령이 하면, 될 일도 잘 안됩니다."

그는 이어 "무조건 열심히 일하면 성과가 금방 나올 것처럼 보이지만 경제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단기적인 성과나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유 교수는 또 "대통령으로 폼 잡을 일 많다"면서 "경제는 최대한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큰 정책 방향을 설계하고 그들이 올바르게 가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5공화국 때 전두환 대통령이 김재익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경제를 믿고 맡긴 점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전두환 대통령이 정치사회적으로 정말 나쁜 일을 했지만, 경제정책에선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 수석은 80년대 중반 박정희식 개발 모델을 극복하기 위해 금융과 긴축 재정을 통해 물가안정에 적극 나섰었다. 또 기업과 금융 쪽에선 자유주의적 개혁정책을 추진했었다.

유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제대로 된 친 시장정책을 폈으면 좋겠다"면서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있도록 규칙을 다듬고, 집행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태그:#경제위기론, #이명박, #유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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