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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성은 중국에서도 다양한 소수민족이 사는 지역이다. 그동안 윈난 서북부는 험한 산맥으로 둘러싸여 접근이 쉽지 않았다. 중국은 작년 3월 아시아횡단철도 다리-루이리를 잇는 338km 구간 공사에 착공하여 본격적인 윈난 서북부 개발과 서남아시아 진출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현지를 다녀온 모종혁 통신원의 르포를 통해 개발과 변화의 바람을 타고 있는 윈난 서북부의 현실을 6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말]
볜마오제 길거리에서 요깃거리를 파는 한 버마인 노점상. 인터넷 전화도 운영하여 고향에 안부를 전하려는 버마인으로 항상 들끓는다.
 볜마오제 길거리에서 요깃거리를 파는 한 버마인 노점상. 인터넷 전화도 운영하여 고향에 안부를 전하려는 버마인으로 항상 들끓는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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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맨손으로 중국에 와 지금은 어엿한 내 가게에 집·자동차까지 샀으니, 차이니즈 드림(Chinese Dream)을 이룬 셈이죠."

마우잉(41)은 지난 세월을 떠올리며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중국 윈난(雲南)성 더홍(德宏)다이·징포(傣·景頗)족자치주 루이리(瑞麗)시 볜마오제(邊貿街)에서 보석상점을 운영하는 그를 주변 일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마우잉은 중국 접경인 버마의 한 산간마을에서 루이리로 와 고정 고객을 지닌 상점과 버마인의 쉼터 역할을 하는 식당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마우잉은 "크지 않은 가게지만 사업 기반도 탄탄하고 노천 식당도 열다보니 볜마오제 일대에서 사는 버마인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면서 "버마에서 중국으로 갓 들어온 사람들이 나를 찾아 살 곳과 장사 비법을 묻곤 한다"고 말했다.

루이리에는 마우잉만 사는 것이 아니다. 마우잉은 "4년 전에는 동생 가족을, 작년에는 사촌동생 일가를 불러들였다"면서 "경제 사정이 피폐하여 제대로 일거리를 찾을 수 없는 버마와 달리 중국은 돈벌 기회가 많은 나라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버마인 사이에서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과 버마의 무역관계가 밀접해지면서 중국을 찾는 버마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대박의 꿈에다 비자 발급이 쉽고 신앙의 자유까지 보장되어 루이리로 버마인이 몰리고 있다.

일명 '보석거리'로 불리는 볜마오제는 버마인의 거리이기도 하다. 수십여 채의 보석상점이 밀집한 볜마오제에서 버마인이 운영하는 가게를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볜마오제 보석상점의 1/4은 버마인이 주인이거나 중국인의 명의만 빌려 운영하고 있다.

볜마오제에 들어서면 "좋은 비취와 옥을 싼 값에 판다"며 버마인 삐끼가 다가와 구매를 권유한다. 중국에 갓 입국한 이들은 고정된 가게가 없어 길거리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것이다. 거리에서 뿐만 아니라 음식점, 일용상점, 유흥업소 등 볜마오제 일대의 적지 않은 상권은 버마인이 장악하고 있다.

"볜마오제 주변에서 사는 버마인만 수천여 명에 달한다"면서 마우잉은 "변경자유무역구인 제까오(姐高)와 루이리 도심만 따져도 족히 1만 명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루이리에 버마인 사회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깔끔한 상가로 정비된 볜마오제 보석거리. 제까오 출입국관리소에서 볜마오제를 오가는 총알택시가 성업 중이다.
 깔끔한 상가로 정비된 볜마오제 보석거리. 제까오 출입국관리소에서 볜마오제를 오가는 총알택시가 성업 중이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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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리보석상가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소량의 비취·옥 판매를 전문으로 한다.
 타이리보석상가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소량의 비취·옥 판매를 전문으로 한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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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취 들고 차이니즈 드림 안고 루이리에 정착

버마인의 중국 입국은 간단하다. 중국 내 거주하는 친인척이나 사업하는 중국인의 초청장을 받으면 쉽게 거주비자를 받을 수 있다. 초청장을 보내줄 사람이 없다고 해도 브로커에게 200~300달러만 주면 바로 해결된다. 거주비자가 안 되면 간단한 신청서류를 내고 1~3개월짜리 관광비자로 중국에 들어올 수 있다.

중국이 버마인에 문호를 활짝 연 이유는 특별난 상품을 가지고 오기 때문이다. 버마인은 중국인이 열광하는 보석 비취(翡翠)의 원석을 가져온다. 비취는 '천국의 한 조각'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색채와 은은한 기품을 지니고 있는 보석이다.

백색·황색·청색·연보라·검정 등 다양한 색을 지닌 비취는 예부터 악의 소리를 막는다 하여 중국인의 큰 사랑을 받아왔다. 고대 중국인은 사업에 행운과 번영을 가져다준다 하여 중요한 사업거래 때 비취를 오른손에 꼭 쥐기도 했다. 또한 여자는 남자에게 나비 모양을 한 비취를 선물하여 사랑을 고백한 풍습도 있었다.

오늘날 비취를 비롯한 옥의 가공 생산량 1위는 중국이다. 전 세계적으로 비취는 중국의 보석이라 알려졌지만, 비취의 가장 큰 산지는 버마다. 버마 각지에서 채취된 비취 원석은 정식 통관절차를 거치거나 중국으로 들어오는 버마인을 통해 윈난성으로 유입된다. 루이리·텅충(藤沖)·잉장(盈江) 등 버마 인접 도시에서 비취는 진귀한 보물로 가공된 뒤 중국 내지로 보내진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가 도약하면서 헤아릴 수 없는 부자들이 양산되고 있다. 최근 비취는 부자들의 투자 대상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지난 3~4년 사이 가격이 10배 가까이 폭등했다. 작년 4월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시에서는 무려 6000만 위안(한화 약 78억원)에 달하는 비취 목걸이가 거래되기도 했다.

작년 10월 14일 중국 주간지 <삼련생활주간>은 "윈난성 서부 소수민족지역은 버마에서 들어온 비취 원석이 가공·판매되면서 호황을 맞고 있다"고 보도했다. <삼련생활주간>은 "루이리 일대의 비취 판매·유통회사는 33%의 세금을 내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익을 내고 있다"면서 "적지 않은 버마인, 인도인이 연 상점은 세금도 내지 않고 영업 중"이라고 전했다.

비취에 열광하는 중국인에게 공급하기 위해 루이리에서는 불법 밀수와 밀입국도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제까오에서는 비취와 옥을 손에 들고 허울뿐인 국경 철책을 넘나드는 버마인을 쉽게 볼 수 있다. 제까오 출입국관리소는 중국 내에서 허술한 통관 관리로 유명하다.

마우잉은 "루이리에서 거래되는 대부분의 비취와 옥은 국경을 오가는 따이공(帶工)에 의해 운반된다"고 말했다. 마우잉은 "버마에서 정식 통관절차를 거쳐 원석을 들여오려면 높은 관세로 인한 부담이 너무 크다"면서 "비취와 옥은 값이 비싸 한 사람이 가져오는 몇 근의 적은 분량도 수십, 수백만 위안에 달한다"고 밝혔다.

비취 원석을 가공하는 데 여념 없는 노동자들. 버마에서 들어온 비취는 루이리에서 진귀한 보물로 가공된 뒤 중국 각지로 보내진다.
 비취 원석을 가공하는 데 여념 없는 노동자들. 버마에서 들어온 비취는 루이리에서 진귀한 보물로 가공된 뒤 중국 각지로 보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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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잉 사촌동생이 운영하는 노천식당은 볜마오제 버마인의 쉼터 역할을 한다.
 마우잉 사촌동생이 운영하는 노천식당은 볜마오제 버마인의 쉼터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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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의 차별을 피해, 변경무역의 이익 찾아 고향 떠나

일부 버마인은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중국에 정착했다. 타이리(臺麗)보석상가에서 비취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가게를 운영하는 자자(28). 6년 전 버마에서 중국으로 온 그는 이슬람교도다.

2005년 현재 버마 인구는 5320만 명. 버마는 불교가 국교로, 다수민족인 버마족을 중심으로 전체 인구의 89.4%가 불교도다. 25%를 차지하는 130여 개 소수민족 가운데 일부 종족은 기독교(4.9%), 이슬람교(3.9%), 힌두교(0.5%) 등을 믿는다. 특히 군사정권의 은밀한 탄압이 이어지자, 버마 내 기독교와 이슬람교 신자들은 버마를 등지고 있는 실정이다.

자자도 고향은 버마 북부인 카타. 군부쿠데타 이후 지속된 군사정권의 이교도 차별정책 때문에 고향을 떠나 루이리로 왔다. 자자는 "중국은 버마와 달리 이슬람교도의 종교생활을 자유롭게 보장하고 있다"면서 "볜마오제에는 이슬람 사원도 있어 루이리 버마 이슬람교도들의 중심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자자는 "버마 정권의 버마족·불교도 우대정책으로 사업하는 데 애로점이 많았다"면서 "서방세계의 경제제재 후 버마 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한 것도 버마를 떠난 원인"이라고 밝혔다. 그는 "예부터 버마 내 이슬람교도는 상업에 종사하여 이재에 밝았다"며 "중국인이 비취와 옥을 많이 찾아 장사가 잘 된다"고 자랑했다.

실제로 중국은 이슬람교도들 사이에 매력적인 거주지로 각광받고 있다. 지난 10월 21일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중국정부가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석유·광물 등을 보유한 이슬람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문화대혁명 시기 파괴됐던 이슬람 사원과 학교를 열고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5년 동안 저장(浙江)성 이우(義烏)시에는 약 2만 명의 이슬람 이민자들이 정착했다"면서 "그 중 이라크에서 온 사람만 1천명이 넘는다"고 전했다. 신문은 "서방세계에서는 이슬람교도가 테러리스트로 인식되기 십상이지만 중국에서는 종교적 자유를 만끽하며 집과 차를 사고 성공을 꿈꾼다"고 소개했다.

무역 업무를 위해 루이리에 나와 있는 버마인도 적지 않다. 제까오 출입국관리소에서 만난 한 버마인 무역상은 "중국산 농기계 구매 상담을 위해 왔다"고 밝혔다. 그는 "버마 농기계 시장은 중소형 품목 위주로 형성되어 있다"면서 "중국산은 가격이 저렴하여 8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작년 8월 버마 의류생산자협회는 버마정부에 루이리를 통해 봉제의류의 원자재를 수입토록 허가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의류생산자협회는 "2005년부터 일본·유럽에서 주문이 늘어 160여 개의 공장이 생산량을 증가하고 있다"면서 "원자재의 90% 이상이 중국으로 수입되는데 루이리 등 국경무역을 통해 수입되면 시간과 비용이 대폭 절감되어 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볜마오제 주택가에 있는 한 일용상품 가게. 가게에서 판매되는 물품 대부분은 인편을 통해 버마나 태국에서 들여온 것이다.
 볜마오제 주택가에 있는 한 일용상품 가게. 가게에서 판매되는 물품 대부분은 인편을 통해 버마나 태국에서 들여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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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생활환경의 '꼬방집'에서 살아가는 루이리 버마인들. 거주조건은 열악하지만 최소한의 일자리가 있어 이들의 삶은 버마에서보다는 한결 낫다.
 열악한 생활환경의 '꼬방집'에서 살아가는 루이리 버마인들. 거주조건은 열악하지만 최소한의 일자리가 있어 이들의 삶은 버마에서보다는 한결 낫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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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거 열풍, 인신매매, 마약... 중국으로 중국으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루이리에서 살아가는 버마인도 늘고 있다. 마오깡제(卯岡街)의 버마인 운영 상점에서 만난 한 승려는 "국내 정세 때문에 잠시 루이리에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하길 꺼려하는 그는 "불교도의 신앙 활동을 주관하고 있다"면서도 "작년 9월에 중국에 왔다"고 하여 8월 반정부 시위에 따른 검거 열풍 후 중국에 왔음을 시사했다.

태국에서 활동 중인 카친여성연합은 중국 및 인도 국경지대에 사는 소수민족인 카친족 여성들이 납치되어 중국으로 인신매매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카친여성연합은 2000년부터 5년간 발생한 63건의 여성 인신매매 사례를 조사할 결과, 일자리를 찾아 중국-버마 국경지대로 오는 여성들이 인신매매의 타깃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카친여성연합은 "버마는 비취·옥과 목재를 중국에 수출하고 중국산 제품을 대거 수입하면서 일자리를 찾는 여성들이 국경도시에 몰려든다"면서 "다른 지역에 비해 수입이 높은 만큼 성매매 수요도 많고 일부 여성은 직업소개, 불법납치 등의 경로로 중국으로 보내진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인지 루이리 시내에는 버마식 안마 서비스를 내건 성매매업소가 성업 중이다. 기자가 묶은 호텔에도 버마 여성을 '공급'해주겠다는 전화가 수시로 걸려왔다. 갓 개장한 한 룸살롱의 종업원도 "중국 내지에서 온 여성뿐만 아니라 버마 미인도 준비되어 있다"면서 호객행위를 했다.

버마정부는 국경지대에서 벌어지는 인신매매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2005년 9월에는 인신매매 금지 법안을 반포했고, 재작년과 작년에는 중국정부와 인신매매 문제에 대한 협력회의를 잇따라 개최했다. 중국에 팔렸던 35명의 버마 여성을 버마로 송환해오는 등 성과도 있지만, 심각한 경제난은 국경지대로 향하는 여성들의 발걸음을 막지 못하고 있다.

버마·태국·라오스 등 골든트라이앵글에서 생산되는 마약의 유입도 여전하다. 금세기 들어 중국정부는 버마 산간지역에서 생산되는 마약의 중국 유입을 뿌리 뽑기 위해 버마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다. 중국수출보험공사는 마약재배농가의 작물 전환 자금을 지원하면서 생산된 작물을 직접 구입하기도 한다.

작년 12월 2일 중국관영 <신화통신>은 "2007년 루이리에서 적발된 마약 관련 사건 수는 299건, 획득한 마약량은 124.5㎏으로 전년에 비해 눈에 띄는 감소세를 보였다"면서도 "중국인과 결탁한 버마 마약판매업자가 루이리를 통해 중국 내지로 유통시키는 범죄행위는 끊이질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민주화 투쟁, 인신매매, 마약…. 버마의 문제는 루이리에서도 축소판처럼 벌어지고 있다.


태그:#버마, #차이니즈 드림, #민주화 투쟁, #인신매매, #비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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