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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성은 중국에서도 다양한 소수민족이 사는 지역이다. 그동안 윈난 서북부는 험한 산맥으로 둘러싸여 접근이 쉽지 않았다. 중국은 작년 3월 아시아횡단철도 다리-루이리를 잇는 338km 구간 공사에 착공하여 본격적인 윈난 서북부 개발과 서남아시아 진출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현지를 다녀온 모종혁 통신원의 르포를 통해 개발과 변화의 바람을 타고 있는 윈난 서북부의 현실을 6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말]
버마로 통하는 루이리의 제까오 출입국관리소. 루이리는 두 개의 시차, 두 개의 국가가 공존하는 도시다.
 버마로 통하는 루이리의 제까오 출입국관리소. 루이리는 두 개의 시차, 두 개의 국가가 공존하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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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지닌 땅' 루이리(瑞麗). 중국 윈난(雲南)성의 성도인 쿤밍(昆明)에서 798㎞ 넘게 떨어져 있는 루이리는 버마와 접해있는 국경도시다. 루이리는 행정구역상 윈난성 더홍(德宏)다이·징포(傣·景頗)족 자치주에 속해있다.

'중국 속의 작은 버마', '대 버마 국경무역의 거점', '중국-버마-인도를 연결하는 3국 교역로의 중간 기착점', '버마·태국·라오스의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에서 생산되는 마약이 중국으로 유입되는 첫 관문'…. 루이리는 여러 별칭을 지닌 야누스의 도시다.

지난달 24일 낮 더홍자치주의 주도인 루시(潞西)를 거쳐 루이리에 도착한 기자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루이리는 면적 1020㎢, 인구 14만 명의 작은 변경도시. 중국 서남부 끝에 위치한 루이리지만, 인구 37만 명인 루시보다 훨씬 번화하고 활기찼다.

루이리의 번화가 난마오제(南卯街)에는 TV·DVD플레이어·휴대폰 등 가전통신제품에서 오토바이·자동차 등 매장이 성업 중이었다. 중국 변방의 중소도시답지 않게 난마오제에는 다이아몬드·옥·비취 등 고가의 보석을 취급하는 전문매장이 즐비했다. 원주민인 다이·징포족에다 중국 각지 및 홍콩·대만에서 온 상인들, 버마에서 온 무역상까지 루이리 도심은 온갖 민족의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쿤밍에서 자동차로 13시간 이상 걸리는 루이리는 중국과 버마의 최대 무역도시이자 중국의 남아시아 진출 교두보다. 루이리 도심에서 7㎞ 떨어진 제까오(姐高)는 두 개의 시차와 두 개의 국가를 공유하는 마을이다.

기자가 찾은 제까오 출입국관리소는 중국 베이징시간으로 오후 3시였지만, 국경선을 맞은편에 두고 50m 떨어진 버마 룽기는 오후 2시를 가리켰다. 웅장한 국경관문을 사이에 두고 시간과 국가가 바뀌는 것이다.

날마다 오전 9시면 제까오 출입국관리소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타고 중국으로 들어오려는 버마인으로 북적인다. 간단한 입국 절차를 받고 중국에 온 버마인이 사는 물건은 전자제품, 생활용품, 수송기계 등 다양하다. 루이리는 버마가 1997년 미국과 EU(유럽연합)의 경제제재 이래 부족한 물품을 들여오는 대표적인 내륙 무역항이다.

작년 중국과 버마의 무역액은 20.57억 달러로, 전년 대비 40.9% 증가했다. 중국의 대 버마 수출액은 16.86억 달러, 수입액은 3.71억 달러로, 중국은 13.15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냈다. 루이리를 통한 수출액은 3억 달러로 전년대비 17%나 늘었다. 타지에서 체결된 수출거래를 제외한 통계임을 감안할 때, 루이리는 중국 최대의 대 버마 수출 전초기지다.

루이리 사거리에 조성된 공원의 세워진 루이리 표지석. 루이리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지닌 땅'이라는 뜻이다.
 루이리 사거리에 조성된 공원의 세워진 루이리 표지석. 루이리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지닌 땅'이라는 뜻이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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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버마식 불탑인 광무허마오금탑. 17세기에 세워져 더홍자치주에서 원형을 보존한 몇 안 되는 불교유적이다.
 전형적인 버마식 불탑인 광무허마오금탑. 17세기에 세워져 더홍자치주에서 원형을 보존한 몇 안 되는 불교유적이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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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속의 작은 버마... 대 버마 무역의 거점, 루이리

루이리는 본래 버마의 땅이었다. 기원전 4세기 버마인 선조의 한 종족이 루이리 근교 강변에 국가를 세우면서 루이리의 역사는 시작됐다. 오랫동안 '멍마오'(勐卯)로 불리던 루이리가 중국 영역에 합병된 것은 지난 13세기. 1276년 버마가 몽골 대군에 패하면서 루이리는 중국의 일부분이 됐다.

명·청대를 거쳐 1932년 루이리라는 현 명칭으로 바뀌었지만, 루이리는 명목적인 중국의 지배에 놓였을 뿐이었다. 대다수 주민은 여전히 버마계 다이족과 징포족이었고, 종교 영역에서도 소승불교가 민중의 신앙을 지배했다. 문화와 풍습도 중국보다 버마에 더욱 가까웠다.

루이리 원주민의 정신세계와 일상생활까지 지배하지는 못했지만, 지난 8세기 동안 중국은 루이리의 지배권을 빼앗기지 않았다. 1942년 버마를 점령한 일본군이 루이리도 차지했지만, 중국은 1945년 중일전쟁 승리 후 바로 지배권을 되찾았다.

중국이 변방의 작은 도시 루이리를 중시한 것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아열대 원시우림 지대인 루이리는 고대 남부 실크로드의 중간 기착지이자, 버마로 통하는 중요한 관문이다. 중국 내지에서 생산된 문물은 루이리를 거쳐 버마·인도 등으로 나가고, 중국인이 선호하는 보석인 비취는 버마에서 채취되어 루이리를 통해 중국에 들어온다.

종래 중국에서는 서역 승려들에 의한 불교 전래설이 굳건히 내려왔지만, 최근에는 남부 실크로드를 통한 전래설도 힘이 실리고 있다. 루이리 근교에 있는 광무허마오금탑은 버마를 거쳐 전래된 불교의 흥성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광무허마오금탑은 전형적인 버마식 불탑으로, 17세기에 세워져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 몇 안 되는 불교유적이다. 금탑은 옛날 루이리로 찾아온 황금오리를 기리기 위한 것으로 수백 명의 승려가 기거했던 사찰의 부속 탑이었다. 더홍자치주에서도 가장 큰 금탑은 문화대혁명 시기 파괴된 사원과 달리 오늘날에도 거친 풍상을 굳건히 버티고 서있다.

예부터 문명과 교류의 관문으로 번성했던 루이리지만, 사회주의정권이 들어선 이후 한동안 침체기를 맞이했다. 1992년 개혁개방정책을 가속화한 중국정부는 루이리를 변경개방도시로 지정했고, 2000년에는 중국 유일의 변경자유무역구인 '루이리제까오개발구'를 설치했다.

중국 서남부에는 루이리 외에도 광서(廣西)자치구의 핀샹(憑祥)·둥싱(東興), 윈난의 허커우(河口) 등 내륙무역항이 있지만, 중앙정부가 비준한 변경자유무역구는 루이리제까오가 최초다. 제까오개발구 내에 진입한 화물은 수출제품으로 간주되어 증치세 환급 등 세수혜택을 받는다. 버마에서 제까오로 유입된 제품은 밀수 혐의가 있는 것 외에는 세관이 검사 관리를 하지 않는다.

고급 주택가 건설이 한창인 제까오무역구의 한 단지. 제까오무역구는 중국 유일의 변경자유무역구로 개발 열기가 한창 뜨겁다.
 고급 주택가 건설이 한창인 제까오무역구의 한 단지. 제까오무역구는 중국 유일의 변경자유무역구로 개발 열기가 한창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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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차량번호판을 달고 중국에 들어와 제까오무역구에서 물품을 구입한 뒤 버마로 출발하는 한 트럭.
 버마 차량번호판을 달고 중국에 들어와 제까오무역구에서 물품을 구입한 뒤 버마로 출발하는 한 트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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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도 자유롭고 특혜도 많은 변경자유무역구, 제까오

현재 루이리에서 중국과 버마 간 무역은 전형적인 중계무역의 형태를 띠고 있다. 중국 상인은 버마로부터 옥·비취 등 보석과 수공예품을 사서 중국 내지로 내보내고, 버마 무역상은 생활필수품을 사간다.

루이리와 접한 버마 접경도시 무세도 중국을 상대로 한 국경무역의 메카로, 중국에서 실려 온 전자제품과 생활용품으로 번성하고 있다. 버마 상인들은 승용차·트럭·오토바이 등을 몰고 간단한 입국수속을 받은 뒤 중국 경내에 들어온다. 루이리 시내와 제까오무역구에서는 버마 번호판이 실린 차량을 쉽게 볼 수 있다.

제까오무역구에서 만난 레이콩(32)도 매주 중국을 오가는 버마 무역상이다.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중국정부로부터 발급받은 통행증이 있으면 여권 없이도 간단한 신분 확인절차만 받고 중국으로 입국한다"고 말했다.

레이콩은 "중국산 휴대폰과 부품을 사서 낮은 관세를 낸 뒤 버마로 들여가는데 품질도 괜찮고 가격도 저렴해 버마 소비자에게 인기가 높다"고 소개했다. 수입되어 판매된 중국산 제품이 고장날 경우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레이콩은 "중국인 수리 기술자가 버마 대도시에 나와 있고 버마인을 정기적으로 쿤밍에 보내 기술을 배워오도록 하고 있어 문제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중국이 루이리에 변경자유무역구를 설치하고 버마 무역상에게 여러 특혜를 주는 이유는 버마의 무궁무진한 경제적 가치 때문이다. 1988년 군부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의 철권통치가 지속되고 있는 버마는 1인당 GDP가 200달러도 안 되는 아시아 최빈국 중 하나다. 군사정권은 1989년 국명을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꾸고 잇따른 민주화투쟁과 작년 8월 대규모 반정부 시위도 유혈 진압하는 강공책을 견지하고 있다.

오랜 서방세계의 봉쇄정책으로 경제가 피폐해졌지만, 군부 지도자와 상류층을 중심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어 버마 민중의 큰 원성을 사고 있다. 미국과 EU는 버마에 대한 정치경제적 압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높은 세금으로 인한 피해는 일반 민중만 고스란히 받고 있을 뿐이다.

군사정권이 서방세계의 경제제재를 비웃는 것은 막대한 석유·천연가스와 광물자원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 버마에는 5100억㎥의 가스와 32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버마 군부에 막대한 무기를 팔면서 버마 천연자원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은 매년 버마 군사정권이 자행하는 인권유린 문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안을 거부하고 있다.

버마 투자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작년 중국의 대 버마 투자는 27개 항목에 걸쳐 4.75억 달러에 달했다. 역대 외국인 대 버마 투자액수로는 6위에 머물고 있지만, 2006년 이후 투자액만 치면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중국은 석유·천연가스 개발과 전력생산에 투자를 집중하다가 최근 들어서는 제조업·광업·축산업·수산업·부동산 등으로 분야를 확대하고 있다.

간단한 입국 수속절차를 받고 중국으로 입경하는 버마인들. 대 중국 무역에 종사하는 버마 상인은 여권 없이 통행증만으로도 중국으로 입국할 수 있다.
 간단한 입국 수속절차를 받고 중국으로 입경하는 버마인들. 대 중국 무역에 종사하는 버마 상인은 여권 없이 통행증만으로도 중국으로 입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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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까오무역구에서 영업 중인 모든 상점에는 중국어와 버마어가 병기되어 있다. 버마 상인들과 거래하다보니, 상점 내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모두 간단한 버마어를 구사할 줄 안다.
 제까오무역구에서 영업 중인 모든 상점에는 중국어와 버마어가 병기되어 있다. 버마 상인들과 거래하다보니, 상점 내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모두 간단한 버마어를 구사할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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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자원에 눈독 들이는 중국, 버마 군사정권의 숨통 터주다

중국과 버마 군사정권의 밀월은 급증하는 무역관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버마 최대 수출국은 태국이지만 수입국은 싱가포르가 1위, 중국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버마로 수출되는 상품이 대부분 중국에서 나온 중계무역품인 것을 감안하면, 버마에 필요한 공산품을 공급해주는 것이 중국임을 알 수 있다.

작년 12월 윈난성 상무청과 버마 상무부가 공동주최로 연 루이리 변경교역회에서도 30개 항목에서 6284만 위안(한화 약 82억원)의 수출 상담이 체결됐다. 중국기업의 대 버마 투자도 41.62억 위안(약 541억원)이나 체결되어 버마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지난 2월 20일 <윈난일보>는 "제까오 출입국관리소를 통한 소무역 통관액은 2002년 24.3억 위안(약 315억원)에서 2007년 42.5억 위안(약 552억원)으로 해마다 15.3%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윈난일보>는 "작년 더홍자치주 무역액은 5억5590만 달러로 전년대비 31.2%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는데 그 중 변경무역액은 4억9115만 달러로 전년대비 25.9%나 증가했다"고 전했다.

더홍자치주 출입국관리소의 한 관계자도 "작년 버마로 출국한 횟수는 569만8772회로 전년 대비 36%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2007년 더홍자치주를 찾은 중국 내지 관광객이 342.7만 명임을 감안할 때, 무역상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관광객이 버마를 찾았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쉬레이(여) 양광(陽光)여행사 과장은 "300위안(약 3만9000원)의 비자 발급비만 내면 당장 단체관광비자를 받아 버마 투어를 다녀올 수 있다"고 말했다. 쉬 과장은 "쿤밍 주재 버마총영사관에서 입국비자를 받은 경우 한국인의 자유 입국도 가능하다"면서 "루이리는 중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버마로 육로 입국할 수 있는 유일한 관문"이라고 말했다.

작년 1월 28일 홍콩 주간지 <아주주간>은 "버마 접경도시 무세·멍라 등지에는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불법 도박장이 성업 중"이라고 보도했다. <아주주간>은 "버마에 원정 도박을 나가는 중국인들은 대 버마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쉽게 비자를 받고 출국한다"면서 "밀려오는 중국인들 덕분에 버마 국경도시에서는 인민폐가 통용되고 있고 지방정부는 막대한 재정수입을 거두고 있다"고 전했다.

난마오제에서 만난 신강위구르자치구 출신 야곱(36)은 "중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상인 때문에 루이리에 고급 주택가가 잇따라 들어서고 공단과 물류센터도 건설되고 있다"면서 "윈난성 성도인 쿤밍 못지않게 활기차고 돈 벌 기회가 많은 도시"라고 말했다.

중국정부는 루이리의 발전에 부응하듯, 다리(大理)와 루이리를 잇는 철도 338㎞ 구간 공사를 작년 3월에 착공했다. 아시아횡단철도(TAR) 남부노선의 마지막 구간인 이 철도가 2010년 개통되면, 중국의 진출은 날개를 단 격이 된다. 버마를 대중화경제권에 품으려는 중국의 행보는 오늘도 가속화하고 있다.


태그:#버마, #국경무역, #루이리, #윈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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