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KBS 이사회가 신임 사장으로 임명 제청키로 의결한 서동구씨는 지난 대선 때 노무현 후보의 언론 고문을 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적임자가 아니다. 후보 시절 언론 분야를 조언했던 인사를 대통령이 된 후 KBS 사장에 임명한다면 KBS는 대통령의 언론관을 홍보하고 시행하는 시범관이 될 우려가 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의 후보 시절 언론 고문을 거침없이 밀어붙이려는 것은 현 정권 역시 방송을 전리품쯤으로 여기거나, 아니면 방송을 국정의 도구화하려는 의도라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없지 않다."

 

<조선일보>가 2003년 3월 24일자에 쓴 사설('대통령의 사람'을 다시 KBS 사장으로?)의 일부 내용이다. <동아일보>도 같은 날 사설(새 KBS 사장 적격자인가)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서동구씨)는 지난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뛴 언론고문이다. 그런 인물이 사장에 임명될 경우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고, 앞으로 권언유착을 끊겠다는 노대통령의 약속이 빈 말이 될 수 있다는 게 정치권과 방송가의 우려다. …역대 정권에서 우리나라 방송들은 특정 정파에 치우쳐 사실이나 진실을 왜곡하고 그로 인해 공정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그런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집권측이 또 다시 공영방송을 권력의 도구로 활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 KBS는 정치나 권력의 입김을 차단할 수 있는 독립성을 되찾아야 한다."

 

이런 신문들이 이번에는 입을 굳게 닫고 있다. 최시중 전 한국갤럽 회장이 새로 출범한 방송통신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된 데 대해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거센 비판이 있는데도 말이다.

 

방송위원장에 대통령측근·정치인사 안 앉히는 이유

 

최시중 전 한국갤럽 회장이 어떤 인물인가? '방송위 초대위원장에 내정된 최시중'이라는 27일자 <조선일보> 기사를 보자.

 

"신설되는 방송통신위원회 초대 위원장에 내정된 최시중(71) 대통령 취임 자문위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정신적 후견인)라 할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의 측근 중 측근, 고문 중의 고문'으로 불린다. …이 대통령과 같은 경북 포항 출신이다.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서울대 57학번 동기생이며 이 대통령의 대학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온 사이다.…이 대통령도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할 때면 늘 그를 찾았다. 선거기간 내내 '6인회의'로 불리는 이명박 캠프 최고의 의사결정기구에서 조정자 역할을 했다. …당내 경선과 대선 당시 최 내정자는 공식 선거조직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대신 외부에 사무실을 내고 별도로 여론조사팀을 관리했다. 이명박 후보의 전략과 홍보는 사실상 최 내정자가 좌우했다.…이런 그의 경력을 고려할 때 정치판을 읽는 눈이나 여론을 파악하는 능력은 이미 검증이 됐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방송·통신 전문가도 아니고 행정경험도 없는 최 내정자가 '공룡조직'으로 불리는 방송통신위원회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조선일보> 기사대로 최시중 전 한국갤럽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중 측근'으로 이명박 대선 캠프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였던 '6인회의' 멤버였으며, 이명박 후보의 선거 전략과 홍보를 사실상 좌우한 인물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어떤 곳인가. KBS 이사 선임을 비롯해 공영방송사 경영진 구성을 사실상 좌우하는 곳이고, 방송 인허가 등 방송에 대한 감독과 규제, 방송정책, 거기에 더해 통신 정책까지를 총괄하는 기구다. 따라서 방통위원장은 KBS 사장 이상으로 더 엄격한 정치적 독립성이 요구된다. 통합방송법 제정 이후 역대 방송위원장에 적어도 정치권 인사나 대통령의 측근 인사를 앉히지 않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방통위원장은 '정치적 능력'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시중 내정자는 어떤가,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의 '2003년 서동구 기준'으로 보자면 그는 도저히 방통위원장을 맡을 수 없는 사람이다. 최시중씨는 서동구씨처럼 '언론고문'이나 '후보 시절 언론에 대해 조언' 한 정도가 아니다. 최고의사결정기구인 '6인회' 멤버이자 선거 전략과 홍보를 사실상 '좌우'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일보>나 <조선일보>는 최시중 전 한국갤럽 회장을 방통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내정한 데 대해 아무런 비판도 하고 있지 않다.

 

<조선일보>가 최시중씨가 "방송·통신 전문가도 아니고, 행정경험도 없어 공룡조직으로 불리는 방송통신위원회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지만, 방통위원장의 자격 조건으로 가장 중요한 '정치적 독립성' 문제나, 정권의 방송 장악 의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되레 이명박 대통령과의 '화려한 관계'를 들어 "정치판을 읽는 눈이나 여론을 파악하는 능력은 이미 검증됐다"고 할 정도다. 2003년 서동구 KBS 사장 취임 때 결사반대했던 논거가 이번에는 '정치적 능력'으로 둔갑했다.

 

방통위, '대통령의 방통위'로 전락하나

 

방송통신위원회가 대통령 직속기구화 되는 데 대해 한나라당도 누누이 방통위 독립성이 보장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번 최시중씨의 첫 방통위원장 내정을 보면 한나라당의 이런 다짐이 기만이었음을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될 경우 방통위는 출발부터 그 독립성과 공신력이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방통위의 출범은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맞는 방송통신기구를 만들자는 데서 출발한 것이다. 방통위가 제역할을 다하자면 무엇보다 방통위 위원들이 특정한 정치세력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사업자들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방통위에 위임된 막중한 역할을 무리 없이 해나갈 수 있다.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를 방통위원장에 앉힌다면 방통위는 현재의 조직 구상 그대로 '대통령의 방통위'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될 경우 방통위원회는 정파적이어서 그 어떤 역할도 제대로 못했다는 평가를 들은 직전 방송위원회보다도 훨씬 더 정파적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정파적인 방통위 체제로는 새로운 방송통신 미디어 정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무척 어렵게 될 것이다. 방통위는 그 순간 절름발이 방통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방통위가 일을 '실용적'으로 잘 하자면 방통위원장은 물론 방통위 위원 모두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인선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태그:#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방통위원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