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모든 사람은 균형잡힌 식사, 거주할 품위 있는 집,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설비, 적절한 의료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 - 마하트마 간디

 

'섹시'와 함께 보낸 하룻밤

 

집이라고 해봐야 막 집을 짓기 시작할 때 철근으로 뼈대를 세우고, 시멘트로 대충 발라놓은 딱 그 상태인데, 시멘트 맨 바닥에 손님을 재우기가 민망했는지 내 짝과 내가 묵게 될 집의 주인아주머니는 그 집에서 '비상시'에만 사용할 것 같은 붉은 양탄자를 깔개 이불로 내어주셨다.

 

3명 정도 누우면 딱 알맞을 이불 위로 아주머니의 사위, 딸, 딸의 세발배기 아들, 아주머니, 그리고 내가 누웠다. 아 ,그리고 한 명(?) 더. 내 발밑으로 이 집의 막내딸인 강아지 섹시(Sexy)가 네 다리를 한 곳으로 주욱 뻗고 얌전히 누웠다.

 

녀석은 새벽 내내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끙끙 앓는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내 다리 밑을 스멀스멀 기어가던 검지 손가락만한 바퀴벌레를 목도했을 땐, 아 더 이상 잠은 내 것이 아니었다.

 

결국 눈 벌겋게 뜨고 섹시의 앓는 소리를 들으며 새벽을 맞았는데, 아침에 보니 녀석이 새끼를 낳은 것이 아닌가. 그 섹시하지 않은(?) 신음소리는 나름 해산의 고통의 표현이었던 셈이다.

 

아주머니와 식구들은 그 소리에 아랑곳 않고 정말 깊은 숙면을 취하는 것 같았다. '일상'과 '체험'은 이런 게 다른 것이로구나. 하룻밤 현지 체험은 이렇게 끝났다.

 

아주머니가 카부야요로 이주당한 이유

 

아주머니가 사는 곳은 필리핀 수도 메트로마닐라에서 남쪽으로 50㎞ 떨어진 카부야요다. 아주머니의 집은 처음부터 카부야요에 있지 않았다. 5년 전만 해도 그녀는 마카티 산안토니오지역에 살았다.

 

현재 필리핀은 수도 메트로 마닐라를 중심으로 남과 북에 철도를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필리핀 정부는 2003년 12월 메트로 마닐라의 교통체증 해소와 슬럼지역 개발, 그리고 노쇠한 철로를 개선하여 장기적으로 루손섬에 철로를 확장, 내륙간 교통체계를 정비하겠다는 목적으로 ODA(공적개발원조)를 지원받기 원했다.

 

한국 정부가 남부 철도사업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면서 시행되었고, 북부철도의 경우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공사가 진행되었다. 한국은 총 공사거리 60㎞ 중 1단계인 34㎞ 구간 사업에 5000만 달러의 차관을 주기로 약속했다.

 

남부철도 프로젝트는 처음에는 일본이 필리핀에 차관을 주려했으나 필리핀 정부가 현지 필리핀 주민들의 이주문제는 고려하지 않은 채 개발원조금만 먼저 '챙기려 하자' 일본은 이를 철회했다. 자국민들의 이주 문제부터 먼저 해결하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한국은 필리핀 현지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필리핀 정부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 때문에 아주머니는 사업주체인 필리핀 철도청으로부터 그녀가 살던 마카티에서 45㎞가 떨어진 이 곳 카부야요로 이주할 것을 '명' 받았다. 아주머니와 같이 강제 이주된 가구는 현재 약 7000가구에 달한다. 

 

수원국 상황 고려 없는 ODA, '돈'이 아닌 ‘독'

 

가장 현안은 생계를 꾸리는 일이다. 다행히 이 곳은 이주 후 집도 있고, 전기도 들어오지만(그러나 전기공사가 민영화되면서, 한 달만 연체되어도 가차 없이 전기가 끊기고 식수로 사용하는 물은 식수 부적격 판정을 받은 우물뿐이다) 집값과 땅값을 내지 못하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이주 조건으로 주택부지와 이주비용을 약속했지만 이주 후 6개월 후부터 30년에 걸쳐 상환하도록 조건을 걸었다. 게다가 이주 단지로 들어오는 길목은 사유지라는 이유로 대중교통수단이 들어올 땐 통행료를 내야해서 모든 주민 사람들이 마을로 들어올 때 통행료를 내고 있었다.

 

카부야요에는 생계를 이을 아무런 수단이 없어 주민들은 이곳에서 45km나 떨어진 마카티로 기차를 타고 가 일을 하는데, 출퇴근 시간만 왕복 6시간이 소요된다. 교통비로 나가는 돈도 만만치 않아서 돈을 벌러 나간 가장은 토요일에나 한 번씩 가족들 얼굴을 보고 간단다. 가족과 떨어져 사니 생활비는 이중으로 들고 실제 수입은 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필리핀 각지에서 카부야요로 쓰레기가 반입되는 상황이라 쓰레기 오염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공적개발원조(ODA)란?

 

정부 또는 공공기관이 외국에 제공하는 원조를 말한다.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과 복지증진을 주목적으로 하며 차관과 무상증여, 기술 제공 등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무상증여 비율을 원조 총액의 25% 이상으로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유엔은 국민총소득(GNI) 대비 원조 규모를 2009년 0.5%, 2015년엔 0.7%로 권고하고 있다. 한국은 2009년까지 0.1%, 2015년까지 0.25%로 높일 계획이다.

국제사회는 세계 각국의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발전의 주요과제로 빈곤국에 ODA(공적개발원조)의 지원을 권하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입 후 경제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 국제사회로부터 평가받는 한국도 최근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이 증대됨에 따라 개도국 등에 ODA를 지원하고 있다.

 

OECD의 개발원조위원회는 1969년 ODA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포함한 공공부문 또는 그 실시기관에 의해 개발도상국, 국제기구 또는 개발 NGO에 공여할 것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 및 복지증진에 기여하는 것이 주목적일 것 ▲차관일 경우, 양허성이 있는 재원이어야 하며, 증여율이 25%이상일 것 ▲개발원조위원회 수원국 리스트에 속해있는 국가 및 동 국가를 주요수혜대상으로 하는 국제 기구를 대상으로 할 것의 조건을 충족하는 자금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ODA를 지원할 때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은 현지 주민의 주거권이나 개발권을 포함한 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을 펴야한다. 그러나 ODA 지원에 비교적 후발주자인 한국 정부는 ODA 수원국을 선정하고 심사하는 단계에서 경제적 실효성을 앞세워 수원국의 상황은 도외시하고 있다.

 

그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한 필리피노

 

실제 ODA 현지조사와 현지를 다녀온 이들의 전언에 따르면, 해당 정부의 주민에 대한 보상 없는 강제 이주 및 철거사업으로 인해 대부분의 주민들은 생계수단인 토지를 빼앗기고, 학교도 없는 허허벌판에 짐짝처럼 부려져 아이들은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지경이며, 기본적인 식사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한다.

 

수원국의 삶의 질을 높이고 개발을 돕고자 하는 ODA 지원으로 현지 주민들의 사회경제적인 삶의 질은 저하되거나 삶이 파괴되었고, 빈곤은 더욱 심화되었다. ODA지원은 '돈'이 아닌 '독'이 된 셈이다.

 

아주머니는 UPSAI(Urban Poor of Southville Association. Inc 도시빈민연대) 회원이다. UPSAI는 초기 이주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일종의 지역주민조직이다. 조그마한 집터 한 곳을 사무실로 쓰고 있고, 의료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마을인지라 비상 약품을 보급하는 약국을 운영하기도 한다. 회원들 중에 임원을 뽑아 운영되며 마을에 문제가 발생할 때 조직의 회원들이 모여 비상대책 회의를 열기도 한다.

 

나라에서 헌신짝처럼 버린 그들은 자생적으로 모여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조달하고, 아이들 교육 걱정을 하며, 비상시 약을 나누어 먹는다. 그런데도 '슬픔이여 안녕'처럼 웃음을 잃지 않는다.

 

필리핀은 정치세력이 토호를 장악해 빈부의 격차가 아주 심하고 이로 인한 양극화가 하늘을 찌른다. 단 하나 공평한 게 있다면 온 누리를 차별 없이 내리쬐는 햇빛 정도. 그들은 자주 하늘을 보고 웃었다. 생활이 어려워 힘들지 않느냐는 내 질문에 12살 게이 소년 루이는 이렇게 말했다.

 

"내일은 또 어떻게 되겠죠."

 

아주머니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셨다. 더한 긍정이 있겠느냐는 표정으로.

 

미군이 주던 초콜릿이 달기만 했는가

 

한국도 해방 후 미국과 유엔으로부터 원조를 받아왔고 1995년 ODA지원국이 됨으로써 받기만 하던 입장에서 주는 입장이 되었다. 1991년부터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를 설립하여 무상원조도 실시하고 있다.

 

전쟁 통에 아이들이 미군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칠 때, 새 모이 뿌리듯 초콜릿을 뿌리던 군인들을 기억하는가, 배고픈 아이들에게는 그보다 더한 기쁨이 없었다. 빵은 모든 것을 이긴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성장하고 나이 들어가며 전쟁 중의 가난을 돌이켜보았을 때도 그 초콜릿이 달콤했던 추억으로만 남아있을까. 누구는 전쟁이 갈라놓은 가족이 있을지도 모르고, 누구는 전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지도 모르며, 누구는 군인들의 횡포를 기억하며 치를 떨지도 모른다. 초콜릿 하나가 그런 상처의 덩어리들을 줄줄이 연상시키게 할 수도 있다.

 

주는 것은 쉽지 않다. 받는 입장의 감정과 상태가 세심히 고려돼야 한다. 프랑스 영화 <마이 베스트 프렌드>의 주인공 프랑수아는 어느 날 그를 좋아하는 친구가 단 한명도 없음을 알고,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친구를 사귀어 사람들 앞에 나타나 자신에게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친구가 있음을 자랑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사람을 사귀는 방법을 몰라 헤매는 프랑수아는 어느 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택시운전사 브로노를 만나 사람과 친해지는 법에 대해 개인교습을 받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상대방의 마음을 사고 싶은 프랑수아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돈을 꿔주려 하거나 지나친 친절을 보여 상대를 부담스럽게 한다. 그 때 브로노가 말한다.

 

"이보게 친구, 상대가 받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그 때 주는 거라네."

덧붙이는 글 | 1월 26일부터 2월 3일까지 성공회대 시민사회복지대학원 사회복지학과 학생 15명과 필리핀에 다녀온 기록입니다.  


태그:#공적개발원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