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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원전 번역서를 출간한 그리스 로마 원전강독의 산실인 정암학당은 횡성에 자리하고 있다.
▲ 정악학당의 전경 플라톤 원전 번역서를 출간한 그리스 로마 원전강독의 산실인 정암학당은 횡성에 자리하고 있다.
ⓒ 정암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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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월 사단법인으로 거듭난 그리스어 원전강독 집단 '정암학당'이 2월  19일에 조촐한 현판식을 했다. 동계 집중 독회를 위해 학당에 와있던 연구원 10명과 이정호 교수의 제자 몇 명이 모인 소박한 자리였다.

학당장 김인곤 박사와 이사장 이정호 교수가 현판식을 진행하고 있다.
▲ 현판식을 진행하는 정암의 가족들 학당장 김인곤 박사와 이사장 이정호 교수가 현판식을 진행하고 있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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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원전을 연구하는 사단법인 정암학당'이라는 현판은 정암학당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 학당입구에 세워진 현판석 '그리스 로마 원전을 연구하는 사단법인 정암학당'이라는 현판은 정암학당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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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당 입구에 신영복 교수의 필체로  새겨진  '그리스 로마 원전을 연구하는 사단법인 정암학당'이라는 문구는 정암학당이 지향해 온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준다.

정암학당이 아무도 주시하지 않는 고대철학 원전 번역 작업에 그렇게 매달리는 것은 후배 연구자들과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된 1차 연구 자료 하나는 남겨야겠다는 생각과 인간 사유의 종착점은 인문학일 수밖에 없다는 한결같은 믿음 때문이다.

정암학당은 지난 1997년부터 고대 그리스 원전만을 붙들고 씨름했으며 강독 8년 만인 2005년에야 비로소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의 공동번역본을 조심스럽게 세상에 선보였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서양철학의 근간이 되는 상당히 중요한 자료집인데도 거의 주목받지 않았다. 안타까운 우리 인문학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을 비롯해 국내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플라톤의 미번역 대화편들은 일차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 정악학당서 번역해 출간한 7권의 역서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을 비롯해 국내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플라톤의 미번역 대화편들은 일차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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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학당은 지난 2007년부터  플라톤 대화편 43권(위서포함) 완역을 목표로 본격적으로 대화편을 출간해 현재 <크리티아스>, <뤼시스> ,<알키비아데스 Ⅰ.Ⅱ>, <크라튈로스>,<메넥세노스>,<에우튀데모스> 등 총 6권의 역본을 내놓았다.

인문학이 꽃필 미래를 그리며 기꺼이 인문학의 주춧돌과 모퉁이 돌이 되려는 사람들이다.
▲ 정암학당 연구원들 인문학이 꽃필 미래를 그리며 기꺼이 인문학의 주춧돌과 모퉁이 돌이 되려는 사람들이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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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번역작업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특히 인문학 토대인 고대 철학의 주춧돌이 되기로 결심한 그들의 번역작업은 몇 배나 엄격하고 까다로운 자기 검열을 거친다. 오역을 줄이기 위한 공동 독회, 일 년에 두 차례 학당에 칩거해 하루 12시간씩 강행군을 하는 집중 독회는 말할 것도 없고 용어 하나를 놓고도 몇 시간, 때로는 며칠씩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며 작업 하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들의 노력과 땀의 대가가 하나 둘 세상에 얼굴을 내밀 때마다 더 많은 대중들이 기꺼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든다면 '우리를 밟고 가라. 모퉁이 돌이 돼도 좋다'는 마음으로 꿋꿋하게 인문학의 주춧돌을 놓는 그들에게 자그마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동서양 고전 잘 번역해야 인문학 발전"

다음은 정암학당 김주일 박사와의 일문일답이다.

- 사단법인이 되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지는가?
"공부야 늘 해왔던 일이니 연구원 생활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정호 선생님이 사단법인을 만든 것은 연구자들이 지원을 받아 안정적인 상태에서 더 열심히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고 싶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연구자들 입장에서는 누군가의 후원을 받으면 후원자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또 학술진흥위원회(학진)에 프로젝트를 내서 학진에서 연구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행정적으로도 지금까지 이정호 선생님이 모든 일을 혼자 담당하셨는데 사단법인 특성상 상근, 연구실장, 학당장, 이사장 등으로 조직이 풍성해지니 이정호 선생님의 일을 덜어 드릴 수 있을 것이다."

- 다른 분들이 안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진부한 말 같지만 인문학 텍스트가 제대로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라 동서양 여러 고전 양질 번역이 나와야 건전한 학문 풍토와 사회 풍토가 이뤄진다. 개인 사유의 밑바탕이 되는 것도 바로 번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꺼이 이 일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마르지 않는 고전의 샘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 아니겠는가? 아직은 삶을 영위하는 방식에 대한 사회적 서비스가 안 되어 있어 인문학이나 고전에 눈길을 돌리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돌아보게 될 것이고 그때 아무것도 없으면 안 되니 묵묵히 자료를 준비하는 것이다."

- 철학도 삶에서 출발했을 텐데 대중이  철학에서 멀어진 이유가 무엇이고 그들과 소통하는 해법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철학을 대중과 멀어지게 한 첫 번째 원인은 일차적 자료가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70-80년대 <철학에세이>는  많은 사람들이 읽어 사회적으로 영향력도  미쳤다.  하지만 반짝하는 유행으로 끝나고 이어지지 못했다. 그렇게 한 개인이 대중적인 글을 쓰고 개인의 역량에 그친 이유가 철학의 일차적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읽어보고 싶어도 자료 자체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양질의 일차 자료집이 많이 번역돼 나와야 한다.

두 번째는 깊이 있는 사색이 대중과 소통될 통로가 마련되지 못하고 대학 중심으로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대중과 호흡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만 철학 과목이 안정적으로 대학의 필수과목으로 자리했기에 학자들이 자리를 얻고 그 자리를 유지하려고 안주해 안이했다. 이제는 철학을 어떻게 일반 대중 속으로 끌어들이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인터넷 대중강좌나 현대적인 접목을 통해 대중속으로 파고들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대중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삶의 언어들을 가지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하는 사람과 연계해줄 수 있는 장치가 없었다는 점이다. 삶에서 철학이 시작되지만 항상 쉬운 용어로 철학을 논할 수는 없다. 심오하게 철학해야 할 사람도 있다. 하지만 윤구병 선생님 표현처럼 학문 사투리, 즉 기호를 모르면 일반 대중은 그 뜻을 알 수 없다. 그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현대철학처럼 기호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기본적으로는 많이 사용되는 일상의 언어를 가지고 사유를 해야 사유 자체가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글쓰기가 지나치게 아카데미화 한 것도 문제지만 대중도 막연한 생각으로 서너 장 읽고 '철학은 모르겠다' '철학은 어렵다' 며 책을 덮지 말고 끈기를 가져야 한다."

- 원전에 충실하려는 의도로 번역하다 보니 생소한 용어탓에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벽이 생기는 것 같다. 역자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나?
"학당이  번역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금 일반 독자들이 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가이다. 익숙한 일상의 언어로 번역해 최대한 가독성을 높이면서 원전의 의미를 살리려 노력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학당홈페이지 www.jungam.or.kr에 들어가시면 독회실적을 비롯, 후원방법 등을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정암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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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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