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수경 스님(화계사 주지. 불교환경연대 대표)은 거듭된 인터뷰 요청에 손사래를 쳤다.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100일 순례 행렬을 따라 걸으면서 이틀 동안 10여차례에 걸쳐 간곡히 부탁했으나, "나를 성찰하는 묵언 수행의 길"이라며 한사코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도법 스님 역시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따라왔으니,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하라"고 말했지만, 다른 순례자와 길을 걸으며 대화하는 것을 귀동냥해서 기사로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수경 스님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그런데 설상가상!

 

"오늘까지는 그래도 <오마이뉴스>가 유일하게 따라붙어서 순례단이 인터뷰에 응했지만, 내일부터는 걸으면서 묵언수행 원칙을 철저히 지킵시다."

 

'묵언 순례'하는 사람들... 묵언 취재해야 해?

 

순례 이틀째되던 날인 지난 14일 저녁 김포의 용화사에서 머물면서 수경스님이 순례단을 향해 한 말이다. 상황이 이쯤되면 수경 스님의 인터뷰는 완전히 물 건너간 것이다.

 

<오마이뉴스> 취재팀도 내일부터는 '묵언취재'를 해야 할 판이다. 게다가 3일동안 순례단 동행취재를 계획하고 온 상황이어서 인터뷰할 수 있는 시간도 단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

 

"스님, <PD 수첩>은 잘 보셨습니까?"

 

순례단이 용화사 숙소에서 빔프로젝트를 설치해 전날 방영된 PD수첩을 본 뒤 밖으로 잠시 나온 수경 스님에게 물은 말이다.

 

수경 스님은 "잘 보았고 잘 만들기는 했지만, 좀 허전한 느낌"이라면서 "순례단이 추구하는 생명의 가치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내친 김에 나는 "그 생명의 가치에 대해 말씀 좀 해주십시오"라고 수경스님께 청했다. 그리고 "이명박 당선인이 자성을 해야 할 상황인데, 왜 종교인들이 성찰의 길에 오른 것인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이미 물건너간 인터뷰를 되살릴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속내를 숨긴 채.

 

저녁 9시경, 한강 하구의 수려한 밤 경관이 내려다 보이는 용화사 종무소에서 수경 스님과 마주 앉았다. 그 뒤부터 무려 2시간 30여분에 걸쳐 대화 형태를 띤 사실상의 '설법'이 진행됐다. 용화사 주지인 지관 스님(김포 환경운동연대 대표)도 곁에서 거들었다.   

 

"내 문제와 경부운하 문제는 둘이 아니다"

 

순례에 나선 수경 스님의 가장 큰 화두는 '자성'과 '진정성'이었다. 수경 스님은 특히 자신뿐만 아니라 조계종의 자성을 강하게 촉구했다. 대신 '이명박 운하'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그 전 단계, 즉 '이명박 운하'가 세인들의 경제적 탐욕을 자극하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 종교인들은 우선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출발하기 전에도 말했듯 무엇을 하려고 한 게 아니라 내 자신을 돌아보는, '운하'라는 사건을 통해 그 동안의 삶을 갈무리하는 그런 발걸음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따라 살아온 사람으로서 불교가 무엇인지, 정말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라고 하는 게 무언지, 100일동안 순례를 통해 초심으로 돌아가서 내 자신을 성찰하고, 이를 통해 삶을 정리하는 그런 시간을 가질 생각입니다."

 

수경 수님은 또 "내 문제와 경부운하 문제가 둘이 아니다"면서 "순례에 참여하고 있는 성직자들 정말 침묵을 지키면서 기도를 열심히 하고, 거기에서 나는 큰 힘을 축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정성과 간절함. 이것 말고는 국민들을 설득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수경 스님은 같은 맥락에서 "물질 중심의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논리로 설득할 문제는 아니다"라며 "그걸로 풀 문제였으면 학자들이 진작 해결했다"고 강조했다.

 

10여분정도 흘렀을까. '설법'의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경 스님의 눈치를 슬쩍 봤다. 기록을 해도 좋을 상황일까? 잠시 머뭇거린 뒤 수경 스님에게는 '그냥 기록용'이라고 얼버무릴 작정으로 함께 취재에 나선 <오마이뉴스> 인턴 기자에게 "기록을 하라"고 부탁했다. 다행히도 수경 스님은 제지하지 않았다. 대신 조계종단의 대오각성을 촉구하면서 직격탄을 날렸다.

 

"불교의 가치는 '불살생'... 불교는 왜 침묵하나"

 

"불교의 가치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가 불살생 계율입니다. 살생은 자비의 존재를 끊어놓는 행위입니다. 그런 행위를 한다면 종교인이라 할 수 없지요. 살생을 하지 않고 생명을 살리자는 사람들이 종교인입니다. 그런데 지금 종교인들은 생명을 죽이는 대운하를 찬성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도 조계종에서 확 작심하고, 전국 사찰의 산문을 폐쇄해야 합니다. 전국 사찰에서 100일 기도 들어가고, '우리는 더 이상 전 국토 망가뜨리는 이런 작태는 인정 못 한다'고 하면 국민 여론이 바뀌겠지요. 

 

도대체 우리 사회에서 불교가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신들 말하는 내용과 행동이 이렇게 다르냐'는 겁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불살생이라는 것이 사회에서 하나도 먹혀들어가지 않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침묵을 지키는 것이 무슨 불교입니까. 불교 탈을 쓴 집단 아닙니까."

 

수경 스님은 이어 "지금은 주지를 하든, 뭘 하든 이것도 권력이라 생각한다"면서 "수행자가 권력을 느끼고 영화를 느낀다면 이건 끝난 거야. 그건 수행자가 아니지"라고 일갈했다.

 

그는 "나는 인터넷 상에서는 상습적으로 국책사업을 발목 잡는 승려로 나온다"면서 북한산 터널 반대 운동에 개입했던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내가 북한산에 갔던 것은 환경문제로 간 것이 아니고, 북한산 비구니 승려들이 터널 반대운동 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LG그룹에서 용역 50명을 동원해 비구니 3명을 집어 던졌다고 하더라고요. 허리 다치고 가슴이 찢어지고 병원에 입원해있는데 어느 한 곳에서도 사과 한마디 없고, 자기 교단 성직자가 그렇게 되었는데 조계종에서는 전부 눈치만 보고 있어요.

 

그래서 이건 아니다. 개발 문제, 환경 문제도 아니다. 이건 조계종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조계종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전통 1600년 된 종교라 하면서 이 따위로 행동하면, 이런 종단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냐는 겁니다."

 

<조선> 불매운동은 명분없다?... "자신들을 치면 노발대발하더니"

 

조계종단의 문제점을 성토하는 수경 스님의 말을 듣고 있자니, 최근 종단 차원에서 <조선>에 대해 불매운동을 한 것이 떠올랐다. 신정아 사건에 대한 <조선>의 보도 태도에 발끈한 것과 '이명박 운하'에 대한 침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난감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명분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조선> 불매운동에 대한 수경스님의 평가다. 예상 외의 답변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수경 스님의 설명을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특정 사건에 대해 불교계를 왜곡한다고 해서 불매운동하는 게 걸맞은 일입니까. 차라리 그것을 하려고 했으면 '해방 이후 조선일보의 행태가 어째 그렇게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하고 말이야, 거대 언론으로서 사회의 리더 역할을 해서 국가 비전을 제시하는 게 아니고 맨날 양지만 쫓아다니면서 고따위 짓거리만 하냐, 이건 안 된다'. 이런 맥락으로 다가갔어야 합니다.

 

명분이 제대로 서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전국에서 불매운동한다고 했다가 금방 끝내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말이야, 자신들을 치면 노발대발하고, 이명박 운하처럼 사회적으로 중요한 공공가치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이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불매운동을 하려면 제대로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수경 스님은 유독 '공감'을 강조했다. 일방적 강요로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젊은이들과의 공감. 소수의 의식이 있는 블로거들과 적극 소통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효순이·미선이 사건 때 종교인들 정말 추웠습니다. 일주일식 단식했습니다. 천막도 없이 말이죠. 그때 젊은이들의 움직임을 보니까 놀랍더군요. 하루가 다르게 숫자가 불어났잖아요. 그건 뭔가 자기들끼리의 소통이 됐으니까 그런 겁니다.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고 인식해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분노로 풀어갈 것이 아니라 공감할 수 있도록 하고, 합리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수경 스님은 이어 "(이명박 운하 반대운동과 관련) 난 이게 불살생 운동이라고, 적극적 실천운동이라 생각한다"면서 "대운하라는 장이 진정으로 포교의 장이다, 그 곳이 내가 기도해야 할 곳, 그 곳이 바로 법당이야. 둘 중 하나 선택하라면 나는 화계사 포기하겠다"고 일갈했다. 

 

"화계사보다 운하반대 운동이 진정한 포교의 장"

 

수경 스님은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세태와 종교인들의 자성을 촉구했다. 그리고 조계종단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희망'은 없는 것일까?

 

"좋은 기회일 수 있습니다. 사회 문제에 대해 새로운 담론이 형성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김지하 선생도 큰 틀 속에서 이 문제(대운하)를 한반도의 변화기에 나타날 수 있는 하나의 현상이라 보고 있습니다. 긍정적이라면,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2시간 30여분동안 이어진 수경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도 풀리지 않는 답답함이 있었다. 나의 속좁음과 조급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체 종교인들의 이런 발걸음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수경 스님께 여러차례 물어봤지만, 뾰족한 해답은 없었다. 그저 종교인들의 몫은 성찰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다음날 수경 스님의 통화 내용을 엿듣고 무릎을 쳤다. 조계종 종립선원인 문경 봉암사가 운하 반대 성명을 발표한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봉암사 결사'를 통해 조계종의 근현대사를 정립한 상징적인 곳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관련 기사 "대운하는 대량살상 계획과 다르지 않다")

 

게다가 기독교계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순례 중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기독교환경운동연대 등이 모여 대책위를 구성해 본격 활동에 들어간다는 소식도 전해들었다. 이들은 "이런 식으로 대운하를 밀어붙이면 기독교 전체를 욕먹게하는 일"이라면서 소망교회 장로인 이명박 당선인과 웰커뮤니티교회 목사인 추부길 당선인 비서실 정책팀장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밤 수경 스님과의 대화를 마친 뒤 600년 전에 세워진 용화전 앞에 나서니 연등에 비친 한강 하구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30여개의 연등이 한강 위에 떠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순간, 월인청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 떠올랐다. '천강에 비친 달.' 천 개의 강에 비친 천개의 달이 각자 다른 듯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같은 달이라는 의미였던 것같다. 100일 순례에 나선 종교인들의 마음이 그러하지 않을까.

 

이들이 묵묵하게 길을 걷는다는 것은 자신과 대화하며 성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길을 걸으며 새로운 가치의 길을 함께 찾는다는 뜻이다. 3일간 그들과 함께 하면서 내가 얻은 소중한 경험은 바로 자신과의 대화와 성찰이 보다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점이다.   

덧붙이는 글 | 수경 스님은 이날 밤 대화가 끝난 뒤에도 기사화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으나, 여러차례 부탁을 해서 허락을 받은 뒤 당시 대화 기록을 옮겼다.  


태그:#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수경 스님, #이명박 운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