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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금요일(15일) 밤, 반가운 사람들과 재밌게 놀다 오는 길. 약간의 취기에 걸음이 가볍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 순간 미끌!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웬 얼음바닥이지? 눈도 오지 않았는데 인도에 빙판이람.’ 그냥 지나치려다 이상해서 얼음이 생긴 곳을 따라 올라갔다. 그런데 집 바깥에서 물소리가 졸졸졸 들린다. 동요에 나올만한 고드름이 커튼을 칠 정도로 언 상태에서 물은 계속 흐르고 길은 얼고.

 

아주머니 두 분도 오시다가 놀라서 가던 길을 멈춘다. 취객이나 아이들이 걷다가 미끄러지면 다칠만한 면적이라 신고했다. 단순히 빙판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집에서 계속 물이 새는데 인적이 없는 집 같아 119에 신고를 했다.

 

00:37 - 첫 번째 신고, 그러나 주소를 알아듣지 못한다

 

"119 상황실입니다~."

"네 여기 동작구 대방동 지역인데요. 집에서 물이 새서 인도에 빙판이 만들어졌어요."

 

"주소가 어딥니까?"

"(우리집이 아니니 주소를 알 리 없다) 여기가… 등용길 90이요."

 

"네?"

"등용길 90이라고요."

 

"현재 계시는 곳이 어딥니까?"

"여기가 래미안 아파트 근처긴 한데… 447번지요."

 

"그럼 거기로 차 보내면 됩니까?"

"아뇨, 거기가 아니고 등용길 도로변인데…."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휴대폰의 배터리가 다 떨어져 전화기가 꺼져버렸다. 다시 켜보니 119의 안내메시지가 와 있다.

 

위치전송이 됐으니 차가 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다가 순찰을 도는 경찰차를 세웠다. 경찰에 사정 설명을 하자 염화칼슘 한 포대를 가져왔다. 같이 염화칼슘을 뿌리며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나‘라는 말을 꺼내려 했지만 "이런 건 구청에서 담당하는 건데…"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사라진다.

 

01:00 - 119는 오지 않고 경찰차가...

 

기다려도 119는 오지 않고 근처의 공중전화에서 다시 신고를 했다.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으니 다시 설명을 해야 한다. 날은 춥고 칼바람이 부니 손이 어는데 전화를 한 지 20분이 넘어도 차는 오지 않고.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해 왜 이렇게 늦느냐는 말을 했더니 금방 차를 보내겠단다.

 

"저희가 연락을 드릴 테니 선생님이 댁에 들어가 계셨다가 다시 나오시면 안 될까요?"

"(장난하나? 이 오밤중에?) 그러는 게 더 힘들 것 같고요. 기다려보죠. 오래 기다려서 힘든데 차 좀 빨리 보내주세요."

 

그냥 간단히 넘어가면 흐지부지될 일 같아 사진을 찍으며 자리를 지켰다.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 오라는 119차는 오지 않고 다른 경찰차가 온다.

 

"신고 받고 오셨어요?"

"예~ 아니 뭐 여기 119에서 가보라고 해서 왔는데?"

"아니 119에 신고했는데 왜 경찰차가 와요. 집에서 물이 새서 인도를 빙판으로 만들어놨는데요."

"왜 119는 우리 보고 가라는 거야?"

 

01:18 - 40분 만에 도착한 우리들의 119

 

경찰이 주택 쪽문을 열고 물이 새는 곳을 찾는 사이 소방차가 도착했다. 상황 설명을 하기도 전에 짜증이 밀려온다.

 

"왜 이제 오셨어요? 신고한지가 언젠데!"

"우리는 지령받고 바로 오는 거에요."

 

두번이나 신고를 했는데 40분 만에 오다니. 백번 양보해서 두 번째 신고후에도 20분이나 걸렸다. 하지만 물이 새는 것을 막는 것이 먼저. 집에 들어가 집 주변을 살펴 물이 새는 밸브를 잠갔다. 그래도 길에 물이 흥건해서 다시 염화칼슘을 뿌렸다. 경찰들은 재개발 예정지구라 사람이 안 산다고 했지만 2층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 집안에서 자는 아저씨는 무슨 일인지 어안이 벙벙. 건물에서 물이 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한 시간 가까이 추위에 떤 것이 억울하고 화가 나서 소방대원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자신들은 신고를 받고 바로 왔는데 무슨 소리냐고 되묻는다. 기가 막혀 꺼져있던 휴대폰을 겨우 켜 통화내역을 보여주니 이제는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결국 같이 출동한 동작119안전센터장이 다시 지령실과 무전을 교환해 상황 설명을 해줬다.

 

"보통 누수 관련한 것은 구청에서 관리를 하는데 그쪽에 연락을 하는 와중에 지체된 것 같습니다. 미안합니다."

 

선진시민 차라리 안하고 말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신고를 한 지 40분에 오는 119라면 신뢰할 수 있을까? 물이 새는 것을 지적했는데도 염화칼슘 한 포 뿌리고 가는 경찰이나….

 

아무 설명 없이 차를 보내겠다고 해놓고 경찰차를 시키는 119 지령실. 담당이라면서 오지도 않는 동작구청 관계자. 손가락이 얼어서 펴기도 힘든데 공무원들은 서로 관할 타령만 한다.

 

오지랖이 너무 넓은 탓에 집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한 시간 동안 기다린 대가는 즉시 출동에 대한 불신과 책임 전가의 현장이었다. 사고 위험이 있어 신고한 사람만 바보가 되었는데 다들 관할이 아니라는 말만 하면, 사람이 다쳤을 때 그 책임은 누가 지려 할까?

 

이런 식이라면 선진 시민 안 하는 게 낫겠다.


태그:#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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