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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산.  산방산이 보이고 일제가 만든 비행장의 격납고가 보인다. 멀리 보이는 산이 한라산이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빼앗긴 10년을 되찾자는 말이 한나라당의 대선 구호로 채택될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은 했다. 그러나 제주는 아니다. 미군정 시절부터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군부독재, 전두환 노태우 쿠테타 정부, 군부독재의 서자인 김영삼 정부까지 이르는 동안 제주는 아픔의 땅이자 붉은 빛의 땅이었다.

 

제주 4·3 항쟁은 목 놓아 울어도 풀리지 않는 '한'

 

붉은 빛. 미제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던 이들이 흘린 핏빛에 독재자들이 덧 씌운 붉은 페인트는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벗겨지지 않고 있다. 지난 10년동안 아무리 벗겨보려 애썼지만 덧칠한 붉은 색은 각인처럼 남아있다.

 

제주의 한은 48년 4.3 항쟁 이후 김영삼 정부까지 50년 세월을 철저히 입막음 되었다. 그동안 제주 사람들은 피해자나 가해자나 서로의 입을 다물고 내외하듯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 동안 제주 사람들의 가슴에 남은 응어리는 용암덩어리처럼 검게 굳어갔다.

 

제주 사람들은 가슴에 품고 있던 자신들의 응어리를 어쩌지 못해 검붉은 흙길을 따라 올레를 쌓았다. 그들은 올레를 지나 피의 계곡을 지나 오름에 올랐다. 남몰래 오름에 올라 속울음 울며 소리쳐도, 한라산에 올라 목 놓아 울어도 그들의 가슴에 남은 한은 풀리지 않았다.

 

누가 그들을 울게 했던가. 누가 그들을 연좌제의 늪으로 몰아 넣었던가. 60년 전에 있었던 진실을 알고 있는 것은 초로의 노인들뿐만이 아니다. 숱한 주검을 안고 사는 오름과 그 오름을 자식처럼 품고 있는 한라산은 제주의 정신이요, 제주의 진실이다. 그러나 한라산은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다.

 

움직이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의 적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보고 쏘았지만

그들은 보지 않고 쏘았다

학살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 날

하늘에서는 정찰기가 살인예고장을 살포하고

바다에서는 함대가 경적을 울리고

육지에서는 기마대가 총칼을 휘두르며

모든 처형장을 진두 지휘하고 있었던 그 날

빨갱이마을이라 하여 80여 남녀중학생들을

금악벌판으로 몰고 가 집단 몰살하고 수장한 데이어

정방폭포에서는 발가벗긴 빨치산의 젊은 안해와 딸들을

나무기둥에 묶어 두고 표창연습으로 삼다가

마침내 젖가슴을 도려내 폭포 속으로 던져 버린 그 날

한 무리의 정치깡패단이 열일곱도 안 된

한 여고생을 윤간한 뒤 생매장해 버린 그 가을 숲

서귀포 임시감옥 속에서는 게릴라들의 손톱과

발톱 밑에 못을 박고

몽키 스패너로 혓바닥까지 뽑아 버리던 그 날,바로 그 날

관덕정 인민광장 앞에는 사지가 갈갈이 찢어져

목이 짤린 얼굴은 얼굴대로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전봇대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빨갱이다!"

"빨갱이의 종말은 이렇다!"

광장을 가득 메운 도민들에게 허수아비의 졸개들이

이미 죽은 시체들을 대검으로 쿡쿡 쑤시며 소리쳤다

처참하게 찢어져 형체도 알아 볼 수 없었지만 도민들은

저 건 이덕구,저 건 김운민,저 건 김병남,남진,박남해……

속으로 속으로만 어림잡았다

통곡도 오열도 없었다

도대체 사람이어야 통곡이라도 하지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결코 죽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것은 푸주간에 걸린 짐승일 뿐이었다

한 개의 총알이 심장을 뚫고 간 것은

차라리 행복한 죽음이었다

해안에서 불어 오는 모랫바람이 한라산을 미친듯이

뒤흔들고 있었다

 

- 이산하 장편연작 서사시 '한라산' 중에서

 

서사시 '한라산'를 쓴 시인 이산하는 시를 발표한 이후 이적혐의로 구속까지 당했다. 아무도 제주를 말하지 않던 시절, 제주의 진실을 캐려했다는 것이 그의 죄목이었다. 그 또한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아픈 역사. 그는 한라산을 '혓바닥을 깨물 통곡없이는 갈 수 없는 땅, 발가락을 자를 분노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이라고 했다.

 

맞다. 제주는 혓바닥을 깨물 정도로 통곡하지 않고는 함부로 밟을 땅이 아니며, 발가락을 자를 분노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산이 한라산이다. 시인의 눈으로 본 제주와 한라산이 그러했건만 세상 사람들은 가려진 진실을 그대로 둔 채 평화의 섬 제주를 노래했으며 백록담에서는 사슴이 만들어낸 전설에만 귀를 기울였다. 금기의 땅인 제주. 진실이 사실이라고 말할 수 없는 땅인 제주에서는 무의식인 상태로 살아가야 제 명을 산다.

 

백조일손지묘. 한국전쟁 때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비석이 박정희 정권에 의해 파괴되었다. 예비검속이라는 이라는 이유로 죽어간 이들의 죄는 1948년 4.3항쟁과 연결되어 있다.

백성들의 한이 어느 땅보다 많은 제주. 1901년 이재수의 난으로부터 이어진 1948년 4·3항쟁. 그들이 외친 것은 '외세(미군)철수와 통일조국'이었다. 그 말을 가시처럼 여기는 이들이 있었으니 미군정과 이승만정부. 그들은 동패가 되어 제주를 반역의 땅으로 명했으며, 그 땅에 사는 이들을 빨갱이라 붉은 색을 덧 씌우고 무고한 이들을 죽음의 길로 내몰았다.

 

50년 동안 덮어 놓았던 제주의 진실을 들추어 낸 것은 제주 사람들과 김대중 정부에 이은 노무현 정부. 당연히 밝혀야 할 진실이었음에도 반발이 심했다. 다 지난 일을 굳이 들출 이유가 뭐있냐는 것이다. 그 말은 진실이 밝혀질 것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즐겨찾기 해둔 말 아니던가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운 자들은 누구?

 

입 닫은 채 죄인처럼 살아온 이들의 입에서 나올 진실의 실체가 두려워서였을까. 특별법이 제정되고 진상 조사가 이루어지자 제주 4·3항쟁의 진실을 덮으려는 이들의 방해가 어느 때보다 집요했고 활발했다.

 

2006년 말에는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다. 2007년엔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를 찾아 국가권력이 부당하게 쓰여졌다며 사과를 했다. 그러나 항쟁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미국의 사과는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미국내 한국 현대사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 받고 있는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1998년 3월14일 제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945년부터 1949년 6월까지 미군이 한국의 군대와 경찰을 지휘통제 했기 때문에 제주섬에서 발생한 모든 학살극과 잔혹행위에 대해 미국은 윤리적 책임 뿐 아니라 실체적이고도 법적인 책임이 있다"라고 못박았다.

 

제주 4·3항쟁의 미국 책임론이 부상하자 숭미주의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런 상황을 뒤집기 위해서는 정권교체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던 그들. 정권이 교체되자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 지난 10년 동안 있었던 일을 원대복귀 시키기 위해 '제주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를 폐지 시키겠다고 나섰다.

 

그들은 50년동안 잠들어있던 남도의 진실을 고작 10년 정도 들춰냈을 뿐인데, 그것을 서둘러 덮자고 한다. 몇 백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밝혀내야 할 우리의 역사적 진실을 몇 년만에 없던 일로 하자고 한다.

 

역사를 덮자고 하는 이들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진 자들인가. 대체 어떤 뇌구조를 지닌 자들의 생각이란 말인가. 곰곰히 생각해도 그들은 이 땅의 사람들과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 백성의 아픔과 고통을 그렇게 모른 척 외면할 수 없지 않은가.

 

세계적인 석학이자 사상가인 노암 촘스키의 말처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행한 범죄행위를 매우 빨리 잊어 버리려는 속성이 있다'라는 말이 맞긴 하나보다. 잊었다고 했던 일을, 잊고 싶은 것을 자꾸 파헤쳤던 지난 10년의 역사가 아무래도 그들에겐 치욕의 시간이 되었던 듯 싶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제주의 한을 덮어 버리는 이유를 그들은 분명하게 밝혀야만 할 것이다. 불탄 숭례문을 가림막으로 서둘러 가리듯, 덮여진다고 해서 제주 4· 3항쟁의 진실과 실체는 결코 가려지지 않는다.

 

노을. 중문단지에서 바라본 제주 바다. 넋들의 울음이 부서져내린다.

고통의 역사를 덮으려는 자들은 지금이라도 제주의 땅을 걸어보라. 그리하여 원혼으로 남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라. 말타고 오름을 달릴 생각일랑 말고 억울하게 숨져간 이들의 숨소리를 들어보라. 누가 누구에게 총질을 시켰으며 누가 그 총질에 죽어갔는지 똑똑히 들어보란 말이다.

 

제주의 검붉은 흙은 제주 사람들이 흘린 '피의 흙'

 

제주의 바람이 그냥 바람이던가. 원혼의 바람이다. 제주를 노랗게 물들인 유채꽃의 흔들림을 아는가. 그것은 죽어간 원혼들의 서러운 몸짓이다. 제주의 검붉은 땅이 그냥 흙이던가. 그 흙은 60년 전 제주 사람들이 흘린 피의 흙이다.

 

제주의 오름을 자세히 살펴보라. 그것은 제주 사람들의 피의 무덤이다. 발가락을 자를 정도의 분노를 품고 한라산에 올라보라. 60년 전 죽어간 이들의 숨겨진 무덤과 뼈들이 봄날 피어나는 고사리처럼 고개를 쳐들고 서럽게 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제주의 한은 제주 사람들이 풀 수 있도록 그냥 두어야 한다. 새롭게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가 간섭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은 특별법에 명시된 것을 지원하고 진상조사에 드는 비용과 인력을 지원하면 되는 것이다. 더불어 미국에게 제주 학살의 책임을 물어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제주의 아픔의 치유하기 위해 할 일이 많은 지금, 제주 4·3항쟁의 원혼들이 구천을 떠돈지 60주년이 되는 2008년. 제주 4·3위원회를 폐지 시킨다는 것이 국민을 섬기고 경제를 살리는 일 중에 포함된다는 말인가.

 

한나라당의 횡포와 이명박 정부의 역사 인식이 고작 그 정도였단 말인가. 착각마라. 우리는 당신들에게 정권을 넘겼지만 제주 사람들의 원한을 덮으라는 권한까지 부여하지는 않았다. 이제라도 제주를 이념 대립의 현장이라 매도하지 말고 빨갱이들의 집단 반란이라고도 왜곡하지 말고 감춰진 진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패자도 승자도 없이 피해자만 있는 땅이 제주 아니던가.  

 

한나라당과 이명박정부. 이제 그만해라. 제주는 지금껏 아파왔으며 앞으로도 한동안 아파야 할 잠들지 않는 남도의 섬이다. 그것이 그 시대를 살아온 산자와 죽은자들에 대한 예의이다.

 

무덤들의 거리.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이 잠들어 있는 무덤의 거리 위로 해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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