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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의 도보순례 셋째 날. 지난 이틀에 비해 날이 덜 쌀쌀하다. 오늘도 역시 단장 이필완 목사의 말씀으로 일정이 시작된다.

 

"좀 더 긴장하고, 좀 더 진정성을 갖고 나아갑시다."

 

#1 신도시 개발 현장서 만난 고인돌

 

순례단은 오늘 김포시에 불고 있는 개발열풍으로 인해 파괴되고 있는 생태계의 모습을 돌아보기로 했다. 오늘은 출발지인 김포 용화사에서부터 행주대교 진입로까지 걸어가는 것이 목표다. '김포 환경 지킴이' 야생조류보호협회 윤순영 이사장님이 선두에 선다.  

 

김포는 2006년부터 신도시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거나 예정 중인 곳이 많았다. 그런데 이곳에서 우리는 '지석묘(고인돌)'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고인돌'은 역사 교과서에서만 봤지 실제로 본 적은 없기에, 처음에 윤 이사장이 고인돌이라고 했을 때는 어리둥절했다. 그것도 신도시 개발 사업 현장에 고인돌이라니, 내 눈에는 그저 커다란 바위처럼 보였다.

 

윤 이사장은 "개발을 하기 전에 문화재 지표조사를 먼저 해야 한다. 그런데 한강 하구에 이러한 고인돌이 꽤 많이 있는데도 조사도 관리도 되고 있지 않다. 대운하 사업도 분명히 이러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재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고인돌이 그야말로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본 순례단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누군가는 "이러니 숭례문 화재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라며 탄식하기도 한다.

 

#2 "재두루미와 나는 17년 된 친구"

 

점심을 먹고 방문한 곳은 김포 홍도평야. 윤순영 이사장은 순례단에게 천연기념물 203호인 재두루미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자신을 '재두루미에 미친 사람'이라고 소개한 윤 이사장은 92년에 한강에 재두루미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17년 동안 재두루미 보호 사업을 해왔다. 그 결과 현재는 겨울철 120마리 정도의 재두루미가 우리나라를 찾는단다.

 

이날 우리가 본 재두루미는 모두 7마리. 우리는 윤 이사장을 따라 조심스럽게 재두루미에게 다가갔다. 20여명의 순례단이 와도 재두루미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필완 목사는 "이 정도 가까운 거리에 사람이 서있는데도 저렇게 유유하게 서있는 건 처음 봤다"며 신기해 한다.

 

그러자 윤 이사장은 "재두루미와 나는 17년 된 친구" "지금 재두루미가 제 기운을 읽고 있다"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윤순영 이사장은 "대표적인 철새도래지인 한강하구가 개발압력 때문에 파괴되고 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인위적 환경변화로 인해 한강하구를 떠나고 있는 재두루미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재두루미들이 서있는 논을 가리키면서 "이것만큼은 꼭 지키고 싶어요. 그런데 땅 주인이 땅 팔겠다. 매립하겠다 그러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며 "국가적 차원에서 한강하구 생태계를 보호해야 한다"고 전했다.

 

#3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계양천 복원공사 현장. 윤 이사장은 "김포시가 멀쩡하게 잘 흐르고 있던 자연하천을 조경하천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며 "이게 바로 대운하"라고 말했다.

 

습지가 형성되어 있던 계양천 주변은 시멘트와 돌로 채워지고 있었다. 순례단은 공사 중인 계양천의 모습을 보며 "온 나라를 청계천으로 만들려 그러네"라며 고개를 젓는다.

 

상류 쪽으로 올라가 보니 오폐수가 흐르고 있고, 그 물이 하류 쪽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아 놓았다. 윤 이사장은 "오폐수 처리를 먼저 하지 않고 공사를 시작해 이런 일이 생겼다"며 "김포시가 이 오폐수를 역류시켜 한강으로 내보내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들은 이원규 시인은 "물이 아래로 흐르지 못하게 막아놓는다 해도, 어차피 홍수가 나면 물은 원래 흐르던 방향으로 흘러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연관스님의 말씀처럼 "자연에는 이치가 정해져 있는데, 이를 거스르게 되면 화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순례단 중 누군가 "인간이 자연을 이기려 한다" "처음에는 이기는 것 같아도 결국엔 이길 수 없다"고 말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계양천 주변을 둘러 본 순례단의 표정은 어둡다.

 

김영동 목사는 "선진국들도 모두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연을 망가뜨려놓고 정신을 차리는 것"이라며 "우리도 대운하 건설 사업이 아니었다면, 언제 이렇게 강을 걸어보고 그 소중함을 알았겠나. 그래서 대운하는 재앙이기도 하지만 은총"이라고 말해 모든 이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4 가시는 걸음마다 생명이 잉태하기를

 

개발제한구역인 김포시 고촌면 향산리에 들어서자, 곳곳에 들어선 펜션을 제외하고는 개발 열풍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순례단은 들길을 따라 걸어갔다.

 

최상석 신부는 저 멀리 보이는 일산 아파트촌을 바라보면서 "김포도 일산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신도시 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김포의 모습은 마치 '개발병'에 걸린 한국의 모습을 축소해 놓은 듯 했다. 이곳에도 머지 않아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고 자연생태계는 몸살을 앓게 될 것이다.

 

꼬불꼬불한 길을 오랜시간 걷다보니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100일이라는 긴 시간을 걸어가야 하는 순례단은 무리하지 않고 목적지를 조금 남겨둔 채 일정을 마쳤다.

 

4시에 계양천 복구 관계자들을 만나기로 했다는 윤순영 이사장은 "가시는 걸음 걸음마다 생명이 잉태할 수 있도록 기대하겠다"며 순례단에게 큰 절을 했다.

 

오늘은 <오마이뉴스> 대운하 취재팀이 2박3일간의 동행취재를 마치고 떠나는 날이기도 하다. 작별인사를 하자, 수경 스님은 "올 땐 마음대로 와도 갈 땐 마음대로 못가"라며 아쉬워한다.

 

이필완 목사는 "순례단의 희망의 끈은 바로 '<오마이뉴스>'"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또 "종교인들이 이렇게 나섰을 땐 그냥 걷기만 하지 않는다"며 "언젠가 큰 일 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길 것이다. 그 때 <오마이뉴스>가 함께 해 달라"고 당부했다. 순례단이 박수를 쳐준다. <오마이뉴스> 기자들 역시 순례단에게 큰 절을 올린다. 

 

 

▲ 종교인 도보순례 3일째, 재두루미 가족을 만나다!
ⓒ 김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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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홍현진기자는 <오마이뉴스>7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대운하 , #도보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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