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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와 퍼커션의 혼융(混融) - <Jaco Pastorius>

베이스음을 녹여 퍼커션 소리처럼 들리게 하는 자코 파스토리우스의 베이스연주는 악기의 경계를 무람없이 넘나들며 듣는 사람을 사로잡는다. 그것은 감상하기 현란할 정도의 테크닉에 있다. 플랫리스 베이스(음을 구분하는 쇠붙이가 없는 것)를 연주하는 재즈베이시스트 자코(이하 자코)는 베이스 연주를 통해 퍼커션 소리와 언뜻 구별하지 못할 정도의 스피드와 리듬감을 들려준다.

1975년 첫 솔로 데뷔 표지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구타에 따른 뇌혈관 파열로 
35살에 세상을 떠난 자코.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의 베이스 연주는 일렉트릭 재즈베이스의 
교본이 되고 있다.
▲ 1975년 첫 솔로 데뷔 표지 정신병원에 수감되고 구타에 따른 뇌혈관 파열로 35살에 세상을 떠난 자코.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의 베이스 연주는 일렉트릭 재즈베이스의 교본이 되고 있다.
ⓒ Ep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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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의 솔로 앨범 <Jaco Pastorius>는 베이스와 퍼커션 소리의 혼융(混融)이다.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베이스 리듬의 한계를 넘어 퍼커션의 역동적 울림까지 주는 자코의 연주는 펑키(funky)하고 그루비(groovy)하다. 'Kuru/Speak Like A Child'의 베이스 슬래핑은 정말 타악기 소리와 분별하기 힘들만큼 스피드와 정교함으로 꽉 차 있다. 소리에 흥이 있어 절로 추임새를 넣고 어깨를 흔들게 한다. 

자코의 ‘옥타브 테크닉’이나 ‘플래절넷 테크닉’, 여기에 뛰어난 코드 연주는 70년대 이미 한 시대를 풍미했고, 그를 최고의 일렉트릭 재즈베이시스트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자코는 “나는 인간의 목소리를 연주하듯이 베이스를 연주합니다. 나의 연주는 내 이야기 같은 것입니다. 마치 가수들처럼.” - 재즈북 467쪽 참조 - 연주한다고 했다.

이것이 잘 담겨 있는 곡은 'Continuum'이다. 제목처럼 4차원의 세계를 연주한 이 곡을 통해 자코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Continuum'은 마치 인간의 목소리로 들리기도 하고, 어느 둥근 공간 - 그곳이 석실고분이라고 가정하고 - 에서 빙 돌아가는 소리의 파장을 들을 수 있다. 이는 단속(斷續)을 통해 끝없이 맴돌아가는 우리네 인생과 닮았고, 오늘과 내일이란 시간의 덧을 모호하게 한다.

루이 아라공의 ‘미래의 시간’에 펼쳐진 르네 마그리트의 실존 철학

'피레네 산맥의 城' 르네 마그리트의 상상력은
공간을 뛰어넘으면서
현실의 권태를 잊게 해준다.
▲ '피레네 산맥의 城' 르네 마그리트의 상상력은 공간을 뛰어넘으면서 현실의 권태를 잊게 해준다.
ⓒ 르네 마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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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출신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피레네 산맥의 城’이란 작품이다. 바다 위 거대한 암석 가운데 지어진 작은 성, 그것은 환상이자 상상이다. 어떤 환상과 상상이 결합될 때, 인간의 사유는 땅의 지평을 떠나 하늘과 바다를 유유히 떠다닐 수 있다.

이것은 착란일 수도, 혹은 분열이거나 환각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황지우 시인이 말한 “모든 착란적인 것이 시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어떤 착란적인 것’은 시적이다. 그것은 나에게, 모든 禪적인 것이 시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어떤 선적인 것’은 시적인 것으로 체험되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라는 말이 이해된다.

르네 마그리트를 흔히 ‘초현실주의 화가’라고 말한다. 나는 초현실주의란, 낱말 그대로 현실을 초월하려는 기제(機制)라기보다는 그 기제에 붙어 있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으려는 의지로 읽는다. 시간이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권력이다. 나는 시간 앞에서 항상 무력했고 불안했다. 시간은 권력의 공포처럼 나를 막는 거대한 城이자 사유의 틀을 지워지게 하는 무감하지만 강력한 프레임이었다.

인간만이 사랑을 가진 자이기에
자기가 품었던 꿈이 다른 사람의 손으로
자기가 불렀던 노래가 다른 사람의 입술로
자기가 걸었던 길이 다른 사람의 길로
자기의 사랑마저 다른 사람의 팔로 성취되고
자기가 뿌렸던 씨를 다른 사람들이
따게 하도록 사람들은 죽음까지도 불사한다
인간만이 내일을 위해 사는 것이다

루이 아라공, <미래의 시간> 가운데

루이 아라공은 <미래의 시간>이란 시에서 “인간만이 내일을 위해 사는 것이다”라고 썼지만, 내일이란 오늘의 실존적 절망을 거세하는 하나의 환상일 뿐이라는, 그러므로 오늘이란 현실은 늘 견뎌내야만 하는 암울한 그림자의 연속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의 일상은 그렇기 때문에, 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하고 분열하면서 한편으로는 꿈을 꾸고 절망한다.

공간 속에서 자기의 시간성을 담보하는 우리는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이동한다. 르네 마그리트가 '피레네 산맥의 城'에서 보여준 바다 위의 작은 성처럼. 그것은 작은 성이지만 단단한 암석위에 지어졌기에 견고할 것이고, 그 견고함으로 부드러운 물 위에 떠 있다. 견고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자코의 베이스 연주는 부드러움 속에서 견고함을 발견하게 한다. 그것은 현재에서 미래를 발견하는 걸출한 자의 치열한 노력이다.

혼융(混融)을 통한 시간의 버무려짐

베이스 소리는 기타보다 포근하고 피아노의 선명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베이스는 많은 악기를 되받아준다. 흡사 어머니 품처럼 안온하다. 바로 지금, 이란 시간은 소중하고 그 시간의 틈에서 우리는 공간을 발견한다. 베이스는 그 공간에서 많은 소리를 되새김질한다. 마치 소처럼. 사람들도 일상을 되새김질한다. 시간의 환희와 멍에와 굴레를 통해서 우리는 얼마만큼 왔나. 나와 당신은 얼마만큼 걸어왔는가. 르네 마그리트처럼 ‘피레네 산맥의 城’을 넘어 프랑스와 스페인의 경계를 상상했는가, 아니면 루이 아라공처럼 질박한 노동의 일상 속에서 '미래의 노래'를 불렀는가.

바다 위에 떠있는 암석이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과 바다보다도 거대하게 그려진 암석의 위용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현실은 기우(杞憂)와 불안이 겹쳐지면서 흘러간다. 상상과 현실이 공존하는 이 시간의 지평에서 하나가 아닌 다수의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나’가 있다. ‘또 다른 나’는 황지우 시인이 말한 ‘어떤 착락적인 것’과 ‘어떤 선적인 것’의 교합이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코의 베이스 연주는 ‘어떤 착란적인 것’과 ‘어떤 선적인 것’이 황지우 시인의 말처럼 ‘시적인 것’으로 승화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베이스 연주를 통해 퍼커션 소리를 재생시켰다는, 다른 말로 ‘어떤 착란적인 것’이 ‘어떤 선적인 것’과 합치되면서 ‘시적인 것’으로 발현되었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재즈 월간지 MM Jazz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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