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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극이 임박한 이산. 그는 지금 조선의 지존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산> 제43회의 한 장면.
 등극이 임박한 이산. 그는 지금 조선의 지존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산> 제43회의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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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손의 등극이 임박했다. 12일에 방영된 <이산> 제43회에서는 공포와 초조에 빠진 반대파들의 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다. 이산이 조선의 지존이 될 날은 얼마 남지 않았다.

드라마의 이산이 등극을 앞둔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한번 생각해볼 것이 있다. 이산의 공식 칭호가 무엇이었는가 하고 말이다. 그의 공식 칭호를 살펴보아야 할 이유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정조를 부를 때 논리적 모순을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조의 다음 임금을 광해군이라고 부른다. 조선 제15대 군주를 특별한 존호 없이 그냥 광해군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선정부가 부여한 공식 칭호가 바로 광해군이었기 때문이다. 연산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반면, 우리가 철종의 다음 임금을 고종황제라고 부르는 것은 조선정부가 그에게 부여한 공식 칭호가 바로 황제였기 때문이다. 순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이들을 황제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이 광해군보다 훌륭해서가 아니라 조선정부에서 그런 칭호를 공식적으로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해당 왕조가 공식적으로 부여한 칭호를 갖고 과거의 군주들을 부르고 있다. 이에 관한 한 우리는 당시 왕조의 공식 결정을 존중하고 있다. 그것이 일반적이고 무난한 칭호 사용법일 것이다.

정조의 정식 묘호는 '정종'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조선시대의 몇몇 군주를 부를 때에는 그러한 일반적 원칙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 조선정부가 공식적으로 부여한 명칭을 따르지 않고 있다. 위에서 “우리가 논리적 모순을 범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정조다.

세상을 떠난 지 1개월 후인 정조 24년(1800) 7월 6일에 조선정부에서는 그에게 정종(正宗)이라는 묘호를 부여했다. ‘정도(正道)로써 세상을 복종시킨 임금’이라는 의미에서 그런 묘호를 올린 것이다.

그런데 그의 사후 100주년이 되는 서기 1900년 1월 23일에 고종황제는 정종의 칭호를 재조정하는 내용의 황명을 반포했다. 황명의 내용은, 이제부터는 정종을 정조 선황제로 높여 부르겠다는 것이었다.

 서울시 소재 종묘 안에 있는 신위봉안도. 붉은 별표가 찍힌 부분에 "정조 선황제, 효의 선황후"라고 쓰여 있다.
 서울시 소재 종묘 안에 있는 신위봉안도. 붉은 별표가 찍힌 부분에 "정조 선황제, 효의 선황후"라고 쓰여 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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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으로부터 복종을 받은 임금”이라는 의미에서 정조라는 묘호를, “정사(政事)와 교화를 널리 편 임금”이라는 의미에서 선황제(宣皇帝)란 제호를 올린다는 것이 대한제국정부의 공식 입장이었다. 

이 황명을 반포하면서 고종은 “높일 사람은 높이는 것이 도리”라고 강조했다. 그것이 동아시아의 이상국가인 고대 주나라의 예법에 부합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부덕하고 암둔한 짐”도 황제를 칭하고 있는데 하물며 나보다 더 훌륭한 분들을 황제로 칭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이 고종의 말이었다.

이렇게 해서 이산은 ‘정조 선황제’라는 공식 칭호를 부여받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때 부여된 칭호 중에서 ‘정조’ 부분만 취하고 ‘선황제’ 부분은 취하지 않고 있다. 선황제 대신에 ‘대왕’이라는 표현을 붙여 ‘정조대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명명법은 조선왕조(대한제국정부)의 공식 결정에 분명히 배치되는 것이다.

대한제국이 '정조 선황제' 제호 부여

또한 그러한 호칭은 잘못하면 정조를 중국왕조의 제후로 전락시킬 수도 있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물론 그렇지 않지만, 한자문화권에 사는 동아시아인들에게는 ‘대왕’이란 존재가 어디까지나 ‘황제 밑에 있는 제후’에 불과할 뿐이다. ‘대왕’이란 표현은 제후들 중에서 훌륭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질 뿐이다.

물론 한국에서는 ‘왕’이란 표현이 제후국 군주가 아닌 독립국 군주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중국 등에서는 그저 황제 밑의 제후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데에 그쳤다. 그렇기 때문에 정조대왕이란 표현은 정조 임금의 위대성을 기리기보다는 도리어 그의 위상을 제후국 군주로 격하시키는 역기능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볼 때에 그렇다는 말이다. 

예전에, 퇴계학을 전공하는 어느 저명한 국내 성리학자는 “내가 자주 접촉하는 중국인 학자들이 혹시라도 오해할까봐 ‘세종대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며 학생들에게도 그렇게 할 것을 권유한 적이 있다.

위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중국인들에게 ‘대왕’은 어디까지나 자국 황제의 아랫사람으로 인식될 뿐이라는 것이 그 학자의 말이었다. 그래서 그는 차라리 ‘대왕’ 자를 빼고 그냥 ‘세종’이라고 부르는 게 국가의 위신에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에, 정조에게 제후 이미지를 씌울 수 있는 ‘대왕’ 혹은 ‘왕’이란 표현을 삼가는 것이 동아시아 역사전쟁에서 중국측 논리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인식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대한제국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부여한 황제 칭호를 버리고 굳이 대왕이니 왕이니 하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한국 스스로 자국의 역사를 격하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황제라는 표현은 구한말에나 사용했을 뿐, 고종 이전에는 그런 칭호가 없지 않았느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에 대한 명백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황제라는 표현을 사용하느냐 여부는 상대적인 문제였다. 자국보다 강한 나라 앞에서는 황제국 대우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자국보다 약한 나라 앞에서는 황제국 대우를 받았다. 그런 사례들이 동아시아 역사에서 발견되고 있다. 정조 이전 시기에 이미 그런 국제적 현상이 동아시아에 존재하고 있었다.

'황제' 칭호 사용은 상대적이었다

예컨대, <세조실록> 및 <성종실록>에서는 당시 일본의 중앙 및 지방권력자들이 조선 군주를 ‘폐하’ 혹은 ‘황제’로 부른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성종실록>에서는 조선 군주와 일본 쇼군(실질적 최고권력자)이 모두 다 황(皇)으로 불린 사례도 찾을 수 있다.

당시의 조선이나 일본은 최강국 명나라와의 관계에서는 황제국 대우를 받지 못했지만 그 외의 국제관계에서는 역학관계에 따라 황제국 대우를 받기도 했던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말로만 황제로 불린 게 아니라 공식 문서를 통해 황제라고 불렸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황제냐 아니냐 하는 것은 일종의 상대적인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황제 칭호가 이처럼 상대적인 것이었기에, 한족 왕조와의 관계에서도 힘의 변화에 따라 황제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다. 예컨대, 이익이 쓴 <성호사설>에 따르면, 명나라 만력제 말기에 명나라 정부에서 조선 사신에게 보낸 서한에서 조선 군주를 ‘조선황제’라고 칭한 사례가 있다고 한다. 만주에서 여진족이 흥기하고 명나라가 약해지자 조선이 캐스팅보트가 되어 가던 시점에서, 명나라 정부가 그 같은 ‘잔꾀’를 부렸다는 점이 흥미롭기만 하다. 

이처럼 동아시아에서 황제라는 표현은 사실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중국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최강국이 아니라 할지라도 자국보다 약한 나라로부터 황제국 대우를 받는 경우가 있었다. 강자 앞에서는 ‘왕’이 되고 약자 앞에서는 ‘황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 별 것도 아닌 황제 표현을 두고 한국인들은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어찌 감히 그런 표현을 쓸 수 있느냐? 그것은 중국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니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역사적 진실에 배치되는 것이다. 또 그것은 모든 것을 중국 중심으로 보는 데에서 발생하는 사대주의적 역사관의 소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우리 자신의 역사를 스스로 비하하는 나약한 심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한 부정확한 역사인식 혹은 사대주의적 역사관 때문에 황제로 불러야 할 대상을 황제라 부르지 않는다면 이 역시 또 다른 역사왜곡이 될 것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것은 한스러운 일이지만, 황제를 황제라 부르지 않는 것은 한심한 일일 것이다.

정조는 대한제국의 공식지정 '황제'

세조나 성종은 외국 문서에서 황제로 불린 데 비해 정조는 국가적 차원에서 황제로 공식 지정되었는데도, 그런 정조황제를 그저 정조대왕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은 태도일 것이다. 그를 과감히 황제라고 부르지 못하는 것은 혹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우리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자의식’의 발로는 아닐까?

드라마 <이산>에서 조만간 지존의 자리에 오르게 될 이산. 비록 사후이기는 하지만 그는 엄연히 조선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황제라고 불린 인물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그는 대한제국 공식지정 황제였다.

정조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한편 동아시아 역사전쟁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를 재정비하는 차원에서, 정조처럼 우리 역사에서 황제로 공식 지정된 인물들에 대해서는 그에 맞는 적합한 칭호로 불러주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드라마 속의 이산은 연인 성송연에게 “나를 산이라 불러줄 수 있느냐?”라고 감미롭게 속삭였다. 종묘에 배향된 실제의 이산은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나를 황제라 불러줄 수 있느냐?”고 나지막이 속삭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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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 노비들,왕의 여자,철의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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