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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그믐날이네.'

 

언제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 버렸을까? 믿어지지가 않는다. 시작한 것이 엊그제인데, 한해의 맨 마지막 날에 서 있었다.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 앞서지만 어김없는 현실이니, 난감하다. 나이 따라서 세월의 속도가 달라진다고 하였던가? 화살처럼 멀어지는 세월의 속도감에 어지럼증이 난다. 현기증이 몸을 흔들리게 한다.

 

 

생생하다. 지난 일 년 동안의 일들이 모두 다 살아 있다. 손에 잡히는데, 그것들이 이제 모두 다 과거 속의 허상이 되었다니, 실감되지 않는다. 이제는 모두가 그림자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게 한다. 혼란스럽다. 방향 감각을 상실한 사고 활동이 더욱 더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다. 좌충우돌이다.

 

'청둥오리들은 그렇지 않았는데….'

 

지난 번에 보았던 철새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논 위에 무리지어 앉아 있던 모습이며, 하늘로 비상하고 있는 생생한 모습들이 다가온다. 그들의 수는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리를 지어 있었다. 언뜻 보면 밀집도로 인해 혼란이 일어날 것만 같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많은 청둥오리들이 혼재해 있어도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마주 보고 있는 새들이 있는가 하면, 토라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새들도 있다. 등을 맞대고 말 한마디 붙이지 않을 것 같은 날카로움이 번득이고 있기도 하는 것이다. 가지각색으로 행태가 자유분방하다.

 

그 어디에서도 방향을 찾을 수가 없다. 혼란과 혼돈의 세상으로만 보인다. 그런데 더욱 더 이상한 일은 그들 사이에 다툼이 없다는 것이다. 무질서 속에서도 아무런 다툼이 없는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저리 많은 무리를 이루면서도 부딪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저런 모습을 보고 오묘하다고 하는 것일까?

 

새들이 갖가지 모양을 하고서 함께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혼돈 속의 질서가 바로 저런 것일까? 자유분방하면서도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새들의 집단에서는 전혀 다툼이 없다.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교한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새들이 질서를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새들의 비상을 본다. 땅을 박차고 하늘로 비상하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날아오를 때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발의 모습이며 날개의 모양들이 모두 다 다르다. 그러나 하늘에 날아오르고 난 뒤의 모습은 모두가 다 똑 같다. 같은 날개의 모양을 하고 있고 같은 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날아오르는 모습만이 아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착륙하고 난 뒤의 모습까지도 그들의 행동은 일사분란하다. 앉아 있을 때의 가지각색의 모양으로 하고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땅에 같은 모양으로 착지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그렇게 시킨다고 하여 그렇게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것은 그들의 질서 원리인 것이다.

 

무리지어 활동하고 있는 철새들이 혼란스럽게 보이지만 질서를 유지하는 비결인 것이다. 그들의 마음이 모두 다 같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행동은 자유롭게 하지만 그들의 근본 마음은 모두 다 한 마음인 것이다.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면서도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새들이 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다른 친구들을 배려하고 있었다. 이익이나  편리함을 추구하기 보다는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렇게 많이 모여 살면서도 다툼 없이 공존할 수 있는 지혜인 것이다. 자신을 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으니, 아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섣달 그믐날.

 

달려온 지난 한해를 생각해본다. 새들처럼 그렇게 배려하면서 한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반성해본다. 욕심을 앞세운 일들은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끝도 없이 이끌려 나오는 일들은 모두가 욕심을 채우기 위해 발버둥친 일들뿐이다. 배려를 앞세운 일은 하나도 기억되지 않는다. 다가오는 무자년에는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배려를 앞세우는 삶을 살아야겠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군산에서


태그:#철새, #한마음, #존중, #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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