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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문화유산 중 백미인 인도 타지마할묘
 세계문화유산 중 백미인 인도 타지마할묘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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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타지마할묘 벽의 돌문양
 인도 타지마할묘 벽의 돌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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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아그라성 동쪽돔에서 바라보는 야무나강 너머 타지마할묘가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다. 뿌연 안개로 타지마할묘는 더욱 신비스럽다. 학창 시절 미술 책에서 보았던 하얀 돔들이 둥둥 떠 있는 타지마할묘는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인도 무굴제국 제 5대 황제인 사자한도 이곳에 서서 타지마할묘를 바라보면서 전쟁터에도 데리고 다닐 정도로 사랑했던 뭄타즈마할을 그리워하였을 것이다. 그 그리움이 야무나강에서 피어나는 안개가 되어 타지마할까지 날아갈 것이다.

1월 16일(수) 오후에 인도 아그라성에 도착했다. 무굴제국 권력의 상징인 아그라성은 악바르대제에 의하여 1565년에 지어졌다. 이 아그라성 동쪽에서 바라본 타지마할묘는 마치 강 위에 떠 있는 것 같이 아스라하게 다가왔다.

17일(목)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 산티호텔(Shanti Lodge) 옥상으로 올라갔다. 타지마할묘 주변 마을에서 타지마할묘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하늘에는 붉은 기운이 떠오르고 가마귀들이 타지마할묘 돔 주변을 날고 있다.

이윽고 동쪽에서 해가 솟구치자 타지마할의 하얀 돔이 붉은 색으로 변한다. 그 붉음이 차차 변하여 하얗게 될 때까지 타지마할묘의 돔은 신비스럽게 다가왔다. 타지마할묘의 하얀 대리석은 각도에 따라 다른 색감을 보이며, 아침과 한낮 그리고 석양 무렵의 느낌이 다르고, 달빛에 따라서도 느낌이 다르단다.

오전 11시, 타지마할묘에 갔다. 타지마할묘를 들어가는 문은 동, 남, 서문 등 세 곳이 있다. 동문에도 총을 든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고, 남자와 여자가 따로 금속탐지기를 통과하고 몸수색을 받아야 한다. 외국인들에게 받는 입장료는 750루피(한화 약 1만8750원)로 250루피가 입장료이고 500루피가 세금이다. 인도인들에게는 20루피만 받고 있었다. 그 대신 외국인들에게는 물 한 병과 덧신을 주었다.

 인도 타지마할묘의 정문
 인도 타지마할묘의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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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를 통과하면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정문이 나타난다. 정문의 모습도 대단하다. 붉은 사암들이 주를 이루지만 가운데 들어가는 부분에는 하얀 대리석에 여러 가지 색깔의 돌을 새겨 넣어 만든 문양들이 아름답다. 가운데 돔 형태의 문으로 하얀 타지마할묘가 보이기 시작한다.

타지마할묘는 가로가 300m, 세로가 580m의 터에 세워진 묘이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타지마할묘까지 수로가 있고, 그 수로에는 분수들이 줄줄이 배치되어 있다. 그 수려 양 옆에는 가지런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그 주변의 정원이 깔끔하다. 특히 수로 중간에 의자가 있고 타지마할묘를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1994년에 이 의자에서 영국의 다이애나비가 사진을 찍었다고 하여 다이애나 의자라고 한다.

타지마할묘의 본 건물의 기단부 크기는 사방 95m, 본체는 57m, 높이는 67m이고 네 귀퉁이에 있는 탑은 높이가 43m라고 한다. 정문에서 바라보이는 타지마할묘는 파란 하늘 아래 있는 하얀 대리석이 눈부시게 빛난다. 네 개의 탑과 가운데 건물은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었으며 가운데 돔과 그 옆에 있는 돔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다.

 인도 타지마할묘 본체 입구
 인도 타지마할묘 본체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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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자한은 인도 무굴제국의 제 5대 황제이다. 이때가 바로 무굴제국이 중앙아시아의 패자로서 극성기이다. 그는 두 번째 부인으로 맞아드린 뭄타즈마할을 유별나게 사랑했는데 그녀는 1631년 황제의 14번째 아들을 출산 한 뒤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래서 황제는 2년간의 상을 치를 것을 명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를 지어 아내에게 바치려 하였다.

1631년부터 22년 동안 국가의 재정이 기울어질 정도의 거액을 들여 완성한 이 묘는 제국의 재보와 미술, 공예품을 한데 모아놓은 국제적 프로젝트로 만들었다. 건축가로서는 이란으로부터 이사칸이 참여했고, 전문 기술진으로 유럽대륙의 기술자들까지 동원하였다. 건설인력도 인도인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인을 포함하여 2만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러시아와 중국 등지에서 수입한 여러 가지의 돌과 보석을 사용해 1653년에야 완공하였다 한다.

본체의 기단부에부터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외국인들에게 지급되었던 덧신을 신었다. 계단으로 본관 입구에 도착하면 하얀 대리석에 박혀 있는 각종 문양의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하얀 대리석에 각각의 색상을 지닌 돌들을 오려서 파 넣은 양식을 취하고 있다. 하얀 대리석에 그대로 새긴 문양도 있다. 본체 외벽에 새겨진 문양들만 보는 것도 황홀하다.

 인도 타지마할묘 벽의 돌문양
 인도 타지마할묘 벽의 돌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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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타지마할묘 내부
 인도 타지마할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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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타지마할묘 내부 돌 문양
 인도 타지마할묘 내부 돌 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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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체 내부로 들어가면 어두컴컴하다. 조명을 밝게 해 놓지 않았다. 물론 사진촬영도 금지된다. 곳곳에 감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운데에 두 개의 석관이 있고, 그 석관을 둘러싸고 있는 칸막이들이 아름답다. 돌로 만든 칸막이의 정교함, 그 위에 새겨진 각종 문양들, 그 문양들에 하나하나 박혀 있는 각종 보석들은 보는 이의 눈을 황홀하게 한다.

동행한 표숙자 선생은 몹시 아쉬워한다. “5년 전에 이 타지마할묘를 방문하였을 때에는 돌로 새겨진 각종 문양들에 수많은 보석들이 박혀 불빛에 비치는 보석들의 반짝임에 압도당했는데, 지금은 그 보석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 어떤 사람들이 손으로 떼어 갔을 것이다. 그래도 그 아름다움은 반감되지 않은 것 같다.

석관의 아름다움도 마찬가지다. 하얀 대리석에 각종 색상의 돌을 문양으로 새겨넣었고, 그곳에 모두 각종 보석들을 붙였다고 한다. 사자한왕과 부인 뭄타즈마할의 석관이다. 그러나 이 두 석관에는 아무것도 내장되어 있지 않고 본관 아래층에 따로 나란히 묻혀 있다고 한다.

 인도 타지마할묘 내의 석관 모습
 인도 타지마할묘 내의 석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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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타지마할묘 돔 천장의 모습
 인도 타지마할묘 돔 천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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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의 돔양식 또한 불가사의로 알려지고 있다. 천정을 이루는 거대한 돔을 하나의 돌로 완성하였다는 것이다. 하나의 돌을 사용하여 돔을 만들고 그것을 위에 놓았는데, 어떻게 그 거대한 돔을 그 위에 올려놓았을까하는 것이 상상 불가인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야무나강이 보이는 본체 뒤에 앉았다. 아무 말이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본체 내부를 돌고 온다. 너무나 황홀한 타지마할묘에 대한 경이에 빠져 있었다.

본체 뒤에는 야무나강이 흐른다. 멀리 아그라 성의 모습이 흐릿하게 들어온다. 아내를 끔찍이도 사랑한 나머지 국력을 탕진하여 타지마할묘를 건설하고 끝내 아들에 의해 유폐당한 절대군주의 비장한 모습이 안개처럼 번진다. 하지만 그 전설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으로 인하여 불멸의 세계 문화유산이 하나 남았는지 모른다.

 인도 타지마할묘 돔 모습
 인도 타지마할묘 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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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좋아하여 산행 기사를 많이 씁니다. 등산클럽 풀꽃산행팀과 늘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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