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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읽는 재미 가운데 하나는 칼럼이다. 방송과의 차별성이 가장 큰 장르이기도 하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글맛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내공이 뛰어난 잘 다듬은 한 편의 칼럼은 시야를 확 틔워주는 길잡이 역할도 하다.

2월 첫날(1일) 아침 신문의 기명 칼럼 세 편은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이른바 '오렌지 표기' 발언 논란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었다. 이경숙 위원장의 언어에 대한 몰이해를 딱 드러내주었다. '외래어'와 '외국어'는 다르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무지에 대한 일깨움이다.

이경숙 위원장의 언어에 대한 몰이해

<한국일보> 오피니언 란에 실리는 '지평선'은 논설위원들이 돌아가며 쓰는 기명칼럼이다. '지평'이라는 말의 어감이 전하는 것처럼 오랜 역사의 칼럼난이다. 오늘은 이광일 논설위원이 썼다. 제목은 '오렌지와 아린지'.

이광일 논설위원은 한마디로 "외래어 표기법은 죄가 없다"고 말한다. 영어 발음을 잘못하는 사람이 괜히 외래어 표기를 탓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광일 위원의 칼럼을 따라가 보자.

"이경숙 위원장이 엉뚱한 소리를 했다. …미국에 가서 오렌지라고 했는데 못 알아들어서 '아린지'라고 했더니 알아듣더라는 얘기도 했다. 착각이 있는 것 같다. 미국에 가서 '오,렌,지' 아니라, '아,린,지'라고 골백번을 얘기해도 못 알아듣는다. …상대방이 알아들었다면 순전히 로마자로 표기해 a(o)rinji 라고 발음했을 것이다. 그나마 a(o)에 악센트가 있어야지 i에 강세를 주었다면 역시 잘못 알아들었을 것이다.

이런 엉뚱한 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영어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영어를 위해서는 한국어로 생활하는 사람의 표기법까지 뜯어고쳐야 한다는 '오버' 내지는 법주착오의 오류다. 둘째 언어학적 무지다. 어느 나라에나 있는 외래어 표기법은 그 나라의 어문 생활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하자는 규정이지 남의 나라 말 발음을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영어 발음과 음가를 한글로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는 것은 한국어 발음과 음가를 로마자나 기타 문자로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광일 논설위원은 외국의 외래어 표기와 외국어 발음의 불일치 사례를 둘 들었다. 일본 사람들이 McDonald를 마쿠도나루로 적지만 영어로 발음할 때 마쿠도나루로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 문자가 코카콜라를 可口可樂(가구가락)이라고 표기함으로써 '커코우커러'라는 식으로 어지간히 발음을 내지만, 영어로 말할 때는 정확하게 CocaCola라고 발음하는 사례도 들었다.

외국에서도 외래어 표기와 외국어 발음은 불일치

<경향신문> 오피니언 란의 '여적' 역시 논설위원들이 돌아가며 쓰는 기명칼럼이다. 오늘 김철웅 논설위원의 칼럼 제목은 '외래어 표기'다.

김철웅 위원은 그렇지 않아도 중구난방식 외래어 표기의 문제를 짚었다. 신문 지면의 표기에서 그 사례를 들었다.

먼저 유전자 염색체를 뜻하는 '게놈'과 '지놈'의 혼선. 원래 독일어이고, 또 1930년대 일본을 통해 들어와 계속 '게놈'으로 써 왔지만 한 신문 현재 게놈은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으며, 미국이 인간 게놈 해독에 관한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는 이유로 몇 해 전부터 지놈으로 바꿔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예는 도처에 널려 있다는 것이다. 비교적 발음이 쉬운 러시아어 인명만 해도 올 3월 대선에 나서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제1부총리를 매체에 따라서는 메드베'제'프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구개음화 때문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블라'지'미르 푸'친' 러시아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중구난방식 외래어 표기는 지극히 '한국적'이라는 게 김철웅 논설위원의 분석이다. 일본에선 매체에 따라 외래어를 '소신껏' 쓴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는 것이다. 정부·언론 외래어심의공동위원회란 기구가 교통정리를 하고 있지만 막무가내다.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풍토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이 위원장의 '아린지'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는 것이다. "외래어와 외국어는 다르며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한다는 기본원칙도 모르고서" 한 말이라는 것이다.

<국민일보>의 '현장기자'는 취재기자들의 칼럼이다. 취재 기자 칼럼은 취재 현장의 생생함이 묻어난다.

박지훈 기자(사회부)의 '현장기자' 제목은 '너무 나간 인수위원장'이다. 칼럼에 인용한 한글 전문가와 영어 전문가의 말이 생생하다.

"영어와 국어의 음소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이 위원장이 모르는 것 같다. 영어 교육을 어떻게 시킬 것인지 고민하기 전에 집에서 국어 공부부터 했으면 좋겠다."

영어 교육보다 국어 공부부터 해야

한글학회 김승곤 회장의 말이다.

"한국인과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은 구강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표기법을 바꾼다고 해서 발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f'나 'r'의 발음은 아예 표기 자체가 힘들다."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배유정 교수의 말이다.

이경숙 위원장의 '엉뚱한 소리'에 김철웅 <경향> 논설위원은 '한 편의 서글픈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이광일 <한국> 논설위원은 '서글픈 난센스 소동'이라 했다.

그런데도 이경숙 위원장은 '태연한 모습'으로 1월 31일 인수위 회의 때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게 '굿 모닝'이라고 영어식 인사를 건넸다.

서글픈 코미디 소동은 끝나지 않았다. 그 끝이 어디일까. '굿모닝'하는 사람들은 안녕할지 모르겠으나, 결코 안녕하지 못한 2월 1일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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